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0 원죄 - 전면적 부패와 영적 무능력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 2014.07.11 15:07 | 조회 7969

원죄(1) 전면적 부패와 영적 무능력 <64>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64: “원죄로 인한 본성의 부패로 인하여,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그리고 악을 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이끌려져 있고, 온갖 범죄를 실제적으로 범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긍휼 없이 어떤 사람도 구원의 소망 없어

   

본 항은 아담이 범한 죄로 인하여 그것이 아담의 후손이 짊어져야 했던 원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두 가지 설명, 즉 죄의 오염과 죄책 가운데 하나를 교훈합니다. 그것은 죄의 오염과 관련한 것으로, 본래는 순전하였던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부패함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 교훈입니다.

 

선과 관련하여, 사람은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못한 자들이 되었고, 또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하였고, 온갖 선과 대립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5:6; 7:18; 8:7). 악과 관련하여, 사람의 마음은 선의 결핍 혹은 선과의 반대 또는 대립에 있으며(6:5; 8:21; 3:10-12), 온통 악을 향한 성향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이러한 상태에 처하게 된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결국 온갖 범죄를 실제적으로 범합니다. 요컨대 아담이 범한 죄로 인한 부패는 원죄로 인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범죄, 곧 자범죄를 낳는 원인이 됩니다(1:14-15; 2:2-3; 15:19).

 

누구나 죄의 오염과 죄책 가지고 있어

 

신앙고백서는 본 항에서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소위 선의 결핍 또는 결여’(privatio boni)로서의 죄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줍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으며라고 고백하고 있는 표현은 본성의 부패로 인하여 타락한 이후 인간에게 선을 기대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선의 결핍 또는 결여로서의 죄의 이해는 마니교의 주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마니교는 선과 악을 각각 실체로 보는 이원론을 말합니다. 영원한 두 실체들이 서로 존재하며 투쟁하는 이원론의 형이상학은 결국 선뿐만 아니라 악의 실체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악의 책임을 부가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으므로 악을 선과 같은 실체로 보는 견해를 부정하고, 악이란 마땅히 있어야 하는 선의 결핍 또는 결여로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란 선의 결핍 또는 결여라고 할 때, 그것이 말하고 있는 바는 죄란 결코 하나님께서 만든 어떤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죄가 실체라면 모든 실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 또는 악을 만드신 분이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의 창조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는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선하시며 모든 선의 기원이시고 또 그가 만드신 만물의 실체들이 선하다는 점에서, 선은 하나의 실체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죄는 실체가 아니라 선한 실체가 결여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선의 결핍 또는 결여로서의 죄의 개념은 단순한 선의 부재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선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의 실체이므로 마땅히 존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반영할 때, 선의 부재는 선의 결핍 또는 결여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습니다.

 

죄란 마땅히 있어야 하는 선이 결핍 또는 결여된 부정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곧 헤르만 바빙크가 예를 들 듯이, 돌이 보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눈의 부재를 말하지만,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은 눈의 결핍 또는 결여로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이 없는 돌과 달리, 눈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보아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결핍 또는 결여된 부정적 상태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죄란 선의 결핍 또는 결여된 상태

 

그러나 신앙고백서가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는 죄란 단순히 물리적 의미에서 선이 결핍 또는 결여된 상태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죄는 윤리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돌과 사람의 예를 따라 말한다면, 윤리성이란 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이성이 없는 짐승에게는 선을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의 부재를 말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사람은 본래 창조 때부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존재로(posse non peccare) 마땅히 윤리성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졌으므로 그가 윤리에 어긋날 때 그것은 선의 부재가 아니라 선의 결핍 또는 결여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의 결핍 또는 결여는 단순히 어떤 물리적 의미에서의 실체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현상으로서 인격적 문제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포함하는 생각과 감정의 활동을 낳는 영혼이 자리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결과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이어지는 고백을 통해서 죄가 윤리적인 면에서 인격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타락 이후에 부패하였으며, 그 부패한 본성의 결과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으며또한 악을 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이끌려져 있고 온갖 범죄를 실제적으로범합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였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5),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9-20)에서 말씀에서 확인이 됩니다. 이러한 부패성에서 사람은 스스로 원하여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악한 행위를 선택하여 불법을 행하게 됩니다.

 

이렇듯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였으며, 부패한 본성으로 모든 아담의 후손은 죄를 실제로 범하게 된다고 할 때 신앙고백서가 교훈하는 것은 사람의 인성 자체가 변질되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성은 타락의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동일합니다. 즉 타락 전 아담이나 타락 후 아담은 동일한 인성을 가진 동일한 사람이며, 또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부패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담의 후손들도 타락 전 아담과 동일한 인성을 가진 동일한 인간입니다.

 

아담의 타락이 인간 본성의 부패 가져와

 

신앙고백서가 원죄로 인한 본성의 부패로 인하여 선을 원하지 않으며 행할 수도 없으며 반대하고 오히려 악을 원하며 온갖 범죄를 행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인간에게 인성의 변질이 나타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성에 선을 미워하고 악을 바라는 성질이 덧붙여졌음을 말합니다. 이 성질은 사람이기 위하여 필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성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인성을 가진 사람에게 덧붙여진 성질이기 때문에 우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패한 본성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사람의 본질을 묻는 것이고, 그 답은 사람이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본질적인 것을 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패한 본성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사람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이 됩니다.

 

즉 사람은 타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이 영혼과 몸을 본질로 가지고 있으며, 다만 선을 원하지 않고 행할 능력도 없으며 반대하고 악을 원하므로 온갖 범죄를 스스로 범하는 성질을 갖게 된 자가 되었다는 것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6:19)의 말씀은 동일한 인격이 한 편으로는 죄의 종이 되어 부정과 불법을 행하는 성질을 나타내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게 종이 되어 거룩함을 이루는 성질을 나타낸다는 점을 밝혀줍니다.

 

동일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때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성질을 가진 옛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는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성질을 가진 새 사람인 것입니다(4:22-24 참조).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하여 설명한다면 이른바 넓은 의미에서의 구조적 형상을 말하는 것은 인성의 본질적 측면과 관련한 것이며, 좁은 의미에서의 기능적 형상을 말하는 것은 인성에게 부가된 성질의 측면과 관련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2사람의 창조’ - 기독교개혁신보 2013.4.12. 참조).

 

인간은 영적 무능력 상태 아래 있어

 

신앙고백서가 본 항목에서 교훈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사항은 부패한 성품으로 인한 죄의 오염이 전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악을 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이끌려져 있고, 온갖 범죄를 실제적으로 범한다는 진술은 부패한 성품으로 인한 오염이 어떠한 제한이 없이 모든 인격 활동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교훈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르게 갖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필요합니다. 하나는 부패로 인한 죄의 오염은 비단 이성에만 아니라 감정, 그리고 의지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전면성입니다. 사람은 타락한 이후에 진리가 아닌 것을 옳다고 판단하며, 악한 것을 기뻐하며 선택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전면적인 타락의 양상과 더불어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타락이 자연적이며 도덕적 측면에서의 가능성조차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신앙고백서가 본 항목에서 말하는 바가 타락한 이후 사람은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이 철저하게 타락해 있으며, 어떠한 선과 악의 양심적 구별도 불가능하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떠한 도덕적인 선도 행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비록 타락한 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도덕적 선과 악의 구별의 능력이 제한 된 수준이지만 여전히 있으며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일반은총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본 항목에서 교훈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연적이며 도덕적 무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무능력입니다. 원죄 아래 놓인 사람은 누구도 자연적인 상태에서 곧 중생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으며,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의를 이룰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는 전면적으로 근원이 부패한 자이며, 영적인 선을 행할 수가 없는 무력한 자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범하는 모든 자범죄가 바로 원죄로 인하여 나타나는 결과임을 교훈하며,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함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새 사람 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긍휼이 도움으로 주어지지 않는 한 어떤 인간에게도 구원의 소망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신앙적 전제를 본 항목은 밝혀 줍니다.


원죄(2) - 부패한 본성과 그것에서 비롯된 활동들의 죄의 성질 <65>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65: “본성이 이러한 부패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중생한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고 억제되어 있다하더라도, 부패한 본성 자체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활동들은 진실로 그리고 합당하게 죄이다.”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본성의 부패를 가지고 있어서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활동과 그 원인인 본성 자체가 곧 임을 고백해야

 

천주교는 원죄로 인한 결과를 단지 원초적 의의 상실로 보는데 이것은 원죄로 인한 타락한 본성의 윤리적 악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주장

 

본 항은 아담이 범한 죄로 인하여 후손에게 미쳐진 죄의 오염의 상태, 곧 본성의 부패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교훈합니다.

 

하나는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본성의 부패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활동과 그것의 원인인 본성 자체가 모두 죄라는 사실입니다. 전자는 소위 완전주의 성화론을 부정하며, 후자는 천주교회의 사욕(邪慾, concupiscentia)’론을 부정합니다.

 

1. 여전히 본성의 부패 상태에 있는 사람들

 

먼저 본 항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중생한 사람들에게도 본성의 부패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의 원리를 마음에 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함을 좇는 영혼의 성향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를 가리켜 중생이라 합니다.

 

이러한 은혜는 성령님을 말미암는 것이며, 그 은혜를 입은 자는 돌 같은 마음이 제하여지고 살처럼 부드러워지며 새로운 의지로 하나님의 거룩과 선하심을 바라게 됩니다(2:1-5; 고전 2:10-12; 1:19; 36:27 등 참조). 하지만 부패한 본성이 중생한 사람에게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6-17)는 말씀에서 보듯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심령 안에는 성령을 따르고자 하는 중생의 은혜와 이를 거슬려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자 하는 본성이 서로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전투를 위한 경건의 노력이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이러한 싸움의 끝은 언제일까요? 본 항은 이러한 부패한 본성의 흔적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계속하여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완전주의 성화론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뜻합니다. 이들은 신자가 죄 없이 이 세상을 살며 율법을 온전히 지켜 무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싸움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있을 것을 말함으로써 이들의 주장을 배격합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에서 바로 확인이 됩니다. 이러한 영적 실존은 다윗(32:5), 솔로몬(왕상 8:46), 이사야(64:6), 베드로(26:70,72,74), 바울(7:14) 등의 생활과 증언을 통해 더욱 확인이 됩니다.

 

흔히 의로운 자로 성경에서 언급이 되는 노아(6:9), (1:1), 아사(왕상 15:14) 등은 결코 일평생 완전한 자로 살았음을 증거하기 위한 본보기가 아닙니다. 성경이 때때로 신자들을 거룩한 자로 부르지만(고전 2:6; 5:27 참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라 이루어지는 은혜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며 일컫는 말이지, 신자들이 온전하며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2. 죄는 본성 자체로부터 오는 모든 것

 

본 항은 중생한 사람에게 여전히 부패한 본성이 남아 있음을 말함과 동시에, 두 번째로 이렇게 남아 있는 본성의 부패함이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중생한 사람에게 남아 있는 부패성은 당연히 중생하기 이전에 있던 본성이 발휘하던 부패의 영향력에 비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화된 것이며 억제되어 있고, 또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어떤 신자라도 자신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며 진리를 떠난 자이로되(요일 1:8), 그가 만일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그의 죄를 사하시며 그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 1:9).

 

복음이 주는 이러한 약속은 부패한 본성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억제되어 있으며,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과 능력이 주어짐을 교훈합니다(요일 3:8).

 

중생한 사람에게 남아 있는 부패한 본성의 성질과 관련하여 본 항이 말하는 중요한 요점은 그것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활동들과 함께 죄라는 사실을 지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주교회의 신학에 대한 반대를 나타냅니다.

 

천주교회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후손들에게 미쳐진 부패한 본성의 사실을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 본성의 부패성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천주교회는 한편으로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영향력이 본성의 부패를 가져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부패성이 완전히,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05항에서 말하기를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은 잃었지만, 인간 본성이 온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인간 본성이 그 본연의 힘에 손상을 입고 무지와 고통과 죽음의 세력에 휘둘리며 죄에 기운다고 가르칩니다.

 

원죄로 인한 이러한 죄의 경향성, 곧 사욕(邪慾; concupiscentia)으로 인하여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죽음의 지배력을 지닌 존재, 악마의 권세에 예속하게되었음을 강조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07).

 

이러한 천주교회의 주장은 언뜻 보면 개혁교회의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고백은 앞서 살펴본 4항에서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을 전혀 갖지 않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그리고 악을 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이끌려져 있다고 고백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교훈과는 미묘하게 차이가 납니다.

 

3. 천주교의 잘못된 주장을 반박함

 

우선 천주교회는 사람이 본성의 부패로 말미암아 마귀에 예속되고, 죽음의 세력에 휘둘리며 죄에 기울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 후에도 타락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유로운 상태임을 전제합니다. 왜냐하면 타락으로 인하여 나타난 영향은 원초적 의와 거룩함(iustitia et sanctitas originales)의 상실로 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설명을 하면, 천주교회는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적 인간은 육체와 영혼의 갈등이 있는 상태인데, 영혼의 영적 지배력에 육체가 조화롭게 놓일 수 있기 위하여서는 외적인 도움이 필요했다고 믿습니다.

 

이 외적인 도움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연의 상태에 덧붙여 주시는 초자연적인 부가된 은사’(donum superadditum)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이 부가된 은사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러한 원초적 의로 인하여 누리던 조화가 파괴되는 결과를 겪게 되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00).

 

그렇지만 본래 누리던 자유로운 상태는 여전합니다. 비록 원초적 의를 상실하여, 육체가 영혼의 지배력을 벗어나며, 악을 선택하는 경향성 아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선을 선택할 능력이 상실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07; 1732)

 

그럴 때, 천주교회는 영혼의 지배력을 벗어나고자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깨려는 부패한 본성인 사욕(邪慾; concupiscentia)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원죄로 인한 결과를 단지 원초적 의의 상실로만 볼 뿐이며, 원죄로 인한 결과로 나타나는 타락한 본성의 윤리적 악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단지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것(insuperabilis)으로 여깁니다(트렌트 공의회, 5회기, ‘원죄에 대한 교령1조 참조).

 

그러나 이에 대하여 신앙고백서는 부패한 본성 자체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활동들은 진실로 그리고 합당하게 죄라는 사실을 확고히 강조합니다. 사욕(邪慾; concupiscentia)이 진실한 의미에서 죄의 본질에 합당한 완전한 죄임을 선언합니다.

 

천주교회의 변명에 따라 본성의 부패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사욕을 죄가 아니게끔 하지 않습니다. 율법에 순종을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율법의 불순종을 죄가 아니게끔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에 어긋나는 것은 죄라고 말하며(7:7 “...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또한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드러나는 탐심은 자신의 속에 있는 죄가 만들어낸 것이라고(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요컨대 율법에 대한 불순종의 행위인 탐심이나 그것을 초래하는 부패한 본성의 욕망이나 모두가 적절한 의미에서 죄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7)이라고 교훈합니다. 성령과 대조가 되는 육체의 소욕은 이미 그것으로 죄가 됨을 바르게 보여줍니다.

 

마치는 말

 

혹 어떤 이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을 들어, 욕심 곧 마음의 부패는 죄를 낳는 원인이지만 그것이 죄 자체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열매가 말해 주듯이 나타난 결과가 죄인 것은 그것을 낳은 것이 바로 같은 성질을 지닌 죄인 것임을 말해 주는 법입니다.

 

악한 결과는 원인의 악함을 말하며, 그 결과 악의 행동은 그 행동을 낳은 소욕의 악함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신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경계,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8)는 강론 등은 외적인 행동의 악과 내면의 부패성을 포괄하여 모두 죄로 정죄하십니다.

 

본 항에서 부패한 본성 자체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활동들은 진실로 그리고 합당하게 죄이다라고 고백하는 바는 성경의 교훈을 참되게 반영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60개(1/3페이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60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문서 (한글과 영어) 無益박병은목사 174 2021.05.22 23:25
5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7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의 적용과 전달 無益박병은목사 5292 2017.02.02 09:09
5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6 그리스도의 두 본질의 고유한 사역과 한 無益박병은목사 5286 2017.02.02 09:08
5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5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구약성도 8-6 無益박병은목사 5038 2017.02.02 09:03
56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4 그리스도의 순종 효과와 그것의 대상 無益박병은목사 5615 2016.06.08 15:28
55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無益박병은목사 5575 2016.06.08 15:24
54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2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 사역 김병훈목 無益박병은목사 6280 2016.06.08 15:22
53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1 그리스도의 인성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의 無益박병은목사 5795 2016.06.08 15:19
52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50 그리스도의 두 본질의 위격적 연합 無益박병은목사 5497 2016.06.08 15:16
51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9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나신 無益박병은목사 6450 2015.10.21 16:12
5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8 하나님의 아들의 참되고 영원하신 신성 無益박병은목사 6947 2015.10.21 16:10
4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7 중보자 그리스도의 세 직분과 그의 백성 無益박병은목사 7620 2015.06.17 00:09
4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6 은혜언약과 신약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629 2015.06.17 00:08
4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5 은혜언약과 구약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539 2015.06.17 00:05
4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4 은혜언약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096 2015.06.17 00:03
4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3 행위 언약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875 2015.06.16 23:46
4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2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 無益박병은목사 7328 2014.10.22 15:08
4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1 죄와 죄책, 그리고 형벌 김병훈교수 無益박병은목사 6777 2014.10.22 14:57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40 원죄 - 전면적 부패와 영적 무능력 無益박병은목사 7970 2014.07.11 15:07
4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39 아담의 원죄와 후손 김병훈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948 2014.07.11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