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강해 36> 복과 저주 사이에 신명기 11:26-29 May 20, 2018

無益박병은목사 | 2018.05.20 20:44 | 조회 11778

* 제목: 복과 저주 사이에 * 본문 : 11:26-29                5-20-2018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가정을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은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숙지하고 자녀들이 그 말씀의 환경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여 항상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신 11:18-20의 말씀입니다.

 

흔히 학교와 현장은 같을 것 같지만,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하자가 없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제로 해 보아서 그 이론이 적용 가능한 이론인지를 검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없는 이론은 옳은 이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공산주의가 아무리 완벽한 이상적인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이론을 채택한 사회와 국가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하는 점은 역사가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현장에서의 증명되어야 옳은 이론이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이 실천되지 않으면 그가 말하는 말씀이란 허울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가나안 신세대들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모세는 신세대들이 그 땅에 들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바람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한 삶을 살고 또 여러분의 후손이 복을 받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며 복 받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 시간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1. 말씀의 적용성 여부에 따라

모세는 출애굽 신세대들에게 다시금 강조하며 주신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율법의 말씀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재차 강조합니다. 그것은 그동안 겪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는 모세의 노파심이 강하게 엿보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의 말씀입니다.

* 11:26-28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신세대들에게 장차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살 때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삶 속에서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저주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즉 신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고 행복의 여부가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삶 속에 적용되어 나타날 때 진정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를 야고보 선생은 교훈합니다.

*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는 말씀을 듣고서 그 말씀을 마음 깊이 담아 기억하며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 못지않게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께서도 산상보훈을 주신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무리 말씀! 말씀! 하지만 실제로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그 말씀이 인생에 짐이 되고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들은 말씀은 있어서 양심 가운데 명령하는 데 머릿속에서는 상황 논리로 생각하여 그 말씀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오히려 말씀을 몰랐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공략하여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말씀을 거역하게 만듭니다.

 

모세는 이런 말씀과 백성간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수없이 출애굽 세대들의 불순종 현장을 목격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그들에게 주어졌는지를 잘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세대들에게 확실한 다짐을 받기로 합니다.

 

2.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서

그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모의실험(simulation)을 해보는 것입니다. 당시는 요즘과 같이 첨단 과학시설이 없기에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거대한 실험을 시행했습니다.

* 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백성들을 두 패로 나누어 두 산에 분산 배치하고 복과 저주의 내용을 따라 하게 하여 확실하게 다짐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 행사는 모세가 신명기 27장에서 다시금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를 언급하였습니다. 얼마나 강조했던지 후계자 여호수아도 모세의 명령에 따라 이 행사를 실행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어디에 있는 산들입니까? 이 산들은 30절에 있는 대로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길갈 맞은 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는 산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말씀드린 대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첫 성인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이후 아이 성을 친 후 근처에 있는 에발산에 바위에 율법의 명령을 새기고 이 행사를 실행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1) 장소

지금도 에발산과 그리심산과 사이에는 중요한 동서 교통로가 지나가는데, 동쪽 입구에는 세겜이 있으며, 또 이 골짜기에는 오늘날의 '나블루스(Nablus)'라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에발 산(Mt. Ebal)

뜻은 벗은 산”, “황량한 산으로 일명 "저주의 산"이라 불렸습니다. 사사기 9:7에 보면 에발산은 벗은 산이요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의 높이는 940m로 현재 벨 에슬라미예(Jebel Eslamiyeh)에 해당하는 산으로 알려집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일차 공격에서 패한 후 제2차 공격에서 성공한 후 사로잡은 아이 성의 왕을 쳐 죽인 후 율법을 거역한 자에게 어떤 결과가 될지를 확인시키는 차원에서 바로 에발 산에서 여호와께 큰 제단을 쌓고 제사했습니다.

* 8:30-3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이 에발산은 저주의 산으로 르우벤, , 아셀, 스불론, , 납달리의 6지파가 배치되어 저주의 말씀에 아멘 화답하며 율법에 순종할 것을 서원한 산이었습니다.

 

둘째, 그리심 산(Mt. Gerizim)

이 산은 에발산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요단 서편 세겜의 남서쪽 지중해 해발 약 881m 현재 예벨 엣 토르(Jebel et-Tor)이다. 에발 산보다는 북쪽에 있습니다. 이 산은 삿 9:8에서 숲이 울창한 산으로 묘사하고 있듯이 축복의 산입니다. 이 산에서 시므온 레위 유다 잇가갈 요셉 베냐민의 6 지파가 축복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율법에 순종할 것을 서원한 산이었습니다.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도시가 있는 데, 이곳은 사마리아 지방의 중심지며, 예루살렘에서 정 북쪽으로 50Km쯤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아랍인들은 나블루스(Nablus)라고 부릅니다. 이 두 도시 사이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어서 지금도 성지 순례자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에발산은 저주받은 산으로, 그리심 산은 축복받은 산으로 성경에 예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지금도 오른쪽 에발산은 메말라 나무가 없는 황량하고, 왼쪽의 그리심 산에는 수목이 울창합니다. 현재도 매년 유월절이 되면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지시에 따라 그리심 산에서 전통적인 유월절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리심산 정상에 사마리아인들의 제단인 텔 에라스(Tel er-Ras)에서 행해지는 유월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출애굽기 12장에 따라 어린양을 잡는 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2) 시행 방식

12 지파를 둘로 나누어 두 산에 배치하고 복과 저주의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두 산에 있는 백성들은 호응하여 '아멘! 아멘!'하고 외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맹세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이 아멘 소리가 얼마나 컸을까요? 아마도 천지를 진동시켰을 것입니다.

 

이 행사는 모세가 죽기 전에 거듭 부탁하였던 엄격한 명령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에 두고 명심하여 순종할 것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율법은 한 마디로 '복과 저주'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판별법이었던 것입니다.

 

즉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여 버리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심 산에 서서 축복에 호응하는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벤야민의 6 지파들. 에발 산에 서서 저주에 '아멘!' 하는 르우벤, , 아셀, 스불론, , 납달리의 6 지파들. 모두가 축복과 저주를 하기에 적합한 경력이 있는 족속들입니다. 이들의 배치에 따른 배경은 신 27장에서 다시금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진정으로 저주받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시면 복이고, 그 말씀에 반하여 불순종하며 살면 저주받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3. 복과 저주에 동일하게 '아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 패로 나누어 양쪽 산에 배치한 후 그리심 산에 있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을 낭독하고 '아멘'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이 반대편의 에발 산에 배치된 백성들에게는 저주의 말씀을 낭독한 후에도 같이 '아멘'을 할 것을 명했던 것입니다.

 

이 모세의 엄한 부탁은 축복과 저주에 모두 다 '아멘 할지어다' 였습니다. 축복에 '아멘!'하는 것은 모두가 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을 받는 말씀이니까요. 그러나 저주에 '아멘'을 하기는 좀 꺼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주받을 조항들을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아멘이란 말은 진실로 그러합니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진실성으로 고백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즉 아멘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성실성과 진실성을 고백하는 신성한 특권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축복에 '아멘' 하는 것은 즉각적인 순종이라 한다면, 저주에 '아멘!' 하는 것은 성도가 인내로서 복종해야 할 의무라 하겠습니다.

*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오늘날 교인들은 축복에는 '아멘! 아멘!' 잘도 하지만, 저주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오히려 불평하며 반항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어떻게 축복만 있고 저주가 없거나, 저주만 있고 축복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갈리며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축복 없는 저주는 너무나 가혹(苛酷)합니다. 그러나 저주 없이 축복만 있는 것은 기만(欺瞞)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복과 저주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오직 축복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전혀 저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둘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셔서 낙관론만을 기대하지 않게 하시고 또한 동시에 비관론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쓸데없이 '절망'함은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동시에 저주 없는 낙관론만을 주장하는 것은 망치게 하는 속임수입니다.

 

결론

모세는 요단을 건넌 후에 여섯 지파씩 나누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올라가 서서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에발 산에서는 저주의 맹세를 하도록 했습니다. 저주와 축복은 물리적으로 다른 두 산에 있는 것처럼 저주받지만 달콤하게 보이는 일과, 축복받지만 본성과 거스르는 일을 동시에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하여 몸 전체로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과 저주 사이에서 여러분은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까? 고요히 그리심 산에서 들려오는 축복의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기로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에발 산에서 들려오는 저주의 경고에 대해서는 회개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출발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두 산 사이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레위인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 외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과 저주의 사이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께서는 복과 저주 사이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지를 외치십니다.

*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을 받고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결단이 요구됩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복을 받으려면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여부로 판결이 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복은 하나님과 세상 양쪽을 모두 선택하며 눈치를 보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요구받는 선택에서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실 것입니까? 저주인지 축복인지? 중간단계도 없고 양쪽 모두도 없습니다. 오직 순종으로만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의 기준이요 판별식입니다.

 

*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으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과 저주 사이를 잘 판단하여 모든 말씀에 아멘!”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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