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 하나님의 진노 1 로마서 1:18-20 4-28-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4.29 15:37 | 조회 6370

* 제목/ 하나님의 진노 1 로마서 1:18-20 Apr. 28, 2019

 

우리가 몹시 아프면 의사를 찾고 병원을 찾게 마련입니다. 저도 작년에 급성 폐렴으로 체온이 40도 정도 오르게 되자 할 수 없이 의사를 찾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 나은 적이 있습니다. 견딜 수 없게 아프니까 의사를 찾고 병원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어떤 사람이 예수를 찾게 됩니까? 마치 자신이 아파서 도저히 스스로 그 아픔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될 때 의사를 찾고 병원에 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믿어야 할 절실함이 있을 때 비로소 예수를 찾게 됩니다. 그때 가서야 성경을 읽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자존심이 강하고, 허세가 심한 사람, 자기애가 심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부류에게는 예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진지하게 구원의 도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결국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John Stott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성도의 책임은 기도와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 상태의 분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분석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복음에 대해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갖게 되는 구조(faith mechanism)입니다. 바울은 이 구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10:17)’이라 했고 그 과정을 말했습니다.

* 10:8-10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아무리 주위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도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존재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주장들이 정당한 것일까요?

 

1. 복음의 이중 특징의 적용

 

앞에서 바울은 복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품고서 하나님의 능력인 구원의 복음은 유대인에게 먼저 주어졌고 그 후에 헬라 인에게 주어졌으나 실상은 이 두 부류에게 차별이 없이선포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1:16).

 

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1:17). 복음의 강력한 능력과 무 차별성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과정에서 복음의 이중적 성격이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되는지 설명하고 인간의 반응에 하나님의 대처를 변증법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건강한 사람이 의사를 찾을 이유가 없듯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자기의 무능함과 부당함을 느끼는 자에게만 그리스도 예수는 필요합니다. 사실, 자신의 실존적인 바른 인식이 있을 때, 누구든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예외 없이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됩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명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2:17). 그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복음입니다.

* 20:28(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제, 바울은 롬 1:18~3:20까지 구원의 도리인 복음의 적용대상인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마치 검사가 죄가 의심되는 사람을 불러 심문하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자들이기에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이 모두가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존재(3:23)“, ”죄의 권세에 짓눌려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2:9b)“ 이기에 결국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3:19 b)“라고 날카롭게 죄인 인간을 분석하고, 정죄하고, 고발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주제들을 1:18~3:20에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이방인 타락상과 부패한 삶- 우상숭배, 패역한 도덕성, 반사회적인 비행의 삶(1:18-32)

2) 유대인의 심각한 위선적 모습(2:1-16)

3)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소유한 유대인의 자만과 불순종(2:17-3:8)

4) 하나님 앞에서 예외 없이 죄인인 모든 인간(3:9-20)

 

2.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

 

본문 18~19절 말씀을 읽어 봅니다.

* 1:18-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이 말씀들은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무슨 뜻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

 

여기서 진노란 말(orge, wrath)문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가차 없이 퍼붓는 분노라고 할 것입니다. 즉 무질서하고, 과격하며, 조절이 불가한 상태의 죄로 인하여 극도로 혼란스러움에 대하여 강력하고 가차 없이 선고하는 심판(deep-seated anger of God against sin)을 뜻합니다. 마치 검사가 죄인을 신속하게 조사하여 기소하겠다고 먼저 발표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가 가차 없이 나타났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21절 이하에서 세세하게 진술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죄의 오염 가운데 빠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하지 않고 타락한 상황이 어떤 지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먼저 살피는 것이 복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려는 수순이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 진노의 대상이 누굽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 그 대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불의"란 의롭지 못한 사악함(unrighteousness, wickedness)을 뜻하고, "막는다"라는 말은 억누른다(suppress down)는 의미입니다. 마치 용수철에 일정 부분 힘을 가하면 어느 정도 억눌러져 있다가 한계점이 넘어서면 반발하여 튀듯이, 피조물인 인간이 당연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인간이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런 자를 용서하실 수 없어서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이들은 불경건(asebeia, ungodliness)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그들의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강변하고 주장하고 따지고 저항하는 행위들입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 후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듯이(3:12), 불경스럽게 하나님께 대적합니다.

 

2) 이들은 불의(adikia, unrighteousness, wickedness)합니다.

이들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롭지 못하고 사악합니다. 마치 아벨을 죽인 가인이 자신의 행위를 지적하는 하나님께 따지고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저항하듯이(4:9)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의롭지 못한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당당하게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불의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당연한 발로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대하여 어떤 주석 가는,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중언법적(hendiady's)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겸손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도 사악하게 행동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핑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

 

이렇게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입니다. 바울은 이 계시는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해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와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가 그것입니다.

 

일반계시란 자연 세계 즉 피조계에서 인간이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계시를 말합니다. 존재의 원인을 역으로 추적하여 최종적인 존재이신 조물주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신 존재 증명에서 이 논리로 창조주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일반계시라 할 것입니다. 피조 세계의 원인자로서의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모두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첨단의 과학 기구를 활용하여 알게 된 신비한 일반 법칙의 비밀스러움을 알게 될 때의 놀라움으로 이러한 모든 현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반계시라 할 것입니다.

 

다음은 특별계시입니다. 이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성경 속에 담아 놓으셨음을 인정하고 이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성경이 하나님 존재 자체를 전부 밝힌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생각을 담아 놓으셔서 죄인이 된 인간에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일반계시는 피조 세계 속에 담아 놓으신 조물주에 대한 계시입니다. 이를 깨닫고 삶 속에서 적용하여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연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들에는 예술가, 작곡가, 화가, 연주가 들이며 이들은 자신이 깨닫고 느끼는 예민한 감정과 그 느낌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특별계시는 오직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계시입니다.

*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 즉 피조 세계 속에 개입하셔서 구원의 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계시를 나타내 주셔서 담은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문제는 이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거듭나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을 수밖에 계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다양한 핑계를 대는 인간의 죄성을 여지없이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19절 이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 1:19-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첫째, 계시가 신적 지식으로 나타났기에

19절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gnoutos, known)“은 신적 지식을 뜻합니다. 20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ahoratos, unseen, invisible)“이 창조주께서 자신의 신적 지식을 드러내셨기에 인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신적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이렇게 주어진 신적 지식을 깨닫지 못한 인간의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둘째, 계시가 피조 세계에 알려졌기에

이 신적 지식은 특히 창조 세계 속에 담겨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신적 지식이 자연 세계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자연 세계의 신비스러운 현상들을 접한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를 깨닫게 되고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알고 있는 피조세계의 비밀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핑계할 수 없는 계시의 명백성 때문에

그러기에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조물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말씀을 알게 되고 믿게 되어 그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을 부인할 수 없도록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만들어 섬기며 핑계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시는 명백하고 확실한 계시를 부인하는 죄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자연 세계를 보고, 자신을 살피고, 나아가 그 속에서 자신이란 존재의 의미와 가치와 평가를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맞추어 할 수만 있다면, 그 속에 담겨서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원하는 바 구원의 도리인 줄 믿습니다. 즉 나와 주변에서 그리고 나아가 피조 세계에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시고 느끼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귀를 기울이시고, 듣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 말씀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놀라운 영적 체험 즉 거듭남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이때 새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역사라 하겠습니다.

 

결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하고 선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아픈 것을 느끼는 사람이 병원을 찾듯이, 영혼의 죄성을 깨닫고 심각하게 생각하며 예수 앞으로 나오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복음의 차별 없는 능력을 신뢰하시고 주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적 지식을 자연 세계 속에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씀 속에서 묵상과 기도 그리고 간증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고, 회개하여 우리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 55:6-8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이 불가해도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 주저 없이 찾고 구하면 자신의 죄 됨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을 인지할 수 있고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쓰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놀라운 말씀으로 우리의 죄 됨을 지적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속에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회복시켜 주셔서 자연 세계 속에 담아 놓으신 풍성한 계시의 뜻을 깨닫고 기뻐하며 즐기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를 깨닫게 하셔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영광스러운 그 날을 소망하며 주님을 신뢰하고 찬양하며 경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속에 담아 놓으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됨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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