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05> 하나님의 복음과 사도 로마서 1:1-4 Feb. 10,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2.10 23:08 | 조회 6713

* 제목: 하나님의 복음과 사도 * 본문 로마서 1:1-4               2-10-2019

 

이미 말씀드린 대로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요즈음은 예전과 달리 편지를 잘 쓰지 않습니다. 이메일이 발달하면서 그나마 쓰던 엽서조차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 이메일을 쓸 때 편지 형식을 취하여 쓰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어떻게 쓰나요? 먼저 수신인을 언급하지요. “존경하는 ~~혹은 사랑하는 ~~에게”, “보고 싶은 ~~에게즉 수신인을 먼저 언급하고 편지를 쭉 써 내려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힙니다. “제자 ~~~올림“ ” 사랑하는 ~~로부터등등의 표현으로 편지를 마감합니다. 미국식도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Dear John” 그리고 마감은 “Sincerely yours" 이런 식입니다.

 

1. 서신으로서의 로마서

 

그런데 고대 때의 편지는 이런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서 수신처 상대방을 밝히고 인사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로마서는 바로 이런 방식의 편지 형식임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 1:1-2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먼저 소개하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힙니다. 자신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된 임무를 수행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이름과 신분과 임무를 밝히고 이어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에 7절에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서신을 보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 로마서가 전형적인 고대 근동 사회의 서신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바울이 자신의 비서 더디오가 대필했음도 밝혀 로마서가 서신임을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6:22). 말씀드린 대로 로마서는 주후 56년 후반 혹은 57년 초반에 고린도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바울의 자기 소개 (信任狀, Credential)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시작하면서 간단하게 자신의 이름만을 밝히지 않습니다. 약간 부언하여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입니다. 이 표현은 바울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의도적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자기소개서 즉 자신의 신임장으로 자신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두 가지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그리고 사도입니다.

1) / 종이란 말(doulos, bond-servant)은 문자적으로는 주인에게 묶여 있는’, 다른 말로 하면 주인의 소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에게는 전혀 자율권이 주어져 있지 않고 오직 주인의 명령에 전적인 순종(obedience)과 복종(submission)이 강요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1)”이라고 말한 바울은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이시며 자신은 그분의 종이라는 자기 신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묶여 있는 노예(bond-servant)’로 완전히 복종하는 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의 서신을 시작하면서 자주 그리스도의 종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1:1; 1:10; 1:1; 참고 딛 1:1에서는 하나님의 종 바울).

 

2) 사도 /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합니다. 이 사도란 말(apostolos, apostle)보내심을 받은 자(be sent one)’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그 어떤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거짓과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 곧 나사렛 예수를 추종하는 일단의 무리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일이며, 이 일이 가장 의로운 행위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점은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3:4)“ 것이라고 확신한 가운데 저지른 일이었다고 빌립보서에서 말하고 있음에서도 증명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확신 가운데 예수의 제자들이 숨어있는 다메섹을 향하여 갔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예수의 제자들을 체포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께서는 그에게 빛을 비추시고, 눈을 멀게 하시고, 자신을 부르시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여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 곧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밝히셨습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친히 그를 부르셔서 아나니아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진리를 고백하게 하시며 그에게 세례받게 하셔서 이방인을 위한 그릇(a instrument, 도구) 즉 사도로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종교개혁자 칼빈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요한 칼빈(John Calvin), ”이 사건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잔혹한 늑대를 붙잡으셔서 단지 당신의 한 양으로 삼으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방인 양 떼의 목자로 바울을 지명하셨다(This is quite remarkable, since God took a cruel wolf, and not only made him one of his sheep, he assigned to Paul the office of shepherd to the Gentile flock).“

 

그런데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받다(to call)"라는 말(kalein)은 여러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부르신 소명은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부르시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하도록 부르시는 외적 소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죄인이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부르셨다는 내적 소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바울을 회개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가 특별한 직분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수행하도록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복음을 통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보다 그가 주님의 교회 내의 특별한 임무 를 수행할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지금도 부활의 예수께서 직접 사도 바울을 사도로 부르셨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와 관련하여 지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혹은 매우 신령한 사람 혹은 대단한 영적 능력이 있는 자가 마치 그들이 신약 시대의 사도와 같은 사도적 권위가 있는 것처럼 인정하여 그에게 사도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를 봅니다(몰몬교도, 일부 은사주의자).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유는 계시가 완료된 지금은 부활의 주께서 바울과 같이 어느 사람을 사도로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12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이들과 함께 3년 반 동안을 공생애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공생애 마지막에 제자 가룟 유다가 은 30 에 예수를 팔아넘김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이를 자책한 가룟 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1:18-19).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함께 40일을 지낸 11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시편 109:8 말씀에 따라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보충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도의 조건과 그 직무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 1:20-22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의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사도가 될 조건은 첫째, 공생애 시작부터 승천까지 예수와 함께 있던 제자, 즉 예수의 목격자로 증언하는 자(eye-witnesses)여야 하고 둘째,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할 사람 즉 구속의 진리를 확신하며 전파할 사람(the preacher on redemption of Jesus Christ)이어야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사도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역을 사도 바울이 성실하게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주의 돌아가심, 묻히심, 그리고 부활하심이 성경대로 진행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 고전 15:1-8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즉 바울이 말하는 복음이란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 이룬 교훈이나, 하나님께 대한 성실한 응답으로서 스스로 헌신한 가운데 드리는 그 어떤 맹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역사 가운데 벌어진 하나님의 구원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그 모든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동료 멜랑흐톤(Philip Melancthon)에게 복음은 완전히 우리의 밖에 존재하는 구원의 도리다(The Gospel is wholly outside of us)!”라고 증언합니다.

 

3. 사도의 책임감

 

부활의 주께서 바울을 부르심은 복음을 위하여 그를 구별하여 택정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음을 확신한 바울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복음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1) 복음의 특징

바울이 그렇게 복음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은 복음의 특징 때문입니다. 그것은 첫째,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 낸(invented) 것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 복음과 사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는 John Stott 목사님이 말한 바와 같이, “복음 없이는 사도직이 있을 수 없고, 사도 없이는 복음이 바르게 전달 될 수 없다(One can not think of 'apostle' without thinking of 'gospel', and vice versa)‘ 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 점에서 바울은 임무 즉 복음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갖었습니다.

 

2) 사도로서의 바울의 책임감

사도로서 바울이 이러한 무한 책임을 갖는 그것은 5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복음의 내용을 확실히 받아 알아야 하고(to receive and know the gospel), 둘째, 그 복음을 잘 정리하여 알 수 있도록 형성해야 하고(to formulate the gospel),

셋째, 그 복음을 확실하게 사수해야 하고(to defend of the gospel),

넷째, 그 복음을 잘 관리해야 하고(to maintain of the gospel),

마지막으로, 그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to proclaim of the gospel)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강한 책임감으로 복음을 변명하고, 복음을 사수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순교하기까지 복음과 교회 그리고 주님께 충성했던 것입니다.

 

4. 바울의 임무(duty)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느니(1),”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목적과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택정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 표현일까요? 먼저 택정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 "택정(set apart)" / 이 말(aphorismenos)바리새인(pharisee, pharisaios)’이라는 말과 같은 어근의 단어입니다. 그 뜻은 구별하다(separate), 나눈다(divide)' 입니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어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따로 구별하여 불러냈다는 뜻입니다. 그 특정한 임무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일입니다.

* Anders Nygren(루터교 학자),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자신을 율법을 위하여 구별된 사역을 감당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하여 그를 구별하여 택정하셨다. 결국, 1절은 본 서신의 기본 주제가 율법과 복음을 같은 위치(juxtaposition)에 놓고 보는 것이 중심 주제임을 보여 준다. (As a Pharisee Paul had set himself apart for the law, but now God had set him apart for --- the gospel---Thus in the very first verse of this epistle we encounter the letter's basic juxtaposition of law and gospel which, from one point of view, is the theme of Romans)"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좀 더 진지하고 확대하여 이 부르심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을 바로 그때 택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 1:4-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처럼 바울도 같은 진술을 했습니다.

*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이러한 섭리적인 하나님의 소명이 있었음을 확신했기에,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제자로부터 신임장을 얻기 위하여 찾아 가서 어떤 요청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부르신 부활의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원하여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주께로 직접 하나님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받았다고 이를 형성하여 자신의 복음 즉 바울 복음이라 부르는 복음을 세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께서 그를 부르신 것이 단순히 그를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시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ego apostelle se, I send you, I make you an apostle for Gentile)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음(the gospel of God)

사도 바울이 맡은 임무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조금 생소한 진술을 듣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복음(the gospel of Jesus)" "천국 복음(the gospel of heaven)" 이란 말은 쉽게 이해가 되는 데,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은 조금 생소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 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첫째, 정의(Definition) / 자신의 임무 즉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바울은 먼저 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 복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 내용(Contents) / 바울은 이 복음 즉 아들에 관한 것은 구약 성경에 이미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해 놓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진술을 통하여 놀라운 복음의 세 가지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세 가지 비밀스러운 내용은 다음에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약속된 아들에 관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육적으로 이 아들은 다윗 가문에서 출생한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영적으로 구속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사도 바울의 서신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맡기신 복음의 진수를 알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따로 불러 바울로 쓰신 것처럼 우리 모두 세상에서 구별하여 부르셔서 주님을 믿게 하시고 주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이적과 같은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신비한 일 중에 가장 이적같이 벌어진 일입니다. 어떻게 나를 부르셔서 예수 믿게 하셨는지요? 그래서 이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참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은 성도는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 찬송 310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가르칩니다(고전 7:22; 6:6; 12:11; 14:18; 16:18; 고전 3:23; 6:19; 3:24). 그래서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는 성도는 다음과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바를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오직 자신의 존재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위하여 전력 질주했습니다(3:7-9). 예수를 만난 이후 바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 변했고, 사명이 변했습니다. 그의 삶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투신했습니다.

*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의 복음은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 엄청난 복음,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고 살아가는 복된 주님의 자녀들, 예수 그리스도의 종(doulos)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사도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우리 역시 주 예수를 믿어 주님의 제자로,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별하여 택해 주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한평생 주 예수를 위하여 헌신한 바와 같이 우리 역시 우리를 부르심에 합당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잘 파악하여 확고한 구원의 도리를 갖게 해 주시고, 복음을 사수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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