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9> 이제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 로마서 3:21-22 Aug. 18,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8.19 00:07 | 조회 5345

* 제목: 이제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 * 본문: 로마서 3:21-22 Aug. 18, 2019

 

지난 주간에 저는 아들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동부 볼티모어(Baltimore)에 가서 덴버까지 차를 빌려 운전하고 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애팔래치아 산들(Appalachian Mts)을 넘어오는 데 안개가 가득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차의 방향 등의 붉은 빛이 없다면 운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말씀의 분위기가 이와 같다 하겠습니다. 한 줄기 빛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 그 자체입니다. 그 흑암으로부터 구조될 희망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암흑으로부터 벗어 날 그 어떤 전망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 반전의 메시지(The Message as a Game Changer)

 

본문 21절은 그러나 이제(now but, Nuni de)!"라고 시작합니다. 개정 개역 번역판에는 없는 그러나(de)“가 원문에는 있습니다. ”이제(now)“가 강조된 표현입니다. 이는 강한 부정으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상반된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 말입니다. 이제까지의 깜깜한 밤이 끝나고 찬란한 태양이 솟는 새 아침이 도래했음을 전하는 반전의 메시지입니다. 그는 이제까지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구원 개념을 전하려 합니다.

 

이는 "Game Changer"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밀고 밀리는 힘든 경기를 하는 데 어느 순간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그 어떤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일본에 떨어진 미국의 핵폭탄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서야 우리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실체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해 왔습니다. 바울은 1:16-17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 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주장하면서 이 차별 없는 복음이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바는 로마서는 복음의 변증서라는 사실입니다. 즉 그는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변증하며 변론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치밀한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1:18~ 3:20까지 하나님의 의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사실임을 증명해왔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든 인종과 계층, 모든 신조(Creeds)와 문화(Cultures), 종교와 비 종교, 도덕과 비도덕, 등등할 것 없이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모든 것에 죄가 가득한 상황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러나 이제!”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제까지 한 정지작업을 마치고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입니다. 즉 롬 1:18~3:20까지 이제까지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온 인류를 향한 심판론을 설명한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도리 즉 칭의론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전하려는 바울의 이 반전의 메시지 그러나 이제(But Now)”는 세 가지 차원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이 말은 논리적(logical)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제까지의 논리를 반전시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이 말은 시기적(chronological)인 반전입니다.

그는 시제를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즉 과거완료 시제(past perfect tense)로부터 현재시제(present tense)로 전환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21절 이전 즉 과거에 적용되었던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섭리하심이 이제 항상 새롭게 적용되는 공의로우신 구원의 도리로 구속사(redemptive history)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 말은 종말론적(eschatological)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긴 암흑의 시기가 끝나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올라 밝은 세상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이제부터 설명하려는 하나님의 새로운 의의 도리는 이제까지 전한 정죄, 심판의 필연적인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율법 외의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

 

본문 21절을 다시 읽어 봅니다.

*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완벽하게 완성된 의

먼저 나타났다는 말(pephanerotai)는 과거 완료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신 십자가의 도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것이란 말(panelow)은 분명히 한 것(to make clear)으로 어떤 상태나 조건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이 율법 외에 이미 확실하게 드러난 새로운 한 의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확증된 하나님의 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율법과 상관없는 의

이 나타난 한 의는 율법 외의 의입니다. 이 표현은 이제까지 적용되던 율법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적용되는 의의 방식입니다. 이는 율법과 상관이 없고, 율법을 초월한 의의 방식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소위 인식의 변화(paradigm shift)’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율법적 사고로 구원론을 따져왔다면, 이제부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확실하게 증명된 의

이 새로운 한 의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는 확실한 의입니다. 즉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구약의 지지를 받고 연속성을 갖는 구원의 도리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적용하시는 새로운 한 의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계시(fresh revelation)로 주어진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복음 즉 십자가 사건에 맞추어 하나님의 공의를 살피는 것입니다.

 

넷째, 차별없는 의

이제까지의 율법적 의는 차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간, 언약 백성과 비 언약 백성 간에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새로운 한 의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차별 없는 의입니다. 바울 자신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 인에게로다.

 

즉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이방인이나,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자기 의에 빠져 오히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유대인이나 할 것 없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는 그 모두를 초월하고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의의 길로 인도하는 구원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진리를 믿게 하여 정죄하는 심판을 넘어서는 칭의를 선언하는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것입니다.

 

3. 새로운 의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바울은 이 과정을 4:25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단계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제시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의의 계시(21-26)

*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바울은 이 부분에서 칭의의 복음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계속하여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둘째, 유대인이 이를 비판하는 바에 대하여 복음을 변호합니다(27-31).

 

셋째, 이신칭의의 증거로써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조명하며 이를 통한 이신칭의의 교리가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도리임을 길게 예증합니다(4:1-25).

 

* C. Cranfield, "3:21-26은 본 서신이 전하려는 핵심 중에 가장 중심적 진리를 담고 있다

 

* L. Morris, "아마도 이제까지 쓰인 모든 구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1:17에서 바울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3:21~22에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인 복음은 구약에서 예언된 복음이며, 복음 속에서 완성된 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사건으로 교회가 항상 전파해야 할 구원의 도리입니다.

 

이 점을 의식하며 한 번 더 두 구절을 비교하여 봅니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그래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구약에는 복음이 감추어져 있고 신약에서는 구약이 드러난다.”라 고 정리하여 말합니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약 300여 곳에서, 암시적으로는 거의 1천 여 곳에서 상징적으로 직접 예언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도리이며 바울이 전하려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당신의 수준과 기준으로는 죄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정죄 받아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이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그들의 죄를 묻지 않고 그들이 예수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도리를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차별 없이 믿는 모두를 의롭다 칭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이것이 그가 전하려 했던 이신칭의의 내용입니다.

* 3:22-24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기준과 차원으로 우리를 다루신다면 도저히 가망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의 진리를 살펴 그 강력하고 풍성하고 완벽한 구원의 도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493개(6/25페이지)
2012년 설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393 <로마서 34> 칭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 로마서 3: 無益박병은목사 5018 2019.09.22 23:46
392 <로마서 33> 하나님의 칭의 3 로마서 3:23-26 無益박병은목사 5027 2019.09.15 22:15
391 <로마서 32> 하나님의 칭의 2 로마서 3:23-26 Sep 無益박병은목사 5079 2019.09.08 21:39
390 <로마서 31> 하나님의 칭의 1 로마서 3:23-26 無益박병은목사 5154 2019.09.01 18:36
389 <로마서 30> 차별없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3:21-24 無益박병은목사 5118 2019.08.25 23:40
>> <로마서 29> 이제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 로마서 3:21- 無益박병은목사 5346 2019.08.19 00:07
387 <로마서 28> 죄를 알게 하는 것(율법의 순기능과 역기능) 無益박병은목사 5981 2019.08.11 23:30
386 <로마서 27> 죄 아래에 있는 인생 로마서 3:9-18 無益박병은목사 5378 2019.08.05 00:30
385 <로마서 26> 정죄받을 질문들 로마서 3:1-8 7- 無益박병은목사 5624 2019.07.28 23:43
384 <로마서 25>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로마서 2:26-29 無益박병은목사 5550 2019.07.22 01:51
383 <로마서 24> 위선적인 유대인 로마서 2:23-25 無益박병은목사 5400 2019.07.14 22:12
382 <2019년 성찬사 2> 축복의 떡과 잔 렘 17:12~14; 無益박병은목사 6037 2019.07.07 22:30
381 <로마서 23> 하나님의 법과 심판 로마서 2:12~13, 無益박병은목사 5814 2019.06.30 23:45
380 <로마서 22>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2 로마서 2:13- 無益박병은목사 6213 2019.06.24 00:10
379 <로마서 21>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1 로마서 2:12-16 無益박병은목사 6079 2019.06.16 22:32
378 <로마서 20>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로마서 2:5-11 無益박병은목사 5942 2019.06.10 00:20
377 <로마서 19>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2:1 無益박병은목사 5783 2019.06.07 12:53
376 <로마서 18> 하나님의 진노 4 로마서 1:28-32 5-2 無益박병은목사 5885 2019.05.26 23:38
375 <로마서 17> 하나님의 진노 3 로마서 1:24-27 無益박병은목사 6251 2019.05.13 00:06
374 <로마서 16> 하나님의 진노 2 로마서 1:18-23 無益박병은목사 6187 2019.05.05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