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8> 죄를 알게 하는 것(율법의 순기능과 역기능) 로마서 1:19-20 8-11-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8.11 23:30 | 조회 5980

* 제목: 죄를 알게 하는 것 (율법의 순기능과 역기능) 본문: 로마서 3:19~20

 

이제 우리는 이제까지 다루어 온 주제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8절부터 317절까지 다룬 주제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 없이 인간이면 그 누구든지 죄를 지었기에 그에 대하여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는 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정당성 내지는 필연성을 다루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과정에서 이방인인 우상숭배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는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하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도덕군자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바울은 특히 비록 유대들이 상대적으로 이방인과 비교해 볼 때 도덕적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교만과 위선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율법의 수준과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심판에서 예외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특별 대우를 베풀지 않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 3:19 a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 C. Cranfield, ”이 구절은 법정에서 검사의 공소와 형량이 선고된 후에, 판사가 피고에게 검사의 공소에 대한 반박과 자신의 죄에 대한 변명의 기회를 주었으나 워낙 범죄의 증거가 많고 확실하여 자신을 방어할 수 없어서 피고가 한마디도 못 하는 것과 같다.“

 

 

1. 율법이 말하는바

 

바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일까요? “율법과 복음!” 바로 이것입니다.

즉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먼저 율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이 율법을 다루어 오면서 결론을 내린 것은 율법이 주어진 것은 율법을 받은 자들 즉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사람이 변명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려는 하나님의 의도 즉 뜻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바로 이것이 바울이 118절부터 지금까지 다루어 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결론입니다.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고 하는 유대인 역시 율법의 행위로 판단해 보건대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을 인간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결론임에도 과연 어떻게 이러한 결론 즉 율법으로는 죄를 알 뿐이어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돌출할 수 있었을까요?

 

 

2. 율법의 두 가지 기능

바울은 율법을 율법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에게 주신 것으로 이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기능이 있기에 그 기능으로 판단해 볼 때 그 어느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정당성을 확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입을 열어 변명 혹은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할 수 없도록 하시려는 의도가 율법 속에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 신학이 갖는 신비스럽고 심오한 율법에 대하여 그리고 복음과의 상관관계를 깊이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율법의 순기능

 

사실 바울은 서신 여러 곳에서 율법의 순기능에 대하여 논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율법은 거룩하고(7:12) 영적이다(7:14 a).

둘째, 율법은 지식과 진리의 구체적인 표현이다(2:20).

셋째, 율법의 계명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7:10; 3:12).

넷째, 성도는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3:31).

다섯째, 모든 율법은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13:8, 10, 8:4; 5:14, 6:2).

 

2) 율법의 역기능

 

이뿐 아니라,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피력한 구절 역시 많습니다.

 

첫째, 율법으로는 칭의를 얻지 못한다(3:28; 2:16, 3:11)

둘째, 율법은 약속(언약)보다 열등하다(3:15 이하).

셋째, 율법은 죄를 더하기 위하여 주어졌다(5:20, 7:5, 8~13; 고전 15:56).

넷째, 율법은 생명을 공급해 주지 못한다(3:21).

다섯째, 성도를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7:4; 2:19).

여섯째, 율법은 사람을 지배한다. 복음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된다(7:6; 3:25, 5:1).

일곱째,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왕 노릇한다. 예수는 율법의 마침이다(10:4).

 

그래서 성경학자들이 상반되게 율법을 말하는 바울의 태도에 대하여 많이 연구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율법에 대한 진술의 불일치성을 연구하고(inconsistencies), 어떤 학자는 이 두 진술 간에 틈새를 조화시키는 연구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속에는 율법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말씀드렸듯이 율법의 기능 즉 20절에서 결론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역할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이는 율법으로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긴 논조로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차별 없는 공의에 따라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시고 사망에 이르게 하시는 무서운 심판이 죄에 대한 심판임을 균형이 있게 제시하려는 바울의 심오한 복음 제시의 한 일환입니다.

 

즉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전하려는 복음은 그냥 "복된 소식(good news, euaggelion)"이 아니라, 복음은 율법의 정죄를 이루시는 차원에서 시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완성된 구원의 도리임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만 하겠습니다.

 

3. 신학적인 논쟁

 

본문 20절이 현대 신약 신학계에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바울의 신학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입니다. 문제는 이 구절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이제까지 해석되어온 바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신약학자 제임스 둔(J. Dunn)은 말했습니다.

* J. Dunn, "이 구절은 본 서신에서 바울 사상은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절 중에 하나다. 그런데 적지 않은 주석학자들이 이 구절의 중요성 그 자체를 오해하곤 한다.”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by works of the law)"의 대한 것입니다. 사실, 19세기 전까지는 이 구절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절의 뜻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따른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칭의)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서 이 이신칭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신학자들이 나타나서 로마서를 그렇게 풀면 사도 바울이 의도했던 핵심진리를 놓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바울의 신학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새로운 관점(new perspective)’이라 부릅니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주장은 영국의 성공회 신학자인 E. P. 샌더스(Sanders), 제임스 던(J. Dunn), 그리고 톰 라이트(Tom Right)와 같은 학자들이 전통적인 칭의론(justification)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새 관점(New Perspective)이란 1세기 유대주의의 관점을 가지고 칭의와 관련된 바울의 서신들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종교 개혁가 루터(M. Luther)와 울리히 츠빙글리(U. Zwingli), 칼빈(J. Calvin)에 의해 주장된(Old Perspective) 이신칭의론(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받음, Justification by faith)을 비판합니다. 그들에게 칭의란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 대한 법정적 무죄(의롭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이 아니라, 장차 올 종말에서 최종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구원은 지속적인 선행과 함께 종말에 가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해온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도리를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는 법정적 칭의(juridical justification)라는 핵심적인 주장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함으로써 큰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새 관점론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새 관점을 주장하는 톰 라이트의 생각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삶 전체를 놓고 행하시는 것, 행위에 근거해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라며, 이러한 행위심판은 초대교회의 이단으로 정죄된 반 펠라기우스주의(semi -Pelagianianism)’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주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을 낼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어떤 선행을 한 것이 마지막 날에 공로로 여겨진다는 천주교회의 주장과 통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반펠라기우스 사상입니다. 새 관점의 구원론은 기존의 구원론을 전적으로 뒤집는 것이고 이는 종교개혁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새 관점론자는 본문의 율법의 행위란 유대인만의 특정된 종교적인 행사 즉 할례, 안식일, 등과 같이 유대인의 정체성(identity markers)"을 의미하고, 이는 유대인과 구별된 다른 인종 즉 이방인(boundary markers)들의 행위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의 행위로 칭의의 여부를 선언한다는 바울의 주장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즉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새로운 관점으로 바울 신학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을 부인하고 장차 이루어질 행위심판이란 것으로 이해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본문에 맞는 것은 20절에 이어서 따라 오는 구절 21절의 한 단어 때문입니다.

*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 율법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바울의 설명과 주장은 로마서 3, 5, 7, 10장 등 전체에 걸쳐 있으며 특히 7장에서 잘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이제는

 

21절을 시작하는 이제는(now)“이란 완전히 논점을 전환하는 강력한 단어입니다. 이제까지의 흐름을 반전시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코페르니쿠스적(Nicolaus Copernicus) 발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제까지 율법으로 의를 규정하던 율법 시대에서새로운 시대 즉 하나님의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획기적인 말입니다.

 

이렇게 이제까지 율법을 주제로 다루던 하나님의 의의 시대가 종식되고 새로운 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전하려는 것이 바울의 사상이고 신학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새로운 관점론은 로마서의 논리적인 흐름을 보면 바르게 해석한 주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놀라운 복음의 진수를 다음 시간부터 세밀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율법을 갖고 있고 할례를 받아 언약 백성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준수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교만과 위선과 거짓 됨이 도리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율법은 죄를 알게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실 도로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은 그 줄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키지 못할 때는 죄를 짓는 것임을 알리는 기능도 담겨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율법을 주심으로서 이방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에게 특권을 줬다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법을 지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 7:9-10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법인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이 날카로운 지적에 대하여 스스로 깊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양심에 말씀으로 깨닫게 하셔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선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시편 119편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은 주의 말씀 즉 계명을 불순종함으로 결과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말씀이 무엇이 악인지를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말씀의 선명성, 공정성, 강력한 능력을 신뢰하고 나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 허영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하며 주의 말씀의 의미를 잘 살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강력한 논리로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사도의 복음을 깊이 살피게 하시고 추적하여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하옵소서. 샤머니즘과 구복 신앙으로 오염된 우리의 종교의식을 깨트려 주시고, 복음의 핵심적인 배경과 내용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하셔서, 복음에 항복하게 하시고 그 복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사도 바울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10)“고 하셨사오니, 우리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희가 주 예수를 마음으로 믿게 하시고 저희 입으로 주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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