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9> 환란 중에도 기뻐하는 이유 롬 5:3~4 2-2-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2.02 21:57 | 조회 4013

* 제목: 환란 중에도 기뻐하는 이유 * 본문: 로마서 5:3~4 Feb. 2, 2020

 

본문 3절은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성도가 누릴 결과 즉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peace with God), 둘째 은혜에 들어가는 자격 획득(acceptance),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함(rejoice)”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논법은 이 부분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화보다도 더 중요한 영화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생과 역경 그리고 환란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는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교훈은 어떻게 하면 고생과 환란을 피할 수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고생을 당하지 않고 환란을 피할 방법과 비법을 가르칩니다. 어떤 교훈은 그런 고난의 상황은 그저 신의 뜻이기에 주어진 운명으로 받으라고 가르치고(Muslim), 어떤 교훈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현상은 물질적이고 정욕 적이고 육적인 것 즉 형이하학적(physical, corporeal)인 것으로 부패하여 부정한 것이며 죄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무시 혹은 체념하고 보다 형이상학적(metaphysical)인 영적(spiritual)인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Stoic). 그래서 이들은 세상의 욕망과 정욕을 절제하는 금욕주의를 가르치며 세상의 고난과 고통 그리고 환란들을 체념 내지는 회피하고 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칠까요? 앞에서 예로든 교훈과 같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환란과 역경을 극복할 것을 가르칩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의미로 이러한 교훈을 주시는 것일까요?

 

1. “환란의 의미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5:3a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여기서 말하는 환란(thlipseis, tribulation, hardship, suffering)"이란 말은 "압박하다(pressures)"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압박을 받아 심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세상의 어려운 일들 즉 골치 아픈 일, 쑤시고 아픈 고통, 공포와 혼동으로 인하여 갖는 절망감, 실망 등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한 세상에서 부닥치게 마련인 핍박받는 고난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즉 종말론적 차원에서의 환난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마지막 날에 겪게 될 환란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주께서는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3:19)”라고 사용하시며 다가올 환란의 날을 경고하셨습니다.

*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렇듯 예수를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의 환란의 개념은 세상의 어려움이나 고통이 아니라, 영적, 종말론적인 개념으로 복음을 위하여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차원에서 환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믿는 성도에게 강력하게 이 진리를 전했습니다.

*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그렇다고 해서 참된 성도는 환란이여 내게 오라!”라고 고통과 환란을 일부러 사모하고 쫓아가야 할까요?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즉 환란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성도가 왜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은 돈이 많으면 된다고 믿고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합니다. 반면에 부자를 경멸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는 돈은 더럽고 추한 것이며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미워하여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재물을 모으는 데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를 달란트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게으르고 부정직하게 살면서 그 결과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사상을 갖고 산다면 이런 사람은 자학주의(Masochism) 즉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상을 미덕으로 삼는 자들로 그 역시 성경이 교훈하는 바가 아닙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는 것입니다.

 

한편 흔히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려고 교회를 나와도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매우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왜요? 그가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그런 세상 적이고 물질적이고 건강과 관련된 복과 다른 차원의 말씀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위 신앙 지상주의(believism), 성경 주의(biblism)"적 신앙과 참된 믿음(True faith)의 신앙과는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신앙 지상주의 혹은 성경 주의란 무조건 믿으면 다 잘될 거야라 든지, ‘성경()을 믿으면 복을 받을 거야, 마치 구복신앙적 신앙으로 성경 자체를 신처럼 받들며 믿는다고 하면, 이런 식의 신앙은 환란을 겪게 되면 그동안 추구했던 바를 모두 버리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께서 가르치신 씨뿌리는 비유에서 잘 드러납니다.

* 13:20~21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즉 복음의 씨앗을 돌밭과 같은 마음-온전히 거듭나지 못한 마음-에 받아드린 사람은 환난과 박해를 당하면 넘어지게 마련이라는 교훈인 줄 압니다. 그러나 참믿음은 성경의 교훈을 온전히 믿기로 작정하고 따르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모습 즉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믿음의 열매 즉 증거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항상 경험하는 바이지만, 복음 진리를 잘 설명한다고 해서 또 그 복음을 머리로 잘 이해한다고 해서 그가 신앙을 바르게 가지는 것인가 하면 아닙니다. 이 점은 쉽게 착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믿게 하시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사도는 말합니다. 이신칭의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도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 뜻은 환난에도 불구하고, 환난 가운데서도, 환난 때문에, 환난으로 인하여서도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그 환난을 통하여 얻게 되는 혜택을 알기 때문입니다.

 

2.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

 

바울 사도는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성도는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1) 환난이 양산해 내는 것이 있기 때문

* 5:3b~4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환난을 통하여 얻게 되는 놀라운 유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환난은 인내를

여기서 말하는 인내(hupomone, patient, endurance)란 말은 소망 중에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patiently waiting in hope)을 뜻합니다. 이는 마치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끝까지 남자를 믿고 기다리며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 마침내 결혼을 이루기까지 견디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인내는 단순히 참는다는 뜻보다는 변형됨이 없이 끝까지 견고함을 유지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참된 성도는 그 마음속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을 어떤 환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며 그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즉 이런 인내를 갖게 하는 것이 곧 환난이라고 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갖추게 됩니다.

 

즉 온전한 성도는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아브라함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고, 예수 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환난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눈물의 밥을 먹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있는 장인, 성공하고 유명한 숙련공, 성공한 선수 모두가 그렇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이겨가는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하게 됩니다.

 

유능한 선수는 끊임없는 훈련의 고통을 이길 때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봅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주님을 수호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그였지만 재판장에서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 그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충성했습니다.

 

아무리 자기 믿음이 좋고 언제든 기도하면 된다고 확실하게 믿지만, 막상 환난을 겪으면 그렇게 확신하고 자신 있게 믿었던 바가 여지없이 붕괴하는 순간을 숱하게 겪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형편없는 수준과 한심한 모습을 보며 절망하게 됩니다. 결국, 그 환난을 통하여 포기하게 되고 그저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마침내 주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그 환난 중에도 기뻐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은 다양하게 이러한 환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기쁘게 그 환난을 받아드리고 극복할 것을 교훈합니다. 다음 구절들을 보시죠.

* 5:10 b~11a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12:10~11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렇듯 성도에게 있어서의 환난은 결국 유익한 결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으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여 장차 임할 영광의 자리가 보장받게 되어 하늘의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인내는 연단을

여기서 말하는 연단(dokime, approved character)"는 시험과 역경(test and trials)을 거치며 인정받은 모습을 뜻합니다. 즉 환난과 핍박 속에서 굴하지 않고 견디고, 승리하여 통과한 경력을 소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연단이라고 합니다. 즉 인내와 연단은 환난을 통해서 양산되는 아름다운 신앙적 덕목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인내와 연단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인내를 하나님의 섭리를 내 것으로 삼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연단을 그 인내로 인하여 갖춰진 성품입니다. 그는 그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 단련되어 장차 누릴 소망을 끝까지 확신하고, 그 환난을 통과하면서 형성된 경력으로 끝까지 소망을 붙잡고 나아갑니다.

*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셋째, 연단은 소망을

여기에서 소망(elpida, hope)은 장차 완성될 영화를 사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장래에 이루게 될 그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연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갈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에서 묘사하고 있는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런 표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그 천국에서는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들의 행복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황홀한 곳들이 얼마나 많고 멋지고 즐거운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은 얼마나 좋고 아름답겠습니까? 이곳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거쳐야 할 것은 당연합니다(14:22).

 

2)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당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John Stott,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는 최고의 환경이다(The tribulation is the context to convict the love of God).”

 

사실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비평하고 반대할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의 현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은 곳이며 오히려 저주받은 현장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논법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끈질기신 열심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조건 없고 변함없는 긍휼 하심 때문이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환상이 아니며,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고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 5:5~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로운 자로 세우십니다. 그 과정은 환난을 통과하여 연단 받아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 앞에 서게 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기를 원하십니까? 말을 듣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맞아가면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이 진리의 말씀을 잘 음미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잘 연단 받으시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환난 속에서도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진리의 말씀을 붙잡는 이신칭의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귀한 교훈으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믿음을 지킴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이 귀한 말씀으로 무장하여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며 소망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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