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2> 이신칭의 예증 6 :믿음으로 칭의 로마서 4:17~22 12-1-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12.01 21:48 | 조회 4327

* 제목: 이신 칭의 예증 6: 믿음으로 칭의 * 본문: 로마서 4:17~22 Dec. 1, 2019

 

지난 시간에 이어 믿음으로 칭의란 제목으로 계속하여 이신칭의의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일생 속에서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을 근거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fantastic), 실제로 그의 생활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아브라함이 실제로 보여준 일들이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논리적으로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믿음과 칭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간혹 믿음을 긍정적인 사고와 신념(positive thinking and confidence)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요,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다룰 주제인 믿음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faith)"이란 말이 성립할까요? 흔히 믿음과 이성적 합리성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조롱하곤 합니다. 그런데 믿음에도 나름 합리성이란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이 시간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합리적인 믿음

 

흔히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고지식하다고 놀리고 무시하곤 합니다. 그저 우직하게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의 모습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 신앙에 대하여 미신적이고, 광신적이라고 폄하를 합니다. 그들은 신앙을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무시하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브라함의 삶 속에 나타난 믿음의 여정이 과연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일까요? 아닙니다. 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다.

* St. Augustine "은혜로 믿고 이성으로 신앙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그는 이성적으로 어떻게 신앙했는지 살펴봅니다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바른 믿음은 이성적으로 확실한 근거 위에 세워집니다. 흔히 믿는다고 할 때,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 선거에서 투표할 때, 출마한 사람을 믿고 그에게 표를 던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성을 기초로 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신뢰성을 기반으로 해서, 문재인이란 사람에 대한 신뢰성을 근거로 지지하여 그에게 표를 던진 것입니다. 즉 사람에 대한 신뢰성에 근거를 둔 이성적인 결정이 지지 투표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람에게 신뢰성을 둘 때, 그를 믿은 확률이 얼마나 정확할까? 그 효율이 얼마나 높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언제나 신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투자하는 이성의 표출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과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흔히 을 꼽습니다. 그럴까요? 사람을 꼽기도 합니다. 그럴까요? , 사람, 그리고 권력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믿을 것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다 변합니다.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변하고 맙니다. 돈도 권력도 사람도 다 일시적이고 변화하고 제한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것들을 신뢰하고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것들이 영원히 믿을 그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신뢰할 가치가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들은 믿음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하여 이 점을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자리에 와 있으신 여러분들은 아브라함보다도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보다 더 분명하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우리입니다. 이 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멀리서 바라보고 믿었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분명한 예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뒤로하여 이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설명하신 말씀에 대하여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의 능력과 실력을 확인했으며, 이를 이루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분명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능력은 한번 하신 약속을 능히 성취하실 수 있는 실력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것을 이루시기까지 열심과 끈기로 마침내 이루어 내시는 실력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보여주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고 그분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이 시간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에 구약의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두 속성 즉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었는지 살피겠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점이 바른 믿음의 기초이며 근거임을 증명하며 이러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선언 받게 되었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17)

 

본문 17절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기록한 바는 창세기 15:5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하늘을 별을 보여주시며 후에 숱한 자손이 그의 몸에서 나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계시를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15장이 이 점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기록을 근거로 설명합니다. 즉 아브람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믿은 하나님은 두 가지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고, 다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부활입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있도록 하는 것은 창조입니다. 즉 아브람은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으로 신뢰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전혀 없는 것, 그리고 죽어 없어지는 것보다 더 무력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없을 , nothing)' 그리고 '죽음(死亡, death)' 보다 더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21세기 실존주의자들은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고뇌와 분노, 걱정과 비관 등등 불안정함은 없음의 혼돈(the abyss of nothingness)"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져서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탄했습니다. 이것을 고민하는 인간은 고독하고 좌절하여 마침내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고독을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이라고 규정하고, 이 고독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죄로부터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이 죽음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피할 수 없는 막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인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죄의 대가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사망은 죄의 삯이라(6:23)“고 했고,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1:15)“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 많은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것이 주어졌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타락에 대한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없음(nothing)과 죽음(death) 모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하시고 그를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부활! 모두를 친히 주관하시고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고, 앞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불안과 낙심과 좌절한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이 능력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위대하신 능력으로 창조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32: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 이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가 원하지 않은 부동산을 기업을 물어야 하는 자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책임지겠다고 약조한 다음에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적인 부담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진리를 믿고 기도했습니다.

* 1:17~2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우리 모두, 이 창조와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날마다 우리가 체험하는 이 자연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바입니다. 보고 듣고 체험하는 바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단으로 얻게 되는 믿음입니다.

 

3. 소망하는 믿음(18)

 

*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뢰는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이시니까 의심하지 않고 신뢰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라는 말은 모든 소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소망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말씀하실 때 그는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15:2)“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보여주시는 무수한 하늘의 별의 숫자만큼 엄청난 자손이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나이가 99세가 되고 아내 사라의 불임이 계속되어 가망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믿음이란 환상 속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영적 작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그 어떤 환상 속으로 집어넣지 않습니다. 확실한 말씀에 근거한 합리적인 과정을 통하여 온전한 믿음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고 설득해 가십니다.

 

우리는 이 점을 아브라함의 일생 속에서 확실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 17:17~19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성적인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약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잘 하도록 잘 지도하겠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확인하시며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은 이삭이다라고 언약을 세우시고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추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언약의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심지어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는 그때도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이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 22:4~5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는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은 바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바 창조와 부활의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와 함께 예배드리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그동안 하나님을 신뢰하고 고백하게 된 그의 신앙이요 성숙한 믿음의 수준입니다. 그는 75세에 부름받아 이삭을 낳기까지 25년 그리고 이삭을 바칠 때까지 15~17여년의 세월 즉 4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하나님을 알았고 신뢰했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창조의 신앙과 부활의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에게 새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의롭게 된 믿음입니다. 처음부터 시작된 믿음은 끝까지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의 핵심인 이신칭의를 증명합니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다시 본문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4:19~21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자신의 노쇠함과 아내 사라의 불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고 끝까지 믿음의 인내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성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처리했다면 이삭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끝까지 하나님의 언약 즉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주고받기(give and take)식 아닙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말씀하시고 이끌어 가심을 신뢰하십시오. 믿음이 없어(apistia, unbelief) 하지 말고 믿음(pistis, belief)으로 신뢰(trust)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성적으로 따지더라도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도록 해 드리는 것(letting God be God)“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시도록 순종하고 내어 드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일이 많아질 수 있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언제나 약속의 빛 안에서 문제들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신뢰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점을 강조합니다.

* 11:10~12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당장의 욕심과 이익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멀리 보고 끝까지 신뢰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요 올바른 신앙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설명하시고 설득하셔서 바른 믿음으로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성적으로 극도로 발전하여 배교의 길로 가는 이 시대 속에서, 엄위로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말씀을 신뢰하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시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죄 많은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며 이 구원을 믿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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