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9> 이신칭의 예증 3 : 전가교리 로마서 4:4-8 10-27-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10.27 21:57 | 조회 4594

* 제목: 이신 칭의 예증 3: 전가 교리 * 본문: 로마서 4:4-8 Oct. 27, 2019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선언하신 칭의는 그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행위 이전에 일어난 것임을 강력하게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가 그 어떤 행위를 하지 않고도 단순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계시하시는 바에 대하여 마음 깊이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지적하며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그는 본문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제, 아브라함에 이어서 다윗의 경우를 들어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바울의 논지를 따라가 보도록 합니다. 이는 창세기 15:6에서 시편 32:1~2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구절의 핵심 사안을 가지고 자신이 주장하는 이신칭의 교리의 깊은 의미를 설명합니다.

 

1. 대가와 은혜

 

이제 다윗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 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Now when a man works, his wages are not credited to him as a gift, but as an obligation. However, to the man who does not work but trusts God who justifies the wicked, his faith is credited as righteousness.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NIV 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번역하면, “사람이 일하고 받는 임금은 선물로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권리로 인정된다. 그러나, 업적이 없고 오히려 사악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믿음은 의롭다고 인정된다.”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 근로자에게 주인이 임금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빚입니다. 근무자는 그 빚을 받은 것입니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에 그가 고용주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한 만큼 받을 권리가 그에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의 논지는 그 어떤 권리를 주장할 것이 없는 사람이 만약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인정하다(crediting)"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다윗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 4:6-8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구절은 시편 32:1-2의 인용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복 있는 자는 불법을 저지르고서도 그 죄가 용서되고 그 죄가 덮어진 사람 또 그가 저지른 죄를 죄로 인정받지 않을 사람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히브리어 시어의 병행법을 사용하여 강조하여 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번 사용된(7) ”불법(anoimiai, transgressions-lawlessness)“이라는 단어와 두 번 사용된(7, 8) ”(hamartiai, failures)"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불법이란 경계선을 넘어서는 행위이고, 죄란 정중앙의 목표를 빗나간 즉 상식적이고 통념적인 수준과 기준 그리고 목표를 벗어난 말과 행위를 말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저지른 죄에 대하여 법대로 강력하게 당신이 세운 엄위로운 의의 기준을 적용하여 처벌하지 않으시고 그 죄의 기록을 남기는 대신 용서하시고 덮어버리시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죄를 지으면 당연히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데 은혜롭게도 그 죄를 용서하시고 오히려 덮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2. 칭의의 원리

 

이제 좀 더 이와 관련하여 칭의의 진리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의로부터 오는 의혹은 복음 속에 나타나는 의에 대하여 강조해 왔습니다(1:17; 3:21~22). 그것은 차별 없이 적용되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성경의 핵심적인 구원의 도리입니다. 구약의 예언과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구원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죄인을 "의롭다고 여기시는(justify)" 하나님의 호의 즉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3장에서(3:24, 26, 28, 30), 4장에서(4:2, 5, 25) 그리고 5장에서 (5:1, 9, 16, 18) 계속하여 강조하며 칭의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펴본 대로, 아브라함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그가 그 어떤 선행을 하여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행위를 하기 이전에 오직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아브라함과 맺으신 칭의 언약이라 부릅니다(15:1-21).

 

5~8절에서 죄를 지은 자를 다루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 특징을 보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을 의로 인정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행위와 관계없이 의로 인정하신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계산하는 대신, 그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순전히 믿음을 때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근거가 되고, 저지른 죄를 용서하시고 오히려 범죄 행위를 덮는 근거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세 가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칭의의 과정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칭의 사역은 이중 삼중의 인정 사역(double, triple crediting, reckoning)이라 할 것입니다.

* John Stott, "하나님은 은혜의 선물로서 의로움을 선언하시는 데 이는 우리의 행위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천주교와 개혁교회의 설명

 

그런데 이런 칭의에 대한 하나님의 이중 삼중의 "여기심(crediting, reckoning)"에 대하여 설명하는 천주교와 종교개혁자들의 설명이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의 설명은 바르게 칭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인정(crediting)"이란 말은 경제 용어입니다. 그리고 전가(imputation)“는 법정적 용어입니다. 두 개념 모두 어떤 사람에게 속해진 것으로 간주한다는 개념인데 전자는 돈과 관련하여 누구의 것인가를 따진다면 후자는 그 결과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16세기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오는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인정하다(legizomai, credit, reckon)"이란 말을 양측에서 달리 이해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이 단어를 불어 넣다(infuse)”, 개혁교회는 전가하다(impute)”로 이해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1) 천주교의 설명

천주교회에서는 인정한다는 개념을 infuse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주입하신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의로운 자가 된다.’라고 설명합니다.

 

2) 개혁교회의 설명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인정한다는 개념을 impute 즉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를 이를 믿는 자에게 전가하신다. 그 결과 그는 의롭다고 여김받는다 라고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바에 어느 진영이 옳은 이해를 한 것일까요? 개신교 쪽입니다.

즉 하나님은 의로운 자로 만들어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당신의 의를 전가하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의로운 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즉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그들이 의로움을 소유한 자로 인정하시고 그 결과 법적으로 의로운 자로 취급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설명한 분이 있습니다.

* C. H. Hodge, ”누구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은 그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고 그 결과 죄인 취급되는 것이고, 동시에 의를 전가하는 것은 그가 의롭다고 인정되어 결과적으로 그는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확정하는 바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전가 행위로 인하여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전혀 의롭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우리의 온갖 죄를 당신의 아들에게 완전히 전가하시고 그 죄를 물어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은 자 그 누구에게든 예수께서 이루신 십자가에서 의를 전가해주셔서 믿는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비하고 놀라운 구속의 사역은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운 구원 진리의 묘수이며 핵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혀 의로운 자가 아닙니다. 또한, 의로운 자가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죄 가운데 출생하고 죄 가운데서 한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결과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긍휼함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고 믿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여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그에게 다가가셔서 보여주시고 설득하시고 말씀으로 설명하시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천주교회에서는 이 구절은 세례를 받았기에 의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규정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존재로 인정되었다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천주교회의 주장이 옳았다면 예수께서 성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할 것을 명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찬에 참여함으로 주께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같은 방식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비록 죄 된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의로우심을 전가하셔서 우리의 더러움을 덮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 13:13~14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전가 사역을 통하여 예수에게 우리의 죄를 전가하시고, 예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셔서 죄를 지은 우리의 죄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또한 그 죄를 징계하지도 않으시고 아들의 십자가 사역 속에 묻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 누구에게든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권면합니다.

*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간청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0)“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셔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여기서 바울은 "예수를 얻고(gain Christ)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found in Christ)"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의로운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의 의로우심을 얻어 그분의 의로움 속에서 나란 존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나는 의로운 존재로 인정받게 되어 그 예수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가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의 도리요, 구원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항상 기억하고 비록 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 죄를 죄로 다루시지 않고 예수를 믿어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그 죄를 예수의 의로 덮으시고 예수의 의를 보시고 믿는 나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그 하나님의 고마운 은혜를 확신하고 감사와 찬송을 주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함께 찬송가 312절을 부르겠습니다.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우리 대신 죽임을 당했네
구주 예수 영원한 구원의 소망 경배하며 겸손히 절하세
찬양하라 우리 죄 지신 예수 그의 사랑 한없이 크셔라
찬양하라 높으신 권세를 찬양 찬양 찬양 영원히 드리세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심오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인 이신칭의의 핵심진리를 살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악 중에 출생하고 죄 중에 살아가며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우리를 예수 안에서 구원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예수를 얻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예수 안에서 나의 존재감,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잘남과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게 하옵소서. 항상 이 감격과 확신 가운데 주님을 위하여 살아드리는 복된 인생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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