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7> 이신칭의 예증 1 로마서 4:1-3 Oct. 13,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10.13 23:46 | 조회 4791

* 제목: 이신 칭의의 예증 1 * 본문: 로마서 4:1-3 Oct. 13, 2019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한다(1:16)고 하면서 복음의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음으로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워진다는 이신 칭의의 진리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1:17).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진리인 이신칭의를 확대하여 설명하고(3:21-26), 이를 비판하는 논리에 적극적으로 변호했고(3:27-31), 이는 구약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복음임을 강조했습니다(1:2; 3:21, 31).

 

이 과정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어야만 의로워질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 구원의 도리는 율법 방식과는 별도의 것이나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서의 지지를 받는 구원 도리라고 주장합니다(3:21). 이 새로운 방식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으로 바울은 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으로서 제시하신 일관된 칭의 방식임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바울은 세 질문으로 이신칭의 구원론의 정당성을 변호하며 변증했습니다. 그 세 질문은 첫째, 유대인으로 자랑할 것이 있는가?, 둘째,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인가?, 셋째, 믿음이 율법을 폐기하는가?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신칭의 교리에 있어서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주장합니다.

* 3:30~31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제 사도 바울은 4장에서 이 세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약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다윗왕의 예를 들어 증명하면서 이신칭의의 구원 도리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1. 로마서 4장의 중요성과 구조

 

1) 로마서 4장은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이 주장하는 이신칭의의 의미를 명백하게 밝힙니다. 그는 두 단어를 사용하여 이 작업을 시행합니다. 칭의믿음이란 단어입니다. 여기서 칭의는 의롭지 못한 자에게 의롭다고 여기는 차원에서 사용되는 말이고,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의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차원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둘째, 바울은 이신칭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구약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서 이미 전해진 진리이기에 유대인 기독교인이 이 진리를 붙잡고 믿을 것을 바랬습니다. , 그는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이 될 수 있는 풍성한 영적 유산을 받을 수 있음을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염원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3:8~9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소위 세대 주의자(Dispensationalist)는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시도하셨다고 가르치지만,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근거는 본문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백성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고, 신약 시대의 백성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해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2) 4장의 구조

이제 4장의 구조에 대하여 이신칭의를 예증하는 로마서 4장은 5개 주제별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아브라함도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1~8).

둘째, 아브라함도 할례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9~12).

셋째, 아브라함도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13~17a).

넷째,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17b~22).

다섯째, 아브라함 믿음과 우리의 믿음(23~25)

 

이 시간 첫 주제인 아브라함도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라는 진리를 살펴봅니다.

 

2. “이신칭의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중요성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을 예로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예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유대인 즉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자손이 많이 나와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12:1; 15:1; 17:1).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아주 흥미롭게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임을 강조했습니다.

* 51:1~2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즉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반석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요람인 우묵한 구덩이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 땅 갈대아 우르에서 이동시켜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시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도 이 점을 지적하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여지없이 평가 절하했습니다.

* 7:2-4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즉 유대인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 역시 원래는 이방인들과 같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부터 불림을 받은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유대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대하 20:7; 41:8; 2:23).

*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2:23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3. 아브라함에게서 확인되는 이신칭의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그가 전하는 이신칭의 복음의 배경이라 하겠습니다.

* 4: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327절에서 물었던, 유대인의 자랑에 대한 답변을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즉 유대인들의 자랑인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신 적으로 따져 볼 때, 아브라함이 얻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가 이삭을 낳고 이삭을 받쳤다는 것이 조건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이삭의 손자로 야곱을 낳아 12 증손자를 이룬 대가족이 되었고 나아가 12지파란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으나 과연 그가 이렇게 이루게 된 것이 그가 능력이 있어서 이룬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조건이 될 수 있겠는가?

 

바울은 2절에서 만약 그가 육신 적으로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어떤 행위로 그러한 놀라운 결과 내지는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면 자랑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의 일생을 세밀하고 신중하게 따져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진정 자랑할 만한 그 어떤 행위도 아브라함에게는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흔히 아브라함! 하면 이삭을 받친 위대한 신앙인으로 추앙합니다. 야고보서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2). 그런데 창세기 11:27 이하를 읽어 보면, 아브라함이 순탄하게 결혼하여 이삭을 얻었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드린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거짓말까지 했고(12:10-20), 자식을 얻기 위하여 첩을 얻기까지 한 사람입니다(16). 그렇지 않습니까?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완전하게 협상한 결과 그의 의로운 전 생애로 인하여 하나님의 호의를 받았다(Jubilee 23:10)”라고 합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았다는 구절(22:15; 26:2)을 강조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순종한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조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들의 주장은 창세기에서 계시하시는 성경 말씀의 문맥을 무시하고 행위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바울은 4:15에서 다음과 같이 논리를 전개합니다.

*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 구절은 창 15:6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그렇게 확신하고 믿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즉 모세오경의 말씀이 말하는 바는 이신칭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시기, 소명(12:1-2), 둘째 시기, 약속 확인(14:16; 15:5), 셋째 시기, 할례 언약(17:1, 17), 넷째 시기 시험(22:1 이하)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을 점검해 볼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은 이삭을 받친 때가 아니라(22), 훨씬 그 이전(15)임을 알 수 있습니다.

* 15:1~6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 후에 아브라함과 언약 체결을 하십니다(15:7~17). 이때 아브라함은 제물을 준비하느라 피곤해서 잠을 자지만, 하나님께서는 제물 사이를 횃불로 지나가심으로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겠다고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어떤 행위를 하기 이전에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이 진리를 아브라함이 믿을 때 그를 의롭다고 칭하신 것입니다. 즉 순서상 행위보다 믿음이 우선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4. 야고보의 이신칭의 해석

 

여기서 잠깐 본문을 떠나 살펴볼 주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구원에 있어서 행위냐 믿음이냐는 논란입니다.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말씀한 바에 대한 해석에 따른 논란입니다.

* 2:21~26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기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이삭을 바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강조합니다. 기생 라합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무사히 진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협조한 그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행함이 의롭다 함을 얻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야고보의 행위 강조는 말만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로 그 믿음이 증명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지 행위가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 혹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은 행위로 구현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데 그 믿음이 행위로 이어져 나타나고 있지 못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 2:15~18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 말씀은 참된 믿음은 행위로 반드시 증명되게 마련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유대주의적 사고 즉 행위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근거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기에, 사도 바울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믿음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토대요 근거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 John Stott, "믿음은 의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 받게 하는 수단이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의 자랑은 하나님 앞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유대인의 민족적 자존심과 자랑과 공로를 배격합니다. 그 어떤 민족적 특권과 종교적 경건 행위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는 바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간의 그 어떤 선행과 의식과 업적을 구원의 조건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같은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구원의 도리는 바로 하나님 계시의 믿음과 철저하고 신실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신칭의는 구원의 시작점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부르심과 격려와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신실한 믿음과 철저한 신뢰로 하나님만을,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주 앞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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