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5> 세 가지 질문 로마서 3:27-31 Sept. 29,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9.29 19:53 | 조회 4836

* 제목: 세 가지 질문 * 본문: 로마서 3:27-31 Sept. 29, 2019

 

바울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구속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믿음으로 구원 얻는 원리를 수행해 오셨음을 지적하며 25~26절에서 이를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죄에 대하여 간과하신 역사는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신 구속의 역사로 마감되어져서 이 사실을 믿는 자는 그 누구든지 의롭다고 하시며 구원을 주십니다. 이러한 진리들을 지난 4시간에 걸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렇게 진행된 이신칭의의 논리를 결론적으로 말하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그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즉 이방인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도리가 바로 이신칭의 교리임을 논증했습니다. 이 서신을 받아 읽을 로마에서 신앙 생활하는 유대파 기독교인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면서 긴 논쟁을 마치려 합니다. 그 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는가?, 둘째, 유대인만의 하나님이신가?, 셋째, 율법을 폐기하는 믿음인가?

 

1. 첫째 질문,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는가?

 

이 질문은 2장에서 논증했던 주제를 연상시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저지르는 죄의 간교함과 위선과 거짓됨을 지적하면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외 없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2:1~5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유대인이 이방인을 향한 허세와 교만 그리고 그들을 향한 비난과 정죄와 같은 행위 역시 이방인과 같은 유형의 죄에 해당하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정죄를 유대인도 피할 수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 2:21-23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바울은 율법하에 있는 유대인도 더욱 간교하고 위선적으로 짓기에 이는 이방인들의 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 3: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설령, 유대인이 언약 백성의 표로서 할례를 받았고 언약 백성의 법으로 써 율법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특권이라면 특권이라 하겠지만, 앞 구절에서 보았듯이 그것들은 오히려 그들이 위선과 거짓으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제사 제도만을 붙잡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불가함을 바울은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 너희들이 과연 이방인들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라고 반문한 것입니다.

 

만약 유대주의가 하나님 앞에서 장점이 되고 특권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을 의롭게 하는 데 장애가 되고 오히려 정죄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었다면 무슨 자랑을 할 수 있겠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혜택으로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각종 특권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은 오히려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역할만을 할뿐입니다. 결국, 바울 자신조차도 유대인의 혈통 아래에서 물려받은 각종 유산에 따라 살아갈 때는 법적 우월감에 빠져 정통 유대인으로서 출생 후 8일 만에 할례를 받는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인,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철저한 바리새인으로 율법으로 흠이 없는 바울이었으나(3:4~6), 이러한 자랑과 자부심이 예수를 안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진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오직 예수께서 이루신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회심은 율법의 준수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3:27~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율법의 행위란, 바울의 마음속에는, 유대인의 절기와 각종 율법적 의식법을 준수하는 행위 그리고 율법이 제사하는 십계명과 같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들이 결단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수준의 행위가 될 수 없고 또한 불순종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율법 준수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진리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교회 내에는 얼마나 자랑하는 자들이 많은지요? 자기를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바울의 권면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 고전 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참된 성도는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 주신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며 이러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찬양! 이것이 성도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뿐이라고 했습니다(6:14a). 여러분들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2. 둘째 질문,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 되시는가?

 

* 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독점적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따져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향하신 부르심임을 알게 됩니다.

*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그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계획 속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인종과 민족과 성별과 계급과 나이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만인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소유 여부, 할례의 여부, 민족의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인정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신칭의의 교리 속에서 모든 인간은 할례인 이건 비 할례인 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한 식구며 한 지체입니다. 할렐루야!

 

* Thomas Wright,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간은 가족이며 한 식탁에서 떡과 잔을 나누는 한 식구이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전하려는 이신칭의 교리의 모든 것이다.“

 

3. 셋째 질문, 우리의 믿음은 율법을 폐기하는가?

 

*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오세 오경의 토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지 모세 오경만을 말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구약 전체를 지칭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신칭의를 주장할 때 핵심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그리고 왜곡시키고 위선적으로 준수할 뿐인 유대인들이 만약 예수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를 믿을 때 율법은 폐기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바울이 믿음이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할 때, 세운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율법의 규정을 따져 그 규정 하나하나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율법이 내포하고 있는 정신, 의미, 그리고 율법이 함의하고 있는 바를 적극적으로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 오히려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는 율법폐기 자가 아니고 율법완성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즉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 성취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이신칭의를 비난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반명목론자들(Antinominalists)의 비난입니다. 이들은 단지 믿는다고 하면 의롭게 된다면 율법을 순종하지 않은 부담에서 벗어나 율법 불순종 대한 습관 용서를 추구하므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철저히 신앙생활 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그 항목만을 준수하면 된다는 생각 속에서 율법주의적 사고와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이신칭의를 믿는 자들은 죄를 지으면 예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반명목론자들의 도전에 대하여 로마서 6~8에서 격렬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점을 사도바울은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을 세밀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 8:3~6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즉 이신칭의의 교리는 단순한 율법 조항과 같은 교리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간섭과 역사 가운데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 성화의 교리이며 이로써 이루어지는 구원의 서정을 제시하고 적용하는 교리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이루시는 칭의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을 발생시키시고 내밀한 음성으로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나의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가르치시고 격려하여 인도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도록 역사하심입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을 계시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믿고 순종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여 로마서 초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볼 때 이신칭의의 복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믿음을 갖게 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교리는 성도들을 그 어떤 조건으로도 차별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율법을 의식하여 더욱 붙잡고 그 율법에 순종하도록 해 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전하는 강력한 이신칭의의 진리를 살피게 하시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복된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이 복음을 통하여 항상 감격 가운데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의 백성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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