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2> 율법을 적용한 결과 롬 5:20~21 5-24-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5.24 23:03 | 조회 2455

* 제목: 율법을 적용한 결과 * 본문 로마서 5:20~21 May 24, 2020

 

가중처벌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이 말은 반복적인 죄를 징벌하는 것으로 형량을 무겁게 하여 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았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음주운전을 해서 벌을 더 심하게 받는 것이지요.

 

본문은 이런 논리를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 말씀을 읽어봅니다.

* 5:20~21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1. “더구나

 

이 구절에서 눈에 띄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더한다라는 말과 왕 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시간에는 더한다, 다음 시간에는 왕 노릇한다를 중심으로 다루려 합니다.

 

바울은 더구나 율법이 들어왔을 때 (Moreover the law entered)”라는 말로 20절을 시작합니다. 개정 개역판에는 없지만, "더구나(moreover)"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바울 사도의 전도를 받아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유대 기독교인(Jewish Christian)을 의식하고 사용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마도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가 들어왔고 결국 그 죄로 사망이 왔다는 진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가지고 사용한 단어입니다. 신실한 목회적인 마음이며 아름다운 배려의 자세입니다. 이 점에서 바울의 목회적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1) 목회적 배려 차원에서 한 설명

 

바울은 12절에서부터 한 사람의 불순종의 결과 죄와 사망으로 심판받은 인간이 한 사람 예수의 순종으로 의와 생명 그리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하여 유대인 기독교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세의 율법에서는 그것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데, ’그렇다면, 율법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미리 생각하고 그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후에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하여 반드시 설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바리새인이었기에 자기도 가질 수 있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울은 18절과 19절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회적 배려 차원에서 더구나(moreover)”20절을 시작합니다. 그는 13절에서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유대 기독교인에게 율법에 대하여 기존에 갖고 있던 틀을 부숴버리는 파격적인 도전입니다. 그는 율법이 있기 훨씬 전에 이미 죄라는 것이 있었고 또 죄에 대한 정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당시 유대기독교도에겐 기존의 율법을 어기면 죄라는 생각을 강하게 흔들어 혼란 일으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죄는 있었고, 세상의 모든 죄는 율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죄로 정죄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이 현상은 율법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어 온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율법이 들어 왔다라는 말의 의미

그렇다면 율법이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들어왔다(pareiserchomai)"라는 말을 좀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더해졌다(added), 들어왔다(entered)"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헬라어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pareiserchmai)“~~와 나란히 들어 오다(to come in along side)", 혹은 "~~에 가까이 따라 들어 오다(to come into by the side of)"입니다. 또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따라 들어 오다(to come into by the side of a state of things already existing)"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 사용했던 개역 한글 번역판에서는 이런 의미를 살려 율법이 가입한 것은(5:20)“ 라고 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를 따라 들어온 것이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가입했다(added along side)"라는 것은 율법이 죄를 근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란 것에 첨가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결과 율법은 죄를 정의를 내리고, 죄를 규명하고, 죄를 정리하고 요약하여, 죄를 지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를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율법은 구원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 될 수 없고 구원의 진수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과 염려를 하게 할 뿐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 a)“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범죄란 아담의 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각종 죄를 다 포함하는 죄입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롬 3:20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했고, 3:31 b에서는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라고 하여 율법이 결코 사람을 의롭게 하거나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복종하여 그들을 의롭게 하므로 구원을 보상해 주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며 구원으로 이끄는 절대적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강화해 주고 그것을 정죄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이 죄를 해결해야 만 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죄를 더하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죄가 많은 곳에는 은혜도 많다(5:20 b)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한 사람 예수께서 순종으로 이루신 의를 완성하신 구원의 도리를 믿을 때 칭의의 선언이 주어지는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이 그렇다면, 더 많은 죄를 지으면 은혜를 더욱 많이 받으면 되겠네요?” 과연 이런 질문이 정당한 질문일까요? 야고보 선생은 이 점을 의식하고 말합니다.

*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고 그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께 그 원인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범하도록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6장을 시작하면서 이 점을 지적합니다.

*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2. 율법의 특징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로마서 6, 7, 그리고 8장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3장에서도 율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롬 5:20의 말씀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율법의 일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봅니다. 모세가 준 율법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율법은 죄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설명을 합니다.

* 7:7b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사도가 설명하는 율법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율법이 탐욕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탐심이란 죄를 알지 못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도로에 중앙선을 긋기 전에는 도로를 좌우로 다녀도 잘못이 아니었는데, 중앙선을 긋게 되자 그것을 어기게 되는 것이 죄임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거짓말을 다 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죄라고 규정되어있기에 거짓말이 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이 점에 주목하며 의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행위는 율법 이전에도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 이전에도 죄라고 여겨지는 행위를 해 왔는데, 율법을 통하여 그 죄가 무엇인지 규정하므로 분명해진 것입니다. 이유는 율법 규정이 사람의 행동거지를 관리, 통제하는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죄에 대한 지식과 성격 그리고 죄의 정도와 심도를 규정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 예로, 율법의 창시자 주께서는 율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밝히시면서 해석하셨습니다.

*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사실,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출생하고 죄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인간의 죄성은 굳이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이미 부패한 양심을 소유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죄를 규정하고, 그 죄의 성격과 심도와 부패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인간의 부패한 죄성으로 이미 죄를 그 마음에 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7장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율법에 능하지만, 자신의 거짓과 위선으로 종교적인 형식과 외식 적인 행위로부터 결코 벗어 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이를 한탄하고 절규합니다.

*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 날 수 없는 운명적 존재로 살뿐입니다.

 

2) 율법은 죄에 대한 자각을 증가시킵니다.

한편, 모든 율법 조항은 단순히 죄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율법에는 반드시 죄가 무엇이며 그에 따른 벌칙 조항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만 율법을 이해하게 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죄에 대하여 의식하게 하고, 죄의 심각성을 자각하게 합니다. 이런 율법 지식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후회할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한 자라는 자부심을 여지없이 깨트려 지은 죄에 대하여 심각한 자책을 하게 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 님을 찾아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주께서는 그 청년에게 율법(십계명)을 제시하시며 그 조항들을 지킬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청년은 그 모든 율법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답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청년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이며 그에 대한 청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 10:21~22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여러분, 율법 조항은 결코 머리로만 인식할 것이 아닙니다. 행동에 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 점을 지적하시며 그러지 못한 위선적인 바리새인을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머리로만 율법을 이해했지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은 죄책감에 빠트리고 더 죄 가운데서 헤매게 합니다.

그 좋은 예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십자가의 은총을 깨닫기 전에 이 문제로 심각한 고민 가운데 빠졌었습니다. 그는 수차례 기도하고 금식과 같은 고행을 했고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만이 주목받을 뿐이었습니다. 점점 죄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영성이 율법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패배감에 사로잡힐 뿐이었습니다. 그때 스승 슈타우피츠의 조언을 듣게 됩니다. 스승은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바라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깊이 공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루터는 시편과 로마서를 연구하던 중 마침내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율법에서 벗어나 참된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되어 십자가 신학이라는 것을 정립하게 되고 당시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교회를 개혁하는 종교개혁의 기치는 높이 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시행하는 여러 교육 중에 성교육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육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학생이 그 교육을 통하여 오히려 죄를 더욱 습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많은 문제를 발생하고 있다기 때문입니다.

* 1:15~16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4)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루터가 회심을 경험하고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가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이때의 경험을 탑 속의 경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구원받는 놀라운 영적 경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설명합니다.

* 3:22~24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죄를 깊이 인식하게 하고, 점점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트려서 죄책으로 고통받게 합니다. 그런데 이 죄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 속에서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구원을 갈구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으로 이끌어 주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며 초등학교 교사 혹은 과외선생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기를 노력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며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복음이 가진 의 즉 인간이 죄를 짓고 사는 존재임을 가르쳐 자신의 위선과 거짓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점검과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서 참된 구원을 갈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그 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결론

 

우리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려하셨습니다.

*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 믿음과 진실 그리고 인내로 나갈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에 힘서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연 얼마나 거듭남을 경험하셨습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이 중생의 역사가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까요? 우리가 머리만 율법을 다루고 복음을 이해한다면 도저히 영적 강성과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설교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많은 이들이 화려하고 웅장하고 많은 무리 가운데 모여 소위 종교 생활을 즐기지만, 전혀 중생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많아 현혹하는 시대입니다. 그저 걱정거리는 덜어 주고 해결해 주겠다는 식의 거짓과 위선이 판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예수를 믿으라던가 교회에 나오라는 권면을 넘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어떤 영적 상태 가운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고마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율법의 성격과 특징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주신 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심각하게 자신의 영적 상황을 바라보게 하시고 점검하게 하옵소서. 복음의 내용과 능력을 확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허락하시는 구원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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