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7>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3 6-28-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6.28 18:40 | 조회 2199

* 제목: 그럴 수 없느니라 * 본문: 6:1~3 June 28, 2020

 

* 제목: 그럴 수 없느니라 * 본문: 롬 6:1~3 June 28, 2020

로마서에서 가장 심각하게 다루는 주제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를 믿는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믿음의 불안전성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죄를 확신하기도 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죄에 대해 심판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즉 믿음이 좋을 때, 믿음이 나쁠 때가 반복되는 것으로 좌절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신앙의 부침(up and down)으로 괴로워하는 우리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긴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무미건조한 타성에 빠진 신앙, 세상과 쉽게 타협하는 신앙의 모습으로 괴롭기만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영적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도 자신의 죄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 받지 못했었습니다. 하여 그는 항상 죄를 심판하시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심각하게 고민하며 죄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대로 금식과 고행과 같은 금욕적 수행도 해보고 자기 스스로 자학하기도 하였으나 그 무서운 죄책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스승 폰슈타우피츠가 그에게 조언합니다. 그 조언에 따라 성경을 연구하면서 십자가의 도리를 깨닫게 되고 더는 죄와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놀라운 이신칭의의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1. 로마서 6장에 들어가며

 

드디어 6장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5장에서 “은혜의 강력한 지배력”을 다루었습니다. 5장 마지막에서 바울은 강력한 은혜의 지배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을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21절).” 이 말씀은 은혜의 강력한 지배력을 말합니다. 즉 나의 그 어떤 능력과 조건과 수준에 따른 대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한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코, 성도 됨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바울의 논조는 6장보다는 8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8장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5장 21절과 8장 1절을 읽어 볼 때, 논리적으로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볼 때, 6장은 괄호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M. Lloyd-Jones).

그렇다면, 바울이 6장과 7장을 기록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의를 믿는 자에게 적용되는 은혜가 그를 마냥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떤 죄 가운데 있더라도 그를 절대로 정죄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진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끝까지 성도를 이끌어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는 이 말은 무조건 정죄하지 않고 또한 이미 지은 죄를 죄라고 여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가 지은 죄를 문제 삼아 멸망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은혜가 그를 보호하고 은혜가 그에게 경고하고 은혜가 온전함에 이르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도가 딴짓할 때 그가 깨닫도록 반드시 경고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은혜가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섭하시는 이유는 그가 건실하게 영생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2. 세 가지 질문

 

앞에서 5장에서 바로 8장으로 가도 자연스럽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롬 6:1~7:13까지를 보면, 이 두 장이 같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되는 복된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죄를 더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며(5:20 a), 놀랍게도 상대적으로 이런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역시 더욱더 새 생명을 얻게 하시고(5:20 b), 이로써 이 성도에게는 은혜의 지배가 강력하게 역사하신다(5:21)고 강조했습니다. 즉 은혜가 놀랍게 역사하고 그 은혜가 죄인들을 불러 끝까지 인도하여 마침내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은혜의 통치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설명은 간단하게 바울이 칭의에서 영화로 간단하게 이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자 이 이신칭의의 복음에 반발하는 율법주의자 혹은 도덕주의자들이 바울을 반율법주의자, 반도덕주의자라고 비판하며 그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세 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하여 답하며 칭의에서 영화에 이르는 데는 반드시 성화 과정이 거치게 된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세 질문을 통하여 이신칭의 복음의 필연성을 증명해 보이려 했습니다.

이 3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은혜를 더하기 위하여 죄를 계속하여 더 많이 지어야 하는가(6:1~14)?

둘째,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에 죄를 지어야 하는가(6:15~23)?

셋째, 율법은 죄인가(7:1~3)?

이 세 질문은 율법주의자를 의식하고서 바울이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즉 율법주의자, 혹은 도덕주의자들이 제기할 수 있는 도전과 비판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이들은 유다서에서 잘 규명해 주었습니다.

*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들이 제기하는 이 냉소적인 비난은 바울의 일방적인 이신칭의의 복음이 과연 균형이 잡힌 교리임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칭의에서 영화에 이르는, 즉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과정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점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세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은혜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도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드리게 될 때, 즉 은혜를 바르게 이해할 때, 그 어떤 세속의 세력과 영향에 흔들림이 없이 건실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견지하며 영적 자유와 해방 그리고 구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성도”란 신분의 변화

 

정말 많은 죄를 지어도 그런 행위를 묻지 않고 사해 준다는 말인가? 이신칭의를 믿는 자에겐 죄의 문제가 정말로 상관없다는 말일까요? 그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 많이 짓고, 그 많은 죄를 해결하는 더 큰 은혜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바울은 6장 1절에서 “그럴 수 없느니라(by no means)!"라고 단호하게 답합니다.

그런데 이미 그는 롬 3:8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롬 3: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구절은 당시 교회 내에 바울의 가르침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말할 뿐 그에 대한 설명 내지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들과 도전들에 대하여 답하고 논증하며 반박하는 시도를 6장과 7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하게 되는 주제는 ”성도의 신분 변화와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과연 성도란 어떤 자일까요? 어떻게 성도가 되었나요? 바울은 은혜로 됐다고 주장합니다(엡 2:8). 이들은 은혜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호의’라고 할 때, 받은 쪽에서는 그 어떤 기여나 노력과 자격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조건과 업적에 따른 기여 내지는 보상으로 받은 것이 아니기에 그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흔히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쉽게 그 복권으로 얻게 된 엄청난 돈의 귀함을 잊을 채 흥청망청 쓰다가 쉽게 패망하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게 되었으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일탈하게 되어 다시 죄의 길로 쉽게 빠지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도 조세형의 경우입니다. 그가 비록 목사가 되고 선교를 한답시고 일본에 갔으나 생활의 궁핍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다시 도둑질하는 등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2019년 81세 때에도 2~3만 원을 훔치다가 3년 구형을 받아 지금도 감옥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성도란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께서 완성해 주신 의를 믿은 자로서 신분이 변한 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구별된 신분 상태와 그의 수준과 능력은 같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아무리 믿음으로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그의 수준과 능력은 여전히 세상 적이고 정욕 적인 연약한 존재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갈등하다가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합니다. 바로 내주하시는 성령을 깊이 의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바울은 확실하게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 은혜를 의지하여 살았던 성도였습니다.

*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은혜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깨닫게 하며, 바른길로 가도록 지시하며, 인도하는지를 깊이 인식하여 그 은혜를 온전히 의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4. ”성도“란 신분 이해

 

그래서 성도란 신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실합니다. 성도란 어떤 신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를 믿어 죄인에서 의인이 된 자입니다. 이 말은 죄를 짓지 않는 자기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가 되었어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에게도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또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에 괴로워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숱한 반성과 회개를 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부분을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는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천국(구원)에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마 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역사상 실제로 이런 예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교부 중에 한 분인 오리겐(Origenes, 185~254)은 예수님의 말씀 따라 문자 그대로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가 되었습니다.

* 마 19: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과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고 어떠한 종교적인 수행으로도 거룩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쉽게 죄를 짓고 죄 가운데 빠지는 죄성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자들이 결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이미 아담의 족보 가운데 있던 죄인이 은혜로 예수의 족보로 옮겨져 기록된 자로 허락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담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예수 안에서 다시 살아난 상태로 이미 옮겨졌음을 의미합니다.

* 요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즉 예수를 믿어 의로운 자가 된 자에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바 되었기에 결코 정죄 받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가 되는 신분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영적 신분의 변화를 겪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성도가 깊이 깨우쳐야 할 것은 자신이 고백하는 바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는 자신의 신분 변화가 실제로 느끼고 알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변화된 신분에 걸맞게 능력을 갖춘 완성된 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이신칭의의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즉 신분의 변화와 그 신분의 완성과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대학 학력을 가진 능력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졸업하고 학위를 얻게 되는 실력을 갖출 때 능력자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완성되지 못했다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보다!’ 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좌절하여 구원의 도리에서 떠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를 더욱 사모하고 의지하고 그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이미 주신 말씀을 통하여 더 깊이 깨닫게 하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누가복음 5장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두 번째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 눅 5:4~8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경험한 베드로는 스승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며 제자로 훈련받았으나 최종에 가서는 예수의 재판장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고 결국에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주께서 찾아오셔서 그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아내십니다(요 21:15~17). 그것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였고 결국에는 그 은혜에 붙잡혀서 죽기까지 충실한 주님의 제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은혜를 아십니까? 결코, 죄 가운데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그 은혜를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 롬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아멘

<기도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도 이 귀한 구속의 진리로 초대하여 주시고 그 심오한 진리를 생각하며 자신을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그 죄의 영향력 아래서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로 덧입혀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깊이 인식하게 하옵시고,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더욱 신뢰하여 세상을 이기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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