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보훈 강해 35 하나님 앞에서의 삶(8): 기도 7 마 6:9-13 3-4-2012

無益박병은목사 | 2012.03.04 17:29 | 조회 18752

* 제목/ 하나님 앞에서의 삶: 기도(7) * 본문/ 6:9-13 3-4-2012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데, 앞부분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즉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기원하며 그 나라의 백성으로써 참여를 원하는 기도이며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가 관영한 이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바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의 주제로는 첫째, 생존의 문제/일용할 양식을 구함(6:11), 둘째, 정신적인 문제/ 인간관계 속에서 지은 죄를 용서를 구함(6:12), 셋째, 영적인 문제/ 시험에 들게 안고 악에서 구원을 구함(6:13)입니다. 이 기도들은 육신의 필요와 정신적인 자유와 영적인 보호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신 주제 가운데 두 번째 주제인 죄의 용서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주님께서는 본문 12절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의 용서에 대한 난제

 

이 기도에 대하여 논란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미 구원받은 자들은 죄가 완전히 사함 받았기에 다시 사죄를 구할 필요가 없다

둘째, 죄용서를 조건으로 사죄를 간구하는 것은 다시 율법시대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필요가 없다.

 

두 번째의 것은 이 시간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이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신약 시대를 여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으므로 기도한다고 해서 다시 율법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것은 좀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특별히 한국교계가 이 문제로 매우 심각한 논란 가운데 있었고 지금도 교회를 비난하고, 성도들을 현혹하는 세력이 야금야금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 막대한 영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국에서는 이미 사이비로 신학적 판결이 난 이들 사이비 분파들은 더 이상 고국에서마음대로 그 세력을 펼치는 데 지장을 받고 있어서 외국으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들은 한인 교포사회에 침투하여 각종 매스컴을 동원하여 마치 그들이 고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양 무지한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덴버에서도 구원파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는 박옥수라는 사이비 교도가 복된 소식이라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소식지로 마켓에 배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죄의 용서에 대한 교훈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국에서 70년 대 말 80년대에 기승을 부린 권신찬씨 중심의 소위 침례교회에서 파생된 구원파라는 집단에서는 성도는 이미 칭의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선언 받은 자이므로 더 이상 회개가 필요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해졌기에 다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구원의 진리를 호도했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박옥수와 같은 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를 받았다. 우리들은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다 죄 용서를 받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완전히 성화된 존재이기에 회개할 필요가 없고 또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다. 만약 회개를 하는 자는 아직 죄용서를 받지 못한 자이므로 온전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기존교회에서 주기도문을 하면서 죄 용서를 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역시 복음을 왜곡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히 참된 성도들은 죄를 짓지 않는 자들인데 무슨 용서를 구할 것인가? 라고 반문합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합당한 주장이며 가르침일까요? 이제 이들을 가르침의 오류를 성경의 교훈을 따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둘째,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베드로와 가벼운 대화를 하셨는데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이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13:4-10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 대화에서 보듯이 목욕한 자는 더러워진 발만을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과 상관이 있는 제자는 주님께서 씻기시는 발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 하더라도 살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 죄를 순간순간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해져가는 중생의 삶 즉 성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인 줄 압니다.

 

셋째, 비록 거듭난 성도라고 하더라도 죄의 세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 예를 바울의 진술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거듭난 주님의 사도가 되었음에도 로마서에서 이 죄의 문제를 고통스럽게 겪으면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절규하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7:19-25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는 바울의 이 절규에서 비록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삶 속에서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일 것입니다.

 

넷째, 칭의 교리에 대한 오해입니다.

칭의 라고 하는 교리는 우리의 죄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의 대속의 피로 덮어서 없는 것으로 여겨주시겠다는 법정적 선언입니다. 예수의 대속의 진리를 믿기에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덮으시겠다는 사랑의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이 창의 인 것입니다.

 

바울은 다윗이 말씀한 시편 32:1-2을 인용하여 칭의를 설명하고 있음을 봅니다.

* 4:5-8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들은 이들 박옥수와 같은 자들이 전하는 사이비 교훈에 현혹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2. 사죄 기도의 내용

그러면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죄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에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합니다.

 

* 126: 다섯 번째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불쌍한 죄인인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항상 괴롭히는 악을 제거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로서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듯이 그렇게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가르침에서 다음의 요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근거로 한 기도

여기서 주님께서 가르치신바 가운데, “내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집단 즉 믿는 성도들 모두의 죄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는 이 기도의 주체인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먼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해 놓으신 대속의 진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복음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을 보시고 자신의 죄와 아직도 자신 속에서 계속하여 영향 미쳐 죄의 부패 가운데 있는 있어서 여전히 계속하여 죄를 짓는 바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 요일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 시편 51:1-5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 143:1-2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미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거짓되고 위선적인 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다음은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습니다.

* 요일 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2) 주님의 대속의 진리를 온전히 믿는 성도는 당연히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 8:1-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살아가는 자는 당연히 영의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은 생명과 평안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요구 즉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할 것이며, 이웃과의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힘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용서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7*70 490번 용서해 주라는 말씀일까요?

*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사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에게 위해를 가하여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님은 베드로가 질문하는 용서에 관한 교훈을 하시면서 이 교훈을 잘 알 수 있도록 쉬운 비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다운 용서를 이미 받은 우리들이기에 이웃에 대한 용서를 베풀며 살아가도록 힘서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용서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우리는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 18:23-34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 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同官)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 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 일만 달란트/34.27kg* 10000=342700kg(34.27t),

6000드라크마(헬라동전)*10000=6천만 드라크마

* 100 데나리온/3.8g* 100= 380g(0.38kg) 노동자의 하루 품삯(=드라크마와 동일한 가치)

 

즉 미국 돈으로 환산하면, 만 달란트는 6000만명의 노동자가 하루 일한 품삯($ 7)에 해당하는 336천만 불이며, 100 데나리온은 100명의 노동자가 하루 일한 품삯 $ 5,600에 해당합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죽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죄의 용서를 받은 자가 어찌 삶속에서 이웃과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수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용서 참으로 여렵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용서하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참으로 우리 중심에서 형제를 용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라고 그래서 이 기도를 항상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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