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보훈 강해 36 하나님 앞에서의 삶(9): 기도 8 마 6:9-13 3-25-2012

無益박병은목사 | 2012.03.26 00:04 | 조회 19069

* 제목/ 하나님 앞에서의 삶: 기도(8) * 본문/ 6:9-13 3-25-2012

 

계속하여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본문 12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 주제에 대하여 살피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구원파에서 말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은 죄가 완전히 사함 받았기에 다시 사죄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4 가지로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께서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13:4-10),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하시면서 목욕한 사람이라도 생활하면서 더러워진 발은 씻어야 함을 말씀하시어 회개의 필요성을 암시하셨습니다.

셋째, 비록 거듭난 성도라고 하더라도 죄의 세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7:19-25에서 잘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그는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절규하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 절규에서 비록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삶 속에서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넷째, 칭의 교리에 대한 오해입니다. 칭의라는 교리는 우리의 죄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의 대속의 피로 덮어서 없는 것으로 여겨주시겠다는 법정적 선언입니다. 예수의 대속의 진리를 믿기에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덮으시겠다는 사랑의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이 칭의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가르치신 죄 용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에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합니다.

 

* 126: 다섯 번째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입니다. 이는 주의 은혜의 증거가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기 로 굳게 결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시사, 우리의 죄과와 아직도 우리 안에 있는 부패를 불쌍한 죄인인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입니다.

 

이 가르침을 통하여 좀 더 이 가르침의 영적인 교훈들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1. 부채를 갚지 못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기도하라.

우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죄 지은 자라는 표현에서, 여기서 말하는 죄란 부채(debt, 負債)를 의미합니다. 즉 빚입니다.

*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이 구절에서 죄 지은 자(opeilonti)”란 단어는 남성 혹은 중성 단수 명사로 opeilou 즉 빚을 지다(to owe, to owe a debt)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즉 죄란 빚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hamartia)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행위를 말한다면, (opeilemata)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드리지 못한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들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경우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시간, 재능, 성품, 환경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마음을 원하지만, 욱신과 생활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것들, 능력은 있는 데 연마하지 못하여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 세월을 허송하여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빚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것들을 지금 제대로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빚이요, 죄입니다.

 

이러한 교훈은 주님께서 주신 탕자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 15:11-12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허랑방탕하였습니다. 이 말은 흥청망청의 의미로 흔히 사용되지만, 사실은 낭비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마땅히 사용할 곳에 사용하지 않고 다른 곳에 사용하는 행위가 허랑 방탕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허랑방탕하는, 낭비하는(waste) 행위!

 

* 15:17-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인간은 이 탕자와 같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빚을 진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하나님께 빚진 상태로 죄책이 전가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책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무조건 많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래서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그럴듯한 이론에 사람들은 현혹되어 무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짓기도 합니다. 또한 부모의 결핍함은 자녀에게 전달되고, 자녀의 결핍은 부모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겸손하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바로 죄요, 하나님께 빚진 것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깊이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지기 민족의 비참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가 자비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 9:18-19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은 자신의 비참함, 가족의 비참함, 사회와 국가 그리고 민족과 인류의 죄로 인하여 야기되는 비참함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진 죄의 빚으로 인하여 결과 된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간구한 것입니다.

 

2. 행위의 조건이 아닌 은혜의 증거로 기도하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형제를 용서한 그것을 근거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서 같이(even as)” 라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마 18장에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임금에게 탕감 받은 종의 경우입니다. 그는 엄청난 돈을 먼저 탕감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빚진 형제를 용서해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탕감받은 것 같이형제에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임금은 그에게 진노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는 믿는 성도를 향해 가르친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완성하신 대속의 진리를 믿은 자가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는 나의 용서 행위를 근거로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은 은혜의 근거로 용서해 주고 또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증거를 근거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사실, 그 어떤 인간도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용서 받는 사람도 완전히 용서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해와 앙금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용서를 베풀면서도 죄를 짓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고 또한 그 은혜의 증거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거짓되고 위선적인 존재입니다.

* 요일 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있는 성도는 당연히 그 은혜의 증거를 통하여 용서하고 용서 받는 삶을 살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매일매일 반복되고 일상화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안일하게 대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너무 죄에 대하여 깊이 빠져있을 경우입니다. 그럴 때 그는 그 죄를 이기기 위한 고행을 하게 되고 여전히 죄에 속박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죄를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죄를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그는 방종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죄에 대하여 눌려 살아도 안 되지만, 죄를 무시하고 살아서도 아니 됩니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사죄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죄 많은 여인을 사해주신 후 나눈 교제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많이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눌 것은 물론이요 세상의 사람들과도 더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3. 공동체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이 기도의 교훈에서 우리는 개인’, 혹은 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즉 복수를 위한 기도 즉 공동체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신자를 의미합니다. 왜 주님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을까요? 대체적으로 성도가 이 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도가 교회 안에서 죄를 취급하는 방식과 세상의 죄에 대하여 접근하는 좀 방식이 다르다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의 죄에 대하여서는 세상이니까 하고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방관적 자세를 취하는 반면에 교회 내에서의 죄의 문제에 있어서는 신랄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쉽게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죄에 대하여 성경적인 엄격한 교훈을 적용하여 정죄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정죄합니다. 그러한 행위 가운데는 자신은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기도 합니다. 이는 교만의 죄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 6:12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반면에 마 7:2에서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함과 함께 자기 교만의 죄까지 저지를 수 있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즉 공동체적인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줄 압니다. 성도는 상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데 정죄하는 데 더욱 더 힘쓴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부채만 더 쌓아가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는 당연히 같이 믿는 공동체 안의 형제를 용서하고 받아드리고 품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빚을 만들기도, 또한 빚을 지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용서를 주고받는 삶의 상황들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나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의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해 주시고 해결해주신 사실을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되었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이나 빚을 진 자들에게 용서와 탕감을 베푸는 아량과 마음 씀씀이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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