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22 윤리적 기독교인 (2) 골 3:12-17

無益박병은목사 | 2013.02.15 16:59 | 조회 7382

* 제목/ 윤리적 기독교인(2) * 본문/ 3:12-17

 

우리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원리를 산상 보훈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 성도의 신분을 다음과 같이 지정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과연 이 말씀과 같이 세상의 소금으로서, 빛으로서 우리의 소임을 다 하고 있는지요? 오늘날 교인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기는커녕 bacteria와 누룩과 같이 썩고 부패하게 하는 온상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소금 역할을 제대로 하고,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가장 윤리적이 되어있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인의 기독교인 됨의 원칙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새사람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3:10 (너희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 말씀은 거듭남의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거듭남이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born again)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구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진리에 대하여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 3:3-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 말씀 속에는 구원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고, 그래야만 천국(구원)을 볼 수 있고, 또한 들어갈 수 있다고 가장 종교적인 사람, 니고데모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종교적인 과정을 거치고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 당연히 구원이라는 것이 주어진 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과연 이 말씀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흔히 거듭남을 체험하면 어떤 대단한 영적존재 즉 신령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경험한 다양한 영적 은사들(방언, 치유, 축사, 등등)을 특별하게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간략하지만 거듭남의 핵심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듭남이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는 것(anakaivoumenon, 현재수동분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거듭난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으로 지식에 까지 새롭게 된 사람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바는 지식에 까지 새롭게 되어진 상태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식이란 단순한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만나주시고, 체험하게 해 주셔서 얻게 된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알고 체험하여 얻는 지식으로 그 형상 속에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며 확신케 하시는 바 지식에 까지 자라서 새롭게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이 거듭남이란 단 번의 영적체험을 한 사건적 경험(an event)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반복적(repeatable)이고 지속적(consistently)이며 점진적(progressive)인 기나긴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어지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은 이 과정에 들어선 사람들이기에이 사실을 알아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에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구원의 비밀을 망각하고 영적 거듭남의 비밀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이고 세상적인 수준에서 좀 더 고상하고 나은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시간, 약속 잘 지키고, 돈에 대하여 깨끗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수준, , 담배하지 않고, 도박, 마약하지 않고, 포르노 잡지 보지 않고 등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등등, 괜찮은 기독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 기독교인이란 그 정도의 수준과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정도와 수준의 사람들은 불신자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은 지식에 까지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기도에 담아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질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흔히 바르게 믿은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새로운 인생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그 가치관을 이루며 살아가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 3:5-9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거듭난 바울의 궁극적인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선언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배경과 자격과 수행과 수련, 그리고 그가 이룬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이 과정은 한평생이 소요되는 지속성을 갖습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입니다. 한평생 진리의 지식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변화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지식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창조의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성령 하나님의 재창조의 사역이 여러분의 인생 속에 풍성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가기를 소원합니다.

 

2. 노력해야할 일들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났다고 하여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하여 초영적인 사람(super spiritual person)이 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참으로 믿어 헌신하기로 결단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노력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속에 심겨진 새로운 형상,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Christlike life)입니다.

 

이 과정에는 우리가 노력해야 할 몇 가지의 분야가 있습니다.

1) 자기 훈련(self discipline)

2) 관계 훈련(relationship discipline)

3) 영적 지식 훈련(spiritual knowledge discipline)

 

첫째, 자기 훈련입니다. 이를 본문에서 입으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 3: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여기서 그러므로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의 되었으니란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의 거듭남이 자신의 노력과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은 분명하고 철저하게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진리가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인식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기에 말씀에서 나타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과 같은 덕목들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덕목과 같은 용어로 되어있지만 그 차원은 스스로 노력하여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임을 알아 이러한 덕목으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알고, 이 영적 진리를 깨달은 자 만이 살아가면서 나타내어야 할 덕목들인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온유하심으로, 그 하나님의 길이 참으신 인내하심으로 예수 안에서 다시 살아난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교훈합니다.

 

* 딤후 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해야만, 영적으로 수준 높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갈수있을 것입니다.

 

둘째, 관계훈련입니다.

* 3:13-15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혼자 살아갈 수마는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들과 먼저 교제를 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의 자존심과 이익과 입장에 따라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는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죄 된 모습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불림을 받은 존재인지를 명확하기 인식함으로부터 밖으로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불화관계)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화목사역으로 인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인식하고 이를 근거로 타인들과 화목을 이루며 살아갈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이 화목사역(reconciliation ministry, peacemaker ministry)가 성도의 궁극적인 사역임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고후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렇습니다. 오늘날 미움과 시기와 분쟁 속에 성도들은 이 화목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 되게도 오히려 우리 안에서 사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살후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영적 지식 훈련입니다.

*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은 신앙생활, 교회생활의 근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세력화, 정치집단화, 이익 집단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은 ghetto와 같이 특정 그룹을 형성하여 세상에 세력집단으로 나타나고 있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참된 회복과 앎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는 천국의 실현공통제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오직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 모형을 사도행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2:42-47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서 이 지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천국의 모형을 봅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각인되고 그 말씀에 항복하고 순종함으로 풍성한 말씀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된 기독교인의 윤리성은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 속에서 깨닫고 그 말씀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할 때 나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주일설교, 20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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