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 07 충만을 위한 기도 골 1:9-14

無益박병은목사 | 2013.02.13 13:59 | 조회 10443

* 본문/ 1:9-14 * 제목/ 성도를 위한 사도의 기도 2: 충만을 위한 기도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어린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의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초대교회 안팎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이단 사설의 영향으로부터 교회가 아름답게 지켜지고 또한 진정으로 복음의 영광됨으로 충만히 채워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이러한 사도의 마음은 비단 골로새교회 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 대해서도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2 장에 가서 보시면 다음의 말씀이 나옵니다.

* 2:1-3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즉 사도 바울의 기도는 한 마디로 충만을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ginoskow) 지식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사도는 그 충만의 방법으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이해함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론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령한 지혜이며 또한 이해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ginoskow(알다)에서 파생된 단어 그로시스 gknowsis” 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 뜻은 "영적 지식"입니다. 줄여서 영지(靈知)”라고 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지상의 마지막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며 이 진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알고 사모하고 추구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성도의 지상 최대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진리 지식의 고상함과 중요함에 매료되어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었고, 갖고 있었고, 그리고 누리고 있었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고상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 3:4-9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

 

이런 바울이기에 그는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고는 역시 그 교회 성도들을 기억하며 동일한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히 앎으로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충만함에 이르는 것이 영생입니다.

*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유대인들은 이 작업을 율법적 규정에 따라 열심히 성경을 낭독하고 암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아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 성경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신령한 지혜되시는 주님을 발견하여 그를 믿음으로 고백할 때 그에게 참된 영생이 주어짐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이 놀라운 일은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고후 4: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하나님의 이 신령한 빛을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창조의 사역을 이미 이루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 구세주로 고백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아멘!

 

1. 충만의 특징

이제 이러한 충만한 지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까? 세상 지식을 많이 연마하여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가르치는 직분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영적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 모습을 바울은 주께 합당한 삶이라고 말합니다(10a).

*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사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그 속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골로새 성도들이 자신을 위한 지지,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그들의 진정한 신앙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것이 구원 얻는 믿음의 진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과 삶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은 뿌리이고 삶은 그 열매이기에, 주님은 열매를 보아 그 뿌리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 믿음과 열매인 삶과의 관계는 구원 얻는 믿음이 단순히 고백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저 열심히 행사만을 벌려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교훈하신 것입니다.

*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주님께 합당한 삶입니다.

둘째,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주님을 매우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셋째, 모든 선한 일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그 결과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합당한 삶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일까요? 원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주님의 거룩하심에 따라 사는 삶(to walk worthily of the Lord, peripatesai phias aksios tou kuriou)입니다. 가치 있게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주 안에서 합당한 삶일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인 줄 압니다.

* 13:34-35. 15:12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 명령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봅니다.

* 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것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복음의 신앙적 차원에서 더욱 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였습니다.

*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한국의 기록 영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지난 9월 초부터 개봉한 <울지 마, 톤즈>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그 내용은 수단에 파송되어 아픈 이들과 삶을 나누다 48세의 나이로 산화한 이 태석 신부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현재 한국에서 전국 13개 영화관에서만 개봉되었음에도 벌써 10만 관객을 울렸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평한 한 목사의 평론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 이태석의 지론은 성경의 한 구절이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25:40)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예수를 온몸으로 살았던 거다.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영화의 제작 의도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되는지 그는 보여 준다.

 

배고픔을 달래 주기보다 자립할 용기를 주고 싶어 학교를 세우고, 소년병으로 끌려가 무기를 들었던 손에 책을 들려준다. 한센 병으로 뭉뚝해진 손을 보듬어 주고, 고름과 피가 흐르는 상처를 닦아 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 곁에서 위로해 주고, 가난에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나눠 준다. 이런 모습은 예수가 했던 말 그대로다.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

 

그리고 그는 마지막 멘트에서, “기독교계 신문을 들추기가 겁이 날 정도로 목사의 성폭행 사건이 판을 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 이야기를 교회에서도 비슷하게 맞닥뜨리는 게 통상이 된, 개도 안 물어갈 망발을 강대상에서 퍼붓는 목사들이 큰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런 나의 현장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그게 정말 한심하다. 하나님은 커녕 인간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으니. , 그래도 목사라면서.” 라고 쓰고 있습니다(New and Joy 10-17-2010 internet 판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삶이란 하나님을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 보다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산상 보훈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당연히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고난과 핍박이 따르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리들을 격려하시며 그러한 삶을 살아갈 것을 교훈하십니다.

* 벧전 3:13-17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올바른 신앙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의로운 행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당시의 영적 지도자들의 교훈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를 신봉하는 영은 선이고 육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입장을 가지고 영적진리에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그러한 진리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영지주의 교사들은 자신들이 깨달았다고 하는 영적 지식을 갖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정죄하고 분리하여 특별한 집단으로 구분 지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기들이야 말로 참 지식(gnosis)을 지닌 자들이기에 자기들의 교훈을 믿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극도의 영적 지식만을 추구하였지 정작 이웃에 대한 참 사랑을 실천하는 실천적 열매 즉 그러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초대교회의 교훈에 대하여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내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 이단적 교훈에 물들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가르쳤습니다.

 

2. 충만한 지식 습득 과정

어떻게 이러한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요? 어떤 과정을 거쳐야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지식을 얻게 될 까요? 사도 바울은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영적 지식의 증가(성장)로 가능합니다.

* 1:10c 주께 합당히 행하여---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연마하고 지속적으로 탐구할 때 가능합니다. 그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히 인지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 34:8-9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둘째, 능력을 덧입음으로 가능합니다.

* 1: 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능력 있는(empowered)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경험하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있다!”는 이 말은 소위 적극적 사고 방식(positive thinking)에서 말하는 세상적인 성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I can do everything!)고 외치는 구호가 아닙니다. 이 말은 고상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경험한 자로서 성령의 능력으로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은 기쁨으로 모든 것을 견디게 하고, 인내하게 하고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하셨음을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주심으로 아들 예수 안에서 얻게 되는 신령한 기업(유업)을 유산으로 성도들이 받아 누리게 하셨습니다.

*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죄의 어두움 속에 갇혀 살아가는 자들을 예수 안에서 건져 아들의 빛 된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은혜로 옮겨주셔서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3) 그 아들과 함께 연합하여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사도는 성도가 충만한 지식으로 채워지는 삶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알고 삶속에서 경험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골로새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성도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 주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셨습니다.

 

*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날 현대 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는 커녕, 세상의 모든 불법이 자행되는 암적 존재요, 불화의 온상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한 번 더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된다는 뼈아픈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바라기는 우리의 기도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한 기도와 같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결과 성령의 능력을 덧입힘을 받은 성숙되고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주일설교, 10-1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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