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90 주님의 십자가 5 : 버림받은 아들 예수 막 15:33-36

無益박병은목사 | 2014.05.06 17:48 | 조회 8117

* 제목/ 주님의 십자가 (5): 버림받은 아들 예수 * 본문/ 15:33-36

 

계속하여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점검하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온갖 수욕을 당하시며 6시간을 버티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12시간 혹은 24시간, 건장한 사람은 1주일씩도 간다고 하데, 주님은 6시간밖에 버티지 못하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 십자가에 달려있던 주님의 몸에 대하여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은 33세의 청년이 의외로 매우 짧은 시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런 예수님의 육체적인 상태에 대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묘사는 흔히 우리가 보는 예수님의 사진과는 다른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서양의 건장한 남자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그 어떤 매력 있는 육체적인 모양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의 공생애 3년 반 동안 온갖 시험거리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고 육체적으로 금식과 산기도, 편안치 못한 잠자리 등으로 육체는 혹사 당하셨습니다. 그러니 보기 좋은 육체커녕,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 시간 정도 밖에 십자가에서 버틸 수 없었습니다.

 

6시간동안, 아니 하루 밤새 동안 온갖 심문과 조롱, 멸시와 천대 가운데서 빌라도와 대제사장과의 꼭 필요한 약간의 말씀만을 하시고, 대체적으로 침묵을 지니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러한 주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주님께서 또 십자가상에서도 몇 마디 말씀만을 하셨던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매우 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oi Eloi lama sabachtani)!” 이는 아람어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처음으로 자신을 버리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왜, 자기를 외면하시고 버리느냐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위대한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M. Luther)는 시편을 연구하다가 이 구절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시편 22편입니다.

 

* 22: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시편 22편에서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여 마침내 그의 신학인 십자가 신학(Cross Theology)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가 의문을 가지며 놀란 것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의문은 1500년 당시 천주교의 가르침 가운데서는 도저히 듣도 보도 못한 진리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형식만 있었을 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구원의 도리인 십자가의 도란 어떤 것입니까?

그저 낭만적이고 은혜롭기만 한, naive한 그 어떤 종교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는 이렇게 무섭고 냉정한 내용이 담겨있으며 실제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 그 사건의 과정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십자가의 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암흑의 현장

 

본문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 15:33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세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세 시간 동안(12-3pm)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어두움(skotos)이 임했을까요?

 

1) 일식(Eclipse)일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AD 28-34년 사이에 일어났던 자연 현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태양의 일식현상이 3시간동안 있었던 지를 살피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개기일식만이 대낮에 온 세상을 캄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개기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은 어느 문서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암흑이 나타났던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10:21-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 8:9-10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이 두 구절은 모두 하나님 심판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이 점에서 신학자들의 해석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증오의 표현

어느 신학자는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인 세상에 대하여 증오(detestation)심을 발하셔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이 얼른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세사에 대하여 왜 증오를 퍼 부으셔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3)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

J. Calvi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John Calvin "이는 죄에 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셨고 그것은 온 세상에 나타내셨다. 그러나 Eloi Eloi lama sabachtani!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의 죄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현장 속에서 무서운 공포심과 도저히 견딜 수없는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해를 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외면하시고 버림받고 있음을 불평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르짖는 아들 예수님의 요청을 외면하셨습니다. 그 분 사이에는 어두움이 임하였고 그로 인하여 두 분 간에는 더 이상의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고 단절되었습니다.

 

2. 죄의 무서운 결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외침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 삼위일체의 단절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경험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모르시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 십자가에서의 외침을 통하여 그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게 되시고 고통스러워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아픔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사이에 완전한 일치성을 의미하는 삼위일체가 십자가상에서 일순간 깨어지는 형상을 목격합니다. 아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분리의 원인을 물으셨고 또한 그에 따른 고통을 외치셨고 그 사실에 대하여 불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하나님과 단절이라는 극 처방을 취하셨습니다. 왜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인간도 인간이 지은 죄를 극복하고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버리시고 그에게 죄의 형벌을 받도록 심판하신 것입니다.

*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둘째, 죄의 전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이사야 53장에서 예언하셨습니다.

*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아들 예수께 담당 시키셔서 그를 십자가에 매 다신 것입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들의 간청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온 세상의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추상 같은 공의가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죄에 대한 속죄(Redemption)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홀로 그 모든 죄를 다 감당하실 것을 명하셨고 그 잔인한 죄의 형벌의 현장 속에서 구원을 간청하는 아들의 절규를 외면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의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하신 것 보다 더욱 더 감당하기 힘든 외면을 그의 아버지로 부터 당하신 것입니다.

* Lane, " 아들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시고, 저주받으시고 온 세상의 죄를 전가 받으셔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으셨다.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림받고 심판 받은 것은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없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대속의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율법은 죄를 지은 자는 자기가 지은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지에 대하여 받을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죽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시어 그에게 우리의 죄를 물으시고, 그에게 우리의 죄를 전가시키셔서 그를 죽이신 것입니다.

 

여기 복음이 있습니다.

*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인간의 무지한 행적

* 15:35-36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외치신 외침에 대하여 십자가 밑에 있던 자들의 반응을 마가는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재빨리 가서 스폰지에 신 포도주를 묻혀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의 입에 닿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도 저지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엘리 엘리 하며 외치는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왜 그들은 그렇게 알아들을 것일까요? 아람어를 몰라서 그랬을까요? 만약 그들이 로마 사람들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사람이 엘리야를 알까요?

 

둘러 선 자들은 예수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는 대로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대 선지자입니다. 그 엘리야에 대하여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이 엘리야가 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 왕하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래서 그들은 이런 절박한 때 승천하신 엘리야를 예수님을 불렀고 이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러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간교함은 그런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예수의 절규에 대하여 금방 외면하고 맙니다. 그리고 되어지는 일을 그저 보고만 있자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 위에 그대로 방치해 두고 맙니다.

 

오늘날도 자신에게 적용될 구원의 복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강 건너 불을 보듯 자신들에게 임하고 있는 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나 보자하고 복음에 대하여 식상해 하고, 상대화하는 자들을 봅니다.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그들이 여러분 당신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형제이고, 가족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십자가의 도리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루터는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십자가 신학을 정리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가벼운 은혜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냉정하고 잔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담겨 있습니다. 추상같은 하나님의 공의가 그토록 깊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간의 관계를 파기하고 외면할 뿐 아니라, 아들에게 퍼 부르시는 진노의 심판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엄청난 심판을 죄 없으신 분이신 예수께서 받드셔야 만 했습니까? 왜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아픔을 겪으셔야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에게 모든 죄를 전가하시고 죽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셔야만 합니다. 여기에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비밀인 이 복음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 고전 15:2-4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우리를 예수안에서 구원할 복음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담긴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묵상하시며 주님의 부활의 복음을 사모하시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주일설교, 20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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