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85 닭이 두 번 울 때 막 14:66-72

無益박병은목사 | 2014.05.02 11:53 | 조회 8269

* 제목/ 닭이 두 번 울 때 * 본문/ 14:66-72

 

어느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습니다. 아니 결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수치스럽고 창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 제자였던 베드로에게도 역시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없이 자신이 살기위한 한 수단으로, 처한 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얼떨결에 행동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랑하는 제자 마가에게 이 사실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결점과 약점 그리고 사도로서의 수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겸손하게 주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한 평생 잘 감당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에 있어서 이와 유사한 결점과 약점 그리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우들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신약의 바울 등등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저 역시 사람 앞에 내어 놓기 부끄러운 많은 죄를 지은 연약하고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넘쳐서 지금까지 주님 앞에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자신에 대하여 과대한 자랑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J. Calvin은 본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을 봅니다.

본문은 인간의 연약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a bright mirror of our weakness)이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회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일단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공회원들이 보낸 체포조에게 잡히시게 되자 베드로는 비롯한 제자들 모두가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다 도망간 제자들과 달리 베드로는 후에 스승을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그는 검으로 스승을 지키기 위한 행동도 행사했습니다. 무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제자로서의 행동입니다.

* 18:15-16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여기에 다른 제자는 아마도 요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베드로는 요한이 도움으로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뜰에 들어간 베드로는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화로 곁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의 과정이 전개되었습니다. 이에 몇가지 사항을 점검해 보며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베드로가 처할 상황을 미리 예언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사탄이 베드로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며 철저한 준비를 당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당시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나누었던 대화에 대하여 좀 더 잘 이해하도록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 22:31-34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의 시험에 대하여 예언하시며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베드로 역시 기도로 준비해야할 것을 권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에 찬 소리로 충성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서 전혀 자신을 모르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당시 베드로는 분명 주님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은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호언장담하며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다른 제자들도 모두 동일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 14:30-3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리라

 

우리는 이 대목에서 얼마나 인간이 연약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 지도 모르는 한심한 존재인 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분명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위하여 기도로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와 달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잠만 잤을 뿐이었습니다.

 

2. 시험받은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부인하며 저주 맹세했습니다.

 

* 14:66-71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 쌔,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복음서의 기록들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베드로의 부인의 과정을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요한의 도움을 받아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간 베드로는 화로 곁에 앉습니다. 화로에서 비취는 불빛이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 주었습니다. 문을 열어주고 들여보낸 여자 아이는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화로 곁에 서서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그가 예수의 제자임을 외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무지한 행동의 한 단면을 봅니다. 화로 곁에 서서 밝은 빛 아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행동은 너무도 생각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시험받을 현장에 스스로 가서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 장소에나 가는 것은 스스로 죄의 유혹을 받으려고 가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분명이 기독교인들이 가도 좋을 장소가 있고 가서는 안 될 장소가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점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순하게 주님에 대하여 자심이 말한 바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였고 또한 스승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와 충성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그의 성품에 합당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즉각 시험이 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뱀 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할 것(10:16)을 명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의 시험이 도전하여 왔습니다. 첫 번째 도전은 개인적입니다

두 번째 도전은 약간 공개적인 도전입니다. 세 번째 도전은 완전 공개적인 도전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세 단계 부인의 과정에서 생각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점은 이미 예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시켰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주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 12:8-9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둘째, 베드로의 부인은 성령의 역사하심, 즉 믿음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였습니다. 여기서 흔히 쉽게 베드로가 예수님의 저주하고 그 사실에 대하여 맹세까지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NIV 번역만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He began to call down curses on himself, and swore to them."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성 즉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은 저주 받아 마땅하다고 스스로를 저주하며 그 사실에 대하여 맹세까지 그들 앞에서 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주라는 “anathematizo"라는 단어는 자신의 말의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표현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만일 내가 예수를 안다면, 또 내가 나사렛 당원이 아니라는 이 말이 거짓이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 이 점을 맹세한다. “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급한 상황 아래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엉겁결에 나온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자 세 번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몰아세웁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 26: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여기는 예루살렘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지역출신입니다. 말이 달랐습니다. 어투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사용하는 갈릴리 어투를 문제 삼아 몰아세웠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입니까! 베드로는 부인할 수없는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강한 부정은 확실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상황을 베드로가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닭이 두 번째 울었습니다.

 

 

3. 베드로는 닭이 두 번째 울 때,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 22:60-62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인하는 순간 예수께서 돌이켜 베드로는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베드로는 그제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14:30)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서 통곡했습니다.

*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여기서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다(kai epibalon eklaien)"라는 표현은 생각나서, 절제할 수없는 감정의 북받쳐 속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뜻입니다.

 

John Calvin주님께서 베드로를 돌이켜 보신 그 순간 성령님의 비밀스러운 역사하심이 베드로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그에게 비추어 주셨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회개는 오직 성령 하나님이 역사로만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자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통곡하였습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이 회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룟유다와 베드로는 생각해 봅시다. 가룟유다도 뉘우쳤습니다. 베드로도 뉘우쳤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다릅니까?

*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달랐습니다. 어떻게 달랐습니까?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생각하게 하다(epiballow)라는 말은 covering his head, thinking about it! 이라는 말입니다. 즉 베드로의 머릿속에 주님의 말씀이 그 꽉 차게 지배하셔서 도저히 견딜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하신 것입니까?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된 회개는 말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룟유다와 베드로의 차이점은 바로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심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로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심으로 그를 구원하시고 겸손하게 하셔서 주님의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얼마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셨습니까? 얼마나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서 신앙적인 검증의 순간에 주님과의 관계성을 부인하셨습니까? 기억하시고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째 울 때 회개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닭이 두 번 울 때는 언제입니까?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평소에 깊이 배우고 묵상하여 그 말씀이 마음속에 잘 박힌 못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의 영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말씀을 우리 심령의 폐부를 깊이 찌르고 자극하여 도저히 참을 수없는 회개의 역사를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그는 당당하였고 자신감에 넘치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한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심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없는 가련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주님께서는 이같은 연약한 인간 베드로를 부르시고 단련시키셔서 자신의 증언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부르셔서 사도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먼 훗날 베드로는 주님의 겸손한 종으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 벧전 5: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전설에 의할 것 같으면, 베드로는 새벽마다 닭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회개하여 주님의 사도로서의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기위하여 노력하여 마침내 순교의 자리까지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나온 뉴스 가운데 한국에 기독교가 필요한 종교인가!” 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기사였습니다. 왜 이런 기사가 나와야 합니까? 전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서는 안 될 장소에 가고, 가서는 시험에 빠져 전혀 믿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말하지 못하는 연약한 신앙인의 모습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항상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님의 예민한 역사 가운데 자극받아, 말씀대로 순종하여 교회 내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당당하고 진실 되게 주님의 증인이요, 제자임을 드러내시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역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주일설교, 20071125)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6개(1/5페이지)
마가복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96 마가복음 강해 96 승천하신 주님 막 16:19-20 無益박병은목사 6877 2014.05.08 18:15
95 <창립 기념주일> 마가복음 강해 95 교회의 본질과 사명 막 無益박병은목사 6849 2014.05.08 18:10
94 마가복음 강해 94 부활의 증인들 2 막 16:9-14 無益박병은목사 7227 2014.05.08 18:09
93 마가복음 강해 93 부활의 증인들 1 막 16:1-8 無益박병은목사 7206 2014.05.08 18:04
92 마가복음 강해 92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신 주님 막 15:42- 無益박병은목사 8167 2014.05.08 18:02
91 마가복음 강해 91 주님의 십자가 6 : 임무완수 막 15:37-41 無益박병은목사 6552 2014.05.08 17:59
90 마가복음 강해 90 주님의 십자가 5 : 버림받은 아들 예수 막 15:3 無益박병은목사 8117 2014.05.06 17:48
89 마가복음 강해 89 주님의 십자가 4 : 조롱꾼들 막 15:29-32 無益박병은목사 6686 2014.05.06 17:46
88 마가복음 강해 88 주님의 십자가 3 : 골고다 막 15:21-27 無益박병은목사 7393 2014.05.06 17:44
87 마가복음 강해 87 주님의 십자가 2 : 조롱과 희롱 막 15:16-2 無益박병은목사 8766 2014.05.06 17:42
86 마가복음 강해 86 주님의 십자가 1 : 빌라도 법정 막 15:1-15 無益박병은목사 10317 2014.05.06 17:40
>> 마가복음 강해 85 닭이 두 번 울 때 막 14:66-72 無益박병은목사 8270 2014.05.02 11:53
84 마가복음 강해 84 주님의 심문 당하심 막 14:53-65 無益박병은목사 7729 2014.05.02 11:51
83 마가복음 강해 83 배반과 체포 막 14:43-52 無益박병은목사 8188 2014.05.02 11:49
82 마가복음 강해 82 겟세마네 막 14:32-42 無益박병은목사 9591 2014.05.02 11:47
81 마가복음 강해 81 목자를 치리니 막 14:27-31 無益박병은목사 7846 2014.05.02 11:42
80 마가복음 강해 80 새 언약의 체결 막 14:22-26 無益박병은목사 8455 2014.05.02 11:40
79 마가복음 강해 79 가룟유다 2 : 예정-선택과 유기 막 14:10-2 無益박병은목사 8615 2014.05.02 11:37
78 마가복음 강해 78 가룟유다 1 : 비극적 인생 막 14:1-2, 1 無益박병은목사 8820 2014.05.02 11:34
77 마가복음 강해 77 널리 전할 헌신 막 14:1-9 無益박병은목사 8300 2014.05.02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