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82 겟세마네 막 14:32-42

無益박병은목사 | 2014.05.02 11:47 | 조회 9591

* 제목/ 겟세마네 * 본문/ 마가복음 14:32-42

 

마가복음을 강해하는 가운데, 본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의 길을 따라가기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가지셨습니다. 그때 친히 제자들에게 사랑과 봉사 그리고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그들과 함께 새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이후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신 후(17)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주님은 감람산에서 특별히 겟세마네동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Gethsemane, Gethsemani)"란 말은 아람어로 갓쉐마네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뜻은 기름짜는 틀"이라고 합니다. 감람산 끝자락에 위치한 낮은 언덕입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기도로 준비하시기 위하여 이 곳에 가셨습니다.

 

이는 마치 야곱이 삼촌 외삼촌 라반을 떠나 온 가족과 재산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던 중 형에서가 군사 400인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압복강가의 밤새 기도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때 야곱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피할 수없어 형에게 잡혀 죽게 된 상황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혼자서 고민하여 기도했다면(창세기 32), 우리 주님은 피할 수없는 인류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죄인으로써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기 위하여 기도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 32:22-24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겟세마네 동산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자주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던 곳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누구나 잘 알고 있었던 곳입니다. 물론 가룟 유다도 알고 있는 곳입니다.

*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 18: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주께서 이 동산에 가신 이유는 두 가지라고 Matthew Henry는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님은 자신의 사명 즉,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교제(fellowship)을 가지시기를 원하였다.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요, 다음은 제자들과의 교제다. 그것은 기도로 연결된 교제였다.“

 

얼마든지 예수는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는 것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신 거룩한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할 수있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명하신 명령임을 깊이 마음 속에 품고 사역에 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따로 불러 특별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 14:32-33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 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이렇게 세 제자를 따로 불러 당신의 기도에 동참시키시기를 원하신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 Matthew Henry,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보여준다. 제자들이 자신의 기도를 들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주께서는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자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기도하는 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고 또한 그들에게 특별하게 지시할 것이 있을 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받을 피의 세례(bloody baptism)와 쓴 잔(bitter cup)을 마신 사실에 대한 증인들로 데리고 가신 것일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겟세마네, “기름짜는 틀에서 기도하신 것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고통의 겟세마네

* 14:33-35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 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주께서는 세 제자만을 데리고 한 곳으로 가신 후 그 세 제자들과 마저 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때의 주님은 심히 놀라고 슬픔에 잠겨있는상황이었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서 심히 놀랐다는 의미는 어떤 뜻일까요?

“ek tham beis thai”라는 이 단어는 "horror of great darkness, 엄청난 흑암의 공포"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사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마가복음에서만 사용된 특별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닥칠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 이례적인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놀라움의 일종으로 고민과 흥분의 예측 불허의 심각한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마치 아브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처음 경험할 때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이때 아브람은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의 임재 가운데 임한 공포감을 느끼시고 몹시 두려워하며 고통과 슬픔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언어 주석학자인 Dr. Lightfoot은 이 단어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심히 놀라시며 두려움에 빠지신 것은 아마도 이때 사탄은 예수가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하나님께 온전히 소망을 두지 못하도록 위협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마음(, Spirit)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는 영이 죽게 될 정도가 되었을까요? M. Henry는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첫째,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를 지은 죄인이 되셨고, 둘째, 우리를 위하여 저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내 마음이 심히 죽게 되었다고 하시며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법정에 서서 추상같은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몸소 경험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죽음을 언도하시는 하나님의 엄하신 형벌의 엄청남에 대한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에게는 죽음 자체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퍼 부으시는 죄에 대한 무서운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자신에게 그러한 심판이 주어짐에 대한 분노를 느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거의 죽게 된 지경이라고 하시며 자기의 제자들이 약간이라도 스승이 겪고 있는 이 심적 상황에 대한 느낌과 동정을 조금이라고 갖고 느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의 체험과 같은 것입니다.

*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2. 고독의 겟세마네

* 14:37-41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물론 주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은 바 자기 목숨을 내어 죽음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셔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하셔야했지만, 제자들에게도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얼마나 기도가 중요한 지를 깨닫습니다. 기도는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능력있는 영적 도구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주님은 기도할 것을 강력하게 명하십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 특권이요, 무기요, 권세입니다.

*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제자들에게 그렇게 명하시고 주님은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에 몰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예수님의 기도를 도우셨습니다.

* 22:40-44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를 다 마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십니다. 그때 세 제자들은 깊이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주님이 겪는 심적, 영적 고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의 위급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안타깝게 그들을 깨우시며 격려하십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기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시며 심각하게 고독을 경험하셨습니다.

 

John Calvin은 주석하기를 "제자들은 이 때, 자신들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해야만 했다. 주님은 그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너희 자신스스로가 가다오는 심각한 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해야만 했었다.“라 설명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도는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 전 저녁에 다락방에서 기도에 대하여 이 점을 강조하며 기도할 것을 그들에게 주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안타까운 실정을 잘 아시고 측은히 여기시며 말씀하십니다.

*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에서,

여기서 마음이란 영(Spirit)을 의미합니다. 영은 원하는 데, 육신이 약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감당하여야 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으로부터 이기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통곡의 겟세마네

* 22:40-44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 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께서는 세 제자들과 조금 떨어져서 무릎은 꿇고 땅에 엎드려 기도에 몰두하셨습니다. 이는 기도에 전적으로 몰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 기도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에 몰두하셨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히브리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5:7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4. 순종의 겟세마네

마지막으로 주님의 겟세마네는 순종의 장소였습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아바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ABBA 아람어로 My Father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결코 Father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Adonai"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하나님을 "father"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시는 중요한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1) 간청 기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누가)”

 

그런데, 마가의 기록은 조금 더 자세합니다.

*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말은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처럼 보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통치 영역까지 침범하여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는 내가 꼭 이 길(방법)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해야만 합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하는 간청입니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Calvin이 말한 대로, 미리 작정으로 하고 준비된 기도(a premediated prayer)가 아니라, 즉흥적이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심각한 심적 부담 가운데 내 뱉은 기도로 보입니다. 그것은 이 간청을 한 다음에 주님께서는 예속하여 고집피우며 간청하지 않으시고 즉각 취소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순종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주님의 신실한 종들도 가끔씩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만이 행사하실 주권에 도전하는 듯한 발언으로 강력하게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poterion)”이란 말은 무엇을 담는 그릇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필할 수없는 이미 결정된 고통이나 심판(destined suffering and judgment)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이 표현에서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죽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M. Henry가 추론한 바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완전히 알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 의심의 너머에 있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였다. 주님은 그 길이 반드시 자신이 가야할 길임을 알고 순종하셨다.”

 

2) 순종의 기도

두 번째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즉각 자신을 하나님 뜻에 완전히 복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정에 기꺼이 서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아드리시겠다는 헌신과 충성과 순종의 기도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겟세마네는 어떤 장소입니까?

형을 만나러 가는 야곱과 같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씨름과 같이, 전적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 달리며 순종을 고백하는 주님과 같이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로 깨어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지금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려는 자들에게 기도로 깨어있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겟세마네의 기도 모습을 묵상하시며 나의 구원이 어떻게 완성되었는 지를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들처럼 되지 말고 우리의 약함을 인식하고 스스로 일어나 깨어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다음과 같이 때문입니다.

*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아멘) (주일설교, 20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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