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45 신앙 경주자에게 주는 권면(2) 히 12:4-13

無益박병은목사 | 2013.02.12 22:01 | 조회 7532

* 제목/ 신앙 경주자에게 주는 권면 2 * 히브리서 12:4-13

 

운동선수나,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야 선수는 경기에서 이길 수 있고 군인은 전쟁에서 목숨을 건지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교관은 훈련병들에게 말합니다. “훈련장에서의 땀 한 방울은 전장에서 피 한 망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혼의 구원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완전히 회복하여 영광된 구원을 얻으려면, 목표를 예수에 두고 영적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 12:2a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서 바라보라(see it)” 라는 표현은 그저 목표점을 바라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눈의 초점을 그에게 고정시켜 집중하라(fix our eyes on Jesus)는 말입니다. 저자는 성도들은 예수를 바라보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이유는 그 분은 우리의 주님이시요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히브리서 12장은 구조상 두 부분 즉 1-13절까지와 14-29절까지로 구분됩니다. 두 부분 모두 권면, 해석, 그리고 권면의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전반부가 개인에게 하는 권면이라면, 후반부는 공동체에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개인적으로 하는 권면의 두 번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징계의 목적 (10)

말씀드린 대로 징계(discipline)란 훈련(단련-training과 징벌-고생이 수반된 단련 chastening이 병행된 개념)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이러한 훈련이 필요할까요? 먼저 그 목적부터 살펴보도록 합니다. 10절의 말씀을 봅시다.

* 12:10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훈련은 참가자들이 제대로 협력하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분명하게 성도가 징계를 잘 받아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유익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시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합니다. 군인이 어려운 극기 훈련에 참여하고 적극 전술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는 있을지 모르는 전쟁에서 목숨을 보존하고, 승리하기 위합니다. 성도가 신앙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도록 하기 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교사와 목사들을 주셨습니다. 이 모두는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는 말씀만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역을 위하여 자신이 혼신의 노력(해산의 수고)을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기 위한 최선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 4:11-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 베드로도 이러한 신앙의 목적, 훈련과 단련 받아야 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든 신앙생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완전히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이 사실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그저 열심히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발산하는 종교생활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필요한 일이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 점을 망각하거나 가볍게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그의 백성인 우리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1:44).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품에 동참 시키셔서 당신의 거룩함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2. 징계의 의미(5-11)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의 훈련 즉 징계의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5-6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3:11-12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 가지 징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아들같이 대하심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는 이유는 당신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자식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 12:7-8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그렇습니다. 어느 부모든지 자식에게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것은 그 자식을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장차 바르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리석은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책망한다고 부모를 대적하고, 집을 나가기도 합니다. 심지어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있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신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육신의 부모는 간혹 실수로 자녀들에게 잘못된 징계, 훈계를 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도 자녀들을 키우면서 적지 않게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다루실 때는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께서는 각 사람에게 꼭 맞는 맞춤훈련을 완벽하게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적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시며 징계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완벽한 훈련 자이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실시하시는 이 징계를 받을 때 자식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가볍게 여기지 말라, 둘째, 싫어하지 말라, 셋째, 낙심하지 말라. 네째, 인내하라.

 

이 훈련의 과정을 깊이 인식하고 마음 판에 깊이 새겨서 다시 실수하는 일이 없어야 훌륭한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징계를 싫어하고 또한 우습게 생각하며 마음에 깊이 새기지 못한다면 단지 훈련이 고통스럽고 힘들 뿐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그 훈련받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인내할 수 없습니다. 그 힘든 훈련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가끔씩 국가 대표 선수들이 훈련을 등한히 하고 또한 힘들다고 훈련받기를 거절하고 훈련소를 뛰쳐나가는 소식을 듣습니다. 물론 선수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성공적인 선수가 되겠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하여 신실하게 영적 단련을 원칙적으로 잘 받아야 하는 데 대충 자기 입맛대로 신앙생활하려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성도는 도저히 성숙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자식이 자기 부모가 돈이 없고 가정이 가난하다고 집을 나간다면 그는 바른 자식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부모와 가정을 생각하고 부모를 존경하여 순종하며 가정에 헌신하려는 생각을 하는 자식이 훌륭한 자식이 아닐까요?

 

2) 영적 유익을 위함

분명히 징계는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강조하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시기 위한 특별 훈련의 과정을 밟게 하십니다.

 

영국의 경건한 Hugh Latimer라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 곧 영적 환난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양념이 식욕을 왕성하게 하듯이 환난은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평온할 때는 그에 대한 갈증이 없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고 감옥에 가게 되면,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주님을 부르는 법을 배우게 되고 주님을 향하여 기갈을 느끼고 주님으로부터 양식을 얻기 위하여 사모하게 된다. 그래서 환난이라는 양념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욱 큰 갈증과 더욱 왕성한 식욕을 주어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고 그리스도를 양식 삼아 성숙한 성도로 살아가게 한다.”

 

시편 기자도 이 점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 시편 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환난과 징계를 위장(僞裝)된 하나님의 축복과정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분명히 고난과 환난은 주시려는 축복은 감추시고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다.

3) 의의 평강한 열매를 거두게 하기 위해(11)

*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 말씀에서 성도가 징계를 받을 때의 상태와 그 훈련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기쁨을 발견합니다. 즉 혹독한 훈련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즐겁지 않고 고통스러운 지를 인정합니다. 당연히 훈련, 즉 징계는 힘들고 짜증나고 즐겁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훈련의 과정에 대한 이해와 대처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훈련받는 사람은 놀러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논산 훈련에 입소하는 사람들이 휴가를 간다는 느낌을 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긴장합니다. 그동안의 사생활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끊고 오로지 훈련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훈련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는 귀한 보상을 얻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귀한 열매입니다. 그는 의의 평강한 열매(a harvest of righteousness and peace) 를 생산해 내게 됩니다. 여기서 의와 평강한 열매란 “eirenikon" 이란 단어인데, 이 말은 운동선수가 힘든 경기 마치고 난 후에 갖는 달콤하게 취하는 휴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긴장이 이완되는 순간에 오는 평안, 훈련을 무사히 다 마친 성취감과 만족감, 이에 따른 상쾌함, 뿐만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희열과 열정의 충만함 등을 의미합니다.

 

즉 이 의()와 평안의 열매는 혹독한 훈련과 징계를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인 셈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의()란 고난을 믿음으로 통과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확신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이것이 어디 바울뿐이겠습니까? 만약 우리도 바울과 같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지키면 그 날에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은 교회의 머리되시며 촛대를 쥐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도 보장해 주셨습니다.

* 요계 2:10b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Diogenes Laertius라는 성도는 연단의 뿌리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훈련소를 잘 통과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성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F. F. Bruce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연단을 천부께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 계획하신 일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원망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케 한 자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의로운 삶을 경작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 준다.

 

이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마음의 평정심을 항상 유지한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 경쟁시대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잘 단련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말씀과 더불어 담대히 그 상황들을 대처하는 는 성숙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징계(훈련)를 잘 받으려면(12-13)

*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저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자식 된 우리를 다루어 가시는 과정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군인이 훈련을 받기 위하여 또한 훈련 과정 중에 개인적으로 준비해야할 행동 지침과 같습니다. 즉 체력관리와 상황관리를 잘하라는 권면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체력 관리란 훈련 받기 위하여 혹은 훈련 받느라고 받은 피로와 상처로 약해진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이는 보다 나은 상태로 스스로의 체력을 관리할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당연히 세상 가운데서 받은 상처와 마음의 고통을 말씀과 기도로 잘 관리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관리란 곧은 길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군인이 진격하는 데 앞으로 나아갈 길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을 게으르게 한다면, 군사가 어떻게 앞으로 진격할 수 있겠습니까? 강있으면 다리를 우선 적으로 놓아야 합니다. 골짜기가 있으면 다리를 먼저 놓아서 병사들이 진격할 수있게 하는 것이 우선 해야할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같습니다. 영적 생활의 중요성을 안다면 바른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주변 환경을 잘 정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는 주일을 준비하는 일이나, 직업을 택하는 일이나, 삶 속에서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상황들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오늘날 얼마나 이 점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마음을 드려 신앙의 발이 삐지 않고(dislocated), 잘 치료받아(healed) 강건한 다리를 가진 영적 군사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지요!

 

결론

우리의 구원은 반드시 환란과 역경 가운데서 온전한 믿음으로 단련되어 주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귀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함을 격려합니다.

* 벧전 1:5-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군인이나, 운동선수나 모두 훈련되어야 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패잔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 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단련의 과정인 줄 알고 인내로 피하지 않고 정공법적으로 대처해 나아간다면, 그 성도는 의와 화평의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이 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는 이 땅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며 구원을 이루어 성숙된 성도로서 영혼의 구원을 완성해 가는 자입니다. 아멘(주일설교, 6-20-2010)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50개(1/3페이지)
히브리서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50 히브리서 강해 50 요청과 축복 히 13:18-25 無益박병은목사 9966 2013.02.12 22:12
49 히브리서 강해 49 성도의 책임과 의무 (2) 히 13:7-19 無益박병은목사 9396 2013.02.12 22:10
48 히브리서 강해 48 성도의 책임과 의무 (1) 히 13:1-6 無益박병은목사 8341 2013.02.12 22:09
47 히브리서 강해 47 흔들리지 않는 나라 백성 히 12:18-29 無益박병은목사 9478 2013.02.12 22:07
46 히브리서 강해 46 신앙 경주자에게 주는 권면(3) 히 12:14-17 無益박병은목사 9198 2013.02.12 22:04
>> 히브리서 강해 45 신앙 경주자에게 주는 권면(2) 히 12:4-13 無益박병은목사 7533 2013.02.12 22:01
44 히브리서 강해 44 신앙 경주자에게 주는 권면(1) 히 12:1-3 無益박병은목사 7884 2013.02.12 21:54
43 히브리서 강해 43 믿음(13): 세상이 감당 못할 신앙 히 11:32- 無益박병은목사 8465 2013.02.12 21:46
42 히브리서 강해 42 믿음(12): 믿음의 비밀과 능력 히 11:30-31 無益박병은목사 7008 2013.02.12 21:44
41 히브리서 강해 41 믿음(11) 모세 믿음의 정수(精髓) 2 히 11:2 無益박병은목사 7275 2013.02.11 15:59
40 히브리서 강해 40 믿음(10) 모세 믿음의 정수(精髓) 1 히 11:2 無益박병은목사 7865 2013.02.11 15:57
39 히브리서 강해 39 믿음(9): 신실한 성도의 가정 교육 히 11:23- 無益박병은목사 8048 2013.02.11 13:16
38 히브리서 강해 38 믿음(8): 죽음을 대면한 믿음 히 11:20-22 無益박병은목사 8367 2013.02.11 13:11
37 히브리서 강해 37 믿음(7): 아브라함 2 히 11:8-22 無益박병은목사 6914 2013.02.11 13:05
36 히브리서 강해 36 믿음(6): 아브라함 1 히 11:8-10 無益박병은목사 7285 2013.02.11 13:02
35 히브리서 강해 35 믿음(5): 노아 히 11:3-7 無益박병은목사 7973 2013.02.11 12:56
34 히브리서 강해 34 믿음(4): 참 믿음 2 히 11:3-7 無益박병은목사 6927 2013.02.11 12:54
33 히브리서 강해 33 믿음(3): 침 믿음1 히 11:1-4 無益박병은목사 6530 2013.02.11 12:51
32 히브리서 강해 32 믿음(2): 한 백성, 같은 믿음 히 11:1-3, 無益박병은목사 15053 2013.02.11 12:45
31 히브리서 강해 31 믿음(1): 믿음의 실체 히 11:1-3 無益박병은목사 6997 2013.02.11 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