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37 믿음(7): 아브라함 2 히 11:8-22

無益박병은목사 | 2013.02.11 13:05 | 조회 6913

* 제목/ 믿음(7):아브라함 2- 하나님이 자랑스러워하시는 믿음 * 본문/ 11:8-22

 

믿음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히브리서 기자가 영혼의 구원을 위한 믿음을 강조하며 예시하는 바 믿음의 위대한 조상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졌던 믿음의 대상으로써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본문 히 11:16에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이심을 자랑스러워하셨다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 믿음의 대상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고 하실 수 있는 정도의 믿음이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아브라함을 비롯한 사라,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등 믿음의 영웅적 조상들의 믿음의중심을 살피며 믿음의 모습과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1. 애착하는 것에 대한 믿음의 태도

사람이 살면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사람이 살면서 애써 모아 얻은 재산과 자신들이 낳아 얻게 된 자식들이 아닐까요?

 

1) 재산에 대한 태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살면서 나타냈던 재산에 대한 믿음은 어떠했을까요?

* 11:8-9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 말씀에서 믿음의 조상들이 살면서 그들의 재산에 대한 집착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약속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애굽으로도 내려갔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하심과 도우심으로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조카 롯과 헤어진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부르셔서 처음 하셨던 약속을 다시금 상기시키시며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거처해야할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숲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마므레 상수리 숲 근방의 지역에서 가나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지역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들이 태어나 자랐던 아브라함의 마을이었습니다.

* 13:14-18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은,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무슨 의미일까요? 아브라함은 당연히 그곳이 자신의 땅이고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성을 쌓고 영구히 살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그들은 언제나 이동 가능한 주거 형태인 장막(Tent)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땅을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땅에 대한 욕심이 강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한 욕심이 강합니다. 얼마나 땅 투기를 많이 합니까! 이곳의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민 오자마자 부동산을 무리하게 구입하고 그것을 유지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합니까? 그래서 요즘과 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는 그 애지중지 하던 집과 재산을 포기할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그 정도로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조상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부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막 생활을 하였고 성을 쌓고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그 어떤 수단도 강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든지 이동 가능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몸집을 가볍게 하여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 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들은 이 지상에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설계(planed)하시고 건축하실(will construct) 터가 있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세워질 한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아직 설계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터 위에 세워질 보이지 않는 그 성-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얻게 된 재산권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2) 자식에 대한 태도

그렇다면, 이들 믿음의 조상들이 가졌던 자식에 대한 애착은 어떠했을까요?

* 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은 얼마나 대단했기에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자랑스러워하셨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렇다면, 사라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어떤 면에서 이들 부부의 믿음이 우리의 귀감이 되는 것일까요? 어떤 원리로 그들을 믿음 생활을 하였던 것일까요? 자세한 것은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부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죽은 몸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사라 모두 이미 생산할 수없는 육체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할 때아브라함은, “이미 죽은 자와 방불한 때에 놀랍게도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들이 아들의 이름을 웃음, 희락(喜樂), 기쁨이라고 지은 것만 보아도 얼마나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행복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에게 잔인한 Test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행복 그 자체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당시의 아브라함의 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 역시 그 아들이 어떻게 해서 생긴 아들인데---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빼앗아 가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가 창세기 22장에 나타나는 바, 모리아 산에서 이 아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아들 이삭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75세에 약속하신 바 네 몸에서 날 자식으로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후손이 태어날 바로 그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번제, 죽여서 각을 떠서 불에 태워 죽여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요구에 어떤 반응했나요?

 

창세기 22장에 보면, 그는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습니다.

* 22:2-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여호와 이레).

 

이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것 아닐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Test를 통과하였을까를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이삭을 죽여 바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셔서(부활 신앙) 그 이삭을 통하여 후손을 많이 낳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계속하여 수행해 나아가실 것을 믿었기에 가능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까지도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 수준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기에 온전히 신뢰하는 이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께서 이러한 하나님을 삶속에서 확실하게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렇게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나라의 완성의 기초가 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터 위에 세월 질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적합니다.

* 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2. 믿음의 현실과 원칙들

그러면 과연 믿음의 조상들이 이러한 고차원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삶의 현실을 어떠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믿음에 대한 보상을 무엇이었을까요?

 

*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 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 믿음의 삶의 현실과 보상

이러한 놀라운 믿음 생활을 한 그들에게 결과로 나타난 바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으로 살아갔던 그들은 다 죽었습니다. 물론 에녹을 예외로 합니다만, 그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다 죽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에 대한 보상을 살아 생전에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가 쉬게 접하는 교훈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교훈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입니다. 소위 번영신학적인 교훈입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가졌던 믿음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속고 속이며 살았습니다. 배반과 위선과 온갖 죄가 횡행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 이리 저리 부딪히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삶이 그러한 삶의 양상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 믿음의 조상들의 마지막 인생은 어떻게 마감되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있습니까?

*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2) 믿음의 핵심 네 원칙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이 가졌던 믿음의 핵심 원칙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들은 그런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는 그런 믿음의 통제를 받으며 살다가 갔다(their lives were regulated by faith)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당장 효과도 얻지 못할 그런 믿음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을까요?

 

본문 13절은 사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한글을 비롯한 NIV와 같은 성경에서는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AV과 이를 따른 KJV에서는, “그들은 비록 약속의 성취는 받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멀리서 보고(having seen), 그것을 환영하고 품고(having welcomed), 또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고백하였다(having confessed)”라고 되어있습니다.

 

KJV에 의하여 보면, 이들의 믿음을 네 동사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동사란 1) having seeing(idontes, 보았다), 2) were persuaded(peisthentes, 설득당했다), 3) embraced(aspasamenos, 품었다, 환영하다), 4) confessed(humologesantes, 고백했다)입니다. 그리고 이 동사들은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즉 보는 것과 설득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서 그것을 보고, 설득당해 품고 그것을 환영하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어떤 성경학자(vincent)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어부들이 먼 바다에 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땅을 보고 아직 그 땅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땅에 도착한 것과 같이 기뻐하고 확신하고 환영하여 그 곳을 다가가는 선원과 같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험한 인생의 길을 가면서 온갖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겪으면서 그들은 잊지 않고 확신하며 증거하였던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멀리서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음 속 깊이 품었고 그것을 환영하며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하여 그들의 재산과 자식과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투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실로 아브라함은 정말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 믿음으로 기쁘게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한 자리, 한 밑천을 잡아 영원히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속에 심어주신 그 소망의 믿음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그 나라의 영원한 성을 바라보고 나그네로서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든지 자기가 자랐던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회를 만들고 자랑스럽게 귀향할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사병 400여명을 데리고 당당하게 보란 듯이 고향에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여 그 믿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절개를 지켜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믿음의 영웅들이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의 표상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분들이 영혼의 구원을 일으키는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입니다.

 

3.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조처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조처를 하였을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기록하였습니다.

*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고향을 마다하고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여 나그네와 여행자로 살은 이들을 행하여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하였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하여 한 성을 하늘에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1:1)으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이 하나님이 나라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말씀으로, 능력으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죄 많은 우리를 그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그 천국완성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위대한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까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믿음의 원칙과 규정대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우리의 온전한 영혼의 구원을 생각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스러운 영적 세계 가운데서 더욱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줄 압니다. 아멘(주일설교, 4-1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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