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6> 성도의 탄식과 소망 롬 8:23~25 4-18-2021

無益박병은목사 | 2021.04.18 21:29 | 조회 506

* 제목: 성도의 탄식과 소망 * 본문: 로마서 8:23~25 April 18, 2021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려면 절대적으로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일해야만 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바울은 피조물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는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과 고난이 숙명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은 그 전제된 고난 속에서 장차 주어질 영광된 구원을 바라보며 탄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탄식은 영원히 탄식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은 일시적입니다. 그에겐 장차 주어질 구원에 있어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피조물은 그 고난에서 벗어날 날을 사모하며 그 날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산모가 해산하기까지 산고로 신음하고 탄식하지만, 해산하면 그 모든 고통과 탄식은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이, 피조물의 탄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면 사라질 탄식입니다.

 

탄식하는 세 부류가 있는데, 첫째는 피조물(19~22)이요, 둘째는 성도(23~25), 셋째는 성령(26~27)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 시간에는 첫 부류인 피조물의 탄식과 기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창조주에게 저주를 받아 고통스러운 탄식을 하게 되고, 속히 그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대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저주가 아담에게서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1.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의 탄식

 

이 시간에는 두 번째 탄식하는 성도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23절 말씀을 읽습니다.

*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 구절에서도 피조물의 경우와 같이 탄식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즉 성도도 마음속으로 피조물과 같은 탄식을 하게 되고, 또한 구속에 대한 소망을 기대하는 데 그것은 양자 될 것 즉 몸의 속량 즉 구속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 John Calvin, "성도는 이 세상을 살면서 두 가지 마음의 태도를 나타낸다. 먼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불행(misery)에 대한 탄식(groaning)이며, 다음은 장차 완성될 구원을 기다림(waiting for deliverance)이다.“

 

1) 탄식하는 성도

물론, 이 서신을 받는 로마의 가정 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에 따른 고난을 사도가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인 핍박과 환란은 극히 참기 힘든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탄식은 누구이며 어떤 탄식일까요?

 

사도 바울은 농사 용어를 사용하여 이 진리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처음 익은 열매(ten aparchen, the firstfruit)”란 말입니다. 이 단어는 농사에서 첫 열매가 맺히면 얼마 지나지 않아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된 말입니다.

 

사도가 성도를 가리켜 성령의 첫 익은 열매를 받은 자라고 한 것은 그가 성령의 역사로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자란 의미를 담아 사용한 말입니다. 이미 사도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5~16)”라고 밝혔습니다.

 

첫째, 절반의 구원

이렇게 성도는 성령의 첫 열매입니다. 이는 마치 첫 수확이 최종 수확을 바라보게 하듯, 성령의 이 첫 구원 사역은 장차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는 것절반의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표현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음으로 과거에 지은 더러운 죄가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 이미(already) 구원받은 상태지만, 아직 구원이 완성된 상태가 아님(not yet)을 말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본다면, 현재의 성도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온 죄인의 신분에서 이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기로 결정된 것이지 아직 그가 하나님의 자녀란 입양이 완료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나 그의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상태이며 이는 아직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에 사면서 여전히 탄식하며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고백하며 주변에 난 예수 믿는 자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양자라고 선언된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양자 되었음이 선언되고 공인됩니까?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법정에 세워 우리가 예수를 믿어 그 안에서 의로워졌음을 변호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 됨을 선언하시며 공인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성령께서 완벽하게 수행하심을 보증하십니다.

 

그때까지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모두 죄의 영향 아래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신음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이는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성도는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탄식의 이유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성도의 탄식 요인을 두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도는 죄 때문에 탄식합니다.

비록 성령의 은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계속 유혹받으며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삽니다. 여전히 간교한 죄의 세력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와 결탁한 죄의 세력은 죽음이란 강력한 무기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고 위협합니다. 이런 죄의 요소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작용하고 이에 굴복하는 모습 속에서 가련한 자신의 죄 된 모습을 보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 7:17~20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 역시 이 강력한 죄의 세력을 실토하면서,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24)” 절규했습니다. 그는 이 죄의 영향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고백했습니다(7:25).

 

다음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탄식합니다.

누구나 인간은 살면서 약해져 고통을 겪게 마련입니다. 그런 인생을 누구나 살아갑니다. 그 삶의 과정에서 각종 사건과 사고를 당하고, 병들고, 늙어 결국 죽습니다. 참으로 연약한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이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결코 강할 수 없고 절대 강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약한 우리 몸은 짊어진 죄짐의 무게 때문에 항상 탄식하며 죄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며 결국 죄의 삯인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2) 구원을 소망하는 성도

그러나 성도에겐 이 탄식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죄의 세력 가운데 신음하고 탄식하며 사망 가운데 살아가지만, 성도들에겐 그것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물론 불신자는 항상 염려와 걱정으로 탄식하며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성도는 탄식 속에서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불신자는 슬픔과 탄식 속에서 살다가 마감하지만, 성도는 탄식 속에서 소망 속에 살아갑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자신이 약한 자임을 실토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고후 5:2~4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말합니다.

* 고후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앞의 고후 54절에서 말한바,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죄로 인하여 사망이 적용되는 인생이라서 탄식만 하고 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도는 오히려 육신의 장막이 허물어져 가는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신음하고 탄식하지만, 이러한 상황일수록 낙심하고 위축될 것이 아니라, 더욱 신앙으로 분발합니다. 참된 성도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로 승리하게 하시는 성령을 보내신 분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임을 확신하는 자입니다. 바른 성도는 이 점을 기억하고 탄식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습니다.

 

* John Calvin, "이 소망은 마치 산모가 해산함으로 산고의 탄식을 다 잊어버리고 자식의 출산을 기뻐하듯이 성도들의 신음과 탄식은 장차 완성될 그 나라에서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2.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의 소망

 

이렇게 탄식 중에 성도는 어떤 소망은 가집니까? 그것은 장차 미래에 주어질 영광입니다. 성도는 이 영광을 소망하며 갈망합니다. 이 영광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 영광의 몸으로 변하는 놀라운 구원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구속의 완성입니다.

 

이 점을 바울은 본문에서 밝히 말합니다.

*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육신이 탄식하며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지만, 장차 하나님 양자의 신분이 성취될 때, 즉 하나님의 법정에서 양자 됨이 공개적으로 선언되어 우리의 몸의 대속(redemption)이 완성되어 이미 구원받은 영혼이 그 순간에 연합되는 그 영광된 순간을 우리는 사모하며 소망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 몸의 부활을 확신하는 부활 신앙을 가질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 고전 15:50~52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확신을 가진 바울은 비록 자신의 몸은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도 예수의 부활을 성공적으로 이루신 성령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자신의 몸의 부활을 확신하라고 강력하게 권합니다.

*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는 이 부활의 진리를 믿는 성도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는 비록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염려하고 걱정하며 탄식하지만, 그저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믿고 소망하여 세속에 물들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권합니다.

* 요일 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이 소망을 갖고 장차 완성될 그 날의 소망을 바라보고 인내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근심하나 기다리는 삶(groaning and waiting life)”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진리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확신했습니다.

*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는 비록 고통스러운 길을 가지만, 묵묵히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결론

 

성도는 비관 속에 긍정의 삶을 살고, 절망 속에 소망으로 살아가는 낙천적 인생관을 가진 자입니다. 비관주의적 낙관론자(pessimistic optimist)입니다. 그는 장래 주어질 복된 그 날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비록 이 땅에서의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그날의 영광된 축복을 기대하며 구원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장차 주어질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고 힘차게 하루하루를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미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런 삶의 현장을 잘 아시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라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부르십니다.

 

성도는 이 초청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주를 따르기로 작정한 자로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첫 열매(primitis, first fruit)는 구원의 시작(primordia, beginnings)’입니다.

 

비록 그 소망은 현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주어지지 않지만, 성령께서 시작한 이 믿음으로 출발하는 신앙은 장차 완성될 영광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가야만 얻을 수 있는 보증입니다.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이와 같은 믿음의 길을 갔었습니다.

*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 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찬송가 5451절 가사를 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확인하지 못하는 장래의 영광 됨이지만 성도는 이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게 하는 바른 믿음입니다.

*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위로하시며 소망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 땅에서 힘든 고난의 삶을 살면서 신음하고 탄식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나지 않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장차 누릴 영광의 순간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믿음을 주시고 그 영광의 자리에 세우셔서 하나님의 양자 됨을 소망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피조물 전체가 탄식하며 우리 역시 이 죄로 인하여 함께 탄식하지만, 그 날의 영광됨을 소망하며 그 날을 바라보고 위로받으며 인내하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설령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내 귀에 ㄷㄹ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주하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영광된 구원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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