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5> 피조물의 탄식과 기대 롬 8:19~22 4-11-2021

無益박병은목사 | 2021.04.12 00:20 | 조회 945

* 제목: 피조물의 탄식과 기대 * 본문: 로마서 8:19~22 April 11, 2021

 

오늘날 환경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전 세계는 더 이상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과학계와 산업계가 엄청난 연구를 하며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도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추어 그 어떤 나라 보다도 더욱 발전적인 진보를 나타내 보이고 있음을 각종 매체를 통하여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모르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께서 어떤 은혜로운 사역을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성령께서는 성도가 육신의 생각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5~13).

둘째, 성령께서는 성도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양자 됨을 증언하십니다(14~17).

셋째,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양자에게 하나님의 유업을 받도록 보증하십니다(18~25).

넷째, 성령께서는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위하여 항상 기도하십니다(26~27).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성도 개개인에게 적용하여 그 진리를 믿게 하고, 고백하게 하며, 구원의 확신 가운데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안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구원 사역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 8:28~2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의 도리는 장차 누릴 영광을 보장하는 진리이기에 이 진리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살면서 겪는 고난을 능히 극복하게 될 것을 격려합니다. 이는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 가정교회 성도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온갖 비난과 따돌림 그리고 극심한 핍박을 견뎌야 하는 상황은 이미 그들의 믿음 가운데 장차 완성될 구원이 보장된 영광스러운 구원이기에 능히 감당할 것을 격려합니다. 장차 얻게 될 영광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부활시키셔서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굳게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질 영광입니다. 이러한 것을 따져 볼 때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라고 그 영광을 확신하고 고난을 극복할 것을 격려합니다.

 

1. 탄식하는 세 부류

 

19절은 장차 주어질 영광으로 인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되는 내용과 근거 그리고 이유를 한글판에는 없는 "왜냐하면(for)"으로 시작됩니다. 바르게 신앙을 갖고 살아갈 때 세상과의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그 갈등은 심하면, 환란과 핍박 그리고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혀 고통을 겪지 않고 모든 상황에 잘 적응한다면 문제가 있는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대로 올곧게 믿음을 유지한다면 비난과 핍박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은 당연히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바른 믿음의 성격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신실한 성도는 능히 현재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누릴 영광은 현재 겪는 고난을 상쇄할 만큼 영광스럽고 풍성한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산모가 해산의 고통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기를 얻은 후에 누리게 되는 기쁨이 해산하는 동안 겪었던 그 고통을 잊을 만큼 값진 고생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재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고난입니다.

 

바울은 장차 주어질 영광된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고난으로 인한 탄식을 하는 세 부류가 있고 말합니다. 첫째는 피조물(19~22)이요, 둘째는 성도(23~25), 셋째는 성령(26~27)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 첫 부류인 피조물의 탄식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2. 피조물의 탄식

 

본문을 다시 읽어 봅니다.

* 8:19~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4번씩이나 피조물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19, 20, 21, 22), 피조물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krisis, creation, creature)"은 무엇일까요? 보수적인 학자들은 이 피조물은 인간을 제외한 전 피조물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dominate interpretation). 그런데 22절에서 보듯이, “함께란 말이 두 번씩이나 사용되어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creatures)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inclusive interpretation). 그것은 바로 피조물이 탄식하고, 그 피조물의 고통을 함께 겪는 인간도 탄식하고, 이런 연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께서도 탄식하신다는 26~27절의 말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피조물의 탄식 내용

피조물이 고통을 겪게 된 이유와 그 고통이 탄식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20절이 밝힙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허무한 것(vanity)이란 죽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의 죽고 없어지는 비참한 상황은 피조물 저지른 것 때문에 발생한 결과가 아닙니다. 피조물의 잘못으로 발생한 상황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피할 수 없는 썩어짐에 굴복하는불행한 결과는 굴복하게 하시는 이께서 시행하신 결과입니다. 이 분이 누굽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시행하신 바에 피조물은 꼼짝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기에 피조물은 허무함에 굴복하게되었습니까? 다름 아닌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결과입니다. 즉 조상 아담이 저지른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저주하셨습니다.

*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만 저주하시지 않고 피조물인 땅에도 저주하셨을까요? 놀라운 일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땅에도 저주하신 것일까요? 아담의 근본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 즉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라고 지적하시고 즉각 먼저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받는다라고 선고하셨습니다.

 

땅이 먼저 저주받은 배경에는 아담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다! 그러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아담의 근본을 지적하시고, 그에게 저주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soil), 혹은 티끌(dust)"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다마(adama)‘에서 유래한 아담(Adam)‘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본질 즉 흙에로의 회귀를 명한 저주요 심판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저주는 아담은 물론 아담의 원천 재료인 땅에까지 내려졌고, 결국 피조물 전체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 피조물은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고통을 신음하고 탄식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피조물 즉 생태계에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조화와 갈등이 발생하여 피조물이 고통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고통과 탄식은 하나님의 구속 진리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피조물이 썩어짐에 종노릇한다는 것은 피조물이 사망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온 피조물이 다 사망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2) 피조물이 기대하고 바라는 것

바울은 피조물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 아들들의 출현이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 아들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출현은 무슨 뜻일까요? 피조물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과 탄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출현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저주과정을 되돌아볼 때, 그것은 아담이 받은 하나님의 저주 즉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는 것으로 사망의 반대인 부활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스러운 영생을 얻는 것을 피조물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에게 내렸던 저주에서 벗어나 부활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되어 창조 시 누렸던 영생을 피조물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복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바로 그것입니다.

* 11:6~9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

 

* 35:8~10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피조물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다시 복구되고 회복되어 구원이 완성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해산의 고통을 통한 소망

*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한편, 피조물의 고통과 탄식은 어느 정도이며 그로 인하여 주어질 기대는 무엇일까요? 이 구절에서 사용된 고통이란 말(groaning)은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sunodino, the pain of childbirth)를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산모가 해산의 고통은 심하게 겪지만, 그 고통은 자녀를 얻은 기쁨으로 다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피조물의 고통은 일시적이며 소망 적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온 피조계가 함께 탄식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사망으로 인하여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입니다. 흔히 임신을 안음 병이라 하지 않습니까? 아기를 낳으면 그 병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산모가 아기를 해산 전까지만 산고를 겪듯이 현재 피조물이 겪는, 또 인간이 겪는 고난과 고통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만 겪는 고통이고 고난입니다.

 

이는 성도들과 피조물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은 장차 주어질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게 합니다. 비록 현재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고통이요 고난이지만, 이 고난은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과 연결되는 고난이며 고통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역시 피조물의 회복을 위하여 힘써야 하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그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3. 생태 신학, 환경 신학의 대두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상황 신학의 일종인 생태 신학(econological theology), 환경 신학(environmental theology)‘이란 분야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피조물에 대한 회복 운동을 해야 한다는 자성에서 다루게 된 상황 신학의 일종입니다.

 

요즘 모두가 생활 속에서 듣고 보듯이,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과학의 발달로 삶이 편리함과 함께 자연의 파괴, 환경의 파괴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전 세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를 더는 쓰지 말자. 전기차, 수소차, 원자력, 생태계의 회복, 자연치유 등등 다양한 용어와 개념으로 사는 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와 신학계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성경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태 혹은 환경 신학이란 자연의 회복에 대한 성경적 해법을 찾아보자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생태학(ecology)이란 집(oikos)과 논리(logos)의 합성어입니다. 즉 사람이 사는 자연이 집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정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신학계에서는 지난 1975년 제5WCC 총회에서부터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생태학적인 위기의식을 가지고 신학과 교회가 성경적 창조신앙에 근거한 생태 신학적 해결책을 마련해 보자는 시도였습니다.

 

참고로 이와 관련한 유명한 저서가 있습니다. 신학자 J. Moltmann이 쓴 창조의 하나님(God in the creation)" 입니다. 이 저서에서 생태학적 입장에서 창조론을 다뤘습니다. 이 분야를 다룰 때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둘째 생태 중심주의(biocentrism), 셋째, 하나님 중심주의(theocentrism) 이론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중심주의란 생태계를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사람이 살기 위해서 자연을 파괴해도 무방하다는 견해입니다. 문제가 있는 주장이라 여겨집니다. 생태 중심주의란 자연을 중심으로 해서 생태계를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자연을 보고하고 사람이 불편하더라도 자연보전과 회복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좋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이 원시시대와 같이 될 여지가 있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란 하나님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며 만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가치를 갖게 된다고 믿고, 자연과 인간이 모두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며 모든 목표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Vincent Rocci, "성도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대비책으로 생태 중심주의를 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주의를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는 인간에게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믿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자연을 경작하고 다스리며 자연을 보전하는 피조물로서의 고유한 역할과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이 땅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말씀을 통하여 자연계의 회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는 오직 성도만이 진정한 자연계의 회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질서와 정책의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 변화 즉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회복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이 점에서 성도로서의 책임성 있는 윤리의식을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각자가 이 땅의 회복과 구원의 소망을 담아 삶의 현장에서 그 소망을 이루어 가는 진지한 노력이 책임성 있게 수행되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이 함께 고통당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의 신음과 탄식은 죽음으로 핍박하는 죄의 세력에 대한 저항이며 또한 그로부터의 구원을 향한 열망의 탄식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탄식과 신음은 마치 산모의 해산 과정에서 부르짖는 고통과 같은 고난이지만 이 역시 장차 완성될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신음으로 장차 완성될 그 날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구원은 바울이 현재의 고난을 해석하는 핵심 가치요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이런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인내와 수고는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고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같은 소망이 있음을 알고 고통스러운 탄식을 하면서도 끝까지 이 소망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온 인류가 겪고 있는 이 환란과 고통은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결과이며 이로 인하여 수고와 사망의 슬픔과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 진리를 믿게 하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해 주시어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 즉 영생을 바라보며 확신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죄로 인하여 탄식하는 피조계를 회복하는 소망하며 고통스러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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