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4> 칭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 로마서 3:25-26 Sept. 22,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9.22 23:46 | 조회 4988

* 제목: 칭의(稱義)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 * 본문: 로마서 3:25-26 Sept. 22, 2019

 

지난 세 시간에 걸쳐 하나님의 칭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칭의를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칭의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justify by faith)’는 말입니다. 대개 성도는 자기를 의롭게 하시는 분에 대해서 보다는 자기가 의롭게 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의로워져야 구원도 얻고 천국에도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나를 의롭다고 칭하시는 그분 즉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구원의 칼자루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을 변화 시키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칭의의 현장을 예수 십자가 사건 속에서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25~26절 말씀이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 3:3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특히 25절의 말씀은 기독교 역사상 숱한 성도들을 거듭나게 한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마틴 로이드 목사님의 강해 집을 보니까 다음과 같은 예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만한 역사적 실례 하나를 들겠습니다. 영국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인 윌리암 카우퍼(William Cowper)라는 분의 영적 체험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깊이 스며드는 공포스러운 죄책감에 빠져 영혼의 심각한 고통을 안고 자가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평강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라 심한 좌절감을 느끼며 절망감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자기 영혼의 황폐함을 목격하면서 자포자기하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창문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거기에는 마침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성경을 집어서 펼쳤습니다. 그때 그의 눈앞에 드러난 구절이 바로 로마서 325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눈과 마주친 구절은 로마서 335절이다. 이 말씀을 읽어 가면서 갑작스럽게 믿음의 능력을 받았다. 의의 태양 빛이 충만하게 내게 비쳤고 나는 그만 그 빛에 녹아 버렸다. 나는 그리스도가 나의 용서와 완전한 칭의를 위해서 하신 속죄가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순간 나는 믿었고 복음의 평안을 체험했다.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나를 붙들지 않았다면, 내가 믿기로는 감사와 기쁨에 겨워 틀림없이 기절했을 것이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다만 고요한 두려움 속에서 사랑과 경이로움에 넘쳐 하늘을 우러러보았을 뿐이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이 25절 말씀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회심과 회개 그리고 거듭남 즉 중생의 역사가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지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고민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좀더 솔찍하게 말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엄위로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25절의 말씀은 이어서 26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6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즉 이 두 구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24)가 성도이며 그에게 어떻게 이신칭의가 일어나게 되었는 지 설명합니다.

 

어떻게 죄를 지은 인간에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 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않되는 지, 그래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런 일을 하신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등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2. 공적 계시로서의 십자가

 

2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고 다른 하나는 화목제물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할 동사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25절의 세우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26a나타내셨다는 단어입니다.

 

1) 공개된 계시

먼저 명사를 살펴봅니다. “(blood)"란 생명을 뜻합니다. 그리고 화목제물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뜻합니다. 이 두 단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 즉 죄인이 치뤄야 할 죄의 값을 예수께서 대신 치뤄 구원을 이루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이 어디에서 발생했나요? 우리가 믿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예수 십자가(Jesus' Cross)"에섭니다.우리 모두는 이러한 믿음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이른다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수준과 내용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쉽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십자가를 그저 사랑의 십자가, 용서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만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가 전하려 했던 십자가는 그런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전하려 했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철저하게 시행된, 단호하고 엄중한 심판의 십자가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철저하게 밝히는 계시로서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시간에 이 십자가는 "공적 계시(Public Revelation)" 즉 어느 누구에게나 드러난 계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역사적으로 신자든 불신자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다 알도록 밝히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를 대신 하여 죄의 값을 물으신 십자가입니다.

 

2)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확증하는 현장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사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25절과 26절에서 사용된 두 동사입니다.

 

(1) 주목해야 할 첫째 동사 세우셨다(proetheto, set forth)”

이 단어의 뜻은 확증하다(manifest), 명백히 하다(make plain)’입니다. 이러한 표현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예수를 기필코 십자가에 처형하여 성공했다고 여겼던 다시 종교지도자들의 변명과 같이 어느 한 민중 선동가,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를 드디어 제거했다는 정도의 한 사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이러한 종교업자들이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권력을 탐하는 정치 권력에 취한 추한 인간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그 하나님께서 직접 실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에 연루된 인간들 모두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원된 죄인된 인간들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에서 놀라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주셨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하에 이루어진 십자가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누굽니까? 예수 님의 12 제자 중에 소위 수제자가 아닙니까! 그는 예수 님의 재판장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한 자입니다. 이 구절은 그 제자 베드로가 증언하는 말입니다. 그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즉 예지(豫知)한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라고 증언합니다. 한편 그 십자가의 현장에 없었던 사도 바울도 이렇게 설명하여 우리가 놀라게 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5~26a)"

 

이 말씀 역시 하나님께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므로 당신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집요하게 계획하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계획하시고 집요하게 집행하신 십자가 시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참는다(forbearance, hanoke) 간과한다(passing over, paresin)”는 단어입니다. 원문에서는 이 두 동사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간과하시며 오랫동안 참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하나님의 간과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은 십자가 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까지 참으셨다는 말입니까? 아들을 죽이시기 전까지 하나님은 인내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그 아들을 죽이실 때 바로 이때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피조물 인간을 사랑하셨다면 왜 아담이 죄를 짓자마자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구약 4~5천 년이 지난 연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시는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인내하셨을까요?

 

첫째, 인간이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인간에게 그리고 자연 세계 안에 내재해 있음을 알고도 죄로 인하여 그 하나님의 형상을 죄를 지어 상실한 인간이 하나님 대신으로 우상을 섬기는 전적 타락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음을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합니다. 즉 자신들의 지은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심을 발동하셔서 대응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아 때와 같이 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시범적으로 당신의 의를 보여주신 것이 노아 홍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이후에 다시는 인류를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9:11). 그 후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실 때까지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간과하신다는 말을 무슨 의미일까요?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 대하여 특히 유대인들에 대하여 내버려 두고 방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 점을 강조하며 설교했습니다.

*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놀랍지 않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기까지 인내하시고 죄를 간과하셨을까요? 그것은 어차피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작정된 뜻 가운데 때가 되어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처형될 때까지, 각 시대와 지역과 인종에 따라 그들이 짓는 죄가 어떠하든지 간과(passing over or by)" "눈감고 고려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셋째, 모든 죄의 형벌을 단번에(once for all) 해결하시기 위함입니다.

*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구약의 제도를 다 시행하시고 오랜 세월을 지난 후에 마침내 예수를 보내셔서 십자가 희생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인내하신 것은 그 십자가 희생제물 한 번으로 죄의 문제를 끝내시기 위함이셨던 것입니다.

결국 25절의 세우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하신 공적 행위로서의 십자가 사건임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말입니다.

 

(2) 주목해야 할 두 번째 동사 나타내사(declare, endeichin)"

이 말은 선언하다, 천명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보여주고, 확증하고, 증명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현장으로써 증명하고 선언하신 것이 바로 예수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오하신 뜻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왜 십자가라는 가장 처참한 형벌 방식으로 무죄한 예수를 죽이셨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신 성품을 지니셨습니다. 아무리 사랑과 긍휼함이 풍성한 하나님이셔도 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조금이라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한 예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때였습니다. 저희가 사 남매인데, 그중에 손버릇이 좋지 않은 자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님께서 우리 넷을 다 부르셨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상황을 다 설명하시고는 너희들을 벌해야 하는 데 이 모든 것이 나 내 탓이니 당신이 맞겠다고 하시며 종다리를 걷어 올리고는 준비한 회초리로 때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차마 회초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저 얼굴만 서로 멀뚝멀뚝 바라보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직접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종다리는 내리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도 자녀의 죄를 대신 지는 데 하나님은 오죽하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인간 예수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생명을 주시는 희생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치를 죄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의로우신 성품을 지닌 하나님이심을 십자가에서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26절은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 십자가! 바로 그때 그 현장은 하나님 자신 그리고 하나님 자신만의 의로운 성품,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의, 하나님 자신의 공평한 처리 방식 등을 공개적으로 밝히시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대로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이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심으로 이루신 를 보시고 그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우리 하나님은 죄를 도저히 용납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고귀하게 창조된 영광스러운 신분으로서의 인간의 죄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 십자가입니다. 이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하나님이신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시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가 복음임을 믿고 확신하여 전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도 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고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이 구원 도리를 힘차게 전파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진리의 핵심을 전했습니다.

*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도 빌립보 간수에게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두에서 인용한 William Cowper 시인처럼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처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를 깨달아 믿음으로 거듭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바라기는 모두가 먼저 나 자신, 가족, 그리고 죄를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숱한 영혼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리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극명하게 드러났음을 확인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두드리시고 예민하게 하셔서 이 극단적 형벌 사건인 예수 십자가를 깊이 살피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마음 깊이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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