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2> 하나님의 칭의 2 로마서 3:23-26 Sept. 8,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9.08 21:39 | 조회 5043

* 제목: 하나님의 칭의(稱義) II * 본문: 로마서 3:23-26 Sept. 08, 2019

 

지난 시간 칭의 교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칭의란 법정 용어로 무죄를 선언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 칭의 교리를 세 가지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첫째, 칭의 교리의 원천(source), 둘째, 칭의 교리의 토대(ground), 셋째, 칭의의 수용(acceptance-faith)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희생제물 되셔서 우리 구원의 근거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가 어떻게 믿는 자에게 적용되는지 즉 칭의 교리인 이신칭의의 근거와 내용 그리고 믿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시간 이 중에서 첫째와 둘째를 설명하고 다음 시간에 나머지를 다루도록 합니다.

 

1. 칭의의 원천 : 하나님의 은혜

 

먼저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이 칭의란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할 때 효력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2천 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실 때도 즉각 발효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선언하셨던 것에서 증명됩니다(23:32-43). 즉 칭의의 교리는 이미 완성된 진리요, 역사적으로 적용되고 입증된 교리라는 점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 봅니다.

* 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 귀한 말씀은 심오한 이신 칭의의 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하시며 경청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을 알려주는 복음의 원천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은 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시행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이 점이 강조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선언되지도 않을뿐더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18~3:20에서 논증했듯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도 없고 설령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 스스로가 죄를 지은 존재(sinful being)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추한 죄인이요, 정죄를 받아 마땅한 존재요, 전혀 스스로 살아갈 능력도 없고, 영원한 영생을 소망할 수도 없는 연약하고 비참한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조차도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왔고, 자신이 하는 말은 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만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 점을 확인하는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또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주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간곡하게 이 잔을 할 수만 있으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26:39; 14:36; 22:42)’고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도적으로 시행하시는 구속 사역에 전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본문 24b에서 우리의 칭의가 값없이(freely)" 주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값없이(dorean)"선물로서(as a gift)"란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호의(favor)이며, 사랑으로 하나님이신 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긍휼하심이요 사랑이요 무한한 자비입니다(2:6-8).

 

2. 칭의의 기초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칭한다고 할 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당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기로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불의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불의함과 타협이 있을 수 없고, 절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으신 공의로우신 분이 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때는 그 어떤 정당한 근거가 있기에 그런 칭의의 선언을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아직 살피지 않았으나 로마서4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4:5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까? 범죄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를 지은 자를 의롭다 할 수 있는 것일까요?

 

1) 범죄에 대한 처벌 원칙

성경은 정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악행을 저지른 자에 대하여 공평하게 정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정죄하는 것이 정의의 기본 원칙일 것입니다.

* 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 25: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17:15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이렇듯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절대로 악인을 의롭다고 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잘못 판단하시고 불공평하게 판결하실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 의로우신 하나님의 십자가 심판

지금 바울은 이렇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공정한 판단을 스스로 하실 수 있단 말인가! 라고 강변합니다. 스스로 결코 왜곡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인을 의롭다고 하실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그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모두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터무니없이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시행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칭의를 선언하심이 없다면 불의한 자, 부도덕한 자,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칭의 사역은 불가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3) 완벽한 예수의 속죄 사역

본문 25절에서는 그의 피로 인하여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실을 적시하므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칭하실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우리가 처형될 그 자리에 우리를 달지 않으시고 대신 아들 예수를 달아 죽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처리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속죄 사역을 세 가지 특이한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으심(25b), 둘째, 예수의 피로 대속의 희생자로 제시하심(25a). 셋째, 이 십자가를 믿는 자를 통하여 자신과 그들을 의롭다 선언하심(26). 여기서 특히 강조해야 할 점은 이러한 속죄 사역의 완전성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예수의 희생제물 사역은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으로 단번에(Once for all)“완성된 것입니다(7:27; 9:21).

3. 칭의 근거인 구속 사역의 세 가지 진리

 

본문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의 희생적 죽음으로 이루신 구속 사역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3가지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구속, 화해 그리고 예시입니다.

 

1) 구속(Redemption)

이 구속이란 말은 시장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칭의란 말은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노예를 사 올 때 구속이란 말이 쓰였습니다. 즉 레위기 25:47 이하에서 보듯이 가족 중에 경제가 어려워 종으로 팔려 가면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려면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때 그를 속량한다(redeemed)"라고 말합니다. 또 애굽에서 그리고 바빌론에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고토로 회복시키실 때도 사용되었습니다(15:13; 431). 즉 종의 신분을 벗겨주고 방면할 때 지급하는 것을 속량했다(redeemed)"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죄에 사로잡혀 죄의 종이 되었던 우리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심판받아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르시고 속량하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죄의 종으로 살아온 죄인들은 전혀 자신을 스스로 구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럴 능력이 죄인에겐 전혀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속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속량(ransom)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점을 잘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렇게 우리 주께서는 스스로 이 사역을 수행하실 것을 공생애 기간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진리를 믿는 성도는 예수께서는 당신의 피로써 사신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라 고백하며, 갈라디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고백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화해(propitiation)

이 화해(hilasterion)란 말은 이해하는 데 설명이 필요한 단어입니다. 쉽게 생각하는 경향으로 오해도 하고 가끔은 이 말로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화해란 말(propiliate)달래다, 누그러뜨리다, 화를 경감시키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화가 난 하나님을 화를 경감시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나 사건과 같습니다.

*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죄에 대하여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데, 이 하나님의 분노를 풀어주는 행위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 사역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시은소(mercy-seat)"

이 개념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둘 언약궤를 만들 것을 명하시고 이것을 지성소에 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서 일 년에 한 차례 지키는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집도하는 대속죄 제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셨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어린 소의 피를 지성소에 뿌리며 백성의 죄를 속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백성은 절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가 속죄 제사를 집도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루터와 칼빈 등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예수께서 완수하신 십자가의 대속사역을 의미한다고 받아드렸습니다. 히브리서 에서도 이 점을 동일하게 설명합니다.

*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둘째, 배상(expiation)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배상(hilaskomai)은 분노함에 대한 값을 대신 지불하여 그 분노를 누그러트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화가 잔뜩 난 상대에게 뭔가를 주어서 그 화를 경감시키는 것입니다. 마치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듯이 말입니다.

 

고대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변덕스러운 신이 화를 낼 때 이를 경감시켜 화를 누그러트릴 때 화해를 시도할 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화가 난 신의 노여움을 풀어주어서 변덕스럽게 행동하지 않도록 달래는 것입니다. 이때 그 신에게 드리는 것이 화해의 배상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십자가에도 적용이 될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화를 내시는 것이 변덕스러운 분노일까요? 또한, 하나님께서 죄를 주관하는 세력에 대하여 부채를 져서 그 빚을 갚기 위하여 아들이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 것일까요?

* John Stott,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시다. 십자가는 변덕스러운 신의 분을 삭이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이 의의 심판을 받으신 사건이다. 즉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주셔서 공의로신 자신으로부터 죄 된 우리를 직접 구원하신 것이다.”

 

이 대속의 십자가에 대하여 C. Cranfield 교수는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잘 설명했습니다.

* C. Cranfield, "하나님은 자신의 자비하심 안에서 죄인이 된 인간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 하나님은 진정으로 자비하신 분으로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을 정죄하는 그 어떤 방법도 동원하지 않으시고 직접 자기 스스로 당신의 아들이 죄인이 받게 되어 있는(deserved) 공의로운 진노의 모든 짐을 다 그 아들에게 지우셨다. 그러나 예수의 돌아가심과 부활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은 완성되었다.“

 

3) 예시(demonstration)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 3: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시간 관계상 다음 시간에 살피기로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신칭의의 교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치밀하게 의도된 하나님의 탁월하신 놀라운 능력과 지혜로 기획된 구속의 도리입니다. 그 속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치밀한 지혜와 논리 그리고 무한하신 긍휼하심과 사랑 그리고 집요하신 열심으로 이루신 구속의 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교리 속에 깊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도리를 살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집요하심과 사랑을 깨달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지적합니다.

*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깊이 사모하시며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알지 못할 때 이미 그 사랑을 확증 적으로 시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십자가의 배경과 이유와 목적을 살펴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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