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9>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2:1-5 6-2-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6.07 12:53 | 조회 5754

* 제목: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 본문: 로마서 2:1-5 June 2, 2019

 

요즈음 많이 듣는 말 가운데 내로남불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를 여러분들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Romance), 남이 하면 불륜(adult)’이란 말을 줄인 것입니다. 즉 자신의 행위는 정당화하며 남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비난하고 정죄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런 사람을 볼 때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역겹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즉 헬라인이나 유대인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존재 즉 죄인이라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이들 모두가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 모두에게 복음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1:16). 또 이 복음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3:22; 10:12).

 

이러한 차별 없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먼저 구원받아야 할 대상인 모든 인간의 죄성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적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3:23)”고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죄를 로마서 1:18-32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21가지의 죄를 나열하면서 이러한 죄를 짓고 그 죄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논술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피조물 인간이 알 수밖에 없는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피조물 속에서 창조주를 찾으려 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히려 보이는 피조물 가운데 온갖 형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1. 간교한 군상들의 삶의 모습

 

이렇게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참으로 간교해서 자기도 죄를 지을 뿐 아니라, 그러한 죄를 짓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당하다고 편을 들기도 하며 함께 죄 가운데서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즉 전혀 양심 속에서 지적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외면하고, 부인하고, 거부하면서 함께 죄를 짓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롬 1:32에서 말씀합니다.

*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들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들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 즉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양심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무화과나무 가지로 치마를 만들어 두르고 피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두려워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즉 금단명령( 2:16-17)이 그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어서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피하려는 심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저지른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것과 같은 심리라 하겠습니다.

* :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누가 아담에서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숨으라고 가르친 것일까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 행위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죄가 그런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영향력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를 지을 뿐 아니라, 타인의 죄에 대하여도 옳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의미는 타인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인정해 준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집단적인 의식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에 대적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단 속에 있을 때, 이러한 심리가 작동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집단적인 저항의식이 발동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통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이러한 집단적 죄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들이 구원받을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복음으로 그들 역시 구원받아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의 독특성 때문입니다.

 

2. 특권의식에 잡혀 사는 유대인

 

사실 바울도 유대인입니다. 그는 자신들의 세상의 신분에 대하여 자랑하는 교만한 이들을 향하여 자신의 출신 성분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상대적인 교만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유대인들에 대하여 로마서 3장과 9장에서 지적했습니다.

*  3: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의 잘남은 여러 가지가 있는 데 그중에 이방인들과 다른 대표적인 것은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한편, 유대인들의 장점은 여러 가지 많이 있는 데 그중에서 또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 그 말씀을 맡은 인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9장에 가서는 바울은 그 많은 특징을 나열했습니다.

*  9:4-5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즉 유대인들은 야곱의 자손들로 이스라엘 사람 즉 하나님과 싸워 이긴 민족이며( 32:28),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양자 된 자들( 4:22,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민족(삼상 4:21 이가봇), 언약들을 받은 자들( 3:25a,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무엇보다도 모세 율법을 받은 자들( 147: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 보이시는도다), 그들에게는 이방인들에겐 없는 예배( 9:1, 6)와 약속(언약,  2:39; 13:32)이 있으며, 위대한 민족의 조상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유대인으로 오셨다( 1:34-35; 3:23)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연 유대인들은 이러한 민족적인 차별성으로 인하여 타민족 즉 이방인들에 대하여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심으로 교만함과 거만함으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 유대인이 로마교회 내에 있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을 의식하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어떻게 이 유대인들에게도 전파되고 적용되는 복음 즉 하나님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지를 설명합니다.

 

3. 이방인과 같은 유대인의 죄성

 

*  2: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사도 바울은 앞에서 1:32에서 언급한 이방인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유대인 역시 다를 바 없이 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그 유대인 역시 이방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이 점을 핑계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아니라고 할 유대인이 있지 않다는 점을 같은 유대인인 바울이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분포는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믿지 않는 불신자의 비율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죄를 덜 지으며 사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이 지적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1:32에서 지적한 두 가지 특성이 유대인에게서도 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1절 하반 절과 2절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여기서 우리란 같은 유대인인 바울도 포함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4.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  2:3-4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사도 바울은 엄격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강조합니다. 즉 유대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대상에서 유예를 받거나, 제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법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는 그 누구도 예외로 적용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법도 백성이라면 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실 그렇습니까! 세상은 말할 것도 없이 내로남불입니다. 우리가 잘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차별과 우대와 특권을 주장하면서 죄를 짓고 있어서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옳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전혀 다름이 없기에 아니 오히려 더 타락하고 위선적이고 억지스럽기에 조롱거리와 멸시를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지적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고 그들과 꼭 같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족속들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더 간교한 유대인들임을 지적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나름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the riches of his kindness), 뭐든지 받아주심(the riches of tolerance), 끝까지 인내하심(the riches of patience)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납해 주심과 오래 참으심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하신 성품을 왜곡하고 도리어 간교함과 만용과 위선과 거짓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며 부인하는 것입니다.

 

옛적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유다 족속이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이런 예언을 하는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거짓 예언 즉 유다가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 28:15-17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가르칩니까!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잘된다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구복(求福) 신앙만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성공과 번영과 자랑만을 일삼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 수준은 양심적이고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전혀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평가에 반박하며 부인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께서는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유대인들 역시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간교하기까지 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사람들이 전혀 양심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왜곡된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멸시하기까지 합니다. “멸시하다(agnoeo)”란 말은 무시하다(to ignore)”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회개를 위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멸시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죄

 

*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하여 위선과 간교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기만 하니, 일반계시로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냥 내버려 두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하여 쌓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지속해서 보내셔서 말씀하시고 경고하시며 기다리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무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사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역사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주후 70년 예루살렘은 로마 TITUS에게 완전히 점령당했습니다.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해 줍니다. 이를 예수께서 예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죄를 지은 자이기에 하나님의 진노 대상입니다. 그 누구도 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자는 없습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도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모든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간에 그 누구에게든 복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복음의 내용 가운데는 하나님의 의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를 묵과하실 수 없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죄 가운데 살아가는 그 누구든지 차별 없이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무늬만 교인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없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 점을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변명과 핑계와 무시와 교만을 버리고 진실하고 신속한 회개로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여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죄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 어떤 누구도 이러한 지적 앞에서 부인할 수 없는 예리함에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 차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고의로 무시하고 살아가는 실존임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진리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살아날 가능성조차 없는 우리들 임을 고백하오며,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를 일깨워 주옵소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장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 51:10)”라고 간구했던 다윗과 같이 저희 가운데 깨끗한 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참된 회개로 예수를 믿고 또 복음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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