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8> 하나님의 진노 4 로마서 1:28-32 5-26-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5.26 23:38 | 조회 5860

* 제목 : 하나님의 진노 4 * 본문 : 로마서 1:28-32 5-26-2019

 

하나님께서 구원 진리를 담아 전달해 주신 계시는 두 가지의 형태 즉 자연 계시와 특별계시입니다. 자연 계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섭리를 신비스럽고 오묘하게 담아 나타내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우주와 자연 세상 가운데 살면서 그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단 명령(2:16-17)을 스스로 어기어 결국에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3:1-21). 그 결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상황 즉 사망의 지배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즉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6:23a)고 공식같이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로 인하여 죽음의 권세 하에 놓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된 인간을 불쌍히 여기어 죄 가운데 사는 이들을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 역사는 세속 역사(secular history)와 달리 구속 역사(redemptive history)라 부릅니다. 이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계시입니다. 이를 특별계시라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활동이 자연 속에 담겨 있어서 그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인간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고 또한 핑계할 수 없는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 1:19-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렇게 주어진 자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타락하여 믿지 못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사랑과 긍휼하심이 크신 창조주께서는 구원 진리를 복음에 담아 주셨습니다. 즉 특별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1. 특별계시인 복음의 양면성

 

이 복음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 면은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면이라면 다른 한 면은 구원의 내용 즉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면입니다. 이를 바울은 두 구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먼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부분을 설명합니다. 그는 로마서 1:18-3:20에서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규정하시고 다루시는 지를 설명합니다. 즉 죄의 근원적 원인과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주어신 사망이 지배하게 되는 배경과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죄로 인하여 정죄받아 사망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인간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구원의 부정적인 면이라 하겠습니다.

 

복음이란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규정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먼저 다양한 진단을 하듯이 성경은 구원의 문제를 다루면서 먼저 죄를 진단하는 작업부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합니다.

* 1:18-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바로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 즉 심판은 자연 계시를 통하여 분명하게 알려졌다는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핑계할 수 없는 이 복음은 하나님의 자연 계시 속에서도 분명하게 계시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지적은 이렇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타락하여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잘못 사용하여 스스로 지혜있는 자로 자만하여 그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인간의 타락한 모습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타락한 인간에 대하여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설명입니다.

 

2. 진노의 형식과 내용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놓이게 된 신세가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하여 다루시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즉 진노의 형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즉각 즉각 심판하실까요? 물론 성경에 보면 즉각 심판하시기도 하셨다는 기록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하나님 진노의 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 1:21-25a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하여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 설명합니다. 내버려 두다(paradidoumi)”는 말은 넘겨 주다(to deliver over, to handover)”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방치하다. 그냥 되는대로 놔두다정도 되겠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인간의 죄를 다루시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24, 26, 그리고 28절입니다.

 

첫째, 더러움에 내버려 두심(eis akathardian, into sinful desire)

24절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이 말은 "sinful desire" 즉 죄가 가득한 욕망에 빠진 상태로 살아가도록 방치한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방식입니다.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째, 욕심대로 내버려 두심(eis pathe atimias, into shameful lusts))

26절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이 말은 "shameful lusts" 즉 창피스러운 욕정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의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방종의 타락된 상태로 살아가도록 방치한 것을 뜻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심판방식입니다. 이는 성적인 타락의 상태로 방종하며 살아가는 죄의 현장성 즉 동성애와 같은 추잡한 성의 타락의 문화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될까요?

 

셋째, 상실한 마음대로(eis adokimon noun, into depraved mind)

지난 시간에 앞의 두 가지 내버려 두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 내버려 두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 원인

28절의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의 의미는 ”depraved mind" 부패하여 썩어 냄새나는 추악한 마음의 상태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러한 진노를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인간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원문에서는 한글 번역에 마음속이란 말을 지식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지식(epignousis)이란 시험을 통과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unfit mind)의 인지 능력(cognizance) 혹은 이해력(knowledge)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의 지혜와 지식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상태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백인들이 인디언들과 흑인 사회를 다루는 방식을 들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적당히 배려하고 공급하면서 그들의 수준에 맞게 대우하는 방식과 같다 하겠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자연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므로, 더는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을 살피고 싶지 않은 수준에 만족하며 살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에 합당치 못한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2) 드러나는 양상

바울은 21가지 종류로 나열합니다. 온갖 죄의 형태가 다 망라되어 있습니다.

* 1:29-31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John Stott은 이 죄들을 설명합니다. ’먼저, 나열된 네 가지(불의, 추악, 탐욕, 악의)는 모든 사람 속에 가득한 죄의 종합적인 것이며, 다음의 다섯 가지(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는 서로 간에 관계가 깨어짐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되는 원인으로서의 죄의 극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두 가지 즉 수군수군하는 자(whisperers-behind-doors), 비방하는 자(stabbers-in-the back), "는 중상모략과 살인과 같은 죄과 같은 것이며 이는 다음 네 가지 죄로 이어진다. 이 죄들은 인간의 극도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God-haters), 능욕(insolent), 교만(arrogant), 자랑(boastful)" 이어지는 죄들은 개인 간의 악에 동조하는 세력의 규합(악을 도모함),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죄(부모 거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가지 모자라는 성격의 모습들 즉 부정적인 죄들로 우매(senseless) 배약(faithless), 무정(heartless), 무자비(ruthless)이다.“

 

참고로, 예루살렘 성경(Jerusalem Bible)에서는 이 마지막 네 가지 죄를 머리, 존경심, 사랑 혹은 긍휼함이 없는(without brains, honour, love or pity)"이라고 번역했습니다.

 

3) 뻔뻔한 인간의 역겨운 행위

*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문제는 인간들이 이러한 숱한 죄들을 모르고 저지르고 있는가, 혹은 알면서 의도적으로 행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후자라고 바울은 지적합니다.

 

21가지 죄를 지은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다루실 것인지를 양심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의적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죄들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지적에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 놀라운 지적은 인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에 대하여 동조하고 그들 역시 옳다고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 개개인이 죄의 세력에 굴복하여 자기 속에서 밝히고 있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저버리는 비양심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죄 가운데 빠져 멸망하기를 원하는 죄의 그 어떤 세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복음이 전달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망의 권세에 눌려 영원히 죽을 무능력한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멸망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죄의 삯은 사망(6:23 a)이기에 그 죄의 삯을 치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사망에 이른 우리를 구원하시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설명합니다.

*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누리며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주신 자연 계시 속에 담긴 뜻을 그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을 잘 인식하고 창조 질서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죄 가운데 빠져 살아가는 우리로서 참으로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치르셔서 완벽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진노와 사랑하심이 복음의 양면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양면성을 잘 살피고 이해하고 수용하여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음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지이며 행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를 믿기 바랍니다. 그저 종교적인 형식과 예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예리한 지시와 경고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풍성한 구원 계시를 잘 살펴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그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죄의 세력에 눌려 죄와 더불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자부심과 교만으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며 나 자신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우리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긴 복음의 양면성을 깊이 인식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신분에 걸맞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을 의식하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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