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 하나님의 진노 2 로마서 1:18-23 5-5-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5.05 21:13 | 조회 6158

* 제목/ 하나님의 진노 2 로마서 1:18-23 May 5, 2019

 

최근 들어 자연재해가 처처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산불과 홍수 그리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엄청난 피해를 입힙니다. 여러분들은 그 참혹한 현장을 접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혹시 이러한 재해들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일어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해 보신 적인 있으십니까? 혹자는 그렇게 말했다가 많은 이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진노를 분출하실까요?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16절과 17절에서 자신이 복음을 자랑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고 둘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시간상으로 차례가 있어서 먼저는 유대인 그리고 헬라 인(이방인)에게 나타났다. 이들 모두가 차별 없이 구원받아 사는 방식은 오직 믿음뿐이다. 이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려는 복음을 설명하는 구원 논리에는 의와 심판과 믿음이란 일련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이는 신앙심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기반을 둔 확실한 사실에 기반을 둔 증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논리의 흐름은 공의로 심판하고 이를 믿음으로 그 복음을 온전히 신실하게 믿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현재진행형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리고 그는 17절에 이어 18절에 나타나서두 동사 모두가 현재진행형(apokaluptetai, is being revealed)으로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죄에 대하여 처벌하시는 방식으로 계속하여 나타나고, 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바 복음을 믿는 그 믿음에서 믿음으로계속 믿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대책이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바울은 이 점을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2:4)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이 놀라운 진술은 인간의 공적과 행위에 따른 구원방식이 아니라, 믿음이란 방식에 의하여 주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을 믿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신칭의의 교리이며 종교개혁의 핵심 개념입니다.

 

1. 인간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

 

최근에 사건 사고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하여 범인을 잡아 이유를 물어보면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듣게 됩니다. “화가 나서!” 무슨 말입니까? 화를 조절하지 못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노조절장애인들로 불안하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입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 생각에 사로잡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납니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불경건(asebeia, ungodly)이고, 다음은 불의함(adikia, unrighteousness)입니다. 불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의 파괴를 말하고, 불의함은 인간관계의 파괴를 말합니다. 이것이 작동하여 나타나는 것이 우상 숭배란 죄입니다.

 

바울은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 1:18~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성경 학자들은 이 19절의 말씀은 시편 19편의 말씀에서 인용된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시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 19:1-4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피조세계 안에 당신의 놀라운 신성과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일반계시(자연 계시)라 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시는 피조물인 인간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계시입니다.

 

* C. H. Dodd, “흔히 인간이 겪게 되는 무서운 자연재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데, 하나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심판의 성격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지속적인 재해는 결코 죄가 하나님과 같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한다. 이 점에서 모든 자연재해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예표 하는 징조이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스러운 인간과 함께할 수 없기에 하나님 스스로가 사랑하는 피조물인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어 그 피조물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고 그들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며 경배받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인간은 불경건하여 온갖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주장으로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한시도 한순간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그랬고, 가인이 그랬고, 노아 시대가 그랬고, 오늘날도 동일하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롬 1:29-31에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삶을 살고(3:23), 결국 모두 그 죄의 대가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6:23).

 

인간의 분노는 자기중심적인 분노라면, 하나님의 진노는 의로우심에 근거를 둔 사랑의 진노라 할 것입니다. 결국, 불행한 모든 피해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벌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이 점은 우리 인간이 도저히 핑계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18-19).

 

인간은 이기적인 입장에서 온갖 죄를 짓고 살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영광됨을 왜곡하고 무시하고 거역하며 저지르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심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왜 진노, 심판과 같은 것을 말하느냐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또한, 듣기 좋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싸구려 진리가 아닙니다. 복음에는 의가 있고 심판이 있고 구원이 있는 복합적인 구원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어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구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자연계 안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레온 모리스(L. Morris)라는 신약학자는 말합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In nature, we can see the nature of God)." word play를 하면서 함축적으로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2. 허망한 생각 미련한 마음

 

*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시편 19편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각종 현상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가지기에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대함과 신비함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고 적용되고 작동되는 자연법칙 속에 심어놓으신 계시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사랑과 공의로 다스려 가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원칙이 숨겨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자연 계시로는 구원의 진리를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문제는 이를 활용하는 인간의 간교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 속에 담아 놓으신 그 신비스럽고 놀라운 계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계시를 왜곡시키고 무시하고 반역적으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간교하고 사특한 인간은 자연 속에 담아 놓으신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형상과 능력과 신성을 각종 우상 숭배의 수단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이러한 생각과 능력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그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했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문화로 바꾸어 배교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금지한 것임을 십계명에서 금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앎니다.

* 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소위 문화 유적지를 돌아본다는 명분으로 여행을 많이 갑니다. 그런데 가서 보면 모두가 우상 숭배의 흔적들입니다. 그것은 문화 유적이라고 인간들을 보존하고 칭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유적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모두가 인간의 자율성(autonomy)의 흔적들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스스로 허망한 생각과 미련한 마음에 빠져 저지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무지하여 자연계 안에서의 각종 것들을 숭배했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의 우상은 무엇일까요?

 

이방 종교(paganism)의 타락된 문화를 숭배하는 현대의 문화는 더욱더 자극적이고, 더 노골적이고, 더 잔인하고 더욱더 퇴폐적입니다. 그러한 우상을 숭배하기 위하여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추구합니다. 결국, 자신이 즐길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를 저지르며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우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생각의 허망함(emataiothesan, worthlessness, foolish)이란 쓸데없는 데 마음이 쓰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허망한 생각들 한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저지르는 온갖 추악한 행위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미련합니까!

* 종교 개혁자 John Calvin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다.“

 

흔히 마음(kardia, heart)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생각하고, 감정을 나타내고, 판단하고 믿음을 갖는 중심이 바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맑고 정직할 때 양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 3:16 a).”라고 권면하고, 말씀을 통하여 선한 양심과 신실한 믿음을 가질 것을 교훈합니다.

* 딤전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세례를 베풀어 줍니다.

*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3. 하나님 심판의 정당성과 구원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세 가지를 나열했습니다.

첫째, 신적 지식이 계시가 되었기에(19, 20), 둘째, 그 계시를 자연 세계 속에서 알 수가 있기에, 셋째, 이를 인간이 알도록 지음을 받아 핑계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허망한 생각으로 어리석게 어두움에 빠져 하나님이 영광된 형상을 썩어질 우상들로 바꾸어 섬기고 광란의 무질서 속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간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처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자연재해를 봅니다. 이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증거라 할 것입니다. 자연계 속에 심어놓으신 하나님의 공의를 보고 최후의 심판이 예비 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할 때, 물론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 적도 있지만, 그것은 예표적인 심판의 사건일 뿐입니다. 역사상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퍼부으신 그러한 엄청난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그 심판은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신 사건입니다.

* 벧전 2:22-24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사망의 권세에 짓눌려 살아가는 불쌍한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 기록하시고 이 구원의 길을 지속적 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그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전 2:2)”고 했으며,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6:14)”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같습니다. 이 방식은 하나님의 계시 즉 복음 전파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곧 전도라는 미련한 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설명합니다.

* 10:10~13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하나님의 분노는 마지막 때에 퍼부으실 분노이며 종말론적 심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벧후 3:3-8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결론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화를 내고 계십니다. 피조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하며 반역하여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실추시키고 더럽히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 없고 개념 없는 타락된 마음(senseless corrupted heart)이 원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의 도리를 전파하셨기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깊이 인식해야 하고 계시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도리를 살피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멘

 

기도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담겨있는 이 자연 세계 속에서 살면서 저희는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그 신성과 능력을 제대로 살피고 느끼고 즐기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무지함과 간교함을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여 주옵소서. 계시의 말씀으로 당신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 그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온전히 살펴 믿게 하시고 확신 가운데 구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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