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8>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함 로마서 5:1~4 1-26-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1.27 00:15 | 조회 3746

* 제목: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함 * 본문: 로마서 5:1~4 Jan. 19, 2020

 

지난 시간에 이신칭의의 결과 세 가지 즉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peace), 둘째 은혜에 들어감을 얻음(acceptance),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함(Joy)”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세 번째 주제를 다룰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는 성도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16~18). 성도는 세상의 온갖 근심과 염려와 환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 ”기뻐함의 의미

 

사도 바울은 이 점을 2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라는 것이 이신칭의의 결과임을 밝힌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살피기 전에 먼저 강조하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역사는 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시며 예수께서는 자신이 완수하신 구속의 진리를 믿은 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소개하시며, 성령께서는 믿음의 확신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그 영광을 바라며 기뻐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구원을 시작하시며 진행하시며 완성하십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섭리를 끈질기게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이루어 가시는 구원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느니라라는 말(kauchomesa)기뻐하다(rejoice in), 자부심을 품다(take pride in), 자랑하다(boast, glory)"란 의미가 있는 데, 이 중에서 문맥상 바른 의미는 즐거워하다보다는 자랑스러워하다, 영광스럽게 생각하다'의 뜻이 더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즉 이신칭의로 주어진 복된 신분에 대한 긍지와 확신 그리고 그러한 신분을 획득한 자신에 대한 자축의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즉 삼위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사망의 지배를 받는 비참한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를 믿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영예로운 신분을 주셔서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뵙고 그 영광을 함께 누릴 확실한 자격이 주어졌음에 대한 감사, 감격, 그리고 긍지와 자부심을 스스로 자축하는 성도가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신분입니까!

 

사도 바울은 스스로가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파하는 자가 된 자신에 대하여 강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믿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그의 종이 되어 구속의 진리를 전파하는 사역자로서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고후 10:17).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선택한 이 사역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사역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짐했습니다.

*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이 이렇게 전 생애를 드려 주께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신칭의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함

 

바울이 이렇게까지 확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자랑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게 하기 위함

성도가 예상하는 것은 날씨와 건강과 같은 그저 바라는 것과 같은 소망이 아닙니다. 성도가 바라는 것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대한 확실성에 근거합니다. 그 사실에 대해 기쁨과 감사로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2절 하반 절의 하나님의 영광(doksa, glory)"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완전, 권위, 위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와 섭리의 역사 속에 잘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3b).

*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러나 이 2절의 말씀은 단지 피조물 계에 담긴 그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게 하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기다려서 마침내 그 언약의 영광을 누렸던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 점이 이신칭의의 핵심 진리임을 결론을 내리며 우리도 같은 믿음 가운데 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이신칭의의 진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4:19~24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둘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심

사도 바울이 2절 하반절의 말씀을 언급하는 이유는 실제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임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 받은 자가 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망한다는 것이 단지 그리워하고 바라기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자가 있기나 한가요?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방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살펴볼 이 중요한 주제는, 먼저 말씀드리면, “예수 안에서(in Jesus), 예수와 연합으로(union with Jesus)" 가능합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실제로 예수의 제자 중에 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 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사도 베드로는 이 당시의 놀라운 변화산 경험을 추억하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 벧후 1:17~18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 스데반도 순교를 당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 이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이렇듯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영광스러운 존엄을 경험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이사야와 에스겔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사한 것은 우리 역시 이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또한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살후 1: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렇게 성경은 장차 우리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바랄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날에 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3. 소망하며 기뻐함

 

이렇게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성도는 장차 예수 안에서 그 영광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변화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분명하게 예언합니다.

*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즉 성도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많은 성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살 후 1:10). 그 후엔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함께 그 영광으로 재창조되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상태(3:23)로부터 변화되어 다시 원래 창조되었던 신분의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공유하게 되는 놀라운 신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이 대목에서 깊이 생각하게 되는 역설적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누리게 되는 기쁨은 이생에서 전천후적인 기쁨의 삶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5:3a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3~4절의 말씀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지만, 성도가 바라고 소망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일은 장차 누릴 그 영광됨을 바라보고 현재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난의 삶 속에서도 똑같이 기뻐하는 여정입니다. 이 점에서 성화와 영화는 같은 차원에서 연결되는 구원의 여정입니다. 즉 장차 누릴 영화는 철저한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최종단계 즉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타락 전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 비참한 삶을 살고 죽었습니다. 비극적인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밝힙니다.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기에 성도들은 예수를 믿어 이신칭의의 신분을 획득한 자로서 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의 회복이 예수 안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성도 모두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 3:20~21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고통받으며 환란 가운데 살아가지만, 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온전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나간다면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민권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그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 주 예수께서 완성하실 그 날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기뻐하는 여정을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그 날의 영광스러움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은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그리고 족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습니다.

* 8:16~18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들은 모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성화의 과정에서는 어떤 수준과 능력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전적으로 그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여러분들은 두들겨 맞으며 이 길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순적하게 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제대로 믿고 바르게 믿으면서 장차 누릴 그 영화로운 최종적인 구원의 그 현장에서 다 함께 그 하나님의 영광에 모두 참여하시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이신칭의의 혜택으로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영광에 참여하는 확신과 기쁨으로 이 세상을 순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그 날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이 순례의 길을 갈 때 성령으로 다루어 가시는 성화의 길을 성공적으로 잘 가게 하셔서 그 영광스러운 영화에 온전히 이르게 될 그 날까지 확실히 거듭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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