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5>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2 Jan. 5, 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1.05 23:25 | 조회 3819

* 제목: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본문: 로마서 5:1~2 Jan. 5, 2019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되면 모두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소원을 품으셨으며 어떤 다짐을 하셨습니까? 그 모든 소원과 다짐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장래의 불확실성과 불안함 때문에 사주 관상을 보고, 점치을 치고, 그리고 굿을 하는가 봅니다. 이곳 미국은 그런 무당들이 흔하지 않아서 그런 일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가 바뀌면 신년축복 성회와 같은 특별 집회를 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한다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만, 새해가 되어 특별하게 복을 구하기 위해 기도라는 것을 취한다면 구복신앙적인 샤머니즘(shamanism)과 같은 일종의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읽은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39:6~7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이념 갈등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집권당은 전쟁보다 평화가 더 낫다는 논리로 국민에게 호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북한과의 화해가 중요하다고 하여 갖은 비난을 받아 가면서도 상대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참으로 별난 정책을 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와 나라가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과연 남북이 화해하고 참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요?

 

1. 새해의 목표

 

대부분 사람은 삶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준비합니다. 은행에 Saving Account도 개설하고 CD도 사고, 보험에도 가입합니다. 자동차 보험, 집 보험, 건강보험, 생명보험 등등 다양한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행위는 장차 있을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하시는 줄 압니다. 지혜로운 일이고 잘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러한 조처들이 우리에게 안심과 평안을 보장해 줄까요? 그렇게 각종 보험을 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생명의 종말 즉 죽음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완전히 안심하게 되어 불안함이 싹 가실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안심을 줄 줄지 모르지만, 영원한 안심과 평안을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새해를 맞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목표로 롬 5:1 말씀을 제시하려 합니다.

*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새해에 우선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도모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올해 소원이 이것이 되길 원합니다. 왜 이것을 소원해야 할까요?

 

2. “하나님과 화평의 의미와 중요성

 

그동안 로마서 1~4장까지 말씀을 강해 하면서 이신칭의가 구원 진리의 핵심적인 원리임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성도는 이신칭의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된 자들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성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모든 성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주체의 변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주체(주어)를 바꾸어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5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의 주어는 우리(복수 1인칭)”입니다(1).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장 전반부 주어는 (단수 1인칭) 입니다(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1장 후반부 주어는 그들(복수 3인칭,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2장 주어는 (복수 2인칭,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과 유대인)입니다.

3장 주어는 그들(복수 3인칭,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4장에서는 25절부터 우리(복수 1인칭)”로 변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믿음의 계열에 속한 모든 자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우리란 말을 사용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 모두를 가리킵니다.

 

이후 5장부터는 우리가 주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신분이 성도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즉 차별이 없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 요 그리고 헬라 인에게로다.

 

복음을 받아드리고 믿는 모든 자가 이신칭의의 결과로 얻게 되는 바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5:1의 말씀입니다. 즉 칭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술하면서 칭의의 필요성(1:18~3:20)’을 제기한 후에 그 칭의를 얻는 방식(3:21~4:25)’을 논한 후에 이제부터 칭의의 열매 혹은 복된 결과(5:1~8:39)”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칭의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신 자에게 베푸실 (blessed)"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축복들이 주어지는 것일까요?

 

2) 이신칭의로 주어질 복의 특징들

바울은 그 결과적으로 주어질 복들을 그러므로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연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특징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하나님과 화평한다(1). 2)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2a).

3)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한다(2b). 4) 고통 중에서도 즐거워한다(2b).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9~10). 6)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11).

 

이러한 설명은 영국 성공회 신부인 John Stott 목사님이 그의 주해서에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대하여 마틴 로이드 목사님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로이드 목사님은 5:1~8:39까지 구원받은 성도의 칭의와 영화를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칭의의 결과만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들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 점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3) “하나님과 화평의 의미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화평은 실제로는 허황된 망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사상과 제도,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세상을 극복하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화평, 근본적인 평화는 이 땅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그는 로마서 주석에서 설명합니다.

* John Calvin, "바울이 여기서 가르치는 바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신칭의를 얻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지고(quietened), 잔잔해져서(pacified)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믿음으로 의로워진 자에게 주어지는 의로움의 열매이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그 어떤 행위로도 "양심의 안전(security of consciousness)"을 확보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의 평화 욕망은 죄로 인하여 부패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을 무시하려 하거나(disregard) 잊으려고(forget) 애써서 죄의 심판에 대하여 잠을 자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인간은 지은 죄로 인하여 얻게 될 두려운 공포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양심의 고요(serenity of consciousness)"를 의미한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말한 바는 진리입니다.

* St. Augustine,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 전에는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였나이다.”

여러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이를 지적하시고 추궁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두려움에 빠져서 한 탄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4:13~14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 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미칠 혼란과 공포에 가득 차 있는 상황 속에서 이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언제나 두려움을 수반하고 있기에 이를 외면하고 도피하려고 하지만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과의 화해하고 그와 화평을 이루는 것은 절실한 문제입니다.

 

* Martin Luther,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근심과 고통을 가지지만, 그는 영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그러나 불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심과 고통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가 육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즉 이신칭의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어 화해하게 되고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신칭의의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이라고 규정합니다.

* 5:15~17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 화평을 이루는 중매자 예수

죄를 지은 인간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피하여 추구하는 평화를 스스로 창출할 수 없다면, 누가 진정한 평화를 인간에게 줄 수 있을까요? 과연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인이 된 인간 간의 불편하고 반목적인 관계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일까요?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본문 1절이 그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Jesus Christ)“입니다. 영어로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죄 문제로 고통 속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참된 안식은 어디서 얻고, 진정한 평화는 어떻게 얻게 될까요? 우리 주께서 여러분을 초대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하나님과 화해의 중요성

 

사도 바울은 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이 죄를 타협 없이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을 자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18부터 4:25까지 바로 이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 핵심 주제는 이신칭의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 가운데서 살면서 죄의 오염된 환경을 도저히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가운데서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행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 2: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인간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인간은 모두 죄를 심판하시기에 죽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분명하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3:23), 결과적으로 죄의 대가로 죽음(6:23 a)"을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신칭의의 진리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설명하며 분명한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 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밑에 여러분들께서 원하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올 한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명예입니까? 부귀와 영화입니까? 이 모든 것들은 세상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이요, 참된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스스로가 잘 아실 것입니다. 주어지면 약간의 즐거움과 감사가 있겠지만, 결코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신 칭의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그 마음에 놀라운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고 고백하는 성도는 감사와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바울은 설명합니다.

*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래서 의롭게 된 것을 확신하는 모든 성도는 다음과 같은 찬송을 감격하며 부릅니다.

 

찬송 410내 맘에 한 노래 있어입니다.

 

1.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나 즐겁게 늘 부르네. 이 노래를 부를 때에 큰 평화 임하도다.

2. 주 십자가 지심으로 날 구원해 주셨으며, 주 예수님 고난받아 나 평화 누리도다.

3. 나 주님께 영광 돌려 참 평화가 넘치도다. 주 하나님 은혜로써 이 평화 누리도다.

4.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 주시도다.

후렴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선물) 그 놀라운 주의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바라기는 올 한해 아니 한평생 동안 이 놀라운 이신칭의로 인하여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즉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화평을 누리며 평화를 얻어 항상 구속의 기쁨을 감격하며 찬송하는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 새해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참된 평안을 풍성히 누리게 하옵소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더욱 굳게 믿고 세상의 삶이 어떠하던 지,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며 의지하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감사와 찬송으로 기쁨 속에 행복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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