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송구영신 설교>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3~7 Dec. 31,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20.01.04 22:20 | 조회 3966

제목: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본문: 시편 39:3~7 Dec. 31. 2019

 

2019년이 흘러갔습니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입니다. 지난 365일은 되돌아보며 이제 생각 속에서만 존재할 2019년이 하염없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 순간 20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순간 사이에는 단절됨이 없고 구분됨이 없음에도 전혀 같지 않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다가오는 이 시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들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이 순간을 하나님 앞에서 맞고 보내기 시작한다는 것은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올 한해의 순간순간 나날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나날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1. 한 뼘 인생의 고백

 

본문 말씀을 읽어 봅니다.

* 39:3~7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 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그는 이 시를 쓰면서 속에서 열불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안타까운 상황을 만나 소리도 못 내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은 자기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자기 인생의 연약함 때문에 심한 좌절감과 낙심을 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의 인생의 길이와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언제 죽을지~~~

 

여러분, 사실 우리네 인생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알긴 아는 것 같은 데, 실상은 전혀 모르는 것 투성인 것이 나란 존재요, 내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간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아는 것 같은데 실상은 우리는 시간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놀랍게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천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나의 인생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 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 합니다.

1) 한 뼘 길이만 한 인생 -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2) 하나님 편에서 보면 셀 가치조차 없는 길이의 인생

3) 든든하다고 자부하는 인생이나 실상은 헛된 인생

4) 정처 없이 노력하여 부를 쌓으나 보장되지 못한 재물

 

그가 이런 평가를 하게 된 배경에는, 11절에,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 이다라고 하며 악화된 건강으로 심한 고통 속에서 죽을 지경에 놓여있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13절에 보면,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라고 해서 다윗은 죽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 상황은 도저히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임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 자신은 한 뼘에 불과한 목숨을 살고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있습니다.

 

2. 한 뼘 인생의 대책

 

과연 다윗이 어떻게 이 극한상황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폴레옹의 최후에 전달되는 한 가지 이야기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후 St, Helena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절친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친구에게서 체스판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체스판을 받아 본 나폴레옹은 화를 내며 나보고 체스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란 말이냐!“ 속이 상한 나머지 그는 절망 가운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 나폴레옹의 유물은 경매에 넘겨졌습니다. 그 체스판도 물론 넘겨졌지요. 체스판을 경매하여 구입한 사람이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한 모서리에 이상한 흠집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는 깨알같이 적은 탈출 계획도를 적은 작은 종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이미 탈출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친구를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나폴레옹은 말년에 St. Helena 섬에서 쓸쓸히 여생을 마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더 나사렛 예수는 사랑으로 온 세상은 정복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시간을 맞으며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한 뼘 인생이라고 자신을 묘사하며 고통스러워한 다윗의 대책을 무엇일까요?

1) 그는 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놓여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자학하고 원망한

고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2) 그는 알 수 없는 시간대를 겪으면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3)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자신의 신분과 한계 그리고 능력을 정확하게 인식하려 했습

니다. 그는 자신이 예측 불가한 존재요, 측정 불가한 존재임을 인식했습니다.

4) 이 절망스러운 자신이 어디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를 구했습니다. 어디에 확신을

두고, 신뢰하고, 소망을 두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5)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그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찾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7)”

 

우리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6:25~34).“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0년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과 상황을 만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인생, 헛된 일로 소란스러운 인생, 결국 허사뿐인 인생으로 이 미지의 시간을 살아갈 것입니다. 과연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살 것입니까?

 

이미 우리에게 알리시고 믿게 하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 하나님을 찾으시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은 이미 주어진 구원의 길을 못 찾아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주어져 있습니다.

 

항상!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7~8).“

 

2020년 앞으로의 미지의 시간 속에서 어디에 여러분의 인생과 삶의 소망을 두시겠습니까? 무엇을 바라고 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참된 위로와 치유 그리고 소망과 구원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주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말씀하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며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지 그분께만 소망을 두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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