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0> 이신칭의 예증 4 :행위보다 믿음 로마서 4:9-12 11-3-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11.03 23:08 | 조회 4288

* 제목: 이신 칭의 예증 4: 행위보다 믿음 * 본문: 로마서 4:9-12 Nov. 3, 2019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신칭의 구원 진리를 변호하며 변증하려는 의도로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대인으로 자랑할 것이 있는가?, 둘째,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인가?, 셋째, 믿음이 율법을 폐기하는가?

* 3:30~31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이 세 질문에 대하여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이신칭의의 구원 도리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에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이방 땅에서 불림받은 자로 이방인과 별반 다르지 않고 설령 그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칭의의 선언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발생했기에 첫 질문인 유대인의 잘남, 유대인으로서의 자랑할 것은 없다는 답을 했습니다. 바울은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3:30)“라고 선언합니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이방인과 차별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인의 할례를 예로 들어 행위와 믿음의 관계 속에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규명하는 것을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칭의와 할례의 순서의 중요성

 

바울이 제기한 질문은 아브라함의 칭의가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하는 것이었습니다(1~3). 이 질문의 핵심은 칭의의 복은 오직 할례받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주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이 구절은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이 칭의를 얻은 시점을 따지게 합니다. 즉 칭의와 할례가 발생한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때와 할례를 시행하라는 명령을 언제 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검을 지난 시간에 이미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받은 것이 할례받기 이전입니까? 이후입니까? 칭의의 선언이 할례 시행을 중심으로 그 이전인가 그 이후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논리가 의미있는 이유는 당시 유대인 랍비는 할례가 칭의의 선결 조건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칭의와 할례의 순서 즉 칭의가 할례 시행보다 먼저냐 혹은 나중이냐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할례라는 행위와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칭의의 전제 조건인 믿음과의 관계성을 따져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규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바울 스스로의 답변은 매우 간략하고 투명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간단하게 할례 즉 행위가 믿음보다 먼저가 아니라 나중이다라고 답합니다.

*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사실 따져보면, 이 두 사건이 발생한 시차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칭의는 창세기 15장에 있고, 할례 시행은 17장에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적어도 14, 랍비의 가르침에 따르면 29년까지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먼저이겠습니까? 칭의가 할례보다 먼저입니다.

 

2. 할례와 칭의와의 관계

 

그런데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행할 것을 명령받은 할례가 그의 칭의의 근거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행한 할례는 칭의의 표식(sign)“인증(seal)“이라 하겠습니다.

 

그 배경에는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식을 받기 이전에 그는 믿음으로서 의롭다는 선언을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 4:11a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즉 할례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이 칭의 사건은 이방인들 즉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구원의 진리 즉 이신칭의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11절 하반절에서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할례를 언약의 표식(the sign of the covenant)"으로 칭하시며 아브라함에게 강력하게 할례 시행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할례를 받지 않은 자에게는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할례가 언약 백성의 표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의로운 자로 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칭의 표식(as a sign of justification)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표식(as a sign)"으로서의 할례는 유대인이 그들의 몸에 새겨진 이 특이한 흔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표(mark)인 셈입니다. 이는 그들의 할례가 단지 그 민족의 정체성뿐 아니라,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나타내는 흔적(scar)이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의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하겠습니다. 먼저 받은 것은 칭의요 다음으로 받은 것이 할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순서입니다. 먼저 받은 이신칭의는 그가 아직 할례를 받기 이전이며, 다음으로 할례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그의 할례는 이미 자기 것이 된 칭의를 볼 수 있는 표식(sign)이며 도장(seal)이라 하겠습니다.

 

3. 할례와 세례

 

한편 할례와 세례 사이의 연관성 혹은 유비(analogy)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 시행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할례(circumcision)는 히브리어(berit mila)자르다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 peritome라 하고, 영어로는 circumcision이라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 circumcisio "주변을 자르다(cut around)"라는 뜻입니다. 즉 남자의 표피의 끝을 자르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난지 8일 만에 시행해야 합니다.

* 17:10~13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이 조건들 특히 난지8일 만에 할례를 시행하라는 명령은 남아가 태어나자마자 시행하여서 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됨을 확약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정신을 살리고 이를 고백하는 차원에서 유아세례(infant baptism)를 시행했습니다.

 

물론 이 난지8일 만에 시행하는 할례와 유아세례와의 선명한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논란의 배경에는 세례는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진리를 믿는다고 고백한 후에 시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6:1이하).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이들은 난 지8일이 된 영아가 어떻게 이 고백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며 배척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성도들은 구약의 이 할례의 정신을 받아드려 온 가족이 모든 성도 앞에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자신의 자녀가 이 언약 백성임을 고백하며 그 믿음 안에서 잘 자라도록 가르치겠다고 천명하며 이 거룩한 의식으로서의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적인 교훈은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74: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유아들도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유아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죄의 용서와 믿음을 주시는 성령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유아들은 언약의 증표인 세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게 되고 불신자들의 자녀들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이것이 할례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며, 신약에 와서 세례로 대치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보듯이 먼저 믿음으로 의롭게 된 후에 칭의의 표식과 인침으로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즉 순서상 절차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은 순서를 올바르게 취했다 하더라도 세례(표식)와 의미(칭의)의 구별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조직신학자 하지(C. Hodge)시행하는 "표식의미로 대체하는 것은 비극적인 행위라고 말했는데 이는 세례를 받는 것이 곧 칭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지적한 말입니다. 지적했듯이, 천주교도들은 영세 즉 세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의 의가 그에게 부어져 즉시 의로운 자가 된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이중의미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그 후에 할례를 시행한 것은 그 속에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이중의미가 내재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이방인 믿음의 조상도 된다

아브라함의 이신칭의는 할례를 시행하기 이전이기에(11b), 그가 유대인의 조상이기 이전에 이방인 성도의 조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이는 그가 시행한 할례는 그의 자손들에게 필수적으로 중요한 것일지는 몰라도 이방인 성도들이 칭의를 받는 데는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칭의와 할례의 믿음은 같다

칭의를 선언 받고 할례를 명령받아 시행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같은 것이기에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진 모든 이방 성도의 조상 또한 된다는 것입니다.

* 4:12 또한 할례 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 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할례받은 자이거나 받지 않은 자이거나 간에 상관없이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유대인에게 있어서 할례는 필연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필수조건이 결코 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할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과 일치성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방해 혹은 와해의 요소로 작용할 뿐입니다.

 

* John Stott, “유대인 아브라함을 논하자면, 그가 인류 역사상 위대한 분리점을 이룬 자라 하겠으나, 바울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자 즉 할례자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를 하나로 묶는 위대한 집결지점(rallying point)"에 위치한 사람입니다. 이유는 할례가 분리(division)라면 믿음은 일치(unity)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할례와 믿음과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분리가 아니라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에서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보시지요.

* 3:26~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기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도리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논증에서 보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은 행위가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시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그에 따른 순종 즉 행위가 수반되는 것이 옳은 구원의 과정입니다. 먼저 행위로 자신의 믿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교훈의 극단의 경우를 산상보훈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긍휼함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믿음과 행위, 행위와 믿음의 관련을 통하여 구원의 원리 즉 이신칭의의 원리와 의미를 살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바 이신칭의의 뜻을 잘 파악하여 온전한 믿음의 도리를 습득하고 일생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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