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8> 이신칭의 예증 2 로마서 4:1-3 Oct. 20, 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10.21 00:48 | 조회 4669

* 제목: 이신 칭의 예증 2 * 본문: 로마서 4:1-3 Oct. 20, 2019

 

여러분,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 오릅니까? , 그가 100세에 낳은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실제로 아들을 나무장작 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여 죽여 드리려 한 사건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이 기록된 창세기 22장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순종할 수 있을까? 난 도저히 할 수 없어! 아들이 귀하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귀한가? 대부분은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1. 아브라함을 이신칭의의 예로 제시한 이유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 예증으로 아브라함을 들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언약을 맺으신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일생 속에서 이신칭의가 증명되기 때문이고 다음은 그 일생을 점검하다 보면 지난 시간에 제기된 세 질문의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일생 속에서 이신칭의가 증명되기 때문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5단계(stage)를 생각해 봅니다.

 

1 단계 아브라함의 부르심(12)

* 12:1~4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2 단계 칭의 선언과 언약 체결식(15)

* 15:1~6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렇게 믿음이 생긴 아브람은 처음으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 15:7~8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 질문을 받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확실한 약속을 하십니다.

* 15:9~18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 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은 무엇입니까? 6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언약 체결을 위한 제물 준비, 2)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400여 년의 노예 생활,

3) 출애굽 예언 4) 장수 보장, 5) 언약식, 6) 언약에 따른 광대한 영토보장.

 

즉 아브라함은 이렇게까지 언약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삭을 바친 행위로 칭의를 받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3 단계 할례를 명하심(17)

* 17:1~4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아브람이 99세가 되는 때,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El Shadai-Almighty God)라고 특별하게 하나님 자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12장에서 부르실 때 하시던 말씀과 꼭 같은 언약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그리고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할례를 시행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 17:10~11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시며 표징을 언약 백성의 몸에 새기에 하시고, 그의 후손이 나와 그들이 살 영토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주권, 영토, 백성으로 형성되는 나라를 보장하신 아브라함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 11:15~16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4 단계 하나님의 언약 이행(18, 21)

 

a. 수태고지(18)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계시하신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소돔 성의 멸망을 예언하러 세 천사가 상수리나무 밑에서 사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납니다. 이 세 천사는 누굴까요? 어거스틴은 삼위 하나님일 거라고 주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즉각 이들을 자기 처소로 인도하였고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때 천사들은 사라에게 수태가 있을 것을 알립니다. 그 말을 텐트 밖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웃습니다. 그 웃음은 어떤 웃음이었을까요? 기쁨과 환호의 감격스러운 웃음이었을까요?

* 18:13~15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에게 이름까지 바꿔주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확실한 믿음을 촉구하시며 웃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나 사라에게 같은 믿음 즉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부부가 한 믿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충분히 받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b. 언약 성취

여러분, 10개월 후에 나은 이삭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웃음이었던 것입니다.

* 21:6~7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5 단계 아브라함의 믿음 테스트(22)

* 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집요하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내용과 수준과 능력을 측정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100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삭 번제 사건을 통하여 구원의 도리의 핵심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확실하게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서 아브라함의 의를 선언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이 이삭 번제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 즉 순종의 여부와 수준을 측정하는 차원에서 명하신 것이지 그의 칭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이 점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이삭을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선언하시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믿음이 순결하고 철저하고 완전한가에 대하여 측정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고 목적이었습니다.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3-4).”

 

그가 모리아 산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종들에게 남아 있으라 돌아오겠다라고 명하고 아들 이삭과 함께 그 모리아 산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그때 함께 가던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7-8).”

 

이 질문을 들은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여러분, 아브라함은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하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그 믿음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 실제로 아들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시도했습니다.

* 22:9~12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런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설명합니다.

*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이 놀라운 순종은 첫째, ‘이미 받은 믿음에 따른 순종이었습니다. 그가 믿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바 즉 언약하신 바에 대한 확실한 신뢰와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18)”라는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 약속의 유효성을 믿었고 그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게 되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브라함은 설령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부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 다시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 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 여정 속에서 그동안 함께 하셨던 바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그러한 놀라운 믿음의 순종의 차원으로 승화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실 때와 똑같은 내용으로 이삭 번제의 시험을 통과한 그에게 다시금 언약을 확인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바를 영원히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고비고비를 통하여 확인되는 바입니다.

 

즉 일련의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그가 하나님의 약속하심 즉 언약을 믿어 의롭게 되었고 계속된 실수-예를 들면 이스마엘을 낳은 것-와 이기적인 행위-애굽애서 살기 위하여 아내를 동생이라고 한 것-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을 보호하시고 아브라함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네 몸에서 나올 친아들을 통한 자손의 증가와 온 족속과 민족이 가질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우선이라는 지적입니다.

* 4: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see NIV)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둘째, 제기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 아브라함의 사건들 속에서 해결되기 때문.

 

바울이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이신칭의를 증명한 것은 3장 마지막에서 제기한 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아브라함이 살아온 여정 속에서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 질문은 (1) 유대인으로 자랑할 것이 있는가?, (2)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인가?, (3) 믿음이 율법을 폐기하는가?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다 아니라(No!) 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이방 땅 갈대아 우르 주민이라서 이방인과 다르지 않고,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온 민족과 족속이 가질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아브라함이 믿음을 갖고 의롭게 된 사건은 할례를 받기 이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믿을 때 이미 칭의가 선언되었던 것입니다.

 

4:1NIV 번역을 보면,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발견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해야만 하는가(What then shall we say that Abraham our forefather, discovered in this matter)?"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에서는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육체으로(kata sarka)"의 의미는 육체에 따라서(according to the flesh)”입니다. 아브라함이 얻는 것이 그의 육적 조건에 따라 된 것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각과 능력에 의하여 그 어떤 것을 얻은 것이 있었다면 당연히 스스로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되어졌다는 것이 증명되기에 그에게 있어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증명한 것입니다.

 

2. 믿음과 행위

 

흔히 아브라함! 하면 이삭을 받친 위대한 신앙인으로 추앙합니다. 야고보서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2). 그런데 본문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여기서 잠깐 본문을 떠나 살펴볼 주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구원에 있어서 행위냐 믿음이냐는 논란입니다.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말씀한 바에 대한 해석에 따른 논란입니다.

* 2:21~26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여기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이삭을 바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야고보의 행위 강조는 말만 믿는다고 하면서 그 믿음이 증명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지 행위가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핵심은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 혹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은 행위로 구현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데 그 믿음이 행위로 이어져 나타나고 있지 못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말씀이 나오는 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1장에서 진술했습니다.

* 1:17a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여기서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말의 의미는 믿음으로부터 믿음에로(from faith to faith)"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으면, 그 복음은 순종하는 행위로 발전하게 되게 마련입니다. 이유는 그 믿음의 대상과 그간 함께 하신 내용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살펴볼 때 확실하게 증명되는 바입니다.

 

여러분, 이는 믿음(pistis)과 순종(pistuew)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에서 증명됩니다. 즉 참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하여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씀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 결코 취소되거나 후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수행하시며 따라 오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받아드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께서 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1:1) 이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의가 선언되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도리는 바로 하나님 계시의 믿음과 철저하고 신실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신칭의는 구원의 시작점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친히 찾아 오셔서 말씀하시고 부르셔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믿고 확신 가운데 소망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순전한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기시는 그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살피고 감격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항상 순종하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주어지는 놀라운 구원의 복을 받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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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로마서 41> 이신칭의 예증 5 :율법보다 믿음 로마서 4: 無益박병은목사 4405 2019.11.10 23:11
399 <로마서 40> 이신칭의 예증 4 :행위보다 믿음 로마서 4 無益박병은목사 4289 2019.11.03 23:08
398 <로마서 39> 이신칭의 예증 3 : 전가교리 로마서 4: 無益박병은목사 4595 2019.10.27 21:57
>> <로마서 38> 이신칭의 예증 2 로마서 4:1-3 Oct 無益박병은목사 4670 2019.10.21 00:48
396 <로마서 37> 이신칭의 예증 1 로마서 4:1-3 Oct 無益박병은목사 4789 2019.10.13 23:46
395 <로마서 36> 율법을 세우는 믿음 로마서 3:27-31 Oc 無益박병은목사 4799 2019.10.06 23:01
394 <로마서 35> 세 가지 질문 로마서 3:27-31 Sep 無益박병은목사 4839 2019.09.29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