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4> 은혜의 통치력 2: 왕노릇하는 은혜 롬 5:20~21 6-7-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6.07 23:14 | 조회 2312

* 제목: 은혜의 통치력 2: 왕 노릇하는 은혜 * 본문 로마서 5:20~21 June 7, 2020

 

지난 시간에 은혜의 통치력이란 주제로 첫 주제인 풍성한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모든 죄라 하더라도 다 덮고 남을 만큼 풍성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두 번째 주제인 은혜의 통치(21a)’ 왕 노릇하는 은혜’, 혹은 지배하는 은혜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라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국민, 영토, 주권 즉 통치권을 말합니다. 한때, 우리 대한민국은 주권을 잃었습니다. 국민도 있고, 영토도 있는 데 주권을 빼앗기니까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주권은 나라 형성에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5:20~21은 로마서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구절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두 구절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절과 21절과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21절은 20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율법과 죄 그리고 사망으로 이어지는 이 저주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은혜입니다. 죄와 은혜! 사도의 관심사는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풀어 구원의 진리를 이해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전하려는 구원 도리 즉 바울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볼 때, 21절은 바울이 1장부터 5장까지의 요약이며 결론이라 하겠습니다.

 

1. 구원 확신의 기초적 이해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구원을 확신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주변에는 구원을 확신하지 못한 채 한평생 교회를 들락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구원의 확신은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임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유는 구원의 도리를 주신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구원의 확신하기 위해서는 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여 복음을 깨우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만 하면 될 수 없고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갖추어야만 하듯이, 구원도 이미 주신 성경을 세밀하게 공부하여 그 속에 있는 구원의 도리를 확실하게 이해할 때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한다(21)“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선,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같이의 의미입니다. 다음은 바울 사도가 의인화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죄와 은혜 간의 평행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그 죄와 은혜가 각각 어떤 세력을 발휘하여 왕노릇하는 지를 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논점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사망의 세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이루어진 의로 영생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러한 원리가 작동하게 된 것이 다름 아닌 은혜라는 것입니다. 즉 사망의 영역이나 생명의 영역 모두에서 왕노릇의 원리가 적용되어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 성경의 논리를 잘 이해해야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모두 예외없이 죽는 그 배경에는 죄가 지배하고 있고, 믿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은 은혜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의 지배력을 비교해 보면 은혜의 지배력이 죄의 지배력보다 훨씬 더 강력하여 그 어떤 죄 아래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속의 도리를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한 인격체와 같이 왕노릇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의 지배력과 은혜의 지배력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이해할 때 온전한 구원의 도리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이신칭의로 구원에 이르는 도리를 세밀하게 전했습니다. 문제는 이 이신칭의의 도리가 어떻게 작용하여 구원의 확신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또 이를 믿지도 않아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에 바울은 20절과 21절을 결론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점에서 사도 바울 목사의 신실하고 절실한 문제 즉 영혼 구원을 위한 신실한 목회적 자세를 엿보게 합니다.

 

모두 우리는 죄 아래서 지배받고 사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죄인입니다. 아무리 착하고, 학식이 많고, 인격적으로 고매한 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선을 행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의롭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렇게 연약한 죄인은 누구나 죽고 맙니다. 누구나 사망하고 맙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하여죽게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이점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전제입니다.

 

그런데, 죄가 지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은혜가 지배하여 영생이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원리입니다. 이점을 반드시 이해하고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이런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성경은 제시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어느 한순간에 강력한 역사를 겪고, 순간적으로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 역시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사건입니다. 특별한 경우이니까 예외로 하고, 성경이 제시하시고 설득하시고 이해시키시는 방식 즉 복음의 논리성을 잘 따르는 것이 기본적인 구원을 확신하는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로마서를 통하여 그 원리를 아주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제까지 칭의 교리는 세밀하고 집요하게 설명해왔습니다. 그는 이 칭의 교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에 이르는 안전하고 확실한 교리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시행하신 가장 완벽한 구원의 도리가 바로 이 칭의 교리임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이 원리를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하게 주어진 구원의 도리입니까! 정말로 이신칭의의 도리는 하나님 은혜의 극치요 영광이요 죄에 대한 완벽한 승리의 원칙입니다.

 

2) "은혜"를 잘 이해해야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라는 말씀은 죄를 덮고도 남아 넘치는 풍성한 은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미 더욱이란 말을 앞에서 여러 차례 사용했습니다(9, 10, 15, 17). 이 모두 아담의 죄에 참여한 우리에게 선언된 사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주어진 생명과 영생과 비교하는 말입니다. 즉 영생이 죄와 사망을 덮고도 넘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여기서 은혜란 말을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Charis, Grace)"가 무엇입니까? 어떤 뜻입니까? 은혜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호의입니다.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받을 그 어떤 조건과 자격과 능력과 지위를 갖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인하여 이를 믿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

 

결국, 죄의 세력을 대항하여 승리하는 것은 그 어떤 인간의 노력과 학설과 주장이 아니라, 오직 은혜뿐입니다. 당연히 율법도 아니고 그 어떤 개인의 지혜와 수행도 그리고 집단적인 수행도 아닙니다. 오직 은혜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호의적인 선물 은혜뿐입니다.

 

구약에 야곱이라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입니다(32:24~32). 그가 외삼촌 라합을 피해 도망하던 중 형 에서가 마중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식구들을 다 압복강 건너편으로 보낸 후에 자기는 강 건너편에서 고민하던 중 한 사람과 얍복강 가에서 씨름하다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그 씨름에서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시긴 싸움입니다. 항복할 때까지 싸우는 씨름(sudden death wrestling)에서 실상은 야곱이 천사로부터 환도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패배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반칙하면서 천사를 놓지 않고 간청합니다.

* 32:26~28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 사건에서 보듯이 야곱에게 천사 즉 하나님께서 져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져주시고 오히려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아예 자신이 야곱에게 지셨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져주시고 축복까지 해 주신 것이 이스라엘이고, 이것이 야곱에게 베푸신 진정한 은혜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성경 전 기록은 바로 은혜의 역사 즉 죄와 악의 세력과 은혜의 세력 사이의 영적 전투라 하겠습니다. 타락부터 전개되는 구속 역사는 죄를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또 심판 중에서도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이끄셔서 구원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구원 역사, 구속사(救贖史, the redemptive history)입니다.

 

이렇게 죄와 은혜의 투쟁 역사는 성경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개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두를 한 개념 즉 죄의 세력과 은혜의 세력 간의 투쟁 역사로 해석합니다. 그는 은혜의 세력이 더 강하고 완벽하여 죄의 영역을 침공하여 박멸시키고 죄의 핵심 진지인 사망의 세력을 파괴하여 넉넉하게 승리로 끝이 난다고 선언합니다.

* 고전 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성도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승리요 하나님 은혜의 승리이며 그 은혜의 영광됨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믿을 때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왕 노릇

 

어떻게 은혜가 왕 노릇 즉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일까요? 죄인이 예수를 믿어 거듭난 성도가 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로 역사하십니다. 그다음부터 죄인 속에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주장하고 지배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은혜의 왕 노릇입니다.

 

1) 지배하는 은혜의 특징

마치 죄가 죄인을 지배하여 계속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과 같이, 은혜도 믿음을 갖게 한 그 심령을 지배하여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게 합니다.

 

여기서 죄 아래에 있다는 말은 죄를 짓는 단순한 범죄 행위 즉 거짓말, 사기, 싸움, 음주, 도박, 등등의 온갖 범죄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반복적으로 죄의 충동을 느끼고 그 지배 속에서 비극적 결과를 얻기까지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가련한 처지를 말합니다. 한때 바울도 자신의 이런 처지를 확인하고 몹시 절망하며 절규했습니다.

* 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놀랍게도 이런 상태에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은혜란 전적으로 주려는 분의 호의에 따라 주어집니다. 그 어떤 자격과 공력과 수준에 따라 주는 보상과 상급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 2:1~5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구원받기 전에는 죽어서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 따라 살았었고, 마음의 원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진노 대상이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2) ’은혜의 지배를 잘못 이해하는 생각들

은혜를 잘못 이해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혜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오해합니다. 그들은 은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a. 은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당연히 주셔야 하는 것이다.

b. 은혜는 나를 배려하셔서 제공하시는 자비로우심 일뿐이다.

c. 은혜는 나의 시도를 보조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다.

d. 은혜는 내가 도움을 구할 때 즉각적으로 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이런 식으로 은혜를 이해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 생각과 노력에 부차적으로 운 좋게 주어지는 그 어떤 것이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은혜가 결코 아닙니다. 그 어떤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달라는 것이 은혜가 아닙니다.

 

강조하였듯이 은혜란 무자격자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은혜는 결코 그런 조건적이고 부차적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은혜라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이런 이해로는 결코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은혜의 지배에 대한 바른 이해

그러면 은혜의 왕 노릇을 바르게 이해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아담 안에서 모두는 죄를 지었기에 그 결과 모두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죄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는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 강한 죄의 세력보다 더 강력하게 은혜의 지배력이 우리 믿음에 작용하여 죄를 지으려 하지 않게 하고, 그 믿음 가운데 확신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지배입니다. 이 점에서 은혜는 강력하게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은혜의 왕노릇힙니다. 죄가 우리 속에서 하나의 세력을 발휘하듯이 은혜는 더욱 강하여 우리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지배력이고, 성령의 강력하신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점에서 은혜가 왕으로 역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불신자들에게 죄가 왕 노릇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은혜의 왕 노릇의 강도 즉 은혜의 능력입니다. 이 진리를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죄의 지배 가운데 빠져 영원을 사모하는 능력(전도서 3:9-15)’을 잃고, 죄를 짓고 죄와 더불어 살다가 죄의 결과로 사망에 이르러 영벌에 처할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진리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루신 의를 믿는 우리에게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미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천주교에서는 사제를 통하여, 성자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그들이 이룬 그 어떤 공력을 의지하여 그에게 빌면 그 공력이 나에게 미쳐 구원에 이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며 성경이 말하는 구원교리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핵심 원리는 믿는 자의 심령 속에 역사하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왕 노릇 즉 통치하심에 근거합니다. 앞에서 나라의 조건, 나라의 성립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주권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내 마음속에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즉 은혜의 역사를 온전히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구원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은혜의 지배를 잘 받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의로 우리를 살리시고 믿어 구원을 확신케 하옵소서. 더욱 이 풍성하고 강력한 은혜를 사모하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확신 가운데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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