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 사망과 영생 로마서 6:22~23 10-18-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10.18 17:01 | 조회 1622

* 제목: 사망과 영생 * 본문: 로마서 6:22~23    Oct. 18, 2020

 

이제 그동안 살펴보았던 예수와의 연합 개념으로 설명되는 구원 진리인 칭의와 성화에 대하여 정리하며 6장을 마치려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노예(servant)" 개념으로 죄의 결과인 사망과 순종의 결과인 영생을 죄의 지배와 은혜의 지배로 설정하고 이 둘을 비교(comparison)하며 대조(antithesis)하여 구원의 진리를 논증합니다. 이는 이신칭의로 이루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은혜로 지배하셔서 완성해 가신다는 변증입니다.

 

1.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실

 

그동안 이신칭의 교리에 데하여 제기할 만한 질문 두 가지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단호한 답변으로 변증하는 사도 바울의 진술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질문은 1절과 15절입니다.

* 6:1~2a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반론은 역설적으로 부정으로 강한 긍정을 유도하면서 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죄를 지을 수 없고 죄의 지배를 받을 수 없는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순종과 복종만이 요구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와 함께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의 지배 가운데 놓여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는 결국 불순종의 세력에 지배받으며 죄의 세력에 끌려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에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6)!”고 반문합니다.

* 6:16a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사도가 이 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첫째, 성도는 예수와 연합된 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았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여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점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1~14절에서 깨닫게 됩니다.

 

둘째, 성도는 자기 포기와 자기 양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므로 오직 순종만이 요구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15~23절에서 알게 됩니다. 일단 종이 되면 소속된 주인에게 반드시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행동의 선택권이 그에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에게 소속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결과 죄의 종은 지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고, 순종의 종에게는 그의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의에 이르게 됩니다.

* 6:16b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 두 종류의 종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왜 사망과 영생의 결과가 죄의 종과 순종의 종에게 주어지게 되는지를 점검하고 그 결론을 돌출해 보고자 합니다.

 

2. 두 노예의 대조

* 5:15~17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이 구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죄의 종은 아담과 연합하여 죄지은 결과이며 순종의 종은 예수와 연합하여 얻게 된 결과입니다.

 

1) 두 노예의 상태

사도는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미 완료시제)”라고 지적하며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상태에 놓여있던 자이며, 지금까지 어떠한 자로 있었는지를 점검하게 합니다. 이는 성도가 예수 믿기 전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분명하게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죄 가운데서 출생하고 죄와 더불어 살면서 죄에 얽매였던 신분이었음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아담안에서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게 된 신분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의를 덧입어 순종의 종이 된 자들에게 그들이 전달받은 복음을 확인시키며 이를 믿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라고 찬양합니다.

*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바울 사도께서 말한 바와 같이, 성도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된신분이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선조가 전해 준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은 자입니다. 그 결과 그는 죄의 종에서 순종의 종으로의 변환(transformation)된 자입니다. 이는 그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여 이루어진 놀라운 일입니다.

 

2) 두 노예 상태의 발전

두 노예는 어떤 같은 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첫째 둘 다 자유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죄의 종은 의에 대하여 자유하고, 순종의 종은 죄에 대하여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죄의 종은 의롭지 못한 의식 속에서 마음껏 행동하기에 가짜 자유이며 겉치레 자유입니다. 그는 자기가 책임지지 못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방종합니다. 그는 무책임하게 죄를 짓고 위선적인 행위를 거침없이 행합니다. 그 결과 그는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당하며 스스로의 위상을 떨어트리는(degrading) 추한 자유인입니다. 바울은 이를 스스로도 창피스러워하는 행위를 저지른 자라고 지칭합니다.

* 6: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반면에 순종의 종은 의의 지시를 받아 이를 준수하며 경건과 성실함으로 고상한 윤리적 삶을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ennobling) 자유인입니다.

*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둘째, 둘 다 발전적입니다.

사도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전에(tote, then)와 이제는(non, now)" 이란 부사를 사용하여 두 노예 간의 발전과 그 결과를 대조하며 설명합니다.

*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두 노예는 모두 경쟁적으로 발전하며 성장합니다. 죄의 종은 죄의 지배 가운데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여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사도는 그 결과 무슨 열매를 얻었는가?” 묻습니다(21). 이는 죄의 종이 되어 계속 죄를 지으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순종의 종도 자기 지체를 의에 내어주어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마음과 지식을 진리에 두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여 발전해 나가는 즉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노예 모두가 발전적이고 지속적이고 성숙을 보입니다.

 

셋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점을 사도는 확실하게 밝힙니다.

* 6:21~22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죄의 종이 만들어 낸 행위로 인하여 주어지게 되는 부정적 혜택(negative benefits)은 그가 죄 가운데 살면서 자신도 부끄러워 창피스러운(ashamed)으로 기억조차 하기 싫은 행실입니다. 어떤 성경은 이 구절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억(blush to remember)”으로 번역했습니다(Jerusalem Bible). 그에게 주어진 결과는 사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 즉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분리되는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John Stott). 이 죽음은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는 둘째 사망입니다.

* 요계 20:14~15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 요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렇게 사망에 이르게 되는 자의 공통점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자기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분석 그리고 자신의 과거 행위를 진지하게 뉘우치지 않고 그에 따른 진정한 회개(metanoeo, repentance)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호한 결단으로 그 상황과의 결별을 시도하지 않습니다(비교, 15:17~19).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살면서 점점 죄의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그에겐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뿐입니다. 이것이 죄의 종이 거두는 사망이란 열매입니다.

 

반면에 순종의 종은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됩니다. 그 역시 지속적이고 발전적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혜택(benefits)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며 그 최종 결과는 영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당신이 겪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겪게 마련인 모든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 슬픔을 아시고 위로하시며 격려해주십니다(4:15~16).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감격스러운 현장입니까! 사도 요한에게 주께서는 이 점을 계시하셨습니다.

*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3. 사망과 영생의 길

 

바울은 6장 결론으로 앞에서 제기한 주제, “은혜를 더하기 위해 더 죄지을 수 없고(6:1~2a), 은혜의 지배하에서 죄를 범할 수 없음(6:15)을 분명히 하며 마감합니다.

 

*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결론은 아담 안에서 죄의 종으로 지속하여 죄를 지으며 쌓아 온(deserved through sins) 바에 따른 결과(혜택, benefits)가 죽음임을 적시합니다. 지속적 죄의 최종 결과는 영원한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죄의 종으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배를 받게 된 결과로 비참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죄의 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opsonia, wages)’은 왕이나 장군이 신년이나 신하의 생일에 하사하는 선물 혹은 나라를 위하여 전쟁에 나가 싸워 승리한 부하 군인에게 보상 차원에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주인이 노예가 일한 대가를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는 것(pocket money)‘이라 설명했습니다(Ziesler).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삯은 노예가 벌어놓은(deserve) 바를 지급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이란 말이 쓰이기에, ”죄의 삯이란 죄를 지으며 쌓아놓은 바의 결과로서 선언되는 사망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쌓아놓은 죄에 대한 보상으로 사망이 선언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안에서 순종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에겐 영생이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지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은사(karisma, gift)‘는 순종의 종이 쌓은(deserve) 바에 대한 보상 차원의 선물이 아닙니다. 이 영생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은사라고 사도는 설명합니다. 이것이 순종의 종에게 주신 선물로서의 영생입니다.

* Tertullian,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결과는 빚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영생의 유일한 조건은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 하나님의 종이며 의의 종인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유일한 조건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 신실한 고백입니다.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in Christ) 그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생은 단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조건은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union with Jesus Christ)"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10:27~28a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결론

 

성도 여러분, 두 종류의 종이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출생하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는 죄의 종으로 죄의 지배를 받게 마련입니다. 그 자신도 부끄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동안 죄지으며 쌓아놓은 바에 따른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의 종으로 점진적이고 성숙하게 살아가는 삶은 거룩함으로 열매를 맺어 결국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에겐 주 예수께서 마련하신 의의 결과를 적용하시는 은혜의 지배가 끝까지 작동하여 영생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제, 6장을 마감하면서 결론적으로 사망과 영생이 어떻게 선언되는 지를 확인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마음 깊이 새겨 착실하게 성화의 길을 누가 뭐라고 하던지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여러분, 세상 사람 대부분이 넓은 길을 선호합니다. 길이 넓어 가기 쉽고 많은 사람이 가기 편안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의 길로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진실하게 바르고 좁은 길을 제시하며 인도하는 곳을 찾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한 작업이 외롭고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없고 사모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좁은 길이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비록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어 외로운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길을 택하여 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아담과 함께 죽었던 우리를 예수 안에서 살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는 구원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 결과,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 주어짐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17:3). 이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하며 찾는 이가 적다 하더라도 절제와 인내로 죄 가운데서 불러내신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끝까지 경주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와 연합된 자로 주 안에서 주어지는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시고 완성될 그 날을 낙오됨이 없이 끝까지 소망하며 경주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493개(3/25페이지)
2012년 설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453 <로마서 84> 거룩한 열매를 맺기 위한 자유 롬 7:1~ 無益박병은목사 1638 2020.11.01 23:08
452 <로마서 83> 하나님께 열매를 드리기 위하여 롬 7:1~4 無益박병은목사 1626 2020.10.25 21:11
>> <로마서 82> 사망과 영생 로마서 6:22~23 10 無益박병은목사 1623 2020.10.18 17:01
450 <로마서 81> 의의 종으로 거룩함에 이르라 로마서 6:1 無益박병은목사 1663 2020.10.11 16:12
449 <로마서 80> 의의 종이 되는 비결 로마서 6:17~18 無益박병은목사 1711 2020.10.04 22:33
448 <로마서 79> 변경된 소유권 롬 6:15~18 9-27- 無益박병은목사 1698 2020.09.27 16:49
447 <로마서 78> 은혜의 지배 롬 6:12~14 9-20- 無益박병은목사 1622 2020.09.20 22:38
446 <로마서 77>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병기 롬 6:12~14 無益박병은목사 1708 2020.09.13 16:51
445 <로마서 76> 기독교 윤리의 기본 롬 6:12~14 無益박병은목사 1809 2020.09.06 23:27
444 <로마서 75>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자 롬 6:10~1 無益박병은목사 1869 2020.08.30 16:52
443 <로마서 74> 되돌아갈 수 없는 옛사람 롬 6:10~11 無益박병은목사 1967 2020.08.23 22:36
442 <로마서 73> 주의 부활과 우리의 믿음 로마서 6:8~9 無益박병은목사 1929 2020.08.17 00:13
441 <로마서 72> 죄로부터의 자유 롬 6:6~7 8-9-2 無益박병은목사 2077 2020.08.09 22:07
440 <로마서 71> 부활을 본받은 연합 롬 6:5~7 8-2- 無益박병은목사 2073 2020.08.02 22:23
439 <로마서 70> 예수와 연합된 우리 II 롬 6:3~4 7-2 無益박병은목사 1981 2020.07.26 19:59
438 <로마서 69> 예수와 연합된 우리 I 롬 6:3~4, 7-1 無益박병은목사 2114 2020.07.19 23:08
437 <로마서 68> 성도란 누구입니까 롬 6:1~3 7-12- 無益박병은목사 2286 2020.07.12 22:36
436 (2020 성찬사 2> 참여해야 할 기념 양식 고전 5:7 7- 無益박병은목사 2143 2020.07.05 17:54
435 <로마서 67>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3 6-28- 無益박병은목사 2217 2020.06.28 18:40
434 <로마서 66> 은혜의 통치력 4: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 롬 無益박병은목사 2302 2020.06.21 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