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8> 성도란 누구입니까 롬 6:1~3 7-12-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07.12 22:36 | 조회 2259

* 제목: 성도란 누구입니까 * 본문: 6:1~3              July 12, 2020

 

미국에 살면서 자기 정체성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누구나 겪는 문제일 것입니다. 미국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오랫동안 살면서 생각, 언어, 그리고 풍습에 대한 이해 등 어느 것도 이민자로서 한국인이 변하여 미국사람이 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미국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미국에 잘 적응하여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자기 이익과 편리를 얻기 위해 미국적 혹은 한국적 카드를 활용하는 기지를 발휘하는 순발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쉽게 봅니다. 여러분들은 미국적 사고와 언어와 풍습에 대한 것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그것에 익숙하게 하시는지요? 살면서 얼마나 이질감을 느끼는지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으신가요?

 

성도의 자기 정체성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자기 신분에 대하여 확실하게 차이를 느끼고 있으신가요? 그 차이점을 인식하고 새로워진 신분과 상황에 대한 이해와 대처를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움을 겪을까요? 그런 교인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의 현상은 비록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적이라는 점입니다. 과연 이런 교인을 신실한 성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분과 실력은 사실 다른 개념입니다. 이 둘이 일치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먼저 성도란 신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성도란 어떤 신분인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로 성도의 신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성도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2절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에 대하여 죽었다(died to sin)’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죄에 대하여(te hamartiai, to sin)" 이란 말은 '죄에 관하여(reference about sin) 혹은 죄를 고려하여(respect to sin)'란 뜻입니다. 성도란 살아 있는 것과 단절된 상태죽은 것과 같이 더는 죄와 연결되지 않아 죄와 관계가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한국의 법에 더는 적용받지 않는 신분을 가진 미국인과 같습니다. 그 사람에겐 더는 한국법이 적용되지 않고 미국법이 적용됩니다.

 

성도도 이와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바울은 설명합니다.

*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즉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적용되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 성도는 죄와의 연결고리가 단절된 신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성도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죄의 법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이 적용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여기서 말하는 은혜의 법이란 성도에게 죄를 짓지 않는 능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전히 그가 죄 가운데 있으나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가 심각함을 깊이 깨닫고 스스로 진심 어린 회개를 하도록 하는 은혜이며, 또한 그 죄의 사슬로부터 풀려나 좌절과 절망감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죄인에서 의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은혜의 법이 이루어 내는 결과입니다. 즉 신분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은혜의 법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법이 적용된다는 말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첫째, 이 말은 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확실하게 변화된 신분이 되었다는 의미

 

마태복음 1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진리는 아담의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대체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1:1~17).

 

이 족보에 등재된 자를 보면, 그 족보에는 거룩한 자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인간사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를 지은 자들도 족보에 들어와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다시는 아담의 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신분의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다시는 죄를 지은 아담의 신분과 같은 상태로 살아갈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법이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이 말은 이전의 죄의 상태로 회귀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

 

문제는 비록 예수를 믿는 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수 믿기 전의 죄 가운데 놓여 있는 상태에 있어서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지만, 예수를 믿는 은혜를 받았기에 결코 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능력으로 조치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법은 설령 미국 시민이 되었지만, 허용할 수 없는 죄를 지으면 다시 본국으로 추방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은혜로 적용되는 성령의 법은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죄를 짓고 또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법입니다.

 

2. 세례받은 자입니다.

 

본문 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성도란 세례받은 자입니다. 이 말은 신분 변화의 절차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세례를 받음으로 신분이 변한 것입니다.

 

세례(baptizo, baptize)란 씻는 것 즉 정결하게 몸을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절차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초대 교회 당시,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그는 세례와 물을 뿌리는 세례 방식이 함께 시행되었습니다. 오늘날 침례교 계통의 교회에서는 말 그대로 침례 방식을 고집하고 있고, 장로교회에서는 수세 방식 세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되는 절차로서의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신분이 변화되었음을 뜻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이제까지 소속되었던 곳에서 예수 안으로 옮겨 온 신분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하여 시집온 새댁이 여전히 처녀 시절만을 생각하고 또 친정만을 생각하면, 부인으로서 그리고 시댁에서의 시집살이가 원만하고 온전하겠습니까? 그녀에겐 남편에게 속해있고 또한 시집에 속한 신분임을 확실하게 인식함이 절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를 믿어 죄인에서 의인이 된 자입니다. 이 말은 죄를 짓지 않는 자기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가 되었어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 즉 죄책감에 괴로워하게 마련입니다. 죄애 대한 예인한 감각이 살아난 자가 성도입니다. 죄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께서는 이러한 뿌리 깊은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힘쓰도록 가르치셨습니다.

* 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에 따라 많은 성도가 숱한 고행을 하며 죄와 싸웠습니다. 일례로 초대 교회 교부인 오리겐(Origenes, 185~254) 같은 성인은 자신의 정욕을 이길 수 없음을 절감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보고는 문자 그대로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 19: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과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고, 어떤 사람도 종교적인 수행으로 거룩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쉽게 죄를 짓고 죄 가운데 빠지는 죄성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고질적인 죄의 굴레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심각하게 고민했음을 보여줍니다.

* 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와 같은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점검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한계와 무능력을 나름대로 고민하지 않고 단지 교회에 다닌다는 것으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수준과 능력 아래서 심각하게 복음의 진리를 확인하고 자신의 자신 됨을 점검하며 그 복음을 적용하여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에 굴복할 때 비로써 성도로 태어났다고 할 것입니다.

*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말은 죄로 죽은 자리에서 살아난 상태로 이미 옮겨졌음을 의미합니다.

*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를 믿는 자에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 되었기에 결코 다시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가 되는 신분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3. 세례의 뜻을 확실하게 아는 자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에는 그 속에 엄청난 구원의 진리가 담겨있음을 수용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3절에서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세례를 받은 수세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세례가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합하여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반복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여 세례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관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에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주제입니다. 바울은 이 개념을 주장하고, 설명하고, 그리고 동원하여 구원의 진리를 개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살펴봐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선 이러한 말씀이 어떻게 강조되고 반복되고 있는지를 읽어 봅니다.

* 6:4~1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사도 바울은 세례받은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난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예수와 함께 예수 생명을 공유한 자, 그와 연합한 자란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성도는 이 복음의 진리를 알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 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3절 말씀을 읽어 봅니다.

*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성도가 깊이 깨우쳐야 할 것은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점을 깊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이신칭의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

 

이 세례의 중요성을 잊고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통과의례 정도로 세례를 생각하는 듯합니다. 잘못된 인식이며 오해입니다. 비록 물을 뿌리고 형식적으로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절차지만 이 세례에 담겨있는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결별하여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된 것임을 증명하고, 공개하고 공포하는 절차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를 두 번째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5:4~8). 그때 배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그는 세상에서 출세와 성공을 기대하며 3년 반이나 따라다니며 주님께 신앙고백까지 했습니다(16:16). 그러나 그렇게 존경하던 스승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자, 크게 낙심하여 낙향하여 다시 옛 직업인 고기잡이를 하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주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배신하고 저주까지 하며 피신한 그들의 비겁함과 정직하지 못함에 대하여 지적하며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고기잡이의 피곤함을 달래시며 떡과 고기를 구우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다시금 사명을 고취하셨습니다. 특히 베드로에게는 세 번씩이나 사랑을 확인시키셨습니다.

* 21:15~17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왜 세 번씩이나 그에게 물으셨을까요? 자신의 한 일을 회상하며 철저하게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이 은혜를 설명합니다.

* 벧후 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주께서 베드로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 은혜에 붙잡혀서 죽기까지 충실한 주님의 제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은혜를 아십니까? 결코, 죄 가운데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그 은혜를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복된 구원의 진리를 점검하게 하셔서 우리의 확실한 신분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이 은혜를 잊지 말고 이 구원의 진리를 신실하게 점검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구원의 진리를 확인하고 적용하여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죄가 관영한 이 세상을 이겨나가게 하옵소서. 또 지속적인 영적 훈련을 통하여 내재해 있는 세상적이고 육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점점 주님의 형상을 닮아 나가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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