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보훈 강해 29 하나님 앞에서의 삶(2) 기도 1 마 6:5-8 1-22-2012

無益박병은목사 | 2012.01.22 23:38 | 조회 19615

산상보훈 6장에서 주님께서는 구제(1-4), 기도(5-15), 금식(16-18), 경제생활(19-34)등에 대하여 말씀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의 행위들,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 이 모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고상하고 의로운 행위이라 생각하는 종교적 행위들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의로운 행위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Billgates나 안철수씨와 같은 사람들이 구제하는 일을 발표할 때 얼마나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존경한다고 말들 합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들의 구제발표 행위로 이미 그들은 상을 이 세상에서 받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구제(헌금)과 함께 기도와 금식은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하여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교적 행위들로서 이 행위들이 위선적일 수 있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피하면 위선을 피하고 바른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을 할 수 있는 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두 번째인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생각해 보려합니다.

 

기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도들이 항상 하는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숨을 쉬지 못하면 살수 없듯이 기도는 성도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식입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기도하시는 줄 압니다. 문제는 이 기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왜 기도하는 지,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바른 기도는 어떤 것이며, 잘못된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등 기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위선에 대하여

우선 이 기도 역시 위선적으로 할 수 있는 종교 행위라는 점을 기억하도록 주님은 경계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실, 기도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분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합니다. 의례 일어나고 잠자리에 누울 때, 식사할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교회에 와서 --- 항상 기도 가운데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기도 잘하고 싶고, 기도 많이 하고 싶고, 바르게 기도하고 싶은 것이 우리입니다.

 

기도가 위선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기도에는 위선적 기도가 있고 바른 기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사람은 기도 잘 하는 사람이야, 그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기 좋아합니다. 특별히 오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모두 이런 말을 칭찬으로 알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라는 교훈 받습니다.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교회는 기도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 나 있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수요기도, 금요기도 등등 항상 기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조찬기도회, 철거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회, 양심수 00 석방기도회, 등등 수도 없이 어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특별기도회가 수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련의 기도회들이 과연 바른 기도회들일까요?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 많이 하는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 왜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될 까요? 왜 이런 현상이 한국 교회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렇게 기도 잘하고 또한 기도 많이 하는 한국교회가 오늘날 얼마나 세상 속에서 영적권위를 드러내며 그 영권(靈權)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기능을 잘 하고 있는지요? 과연 기도를 많이 한다고 인정받는 교인이 그가 소속된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아가 사회 속에서 얼마나 바른 영적 권위를 인정받고 선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나요? 그 이유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행위가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에 대하여 교훈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사람 앞에 보이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지탄은 기도의 문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하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 기도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위선입니다.

 

이제 왜 기도가 위선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참으로 간교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룩한 그 순간에 까지 우리 속에서 작용하여 따라오는 무서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죄라고 하는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지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경향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죄의 속성이 그러한 것입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떤 지속성을 갖고 나타나는 경향(傾向, disposition)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조차도 이 죄성에 대한 깊은 좌절을 하며 괴로워했음을 봅니다.

*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러한 인간 속에서 역사하는 죄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부추겨서 자만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경배하게 하고, 자가 자신에 대하여 아첨하게 하여 자화자찬(自畵自讚, self-adulation)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적능력을 포함한 모든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과신하게 하고 자랑하게 하고 자만에 빠지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죄적 속성인 자기중심적 경향성을 이용하여 거룩한 종교적 행위들에 대하여 스스로의 위선에 빠지게 합니다. 이 사탄의 교묘한 시험은 얼마나 강력한 지 그 단적인 예를 우리 주님 역시 이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탄은 두 번씩이나 예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시험하였습니다.

* 4:3, 6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인간의 자존심을 부추기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은 헌금이나 기도나 금식등과 같은 의로운 행위일수록 더욱더 기승을 부려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기도에 실패하게 합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기도할 때 유의해야할 것입니다.

 

2.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 우리가 항상 하게 되는 기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기도일까요?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훈하셨습니다.

* 6:5-7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이 교훈에서 알게 되는 것은 기도에는 바르게 하는 기도와 잘못하는 기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이해하기 쉽게 거짓된 기도를 살펴보고 다음에 잘 하는 참 기도를 살펴봅니다.

 

1) 잘못하는 기도

주님은 잘못하는 기도 요소로 두 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첫째는 기도를 외식의 소재로 삼지 말라는 것이고 다음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 외식하기 쉬운 기도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외식의 소재로서의 기도란 어떤 모습입니까?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소리 높여 하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오늘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같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주 행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은 회당에서 소리 높여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 예를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 18:10-12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여기 바리새인은 스스로의 종교적 자만에 빠져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기도를 통하여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이들이 큰 어귀, 사거리 모퉁이에서 서서 기도하는 행위는 참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신심이 독실한 이들은 기도하러 회당에 가는 길에 너무도 기도를 하고 싶은 나머지 회당에 까지 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행위를 주님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이며 외식적 기도로 규정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명함에 40일 금식기도를 몇 차례 했다고 인쇄하여 갖고 다니며 전하는 사람, 자신의 기도능력이 강하니 한번 함께 기도하자고 권하는 사람, 자신이 하나님과 기도로 직통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은연중에 자신의 기도의 삶을 강조하며 상대방에게 영적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 등등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위선을 떨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도

주님은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중언부언(重言復言)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는 한 말에 덧붙여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단어의 원문은 battalogeo입니다. 그 뜻은 “speaking without thinking, 생각없이 지껄이는 말입니다. NIVbabbling prayer(중얼중얼하는 기도)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중언부언의 기도란 말을 많이 하는 행위로 설명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많은 말을 하면 설득당하셔서 들으실 것이란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드려 말을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좋은 기도는 기도의 량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잘못된 기도의 공통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기도의 중심에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있지 않고 기도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기도할 때 이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주님께서는 강력하게 교훈하셨습니다.

 

2) 잘 하는 기도

그러면 어떤 기도가 잘 하는 기도일까요?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기도의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하라

성도가 기도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란 자녀가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간청과 대화가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넋두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한 풀이가 아닙니다. 대화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하나님 아버지와 나눌 수 있는 기도의 특권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 성도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기도의 특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얻게 되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입니다. 이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기도드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생각해 봅니다. 즉 기도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주님은 이렇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둘째, 은밀하게 기도하라.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고 인정하시고 받으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골방기도, 은밀한 기도, 조용한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기도한다고 하여 기도를 다 하지 못하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기도를 알릴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방법을 생각해 보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셋째, 진솔하게 기도하라

자녀가 아버지에게 어떤 부탁을 할 때, 각종 미사여구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통속적인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세련되고 우아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고 진지하고 간절하면 되는 것입니다.

 

넷째, 믿음으로 기도하라

많이 말한다고 하나님께서 설득 당하셔서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미 아버지께서는 자녀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자녀가 필요하다고 할 때 한 마디만 해도 아버지는 다 알아들으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결론

항상 하는 우리의 기도 어떻게 할까요? 어떤 의식을 갖고 할까요?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 속에서 기도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도의 양과 장소 그리고 언제 하느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요소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형편과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한 요소들이기에 이러한 요소에 구애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의식, 즉 신전의식 (Coram Deo, before God 神前意識)입니다.

 

바라기는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드리는 기도! 이 의식으로 기도에 힘쓰며 기도의 재미와 기쁨 그리고 산을 옳길 만 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능력을 날마다 맛보시며 풍성히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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