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6> 운명을 결정짓는 생각 로마서 8:5~8 2-7-2021

無益박병은목사 | 2021.02.08 00:14 | 조회 967

* 제목: 운명을 결정짓는 생각 * 본문: 로마서(Rom) 8:5~8 Feb. 7, 2021

 

여러분 ”homo sapiens"이란 말을 아시죠? “매우 인지가 발달한 영장류(highly intelligent primates)”란 뜻으로 인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장 똑똑한 피조물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을 만물의 다스리는 영장으로 삼으셨습니다(1:28). 어떻게 모든 동물보다 탁월하여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으나 다른 동물에게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은 인간이 생각하고 또 말을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인지능력이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이며 탁월한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그는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을 이 명제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자신의 사고 능력에 존재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생각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고 나아가 그 생각이 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에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두 부류의 사람

 

성경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두 부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 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 8: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두 부류의 사람을 언급합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자가 있고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사고하는 방법이 다르고 관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내용과 그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엇을 심는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생각에 따라, 관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행동에 옮기는가에 따라 그의 인생이 결정되고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영원한 신분(eternal status)이 결정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이 개념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1)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첫 사람은 육신을 따르는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sarx, flesh)'이란 단어는 죄로 가득 찬 본성에 의하여 조정되는(controlled by sinful nature)"이란 의미입니다. 이 육신이란 피부, , 그리고 뼈 등으로 구성된 몸(body)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의식에 있어서나 정서에 있어서 죄로 부패한 전인(全人, totally corrupted personality)을 뜻하며 이는 영적으로는 거듭나지 못하여 구속받지 못한 자연인(spiritually un-regeneration sinful man)을 뜻합니다.

 

이 부류의 사람은 자기중심적 본성(ego-centric human nature)을 가지고 타락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자신이 죄의 지배를 받아 자아가 죄로 깊이 패어있는 사람(deeply curved in ourself briefly the sin dominated self)"이라 규정했습니다.

 

2)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두 번째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여기서 말하는 (pnuema)’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mind), 생각(thought)보다는 혼(spirit)을 뜻하고 특히 이 문맥에서는 15절의 성령(The Holy Spirit)을 의미합니다.

*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렇게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죄인이 거듭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이 사람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이 사람이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며 이 사람이 진정한 신자입니다.

 

2. 두 부류의 차이점

 

그러면, 이 두 부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갈라디아서 5장에서 잘 나타납니다.

* 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도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과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체의 욕심 즉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이 두 부류는 삶의 방식과 추구하는 바와 그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육체의 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 성령의 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바울은 이 두 부류 간의 화해는 절대 불가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한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성도에게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바울은 설령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으로 살지 못할 때 그는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 비록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시기와 투기 그리고 분쟁이 발생하게 되어 함께 망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가장 처음 지은 죄가 살인 사건 임에서 잘 나타납니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4).

 

본문에서 이 두 생각의 특징적인 구분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결국, 두 부류의 차이점은 생각에 있어서 그리고 행위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되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지킬 수도 없고 도리어 그 법에 반항하고 저항하며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극도의 거부심과 증오심이 있어서 성경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개념 즉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나라, 교회, 복음, 천국 지옥 그리고 구원과 영생 등과 같은 용어와 개념을 전부 거부하며 나아가 그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락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일관된 영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에 대하여 알려는 노력을 거부합니다. 도리어 배척하고 부인합니다.

 

3. 두 부류의 결과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와 자기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자와는 그의 운명이 판이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의식과 방식의 판이함이 완전히 다른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자에겐 사망이 결과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이란 마음을 결정하는 행위(to set the mind)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자는 그 마음이'타락한 죄의 욕망(failed sinful desire)'의 지배를 받아 그것에 모든 관심을 두고 그에 흥미와 재미를 느껴 숱한 시간과 돈 그리고 정열을 투자하며 그것에 몰두합니다. 각종 술과 도박 그리고 동성애와 불륜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의 욕망에 빠져들어 죽음의 길을 걷게 되고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유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사모하고 그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표현합니다. 이런 성도를 구약의 에녹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5:24).

 

바로 시편 기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했고 그래서 꿀과 송이 꿀보다 더 좋아했으며(19:10)’,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했고(27:4)“, ”마음이 상할 정도로 그들은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119:20“ 했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했습니다(42:1). 그들은 주의 구원을 사모하여 주의 율법을 즐거워했습니다(119:174).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하면, 거듭난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며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그 말씀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썼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귀하게 보셔서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 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 14:13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그래서 사도들은 초대교회 성도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말씀의 교훈에 힘써 순종하라고 명했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봅니다.

* 고후 5:9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 살전 4:1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그 말씀을 사모하고 그 교훈에 적극적으로 순종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자에게 생명과 평안이 주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을 얻게 하는 생명이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말씀하셨습니다.

 

4. 네 가지 교훈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셔서 그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를 거듭나게 하셔서 거룩한 삶(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에게 조정받는가(by whom controlled self)”하는 점입니다. 육신의 정욕에 지배를 받는가 아니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가입니다.

 

본문에서 살펴본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회 출석 여부를 막론하고 마음의 생각이 그의 기본적인 성품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모두 죄로 오염된 존재이기에 죄로 가득 찬 본성에 따라 살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성도는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며 말씀으로 교훈하는 바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 생각은 기본적으로 장차 맞게 될 영원을 결정한다.

육신의 생각은 죽음이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 말씀은 육체의 생각으로 사는 자는 이미 타락한 욕망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기에 그는 영적으로 죽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격리된 죽음의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는 이 세상에서도 죽음의 길을 갔고 저 세상으로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부자와 나사로 비유입니다.

* 16:23~25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셋째, 사고방식은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결정한다.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성도의 사고방식은 죄 된 자신의 근본을 확인한 상황이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마음 깊이 고백과 함께 항상 감사하며 생각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이미 타락한 죄에 오염된 자가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이고 하나님과 떨어진 죽음의 길을 가서 최종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넷째, 육신의 생각에 조정받는 자는 성령을 깨닫지도 또 순종하지도 못하여 전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유는 그는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령 안에 있는 자는 내주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고 기뻐하며 그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결론

 

두 부류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과 영의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 이들의 사고의 틀(the paradigm of thought, the perspective of life)이 운명을 결정짓고 영원을 결정짓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사고의 체계를 어디에 둘 것입니까? 어떤 기준으로 사고의 체계를 설정할 것입니까? 어떤 행동을 하고 미래가 어떻게 결정될 것을 기대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주신 주님의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어서 주께서는 모든 사람은 두 종류의 집을 짓는다고 비유하시며 산상보훈을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이 귀한 비유를 마음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기도드리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인생을 성령으로 일깨워주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구원의 길을 가게 하시니 감사드리옵나이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항상 세밀하게 자상하게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고 강력하게 생각과 의지와 행동을 이끌어 주셔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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