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8> 성도의 영적 갈등 롬 7:14~20 Dec. 13, 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12.13 22:29 | 조회 1066

* 제목: 성도의 영적 갈등 * 본문: 로마서 7:14~20 12-13-2020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잘 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칭찬을 듣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죠. 그런데 그런 것이 잘 되던가요? 자신과의 약속이 잘 지켜지던가요? 년 초에 가졌던 마음과 세웠던 계획들이 지금에 와서 보니 어떤가요? 작심삼일이 아니었던가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남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1. 영적 갈등에 대한 진솔한 인정

 

사도 바울도 자신에 대하여 낙심하고 그래서 실망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바울이 겪고 있는 자괴감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 7:15~16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 말씀은 생각과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또한 자신도 받아드릴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행위가 벌어지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바울은 14~17절과 18~20절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울 이 자기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는 우리 역시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14절에서 보듯이,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는 NIV에서 “The Law is spiritual but I am unspiritual sold as a slave to sin."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율법은 영적인 것이지만, 나는 영적인 것이 아닌 육신에 속한, 육이 여전히 내 안에 거하여 내게 미치는 영향으로 나는 죄의 노예다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성도로서 본질적인 나 자신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죄가 내 속에 거하여 나를 공격하지만, 나 자신은 이에 맞설 상태가 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나의 본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기에 그 죄의 노예로 살아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라는 존재는 여전히 죄에 엮어져 있는 죄의 노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솔직하게 말하며 결론적으로 자신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와 능력을 이렇게 진단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8장에서 분명하게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심도 깊이 해부하며 자신의 무능력을 밝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성령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음 구절들이 잘 말해줍니다.

*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8:9~10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성령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셔서 자신의 영적 본질에 대하여 철저하게 분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철저하고 확실하게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비록 자신이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자신에게는 전혀 선한 것이 없고 또한 육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죄의 노예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즉 두 영적 정체성 가운데 일치되지 않는 한계와 연약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거듭난 성도의 실체입니다. 소위 구원파에서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게 되고 또한 회개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가르침은 거짓된 교훈입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매우 심도 있고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실토하고 고백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거듭난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솔직한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경험은 어떻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분석과 진단, 그리고 인정함과 고백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영적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며 이 점에 대하여 인정하십니까?

 

한 예를 들어 봅니다. 한국 초대 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를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그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시커먼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얻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너는 요절이 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육적 요소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절제되고 있을 뿐입니다.

 

2.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의 고민

 

15절 말씀을 봅니다.

* 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이 말은 나는 내가 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내가 행하기를 원하는 그것은 실행에 옮기지 않고 도리어 내가 증오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NASB 번역). “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것,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을 행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자신이 미워지고 싫어지고 그래서 좌절하며 낙담했습니다. 18~19절에서 그는 적나라하게 이 점을 실토합니다.

* 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사실 성도라면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고 알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는 모습은 어떠합니까? 바울 역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실천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느끼고 나는 옳은 것을 바라고 있고 또 바라지만, 그것을 혼자서는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바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실토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모두 절실하게 그리고 매일의 삶의 현장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사랑하며, 그것을 원하고, 그리고 그것을 행하기를 열망하지만, 스스로는 도저히 그렇게 행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는 성도의 현주소입니다. 이 지점에서 성도의 영적 전쟁이 전개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 영적 전쟁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6:12~17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투에 나가는 군인에게 완벽한 무장은 꼭 필요합니다. 이유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고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투에 나가는 군사는 반드시 적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영적 전투(spiritual warfare)에서도 같습니다. 적이 어떤지 알아야 하고 전투하기 위하여 완전무장을 해야 합니다. 방어 무장(허리띠, 호심경, 군화, 방패)과 공격 무장(말씀)을 철저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싸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원수 사탄은 매우 간교하여 다양한 방법과 전술로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때 어떻게 무장하고 그 싸움에 대처하는 가는 전적으로 성도의 몫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나 현실 상황에서 거듭난 성도가 취하게 되는 모습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는 실제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진리를 따라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악을 싫어하고 혐오합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전투 현장 속에서 이러한 마음과 각오와 달리 말하고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이는 마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군인이 전장에서 실수하여 실패하는 것과 같이 영적 훈련이 모자란 성도는 이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주님은 원인을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이라 진단하셨습니다.

* 14:37~38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렇게 우리 육신은 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이기적인 우리이기에 올바른 행동을 제때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갈등이 있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옛날 고대인에게는 죽음의 문제가 심각했고, 중세인에게는 죄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현대인에게는 의미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 우리에게도 심각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의 목표와 삶의 중심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질과 가치가 결정됩니다. 죽음과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여기에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고 축하하며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1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우리네 인생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중심이 제대로 잡힐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돈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언제나 이해타산 때문에 움직이고,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은 그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돈과 권력에 얽매어 그 돈과 권력의 노예로 살고, 향락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향락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며칠 전 유명한 한국의 영화감독(김기덕 감독)이 성추행범으로 몰려 해외 도피 중에 Covid-19로 사망하여 화장하고 귀국하게 되는 데 영화계에서는 그의 추모 여부를 놓고 논란에 빠져있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 영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합니다. 그의 삶의 목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짓은 하지 않으며, 아무리 하기 싫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반드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3. 성령으로 이루어질 중생과 영적 승리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거듭난 증거가 무엇입니까? 거듭났다는 말은 성격의 변화, 또 능력의 변화도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 삶 자체가 변화(transformation)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과 같은 성격의 사람이지만 그리고 이전과 같은 능력의 사람이지만, 목표가 변하여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 우리의 삶은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어 질서와 인정을 찾아 살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거듭남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다음 구절들을 보시지요.

* 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벧후 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시고 신의 성품에 참여시키셔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살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놀라운 영적 변화가 어떻게 가능하게 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이 모든 거듭남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 3:3, 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는 순간 설령 그가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 하더라도, 그는 매사를 세상 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무능해져서 낙심하고 실족하여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도덕적 무능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맙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 7:16~17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부정한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율법의 허물(잘못된 율법)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미 율법은 선한 것이라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비록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긴 하지만, 그것은 내 자의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곧 내 속에 거하는 죄가 행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내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이 나보다 강하기에 나는 자의에 따를 수가 없고 그 죄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내가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결론을 18~20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놀랍고 철저한 분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바울의 진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선한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고 내 속에 나를 잡고 있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내가 혐오하는 것을 하게 한다. 내가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바는 만일 내 행위가 내 의지와 반대되는 것이라면, 그 원인은 내 속에 거하는 죄이지 내가 아니다.”

 

여기서 거듭난 나와 내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는 죄의 세력에 따라 죄를 짓고 있는 나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여전의 죄의 세력 아래에서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실존이 바로 우리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심각한 영적 갈등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비참한 영적 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바울은 철저하게 이 영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 속에서 엄청난 영적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절규합니다.

*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죄의 종이 되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들입니다. 아무리 예수 안에서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육신에 거하는 한,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겪게 마련인 영적 갈등 속에서 성도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울이 지녔던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신실한 성도 그 누구나 갖게 마련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참된 구원을 사모하게 되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25절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성도 여러분, 과연 누가 우리를 죄의 강력한 세력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을까요? 바울은 절실하고 심각하게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이 영적 갈등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구원론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바울 복음의 진수라 할 것입니다.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이러한 철저한 분석과 구원의 진리를 나열한다 하더라도 정작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경우를 들어 영적 갈등의 진수를 보여주며 이 서신을 읽고 공감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 구원의 주도적인 역사를 일으키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깊이 인식하도록 합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연합시키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역시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연약한 자들이기에 우리의 인생 속에서 겪게 마련인 이 심각한 영적 갈등의 실체를 보게 하시고 그 상황을 심도 있게 고민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령 하나님 이 시간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심각하게 이러한 영적 고민을 하게 하셔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탄식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이 혼란하고 퇴폐한 세상의 삶 속에서 더욱 진리의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순간순간 사모하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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