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7> 삼각관계 : 율법, 죄 그리고 나 롬 7:9~14 12-6-2020

無益박병은목사 | 2020.12.06 21:31 | 조회 1079

* 제목: 삼각관계: 율법, 죄 그리고 나 * 본문: 로마서 7:9~14 12-6-2020

 

"기독인(Christian)"이라 하면 예수를 믿는 무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란 말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그들을 죄인이라 부릅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 말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 무슨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죄인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배경 아래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결례를 강단에서 한단 말입니까?

 

본문은 죄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게 되는지, 왜 죄를 죄라고 규정하는지, 그 근거와 죄와 죄인과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구원의 의미와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며 구원을 일으키는 복음의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깊은 의미를 추적하여 깨닫고 구원의 복음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참 성도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세 가지 주제를 다루려 합니다. 첫째, 본문에서 말하는 나란 누구인가. 둘째, 율법과 죄와의 관계. 셋째,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죄의 세력입니다.

 

1. 본문에서 말하는 는 누구인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 7:9~11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여기서 말하는 는 누구인가 하는 주제는 성경을 해석하는 많은 주석가에게 약간의 문제점을 안겨 주었습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당연히 저자 바울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울은 예수 믿기 전의 사울인가 아니면 예수 믿은 후의 바울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둘째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합니다.

 

1) John Stott의 견해: 죄인인 자신을 묘사한 것

여기서 는 바울 자신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분은 John Stott입니다. 그는 영국 성공회 감독입니다. 그의 로마서 강해 집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a. 7~13절까지에서 사용된 동사가 과거시제(부정과거)로 되어있는데 이는 바울 자신의 과거 경험과 관련된 것이라 판단된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9)“, ”죄가 나를 죽였는지라(11)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13) 등에서 사용된 동사가 모두 과거시제로 되어있다. 그러나 14절부터는 현재시제로 되어 바울이 현재 경험하는 바를 말하는 것 같다.

* 7:14~15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b. 바울은 자신의 영적 상태의 변화를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죄가 어떻게 율법으로 인하여 살아나서 자기를 죽였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죄로 인하여 죽은 자신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이를 롬 7:7~13까지에서는 과거 예수 믿기 이전의 자신, 14절에서 마지막 구절까지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c. 그런데 14절 이후에 묘사되고 있는 바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바울 자신의 모습을 두 가지의 자화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는 죄 된 인간으로서의 자화상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서의 자화상이다. 전자가 죄로 얼룩진 자화상이라면 후자는 율법에 대한 자화상이다.

 

그는 이렇게 구 단계의 신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 는 바울 자신을 가르친다고 본 것입니다.

 

2) Herman Ridderbos의 견해: 일반적인 죄인을 표본적으로 묘사한 나

 

반면에, 여기에서 를 바울 자신으로 보기보다는 죄를 짓고 사는 보편적인 모든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바울 서신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례를 고려하여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의식하면서 바울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된 묘사라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분은 유명한 개혁주의 신약 신학자 Herman Ridderbos 입니다. 그는 유명한 바울신학(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육의 죄와 부패 가운데 있는 인간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죄와 육은 서로 동일시하여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육신 안에 있는 것, 육신 적인 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 곧 죄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을 뜻한다. 죄와 육의 이 동일관계는 바울 인간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참고로 이러한 설명을 하게 되는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6:8a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문에서 말하는 는 바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죄인인 나로 받아드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는 죄와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이 죄를 짓게 되는 배경과 원인 그리고 과정의 주체가 바로 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바울의 경험과 같은 실제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나와 율법과 죄

 

다음은 인간이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되며 그것이 죄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7:7~9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여기서 바울은 흥미로운 설명을 합니다. 그는 단도직입으로 율법이 죄인가?”라고 질문합니다. 그의 논리를 쉽게 말씀드리면, 여기 교통법규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 교통법규를 배워 압니다. 그 법 자체가 죄일까요? 죄일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법을 어길 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규정된 제한 속도를 벗어나 달릴 때 이를 제지하는 경찰이 죄를 지었다고 판정하는 것이 바로 규정된 법입니다.

 

이 법을 미쳐보지 못하고 달리면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법을 알 때 자신의 행동이 그 법을 어겨 죄를 지은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십계명 마지막 계명에 탐내지 말라(20:17)“는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는 만약 그 계명이 없었다면 탐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규정이 있기에 탐심을 행동에 옮기면 이 계명을 어긴 것이 되어 죄를 지었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을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다고 바울은 표현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그는 율법을 몰랐을 때는 나란 존재는 살았으나, 율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죄가 살아나고, 나란 존재는 그 율법에 접촉이 되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법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법에 접촉되는 행위를 저지르는 나란 존재입니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율법은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죄를 규정하고 자극하며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사람은 자극을 받아 죄를 짓는 상호관계 즉 삼각관계가 형성됩니다.

 

3. 죄의 원인과 한계점

 

여기서 좀 더 죄를 짓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죄가 작동하는 근거와 죄를 짓는 과정과

그 한계 혹은 종착점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첫째, 죄를 짓게 되는 원인과 근거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율법 자체를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죄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타락 기사에서 볼 때, 이 점은 분명해집니다.

* 3:1~6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는 그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를 보고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 나무 자체가 유혹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금단 명령이 하와에게 죄를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죄를 불러일으키는 힘, 죄를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죄를 증가시키는 특징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놀라운 지혜 즉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게 다가와 시험한 사탄의 간교한 유혹에 스스로 넘어가 금단의 명령을 스스로 어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율법의 특징을 지적합니다.

* 5:20a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역설적으로 자율적으로 죄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저지르려는 욕망 즉 죄를 계속하여 짓게 만들도록 하는 특징을 율법은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능력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신기하게도 율법의 규정을 파괴하는데 미묘한 매력을 느끼어 계속 법을 어기는 죄를 지으려 합니다. 이런 점에서 죄는 율법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하겠습니다. 성경은 이 점에서 죄가 힘을 가진 인격적 세력으로 묘사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죄의 습성은 율법을 통하여 힘을 더 얻어 죄를 더 짓게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율법이 금하는 것을 오히려 반역적 행위를 저지르는 죄를 짓습니다. 이 현상에 대하여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다라 말합니다.

*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둘째 죄를 짓는 과정과 한계 혹은 종착점

죄의 원인에 대한 이 역설은 율법이 죄를 짓게 되는 동기라는 점입니다. 정말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짓는 죄의 과정은 어떠할까요?

* 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 구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마음) 에서 역사하여 결국 사망이란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떠나면 죄가 죄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율법으로 인하여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오직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 적용될 때 더욱 죄를 범하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결국, 죄가 살아나 작동하는 것은 율법이 적용될 때입니다. 그때 죄는 깨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죄는 율법에 저항하여 활발하게 운동하며 죄를 짓습니다. 이는 마치 여자가 열매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남편과 의논도 하지 않고 그 열매를 따서 먹는 것(3:6)과 같습니다.

 

이처럼, ’탐심을 품지 말라는 명령 속에서 인간은 더욱 탐심을 갖게 되고, 결국 실행에 옮겨 탐심의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운명적으로 죄의 세력에 넘어가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어서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한계이며 종착점입니다. 이유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6:23).

 

만약 율법이 없었다면, 죄는 사람을 죄인, 범법자, 반역자, 그리고 무법자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었기에 죄는 그 율법을 기반으로 삼아 죄를 짓는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 그 누구에게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런데, 이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기 때문입니다(6:23b).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이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 고전 15:55~58a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결론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율법은 12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한 것이 죄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정죄한다고 하더라도 그 율법은 단지 죄가 무엇인지를 규정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규정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한다면 그 속에는 구원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단지 불평과 불만만 있을 뿐이고 결국, 정죄와 비난과 저주 속에 죽을 뿐입니다.

 

사도는 말씀합니다.

* 7:13~14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한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하여 계속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율법적 인식이 팽배한 시대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저히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수 없고 도리어 율법을 범하기만 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죽음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오셔서 인간의 이 절망스러운 죽음의 숙명을 몸소 다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다 충족시키셨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의 대가를 몸소 다 치르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이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사흘 만에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구원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그 누구든지 그에게는 참된 자유와 기쁨과 평화가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 주께서는 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완전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5:17).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14:27, 16:33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주님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고백하는 것이 바로 Christmas 성탄절입니다. 주께서 이루시고 또 말씀하신 이 말씀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즐거운 절기에 우리를 집요하고 강력한 죄의 세력에서 해방해 주신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시며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죄의 기원과 성격 그리고 원인을 알게 하시고 그 무서운 죄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타락하여 죄를 짓게 하는 율법의 역기능을 친히 다 감당하셔서 죄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부활로 승리하시며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진리를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 귀한 진리를 살피게 하고 알고 믿어 구원얻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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