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02 신의 성품을 나누어 가진 자 벧후 1:3-4 1-23-2005

無益박병은목사 | 2012.09.08 17:51 | 조회 8514

제목/ 신의 성품을 나누어 가진 자   본문/ 벧후 1:3-4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모는 사람의 모습이지만, 마음은 동물과 같이 잔인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이래,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의 혐의로 11년을 교도소에서 생활한 30대 중반의 남성 유영철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20039월부터 20047월까지 총 21명을 엽기적으로 연속하여 살해했습니다. 자신은 5명의 여성을 더 살해했다고 주장하는데, 20048월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주로 부유층 노인과 여성으로, 범행 수법이 과감하면서도 치밀해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또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사건은 정부 수립 이후 최대의 연쇄살인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잔인한 사람입니까? 사람의 얼굴이지만, 동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학자들은 그 원인을 그의 가정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즉 유영철은 1991년 안마사와 결혼하였으나, 20025월 무렵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부터 여성 혐오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간질 증세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00311월에는 전과자·이혼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제 중이던 여성으로부터 절교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1990년대 중반부터 막연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쇄살인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죄 가운데 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대로, 성도란 벧후 1:1-2에서 보았듯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주어지게 되었습니까? 첫 번째 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에 의해서며 다음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주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을 증진시키고 강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우리에게 이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그 지식의 기초 위에서 우리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말씀이 3-4절 그리고 5-6절까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은 바로 성도의 생활의 본질과 특성 즉 성도의 구원에 대하여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3-4절의 말씀을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5-6절의 말씀을 상고해 보려합니다.

 

1.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우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영적 진리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합시다. 과연 성도됨은 어떤 과정으로 되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 만들어 가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과연 어떻게 인간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는 이 말이 가능하기나 한 말입니까? 이것이 구원이라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약속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영적 진리일까요? 그리고 이 진리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과 과정 그리고 의미를 살펴봅시다.

 

1)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함으로

* 벧후 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방식과 의도 그리고 목적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귀한 진리입니까? 이는 성도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말해주고 있으며 또한 성도로서 간직하고 살아가야할 삶의 성격과 태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비판하고 지적합니다. 망할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세상의 그러한 모습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세상은 당연히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복음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항상 세상 속에는 시기와 질투, 미움과 다툼으로 얼룩져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왜 이러한 모습을 역시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요? 성도들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성도들의 모습, 교회의 모습은 세상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슨 문제있는 것일까요?

 

성도들 곧 교회 속에는 생명의 원리가 있고, 용서와 화평의 교훈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이 영광스러운 신분을 망각한 채, 세상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 구원의 원리를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힘써야 할 가장 중대한 일, 힘써야 할 가장 기초적인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어떤 종교적인 체험을 해야 하거나 탁월한 식견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일이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처럼 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다음의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

*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기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믿음생활을 하면서 추구하는 영생(Eternal Life)이란 즉 영원히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또 그를 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의미하지 않고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말은, 언제가 말씀드렸지만, 이 말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체험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지식적인 앎(gnosis-knowledge)이 아니라,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르는 체험적인 앎(epi-gnosis)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이미 1:2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를 강조하였습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기도하며 강조하였습니다.

* 1: 8-10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종교형식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마음 깊이 깨닫고 그 지식이 자신의 정신과 지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생활이 변하게 되는 그 어떤 경지에 이르는 영적 체험의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의 추구가 우리의 성도됨에 매우 중요한 일이요 가장 기초적인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종교적인 행위로 인하여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여 얻어지는 이러한 지식이 그의 신앙적 기초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성도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가리켜 저자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을 체험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들은 진지하게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들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나에게 하나님이란 진정으로 존재하는 분이신가? 나는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여러분들은 이 믿음의 비밀스러운 체험을 해 보셨습니까?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서서 자신에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진리의 추구가 진정한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나의 소원만을 아뢰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려고 힘써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도! 이러한 기도의 삶이 곧 하나님을 아는 길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신앙적 자세일 것입니다.

* John Calvin "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심으로 큰 영적 축복을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생명의 시작이요 경건의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다. 즉 그 어떤 영적 은사들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은 복음 교리에 의하여 우리 영혼이 신령한 빛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바로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전까지는 결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러므로 효력있는 믿음의 원인(cause)은 우리의 마음의 통찰력(명철 perspicacity)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는 것이다. 그의 효력있는 부르심은 반드시 사람에 의하여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Calvin 선생의 설명으로 통하여 어떻게 구원얻는 믿음을 갖게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을 체험함이 중요합니다.

 

2) 복음을 앎으로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일어나는 현상일까요? 본문 4절에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셔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약속이란 복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약속이란 말,“eppang-gelma"”euang-gelion“ 이란 말 즉 복음이란 말과 동일 어원(euang-gelizomai)에서 나온 말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이루신 구속의 역사, 행위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께서 이루신 복음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그 사실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알게 될 때 온전히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1절에서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게 된 근거가 바로 예수께서 이루신 의임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알 때 그에게는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이루신 의와 동일한 수준과 내용의 의가 주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칭의)하시는 것입니다.

*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3)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함으로

앞에서 강조하였듯이 신자가 되는 특별한 과정은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경험하고 또한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전인격적으로 알 때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까? 베드로는 이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을 “deia dunamis-Divine Power-신기한 능력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 발휘로만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속에서 역사하신 바로 그 능력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지를 모든 성도들이 알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성령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성령님은 단지 예수님만을 부활시키시지만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강력하신 능력은 믿는 성도들에게도 작용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또한 이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일으키는 빛은 지금도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 벧전 2:9b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성도여러분, 이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 우리 속사람은 변화하게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영적 진리가 우리 믿음 가운데 작용함을 아셔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하시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의미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영적 지식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 벧후 1:4b ---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4절의 말씀은 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이 말은 ()의 성품을 나누어 가진 자(Sharers of divine nature)”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리신 성령께서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셔서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주시어 그 새생명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미 바울은 로마서 8:11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연합시키셔서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시고 예수와 같이 하늘에 올리셔서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이루도록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 1: 20-23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 말씀은 현대의 New age Movement에서 주장하는 "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 안에서 우리를 예수와 연합하여 신의 성품을 나누어 가진 자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은 어느 교회에 다녔다고,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고 성년이 되어 입교문답을 해서, 어떤 교회에 다니고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지적받는 자신의 죄에 대한 비통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속에서 역사하심에 따른 감격과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대한 기꺼운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이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질 것을 추구하며 살아온 정욕에 따라 살았던 옛 삶의 청산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어진 새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즉 삶 속에서의 구체적인 변화의 역사, 세상의 원리와 다른 원리와 성격과 모습을 나타나는 성도의 삶이 곧 신의 성품에 참예케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갖게 되는 인생관, 가치관의 변화!!!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 속에는 이미 하나님이 신기한 능력이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합시다. 성령 하나님의 이 강력하신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죽을 몸은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신의 성품을 나누어 갖게 되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들에게 이 놀라운 고백과 환호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정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죄되고 유한하며 썩어질 것에 항상 유혹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의 것에 파묻혀서 살아갈 때는 언제나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령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안에서 거듭나면 언제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서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가치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예의주시하시며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성도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 속에 이미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분명히 이 구원의 역사는 온전히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아멘(2005123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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