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01 보배로운 믿음 벧후 1:1-2

無益박병은목사 | 2012.09.08 17:08 | 조회 15092

* 제목/ 보배로운 믿음  * 본문/ 벧후 1:1-2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사람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건강하십니까? 이제 나이가 50줄에 들어서면서 건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과 올 초 저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주변에서 건강에 관한 부정적인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친구는 고혈압으로, 한 친구는 결핵으로 쓸어져서 입원하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결핵을 앓고 있는 분은 매우 건강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목회하시는 분이어서 그 소식을 듣고는 매우 놀랐습니다. 허리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갔습니다. 주치의가 피곤하여 그러니 좀 쉬면 나을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전혀 목사가 담배도 피우지 않고 --하기에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X-Ray를 촬영하였습니다. 그리고 필름을 심방가서 흉부내과 수련생인 자기 교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Check하던 교우는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얼마 후 눈이 퉁퉁 부어 나온 교우는 목사에게 병원을 빨리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사모님에게 폐암 말기라고 하였습니다. 의사의 말이 3개월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육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건강입니다. 그 어떤 것도 건강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민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대부분이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기에 몸이 재산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보내면서 1절에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보내고 있습니다.

* 벧후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서 보배로운 믿음이란 어떠한 뜻입니까? "Laxousin pistin-Precious faith, Payless faith, Uncountable price faith, meaningful faith" 그러한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기독교의 믿음이 이렇게 의미있는 믿음, 값으로 가격을 매길 수없는 고귀한 믿음, 측량할 수없는 믿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니 여러분들의 믿음이 이러한 믿음이십니까? 아니면 일회용품처럼 필요하면 편의점에 가서 사듯이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고, 필요 없으면 아낌없이 내어 버리는 그러한 종류의 믿음입니까?

 

1. 베드로 후서의 개요

저는 지난 해 24번에 걸쳐 베드로전서를 강해했습니다. 올해는 지난 해에 이어 계속하여 베드로 후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후서라고 하는 이유는 이 편지가 베드로 사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기록한 두 번째의 편지 즉 마지막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 벧후 1:12-14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이 서신을 읽을 때, 사도의 기록 목적이 다음 두 가지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첫째, 교우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다시금 확인시키어 온전한 믿음의 성도로 세우기 위하여 간단한 편지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둘째, 당시에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교훈들, 즉 말세 주님의 재림 사상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사도의 가르침을 변호하고 그 믿음 가운데 굳게 설 것을 가르치기 위합니다.

* 벧후 3:17-18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저 역시 이 마지막 시대에 사도의 교훈을 통하여 기독교의 기본 진리, 즉 구원의 도리 뿐 아니라, 말세에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재림을 준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말씀을 전하려합니다. 시간 마다 우리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귀한 노 사도의 간곡한 권고의 말씀, 이 편지를 통하여 영적으로 깊은 깨우침과 함께 그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크게 성장하고 굳게 세워지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대합니다.

 

2. 믿음의 기대치

말씀 드린 대로 이 편지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도 강조하였듯이 당시의 교우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Diaspora(흩어진 유대인) 이라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하였지요(벧전 1:1). 이 나그네 유대인들이 이방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말도 못하는 어려움을 겼었습니다. 외적으로 우선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인종적인 차별을 감수하면서 살아야했습니다. 그 결과 직업을 얻는 일, 의복을 입는 일, 음식을 먹는 일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도전들은 사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르침들이 있어서 교인들이 사도의 가르침만을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다른 사상과 종교적인 교훈을 가르치는 무리들이 방문하여 사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교훈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헬라의 다원화된 종교사상이 여과없이 교회 내에 들어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신학 사조가 교회 안팎으로 일어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교회 내부 깊숙하게 침투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베드로후서를 통하여 우리를 흔들어 바른 신학과 교회와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세속적인 요인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즉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확고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자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방세계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위로해 주고, 격려하여 끝까지 승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이 베드로서신은 매우 유용한 영적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의 형편이나 현재 우리의 형편이나 영적인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우리의 삶의 질은 편리해졌는지 모르나, 그 문화의 비용과 삶의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댓가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여유와 편함, 그리고 안락함을 포기하게 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돈 버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려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오직 돈에만 매달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즈음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려는 부류가 젊은 층에서부터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경제적으로는 좀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몸과 영혼이 고요한 가운데 주 안에서 강건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일까요?

 

문제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 즉 수준입니다. 흔히들 예수를 믿으면, 당장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들이 한 순간에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를 생활 혹에서 발생화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방식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그 종교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잊고 살아가다가 다시금 문제가 생기면 다시 찾는 식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가운데 즉각적인 해답을 주시며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바른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여정을 통하여 믿음의 과정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대하여 신뢰했습니다. 그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니 그를 믿고 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선언(칭의)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문제는 당시의 성도들이 이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의심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제 살펴보겠지만, 베드로 후서 2장에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성도들이 믿음을 약화시키고, 훼손시켜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 거짓 교사들은 특히 하나님이 약속에 대하여 의심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주제는 심판과 재림에 관한 교훈들입니다.

* 벧후 2:1-2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우리 역시 이러한 혼란한 시대에 접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말씀의 기초 가운데 서 있는지 확인할 일입니다. 온갖 사조가 교회 내에 들어와서 우리의 순수한 믿음의 내용이 변절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대치가 세상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상대적으로 세상과 우월한 정도라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윤리성을 세상과 탁월한 차이가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진리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어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는 구원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그 진리 안에서 온 인생을 최선을 다하여 경주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최고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기대치)

*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

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 확고한 기초

건물을 볼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요즈음의 건축들을 보면 외부가 참으로 화려합니다. 사실 그 화려한 외부를 꾸미기 위하여 상당한 자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기초와 뼈대를 세우는 것보다도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외부가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실공사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초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셨습니까? 이미 우리 주님은 이 믿음의 건축에 대하여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오늘날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나름대로 판단하여 상대화 시키는 풍토가 현대 교회 안에 그리고 성도들에게 만연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배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그저 사람만 많이 모으면 된다는 방식입니다. 그저많은 회중이 모이면 그만입니다. 그 속에서 어떠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고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일종의 사회적으로 집단화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모습이요, 신앙의 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게 서 있는 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바르게 들을 때 바르게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 즉 예수의 구원역사를 사도와 선지자의 수고로운 기록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설명하시고 우리들에게 성령의 강력하신 역사하심으로 그 사실을 믿게 하시어,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벧후 1:1 ---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사도가 그 당시 전파하였던 설교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에 상도들에게 주어진 이 사도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동일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도와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 같은 믿음, 동질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사도의 믿음이나 성도들의 믿음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한 가지 목적, 즉 인간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회복하시고 승천하시고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진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한 구원의 언약을 아담의 다락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구약의 성도들에게 알리시고 언약 맺으셔서 마침내 그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여기서 의라고 할 때는 의리(義理)”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준수하시어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를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예수 안에 부르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는 성경말씀과 세상의 역사를 보아서 하나님의 열심히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으신 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의 일, 그리고 장차 하실 구원의 완성의 일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을 가리켜 사도 베드로는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방법적인 종교적인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결론

이 편지는 사도와 동일한 믿음, 보배로운 믿음을 성도들이 소유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듯이 우리의 육과 영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도 바른 믿음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믿음, 이것을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세상적인 것을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을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장식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얻는 신앙은 그러한 종류의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도리를 잘 듣고 연구하고 살펴서 그 진리를 온전히 신뢰할 때 얻어지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이 한해 이 보배로운 믿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그들의 전 인생을 걸고 온갖 고생을 마다하고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전달하며 변호하며 권면하는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과 의식 그리고 삶속에서 그러한 믿음이 있는 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베드로 사도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과 같이 보배로운 믿음 안에서 풍성한 영적성장을 이루시기를 소원합니다.

*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아멘(2005116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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