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12 자유인의 종된 생활(1) 벧전 2:13-25

無益박병은목사 | 2012.06.07 18:19 | 조회 7913

 

* 제목/ 자유인의 종된 생활 * 본문/ 벧전 2:13-25

 

 

오늘 우리 한 민족에게는 참으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바로 광복 59주년을 맞이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60 여 년 전 우리나라는 일제에게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온갖 수치와 천대를 받아왔습니다. 1945815, 이 날은 그 한 많은 통치를 종식하고 우리의 주권, 우리의 국토, 우리의 문화를 되찾아 온 천하에 자주독립 국가임을 선언한 날입니다.

 

 

 

이 날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가정을 버리고 온갖 고생을 하며 일제 통치를 저지하고 독립을 쟁취하려 애썼습니다. 독립운동입니다. 그들은 내 말을 잃어버리고, 내 글을 잃어 버려 쓸 수도 없었던 시절, 온갖 고초와 괴로움을 전 국민이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들쳐 나섰던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그들은 191931일 민족대표 33인이 함께 모여 31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조직적인 일제저항운동을 벌렸습니다. 이 운동에 기독교인들이 16명이나 참가하였습니다.

기미년 독립선언서

1919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 1919년 미국 대통령 T.W.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이 발표되자, 일제의 통치 아래에 있던 한국의 민족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각각 독립운동의 본격적 추진계획을 세웠다.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최린(崔麟) 등의 천도교측 중진들은 독립운동의 실천방법으로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국권반환요구서 등을 작성하기로 하고, 거족적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기독교·불교·유림(儒林)등 각 종교단체를 망라하는 동시에 저명인사들을 민족대표로 내세워야 한다는데 합의하였다. 한때는 김윤식(金允植박영효(朴泳孝) 등의 저명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여 이 운동을 포기하려고 하였으나, 고종의 붕어(崩御) 소식으로 배일감정이 절정에 오르자 이들은 다시 종교단체와 교섭, 이승훈(李昇薰) 등 기독교측과 한용운(韓龍雪) 등 불교측과의 제휴도 이루어졌다. 최린은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최남선(崔南善)을 추천하였는데, 지금 전하는 독립선언서 끝에 있는 공약3(公約三章)은 뒤에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측15, 기독교측16, 불교측 2명 등 33명이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 이 선언서는 228일부터 전국에 전달, 배포되었으며 거족적 3·1운동의 전개에 결정적구실을 하였다. 1762자로 된 이 독립선언서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적·평화적 방법으로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의 전개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초가 종식된 것은 19458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우리의 해방의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이들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에 의하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거나, 일본과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우리 민족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구원(해방)은 선물로 주어졌다! 이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섭리의 선물입니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수고하였습니다. 옥에도 갇히고 매를 맞고, 고문당하고, 형틀에 달려 죽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의 수고가 헛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을 염려한 나머지 온갖 어려운 고통을 감당하였기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해방은 이러한 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요, 결과입니다. 이것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구원의 역사가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아니 현대사까지 계산한다면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의 역사요, 둘째는 바벨론으로 부터의 귀환의 역사요, 세 번째는 현재 이스라엘 나라 건국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역사가 그 민족 스스로 쟁취한 구원의 역사가 아님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구원사실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원칙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자유인이 된 성도로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지를 살피는 원칙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의 현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과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떠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성도가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어떠한 삶의 원리로 살아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에 대하여, 사회생활에서, 가정에서 신자들이 취하여야 할 삶을 제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 핵심되는 말씀이 9절인 것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이 부르심의 목적을 기억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권고하시는 날(주님의 방문 때)에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1. 국가에 대하여 (벧전 2:13-17)

 

신자는 어떻게 국가에 대한 인식을 갖고 대하여야 할 것입니까? 요즘 한국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권력이 국민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유지만을 위하여 행동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시적으로 과거에는 봉기가 잦았고, 현대에 와서는 데모가 쉴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상당히 당황스럽게 까지 하는 면이 있습니다.

* 벧전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우선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왜 베드로는 통치자에 대하여 교훈하지 않는 것일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교인들 중에 통치권에 속한 성도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정한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악한 통치자이면 분명이 선악간에 다스려 가심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통치자는 이러한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에 그 권리와 자유를 악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종답게 주인이신 하나님의 공의가 물같이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게 하고(5:24) 진리가 바르게 시행되도록 섬겨야 할 것이다.

* 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성도는 나라를 지도하는 자들이 이러한 의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국가에 대하여 성도들이 취할 행동지침의 핵심은 주를 위하여 모든 세상의 제도에 대한 순복함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실행처이기 때문이다. 특히 13절의 직역은 모든 인간들(pathe anthropinei-human creature)에게인데, 이를 주석가들은 의역하여 질서 (order) 혹은 제도로 번역하였다. 개역 성경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로 번역한 것은 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NIVauthority instituted (권위를 가진 제도)로 번역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제도 자체에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복종의 여부가 달라 질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일을 성취할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논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사회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사회였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온갖 흉흉한 소문으로 성도들은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고 있던 때였습니다. 왕 예수숭배자(황제숭배), 형제 자매라 부름(근친상간), 성찬예식(살인)등등의 이유로 박해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분명히 베드로도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로마 사회에 대하여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벌리자고 하지 않고, 인간에 새운 모든 제도에 순복하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얼른 이해가 되지 않게 합니다. 핵심적인 것은 통치권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즉 통치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철저한 하나님주권사상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로마황제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통치의 위임을 받은(허락된) 자리에 있는 자리에의 그 권위에 대한 인정의 차원에서 복종이지 그 개인에 대한 경배 혹은 숭배를 하라는 것은 결코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교훈하는 원리는 이들 통치권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악을 멸하고 공의를 세울 책임을 위임받은 자(14)이므로, 성도들은 그의 통치권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13). 이러한 가르침은 바울이 롬 13:1이나 디도서 3:1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대동소이합니다.  

*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 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한편, 이는 곧 그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치리를 위임받은 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여 공의를 굽게 하고 진리를 온전히 드러내어 통치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순복 할 이유가 없음을 암시하는 교훈으로 보여집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혹은 불의한 통치권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통치의 방식을 하나님께서 허용(사용)하시는 것은 무지한 자들이 규모 없이 살아가는 것을 금하시고 질서 있게 선한 일을 이루며 살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얼마나 무질서하고 무식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요! 15절은 우리에게 성도가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하는 지를 잘 보여 줍니다.

* 벧전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그래서 주시는 지침은 16절 이하입니다.

* 벧전 2:16-17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Live as free man! 얼마나 귀한 교훈입니까? 그러나 그 자유를 Do not use your freedom as a cover up evil! 죄를 덮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제시하는 성도의 사회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원리를 제시하는 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알고 겪은 민족, 민중운동들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마카비 형제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중간기에 발생한 독립운동들

* 세례요한의 순교(불의에 항거하다가 죽음-언제이오니까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

*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있을 열심당원 (요한의 형제 등등)- 칼로 이 아이들을 죽일까요?

* 예수님 체포 당시의 베드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주님의 제재 -18,

*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 등등 행 1:6-7 나라를 회복하실 때--

 

이상의 예에서 보여준, 주님의 교훈으로부터 베드로는 정리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께서 정권이나 제도를 다스려 나가는 것으로 알고 모든 제도에 대하여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2. 사회(직장)생활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제 성도들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교훈합니다. 이 부분에서의 행동 원칙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입니다특별히 불신 주인과의 관계를 어떠한 자세로 대하며 일하여야 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18-25). 

 

 

 

이러한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감당할 것으로 가르친다. 여기서의 종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노예라기보다는 당시의 사회 구조상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상황에서 주시는 교훈입니다. 당시의 종 가운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전문직에 해당하는 직업들, 예컨대 의사, 교사, 건축사, 등도 해당되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사회 구조상 당연히 받아드렸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을 올바르게 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이 있었지, 당시의 그러한 노예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종은 전문직종의 사람들, 혹은 고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관심은 그러한 위치에 처하도록 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교훈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 벧전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우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고난의 문제입니다. 18절에 까다로운(harsh)” 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굽은(crooked),” “심술궂은(perverse)”이란 뜻이다. 즉 주인이 정당하지 않고 심술궂게 다루는 사람일 경우를 말합니다. 어떻게 대하라는 교훈일까요? 순복하라입니다.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곤란하게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애매한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애매한 고난을 잘 담당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행위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19).

* 벧전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러한 행위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차원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며 주인을 섬기고 애매한 고난을 감당하여 까다로운 주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종이 되어 그를 종으로 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주님의 종으로 자처하는 모습을 그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18절의 두려워함으로는 공경, 경외를 뜻하는 헬라어 phobos이다. 베드로는 이 말을 주인에게 두려워함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함의 차원에서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해야합니다. 베드로의 이 용어 사용의 수준은 모든 신자의 삶 속에 적용됩니 (3:2, 14; 참고 엡 5:33; 6:6). 즉 성도는 삶 속에서 상사에 대하여 하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 Selwyn " 19절의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는 양심의 기원을 의식하여(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이는 고난을 참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 가는 과정을 강조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행위이다.“

 

* S. 베네트로,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곳에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 들어섰다고 베드로는 외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일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께서 비추신 빛으로써만 그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도의 이러한 고난 중에서의 삶의 방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보여주신 삶의 방식을 그 모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섬김의 모본적 행동은 성도의 삶의 원칙이 되며, 구원받는 자가 따라 가야할 모범이 됩니다.

 

3. 예수의 모범을 따라서

 

1) 구원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1절의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라는 말씀은 성도가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고난을 위하여, 불의한 처벌이나, 선을 행하다가 매를 맞을 때까지도 인내하도록 부르심을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의인이 받게 마련인 고난을 당연히 인정하고 있는 저자의 입장을 볼 수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인의 부르신 그 자리에서 순종하여야 하는 종들임을 강조합니다. 

* E. P. Clowney, " 고난의 삶은 우리의 소명이지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고난은 우리의 소명인 것이다. 고난이 그리스도의 소명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소명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그를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구원의 복음에 참여하도록 고난을 받는 것이다. (3:1, 2; 4:13-16) “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구원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모범이자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의의 삶이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르는 것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데 있습니다(2:24).

 

여기서 (example)”은 그대로 따라가야 할 원형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그 원형을 따라간다는 의미의 자취(footsteps)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사야 53장에서 예언된 대로 사신 것과 같은 고난의 종의 길을 모든 신자들도 따를 것을 교훈하였습니다(21, 22-25).

 

2)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 (24)

*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모범이실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죄짐을 담당하신 분이시다.

* Leighton,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죄인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자기의 피를 흘려 죄인을 구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배경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벧전 2:22-25의 교훈은 레위기 4:4, 15 그리고 17:11이하의 희생제물에 대한 속죄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받는 종으로서 속죄물로 자신을 주신 희생제물이십니다(고후 5:21; 8:3).

 

*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 구원을 선언하시는 그리스도 (25)

*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로 인하여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 가운데서 헤맬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피로 대속하셔서 자신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은 십자가의 대속사역으로 이루신 것이며 이는 의인으로써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며 이로써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3:18).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대하여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4:1,2).

 

* 벧전 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결론   

이곳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911 사건으로 Terror와의 전쟁을 치룬다며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실, 피의 보복은 또 다른 피를 부를 뿐입니다.

*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 18:10-11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이 죄악된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까? 세상의 그들과 같은 의식과 생각으로 살면서 행동하면서 교인이라고, 주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그 놀라운 구속사역을 이루신 우리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여 그 분의 정신과 방법과 인생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교훈합니다.

*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어느 누구로부터, 어떠한 죄로부터 제재 받거나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자유인입니다. 아귀다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난장판과 같은 세상에서 나를 부르신 나의 주인을 생각합시다. 우리는 이 주인의 종으로서 그 분이 살아가신 대로, 그 분의 명령대로 세상과 싸워 이겨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정직과 성실, 희생과 봉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실한 의식을 가집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력에 대하여 담담한 자세로 대처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살아갑시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가끔은 답답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를 부르신 그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실히 신뢰하기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그 앞에서 아름다운 삶을 사시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주일설교 둘로스교회 20048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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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베드로전서 강해 16 선을 위한 고난의 삶 (2) 벧전 3:13-17 無益박병은목사 12303 2012.06.12 09:27
15 베드로전서 강해 15 선을 위한 고난의 삶 (1) 벧전 3:8-12 無益박병은목사 7564 2012.06.08 11:23
14 베드로전서 강해 14 가정의 기본 원리 벧전 3:1-7 無益박병은목사 7652 2012.06.07 18:42
13 베드로전서 강해 13 자유인의 종된 생활(2) 벧전 2:21-25 無益박병은목사 7839 2012.06.07 18:26
>> 베드로전서 강해 12 자유인의 종된 생활(1) 벧전 2:13-25 無益박병은목사 7914 2012.06.07 18:19
11 베드로전서 강해 11 하나님께 영광을 벧전 2:11-12 無益박병은목사 8654 2012.06.07 17:49
10 베드로전서 강해 10 성도의 기초와 사명(3) 벧전 2:4-10 無益박병은목사 8586 2012.06.07 17:36
9 베드로전서 강해 09 성도의 기초와 사명(2) 벧전 2:4-5 無益박병은목사 7927 2012.06.07 13:42
8 베드로전서 강해 08 성도의 기초와 사명(1) 벧전 2:1-5 無益박병은목사 7663 2012.06.06 11:44
7 베드로전서 강해 07 신자의 정체성(2):거룩한 삶 벧전 1:13-16 無益박병은목사 8103 2012.06.06 11:40
6 베드로전서 강해 06 신자의 정체성(1):거룩한 삶 벧전 1:13-16 無益박병은목사 9601 2012.06.06 11:34
5 베드로전서 강해 05 구원얻게 하는 믿음 (2) 벧전 1:8-12 無益박병은목사 9159 2012.06.06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