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07 신자의 정체성(2):거룩한 삶 벧전 1:13-16

無益박병은목사 | 2012.06.06 11:40 | 조회 8102

  * 제목: 성도의 자기 정체성 2    * 본문: 벧전 1:17-25

   

최근에 한국에서 도올 김용옥선생의 강좌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매우 인상 깊게 몇 번 보았습니다. 요즘처럼 서양 문화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며 이 강좌가 개설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저 편리성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살아갑니다.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내 마음이 편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만을 얻기 위하여, 자기가 같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식의 종교생활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종교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이어 성도로서의 신분에 대한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애썼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성도의 자기 정체성으로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1) 종말의식을 갖고 있는 자  2) 항상 준비성 있게 사는 자  3)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하는 자

 

오늘 계속하여 좀 더 구체적인 세 가지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1) 공의로우신 심판관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

2) 예수의 피로 구속받아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자들,

3)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거듭나 진실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1. 공의로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 (17)

 

1) 공의로우신 하나님

베드로는 요즘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과 축복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하나님은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 오늘날의 이러한 종교적인 추세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이단인 Marcion파를 만든 Marcion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 하나님은 잔인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비쳐진다. 그 하나님은 출애굽시켜 가나안에 들여보내기로 하고 그 출애굽시킨 1 세대 는 모두 죽여 버리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우리는 신약의 하나님,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사랑의 하나님인 예수님만을 섬겨야 한다.”

 

그래서 신구약에서 하나님의 공의성을 모두 삭제하고 Marcion 성경을 편집하였다. 그이 성경에는 구약은 물론 없고, 신약 중에서도 누가복음만을 복음서로 하고 요한 서신들, 그외 몇몇 신약서신들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이 성경의 정경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한 역기능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그 Marcion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인식하고 있으신가? 베드로는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가 아닌 공의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그는 말하기를,

*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는 하나님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하고 그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가 되어야 하는 지를 권면한다. 이렇게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 사도 베드로의 특징이기도 하다.

*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벧전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공의로우신 심판을 강조하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도 동일하시다.

*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고전 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는 또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과도 동일하다.

*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의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 37: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심판의 실제성(reality)과 최종성(finality)은 확정적이다. 그날에 우리 주님은 심판관이 될 것이다 (16:27; 10:42; 2:16; 14:10,12; 고후 5:10; 6:8).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구속받은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과 그의 온전한 순종의 공로가 만족할 만한 것임을 선포하실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심판은 사이비 사역자들에 대한 행위를 조사하여 그 사역의 무익함을 드러내시어 책망하실 것이고 (7:23; 25:41), 신실한 종들에 대하여 합당한 하늘의 상급을 주실 것이다(25:14-30;고전 3:13-15). 이러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자는 가볍게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2) 아버지 하나님(17b)

베드로는 우리 영혼의 심판만을 강조하여 겁을 주려고 기록하지 않았다. 우리의 심판 주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고 재판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그 분은 우리를 낳으시고, 그 분의 몫을 상속할 자로 부르셨다. 그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며, 완전하시고 무궁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바울도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강조하여 말씀하기를,

*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공의로움에 수준에 이르도록 요구하신다 (, 23:12-14).

 

2.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18-21)

하나님은 우리가 그이 거룩함을 닮은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신다 (1:14-16). 문제는 성도가 어떻게 그의 거룩하심에 동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베드로는 이 점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기에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여 당신의 소유로 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분의 거룩함을 알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면서 두 가지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a. 사랑-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불하신 값에 대한 인식을 요구하는 감정

b, 두려움-하나님의 이 공의적인 사랑시행하실 때를 의식함에 따른 감정

 

만약 하나님의 이 고귀한 희생적 사랑을 금이나 은과 같은 없어질 것과 비교하여 하찮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그 어떤 사욕을 추구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간, 아나니아와 삽비라) (참고 행 8:20). 

 

속전(redemption) 즉 구속이라는 개념은 어떤 개념인가? 대신 지불한다는 개념이다. 마치 Recycling 재료를 가지고 고물상에 가면, 돈으로 바꾸어 주듯이, 이미 지불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혹자는 오해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사로잡힌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그 마귀에게 대신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살리셨다.” 그 죄 값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번도 사탄에게 죄의 빚을 지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 구속의 개념은 너무나도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기에 비교하여 설명한다.

*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1) 가치적으로/ 유한한 것으로 되지 않은 구속

없어질”-pthartos -decay, corruptible, perishable -금과 은은 옛적부터 돈으로 사용하여 죄인을 사고파는데 유용한 것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유한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하며 완전하며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베드로는 이러한 속전금의 막대함을 비교하여 가르친다. 즉 어떠한 죄라고 할찌라도 예수의 피는 다 사죄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2) 효과적으로/ 조상의 유전에 따른 망령된 행위로부터의 구속

또한 이 사죄의 피는 단순히 범죄한 당사자의 것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깊게 조상으로부터 유전되는 죄성으로 인하여 오염된 것까지도 해결해 주는 구속이다. 이는 망령된 (헛됨), 우상 숭배로부터의 사죄이다(8:19; 16:19; 32:21).

 

베드로는 이렇게 복음과 조상들로부터 유전 받은 망령된 삶의 모습을 대조시켜 그 이교적 문화의 파괴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고 이로부터의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과 소망을 강조해 주셨다. 이는 성도가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인 혼동과 파괴와 무의미로부터 조화와 질서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의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것임을 가르쳐준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영광스러운 사죄와 구속받은 성도의 의미를 풍성히 강조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충족시키시며 자신을 우리의 죄 값으로 단번에 드리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은 마지막 때에 다시 나타나셔서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이다.

*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렇게 우리의 죽었던 생명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즉흥적인 그 어떤 행위가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가운데 되어진 것임을 강조하여 가르친다.

* 벧전 1:20-21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하나하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시고 구속역사를 이루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이 엄청난 구속 사건을 계획하시어 지금까지 끈질기게 사행해 오신 것이다. 이는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오직 이 고마우신 하나님만 믿음과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함이시다.

*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3. 성숙된 하나님 사람의 삶 (벧전 1:22-25)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속죄함을 받아 거룩해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헌신으로 이웃과의 깊은 사랑을 나누어 살게 된다. 이러한 성숙된 하나님의 백성은 그 삶의 원리를 하나님이 말씀 속에서 거듭나고, 말씀 속에서 삶의 원리와 원동력을 공급받아 살아가게 된다.

 

1) 진리에 순종합니다. (22)

*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 거룩의 권고(1:13)는 구속의 확신(1:18-21)을 가진 자는 그 구속의 진리에 대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알 때, 말씀 속에서 얻게 된 은혜와 사랑에 따른 구체적인 헌신이 있게 되어진다. 이는 이 진리를 따르는 형제간의 사랑의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영혼이 깨끗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다. 다음 그 말씀에 따른 자기 성찰과 반성과 헌신을 통하여 거짓됨이 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며 순수하고 열정적인 교제를 하게 된다. 이는 인위적인 사랑의 행위가 아닌, 진실하고 진정으로 하는 사랑이며, 자신을 드리는 사랑의 행위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죄악된 삶의 모습이 거룩함에 이르게 되었음으로 고백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행위이다. 참으로 바르고 확실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는 바로 이러한 온전한 자들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가운데서 이루어 질 것이다.

2) 이 말씀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23)

 

a. 생명주시는 말씀

정결매체로 베드로가 물이 아니라, 말씀임을 지적하고 있는 사실은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성도의 새로워짐은 형식적인 세례절차가 아닌,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이 말씀은 썩어질 말씀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생명주는 출산의 능력에 비교하여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며, 능력적이다.(33:6,9; 고후 4:6; 17:17-1:37)

  

b. 항상 있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온전히 항상 역사하는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을 창출하는 이 말씀은 성령의 생명으로 인간의 유한성에 반하여 영원함을 나타낸다. 베드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을 이사야 40:6-8에서 인용하여 항상 있는 말씀임을 부각시킨다.

  

c. 전달된 말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은 역사 전통성을 갖는다. 즉 이 말씀은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하여 이미 받아 전달된 말씀인 것이다(참고, 2:20). 죄인은 이로서 구원을 얻는다(고전 15:1-3).

 

3) 성도의 삶과 말씀

마치 태어나 어린 아이가 모유를 잘 먹고 자랄 때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이 거듭난 성도의 성장도 참된 말씀을 정상적으로 섭취함으로 이루어진다. 반듯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사모하십시요. 이는 세상적인 습관과 행실로부터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배워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2:1-2). 그러기에 이 말씀은 순전(pure), 오염되지 않는 우유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것이며, 거짓되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신자의 성장에 있어서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은 필수요소입니다. 이러한 맛을 보는 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맛본 자들이며 (34:8), 이는 주님을 만난 기쁨을 경험한 자들이다. 이는 영적 생명의 유일한 근거요, 영양분이며 원동력이다.

 

결론

오늘날 참된 성도를 만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소돔 고모라가 의인 5명이 없어서 멸망당하였음을 기억하라. 암흑의 시대에 한나와 같은 신실한 여인이 있어서 사무엘을 낳았고 이 사무엘이 국가와 민족을 구원하였던 것을 기억하라. 이 악한 세상에서 한 사람의 바른 성도가 있을 때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변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서의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식하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실천하므로 하나님을 날마다 맛보며 경험하며 누리는 삶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 34:8-9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주일설교 2004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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