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정용섭목사와 박영선목사 대담

無益박병은목사 | 2015.07.25 14:54 | 조회 10480

“하나님께서 은혜 주신다는 배짱 갖고 설교하라”

기독일보 이대웅 기자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22, 2015 10:01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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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가 묻고, 박영선 목사가 답하다

▲박영선 목사가 대담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설교의 대가' 박영선 목사(남포교회)와 '설교 비평가' 정용섭 목사(대구샘터교회)가 21일 오후 서울 잠실동 남포교회에서 세 번째 대담을 개최했다. 두 목회자는 지난 5월 11일과 6월 4일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설교란 무엇인가', '한국교회 설교,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두 차례 대담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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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차례와 달리, 이번 대담은 사회자 없이 진행됐다. 정 목사가 질문하고 박 목사가 답변하면, 다시 정 목사가 보충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이날 두 목회자는 '설교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큰 주제로 '설교자가 된 계기', '설교자의 소명이란', '설교자의 지성과 영성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좋은 설교자 양성을 위해 교회와 신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묻고 답했다.

박영선 목사는 청중들을 향해 "어딘가 분명해지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막막한 그 사이에 있을 텐데, 여러분들의 자리는 길 잃은 자리가 아닌 두 벽의 사이, 그 안에 들어 있다"며 "못 알아 들으리라 예상하고 있지만, 마음껏 이중창을 하듯 (두 사람이) 성경 속에서 같은 고백과 소원들을 이렇게 저렇게 관점을 달리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가운데 넓이와 깊이와 크기를 체험하고, 이미 그 속에 (여러분들이) 있음을 아는 귀한 시간 되시길 바란다"고 서두를 열었다. 다음은 정용섭 목사의 질문과 박영선 목사의 주요 답변 요약.

정용섭 목사(이하 정): 성서와 강해, 텍스트에 집중해 오셨는데, 다 열리고 아셨는지, 아직도 알 것과 궁금한 것이 많으신지.

박영선 목사(이하 박): 언제부턴가 설교에 컨텍스트(context)와 텍스트(text)라는 단어를 도입하게 됐다. 우리 말로 적당한 단어가 없었다. 적당해서 쓰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뜻이다. 텍스트를 알기 위해선 컨텍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내용물이 담겨 있는 그릇 같은 것이다. 그릇이 내용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용물이) 그릇에 담겨 있고, 더 가면 둘이 분리되지 않는다.

텍스트를 찾는다고 하면 보통 한국이나 교회사의 유산에서는 형식과 진심으로 분리돼 있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진심이 있어야 했다. 형식의 반대어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한국적 유산에서 알게 된 것은 그 반대말이 진심이었지 내용이 아니었다. 내용을 지칭할 단어가 없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사심 없이'이다. '죄를 버리고'라는 부정적 표현으로밖에 내용을 설명할 길이 없다. 회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라. 구체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긍정적이고 내용을 딱 지정해 주는 단어나 개념이 없다.

이처럼 텍스트를 논하려면 성경이 어디에 담겨 있는지를 봐야 한다. 텍스트는 시간과 공간에 담는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문학적 장르가 역사서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 민족의 역사 속에, 신약이라는 교회사 속에 텍스트를 담는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컨텍스트이다.

▲박영선 목사는 "모세를 세운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였지, 모세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 기독교가 증언하고 싶은 게 이것인데, 우리는 세상이 인정하는 것과 혼동돼 유능해지고 검증받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컨텍스트를 보면 이스라엘 역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못난 짓들,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현실이 등장하는데, 다 컨텍스트이다. 구약 기록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유대는 이렇게 망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잡고 놓지 아니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신약도 잘한 이야기는 없고 못한 이야기만 있다.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한 운명이 되지 않게 우리를 붙들어 매는 어떤 힘을 성경은 '인격자, 창조자, 구원자, 심판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분이 우리 인생과 역사와 세상에 대해 목적을 갖고 있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텍스트이다.

그 텍스트가 기적으로, 꾸중으로, 때로는 자유로 주어지지만, 이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인격자'이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이런 식의 설명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표현이다. 추상적 단어가 아니라 인격이다. 윤리 중에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요구하시고 당신이 만드셨고 그것을 우리의 영광으로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텍스트이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어떤 명분도, 신비도, 가치도 다 거짓되게 되는 것이고, 이를 구별해 내는 것이 설교자의 몫이자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정: 박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회중들은 알지 못하지만 전하고 싶은 경험들을 하셨는지, 지금도 준비하시면서 그런 느낌이 오시는지.

박: 말씀드린 대로 성경의 장르는 역사이고, 역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컨텍스트를 주심으로써 컨텍스트 자체가 텍스트는 아님을 증명하고, 그 텍스트는 컨텍스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종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순종이 하나의 덕목으로써 가치를 갖고 명분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를 담아서, 시간과 공간을 깨신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적이다.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를 이렇게 이해해 보라. 시간과 공간을 주고, 전후와 좌우가 있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체화시키셨다. 우리의 경험을 구체화시키지만, 구체화된 것이 한계가 아니며 그 속에서 무한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질문하는 정용섭 목사. ⓒ이대웅 기자

성경에 시도 때도 없이 기적이 나오고 예언이 나온다. 기적은 인간적 파격이요, 예언은 시간의 파격이다. 동화를 보면 저주를 걸기도 풀기도 하는 마법이 등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피엔딩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피엔딩을 만들 수 없다는 걸 인류는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확인했다. 시간과 공간에 붙잡혀 있어 구체적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를 넣어 경험케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마음대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신다.

동정녀 탄생을 보라.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피조물을 만드신, 모든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 시간 속에 들어오시는데, 시간 속에 들어 있는 피조물의 뒷순서로 들어올 수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처녀 탄생을 믿느냐의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가 뒤에 들어오는지를 봐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어떤 문제의 해결, 주문, 기술이 아닌 '성품'으로 표현하신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함이 풍부하신, 그것이 텍스트이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도전과 위협과 자책 등이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만든다. 이것이 아니면 답을 찾을 수 없다. 깨우치고 나면 매우 놀랍고, 두려움을 갖게 되고, 경이롭다.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 우리를 붙들고, 우리의 존재와 인생을 그런 감격과 경외심으로 붙잡으신다.

정: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만, 설교자가 되신 계기와 소명이 있으신지. 저는 그것이 한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소명이 지속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설교를 준비하면 성서의 텍스트가 제게 말을 건다. 그걸 소명이라 생각하고 전한다. 그냥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해야 말을 건다.

박: 제게는 예수를 믿은 게 하나의 유산이다. 어느 날 철이 들고 보니 굉장히 많은 부분을 유산으로 받았음을 알게 됐다. 저는 모국어처럼 예수를 믿었다. 외국어는 문법부터 배우지만, 모국어는 그냥 듣고 말한다. 예수를 중간에 믿은 사람들과 유산으로 가진 사람들의 사명은 다른 것 같다.

저는 지도를 제작하기로 했다. 믿고 난 다음 어떤 길을 가게 되는지, 중요한 길목마다 랜드마크(landmark·주요 지형지물)를 세우고 싶었다. 그 랜드마크는 제게 있어 대부분 질문으로 나왔다. '어떻게 신앙생활이 의심 속에 있는가? 한계 속에 있는가? 절망 속에 있는가?' 그런 것들로 스스로의 길을 표시해 두는 것이다. '믿으면 만사형통하다'는 말은 신앙을 시작할 때 하는 말이다. '이 길을 가라. 복된 길이고 결국 만족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라는 시작 말이다. 우리는 과정 속에 묻혀있는 줄 알아서, 힘들거나 어려운 길을 가면 '길을 잘못 들었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면서 자신을 확인할 안내판이 하나도 없었다고 이해한다.

비유를 들자면, 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 어디나 서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류가 흐르게 하는 송전탑 같았다. 혹은 신호등이나 표지판 같다고 생각했다. 소명이나 말씀하신 대로 획기적인 전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쫓기듯이, 죽을 둥 살 둥 뛰어왔다. 하나님께서 생각할 틈을 거의 주시지 않았다. 위로가 되시길 바란다.

정: '소명'을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다. 개신교는 모든 삶을 소명이라 생각하는데, 목회자는 설교자로서 소명을 도구화하는 면이 없지 않다. 설교 행위에 존재론적으로 푹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설교를 통해 감동을 시키는 것 자체가 도구화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박: 소명은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방향과 균형, 분별과 균형 등을 지시하며 안목을 갖는 소명이 있고, 직접 군홧발로 밀림을 뚫고 가야 할 곳을 자기 발로 가는 소명이 있다. 신학을 한다면 당연히 안목과 지도력을 갖도록 신학교육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각각 교수님들이 자기 과목만 열심히 가르친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소명이라는 게 매우 모호한 감정적 덩어리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각오, 정열 같은 단어 아래 보병처럼 '돌격 앞으로!' 하면서 가는 것도 중요한 소명이라 생각한다. 그때 그들이 갖는 설교의 자격과 조건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현실이다. 안목이 없을 때, 보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군화와 양말이다. 눈은 필요한 줄도 모른다.

▲대담중인 박영선 목사. ⓒ이대웅 기자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자신이 당한 자리에서 자기 현실에 맞지 않는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대로 살라'고 고함지르는 이유는, 지난주 내내 본인이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웃음). 그 사람이 그렇게 외쳐서 은혜가 되는 것이다. 본인이 가진 어떤 괴리감에 대한 분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가장 구체적이고 거시적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것 안에 일하신다고 믿는다. 그 안에서 얼마나 진지하고 깊이 사색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자 큰 명예이다.

보통 목사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미칠 것 같다'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 '미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배짱을 갖고, 성경을 본문으로 택한 이상 무슨 소리를 해도 된다. 나중에 주석을 보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밖에 없었다는 게, 바로 제가 걸어온 길이다. 훨씬 멋진 대답을 바라고 질문했을 텐데,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더 좋지 않은가(웃음).

정: 설교학 강의도 그렇게 하시는지.

박: 중요한 표현은 하나 있다. 당신이 준비한 것, 다 했으면 내려 오라. 결론을 강요하거나 반복하지 말라.

정: 목사님은 거시적 안목으로, 섭리 안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하시는 것 같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똑바로 하라, 그렇지 못하려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 때문에 성도가 죄책감에 빠지거나, 적개심이 많아지거나,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대한 공격성이 생기면 곤란하지 않은가.

박: 사람이 가장 위대한 것은, 자기 주제를 용인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들의 약점은, 사람들이 왜 훌륭하지 않은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저는 '사람들은 대단하지 않다, 하나님의 목적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그쳐야 맞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해 오셔서 아시겠지만, (설교해도) 효과가 별로 없다. 저도 안 지키는 걸 평신도들이 지킬 리가 없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히 가야 할 자리이다. 적어도 기본은 되어야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정 목사님께 가서 꾸중을 들으시고, 제게 와서 위로를 받으시라(웃음).

정: 기독교는 부활 공동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만 보이시고, 다른 이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상식적이라면 대제사장 가야바나 예루살렘 군중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살아났다'고 했어야 그 권위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살아났을 텐데, 비밀스럽게 현현하셨다. 부활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깜깜한 것 같기도 하다.

박: 예수 믿는 것은 나이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 나이에는 그때 믿은 이해가 있고,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중에 원숙한 자리에 가는 것이다.

신앙 세계에서 모두 아는 이야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본다. 누누이 강조했듯, 욥기는 욥이 의인이라는 설정으로 출발하는데 세 친구는 계속 잘못했다고 말한다. 욥기를 보면 그들의 말이 다 옳다. '어떻게 잘못을 하지 않고도 어려움을 당하느냐? 그러면 하나님이 잘못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설정은 욥이 의인이다. 욥은 그래서 '내가 죽겠습니다'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가서 우리가 준비하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먹는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정 목사님이 물으신 것은 제가 답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그것을 열매와 보상으로, 경이와 놀라움으로 만드실지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저는 그 하나님이 성실하시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오죽 하면 제게 물으시겠는가(웃음).

▲정용섭 목사의 질문을 박영선 목사가 청취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정: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청중들이 있는 삶의 자리에서 중요한 이슈들이 몇 가지 있다. 목회자들이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설교의 방향도 달라진다. 첫째, 분단 70년을 맞은 남북한 문제와 통일에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둘재, 명왕성까지 인공위성이 가는 데 9년 걸렸다고 한다. 외계인이 있다면 기쁘지 않을까. 셋째, 성적 소수자 문제이다.

박: 분단 문제는 뜻밖에도 성경에도 있는 역사적 현실이다. 이스라엘의 분단이다. 에브라임을 대표로 하는 열 지파가 유다 지파의 독주에 제동을 걸다 합의하지 못하고 북왕국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 같았지만, 따지고 보면 권력 투쟁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옳은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통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성이 없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큰 질문을 던져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빼앗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는 능력 밖이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가까이에 자식과 이웃 등 도망갈 수 없는 현실이 있다. 교회 와서 신앙생활 잘 하시고, 회사 가면 멋있는 회사원이 돼야 한다.

외계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동심이 있다는 것 같은데, 저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동성애는 반대한다. 제 반대는 조금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남녀가 성적으로 분명 다르다. 동성끼리 결혼할 수는 없다. 동성끼리 좋아하라. 그러나 이성을 대신해 결혼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보통 이야기하는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다. 합법화하려 하지 말고, 숨어서 죄책감을 갖고 하라. 우리도 늘 정직하게 살지 않는다. 창피해해야 한다. 그건 자유도 권리도 아니다. 허락받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남포교회에서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정: 개인은 아무리 변화시켜 봐야 안 된다는 입장이신데, 목사님 말씀의 기본은 성화이다. 성화의 요청과 인간의 변하지 않는 모습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박: 성화는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모두 이해했다. 그래서 계속 자책하는 것이 되었었다. 그게 아니라 싸우는 것이다. 본인에 대해 성경으로 증언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제거해 버리는 게 아니라 도전을 이겨내고 시험과 포기, 연약함과 핑계, 비겁함 등을 극복하면서 매일 훈련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험은 원래 학생들이 얼마나 알아듣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석차가 되고 말았다.

'성화'라는 표현도 그렇다. 그런 고민과 자책과 절망 속에 휩싸여 있다는 것은 그 길에서 도망가지 않고 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더 적극적으로 일하시니 결국 이기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성화이다. 성화의 다섯 가지 교리에 대해 싱클레어 퍼거슨이 편집한 <성화란 무엇인가(원제 Five views of sanctification·부흥과개혁사)>라는 책이 있는데 일독을 권한다. 성화에 대해 루터교는 칭의를 깊이 이해하는 것, 웨슬리 쪽은 헌신과 완전한 삶의 경지로 가는 것, 오순절에서는 성령 충만, 신비주의는 더 깊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개혁주의는 예수님과의 연합이라고 각각 말한다.

이들 중 '예수님과의 연합'이라는 개혁주의 성화론은 동문서답처럼 들린다. 이를 저는 부부같이 이해한다. 부부는 하나가 되어서, 배우자가 불편해 하면 내가 좋은 것도 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TV 시청이다. 아내가 보자는 걸 보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제일 좋다. 예수님과의 연합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결정과 선택에도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엔 혼자 살았는데, 믿고 나면 우리와 결혼하시고 우리를 지도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기꺼이 함께하시겠다는 놀라운 설명이다.

우리의 선택에 무한한 자유가 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신감에 대하여, 신앙생활을 통해 자꾸 깊어지는 것이다. 기꺼이 자기 주장에 상대방을 끌고 들어가는 사람과 기꺼이 양보하게 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대접하여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기쁘다는, 그것이 저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강렬한 제도나 규칙으로 묶는 것을 거부하게 만든다. 전제를 이해하고 들으셔야 한다. 아무래도 좋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놀라운가에 대한 이해를 갖되, 우리가 어느 하나만 선택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교파에서 강조하는 것을 두루 섭렵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담 마지막 박영선 목사의 기도에 함께하고 있는 성도들. ⓒ이대웅 기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엄청난 이야기이다. 우리가 법이나 원칙을 논하면서, 그것이 궁극적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 제 질문은 이것이다. '인생과 존재의 운명과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내 손에 있는가? 운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있는가?' 질문해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내용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우리는 지시하는 단어를 갖고 있다. 하나님이 비는 대상, 보상해 주는 대상일 뿐이고, 우리 존재의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시라는 말을 끝까지 못 알아듣는 것이다. 심판자라는 것은 상벌을 주신다는 개념보다 훨씬 더 큰, 궁극적 가치를 채우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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