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Perkins 설교 스바냐 2:1-2에 대한 신실하고 평이한 해설 번역 원광연목사

無益박병은목사 | 2014.12.12 20:41 | 조회 9203

스바냐 2:1-2에 대한 신실하고도 평이한 해설 William Perkins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백성아1) 살필지어다, 너희 자신을 살필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2:1-2)

 

스바냐서 1장에서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세 가지 범죄를 책망합니다. , 우상숭배와 사기(詐欺)와 잔악함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또한 그들의 특별한 몇 가지 죄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21-3절에서 선지자는 회개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회개해야 할 특별한 이유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회개의 가르침을 제시하면서 선지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첫째로 1절과 2절에 나타나는대로 완고하여 회개치 않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며, 둘째로 3절에 나타나는대로 그보다 좀 나은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1절과 2절의 골자는 완고한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두 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회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1. 그들이 해야 할 의무인데, , 살피라는 것입니다.

2. 누구를 살펴야 합니까? , 너희 자신입니다.

3. 누가 살펴야 합니까? 곧 유다 백성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백성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이 1절에 나타납니다.

4. 2절에서는 회개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 이미

그들에게 지정되어 공포된 심판을 하나님이 시행하시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회개를 해야 할 한가지 강력한 이유가 이 말씀 뒤에 감추어져 있고, 또한 앞의 네 번째 사실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오로지 그 시행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그 명령이 시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가 되어 하나님의 공의의 광풍에 날려가 버릴 것입니다.

 

1. 살피라

 

1) 회개하라

이처럼 살피는 의무에 대하여 관찰할 사실은 첫째로, 성령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치 않으시고 그 대신 자신을 살피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말씀을 회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사실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지 않고서는 진정하고 건전한 회개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먼저 자기를 알고 자기 자신의 처절한 비참의 상태를 알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회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살피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기 자신을 꿰뚫어 볼 수도 없고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혜의 시작은 바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살피고 시험하여 자기 자신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살펴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처절한 상태를 바라보면,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길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산골짜기와 언덕을 지나가거나 좁은 다리를 건너거나 혹은 위험하고 가파른 바위를 넘는 사람은 무서워하지를 않습니다. 왜요? 위험이 눈에 보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아침에 다시 데려다가 지난밤에 건넜던 그 좁은 다리를 보게 해 보세요. 밑에는 물이 세차게 흘러가지요, 밑바닥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지요,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지난 밤에 지나온 위험한 산과 바위들을 눈으로 보고나면 지난 밤에 자신이 얼마나 겁 없이 행동을 했었는지 오히려 의아하게 여깁니다. 지나간 밤의 일들이 너무도 끔찍하여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같은 길을 절대로 다시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 이제 산꼭대기에서, 가파른 언덕의 꼭대기에서, 험준한 바위들 위에서, 밑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고 세찬 물결이 흘러가는 좁은 다리 위에서 보니, 전에 보지 못했던 그 극심한 위험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 그러니 자기가 그렇게 위험한 길을 알지도 못하고 지나왔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며 또한 기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밤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찌 어찌해서 지나왔지만, 밝은 대낮에는 도저히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좀 멀기는 해도 안전한 다른 길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본성 그대로 부패한 상태 가운데 있는 죄인도 - 우리가 그런 상태로 나서 그런 상태로 자라왔습니다 - 그 얼굴에 수건이 드리워져 있어서 아무 것도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죄에 대해 내려진 저주가, 지옥과 정죄(定罪)가 그를 삼키려고 하고 있는 데도, 그는 전혀 보지를 못합니다. 항상 죄 속에서 살고 있으나, 그는 지옥의 아가리 속에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위험을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죄를 거부하지도 않고 온갖 형태의 죄 속으로 줄달음질칩니다.

 

그리고 그 완고(頑固)의 밤과 무지(無知)의 안개가 눈을 가리워서 이 인생의 좁디 좁은 다리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미끄러지면 즉시 저 밑바닥이 없는 지옥 구덩이로 빠져 들어갈 수박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그 눈을 열어 주시고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자신의 진정한 처지를 생각하게 하시면, 그 사람은 이 좁은 인생의 연약한 다리를 보게 되고 자기가 정죄(定罪)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를 깨닫게 되며, 또한 자기의 죄에 합당하게 지옥이 환히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가 험준한 바위이며, 지옥이 그 밑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생이 좁은 다리이며, 그 다리 밑에 정죄가 세찬 물결이 되어 흘러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의 비참한 상태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자기를 지옥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기를 구하게 됩니다. 스스로 부패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그렇게도 자신 있게 담대하게 걸어갔던 자기의 모습이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게 여겨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한 자기가 걸었던 길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생기고, 그 위험에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리고 좀더 거룩한 길에, 좀더 안전한 길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식해서 그처럼 어처구니없이 대담했었고 소경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겁이 없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제 이 사람은 위험을 눈으로 봅니다. 그러니 다시는 똑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악함과 죄의 위험성을 살피고 꿰뚫어 보는 것이야말로 회개의 첫 출발이요,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인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믿음과 회개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미 믿고 오래 전에 회개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은 합니다만, 시험해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온통 입에 발린 믿음과 말 뿐인 회개 밖에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믿고 회개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상태에 대해서 소경이요 무지합니다. 자기들의 참 모습을 알지를 못합니다. 그저 세례를 받았고 교회 생활을 해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는 아주 선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과 화목한 적도 없고, 자기들 속에 있는 죄악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회개한 일도 없는 데 말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고,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서 살펴본 일도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살펴 보았다면, 자기들에게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부패가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세상에서 정말 어려운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믿는 일이나 회개하는 일이나 시작도 하지 않았고, 회개에 이르는 은혜의 첫 걸음도 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여기 선지자가 가르치고 있는 이 교훈, , 자기 자신을 살피하는 교훈을 아직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세심하게 살피라

이제 더 나아가서 두 번째로, 이 단어의 의미를 좀 더 살펴봅시다. 이 단어는 세심하게 살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큰 집 안에서 금 조각이나 보석 조각을 잃어 버렸을 때나 광석 가운데서 아주 작은 금을 찾을 때에 하듯이, 그렇게 세심하게 찾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참된 회개와 회심을 할 때에는 생활 속에서 지은 눈에 띄게 드러나는 큰 죄들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죄들까지도 찾으며 우리의 은밀한 잘못들과 부패 거리까지도 찾아낸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어떤 잘못들은 사람의 본성에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다른 큰 죄들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그것들까지 묵인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는 죄인은 그런 것까지도 살피는 법입니다. 마치 아주 유능한 경찰이 숨어다니는 반역자를 찾아 이곳저곳 은밀한 곳들을 뒤지듯이 말입니다. 마음을 샅샅이 뒤져서 자기 마음이 특별히 기뻐하는 은밀한 죄악들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어떠한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냥 묵인될 수 있을만큼 작은 것은 없고,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든 죄악은 하나님의 위엄을 대적한 반역 거리들로 여겨서 다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습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큰 죄악들은 아주 작은 죄들로 여기고, 작은 죄들은 죄가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아니, 조금만 습관이 되면 큰 죄악들이 아주 사소한 죄로 혹은 아무 문제도 아닌 것으로 되어 버려서 결국 사람들은 크고 심각한 죄악도 의식하지를 않게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기를 살펴도 아주 얄팍하게 살피기 때문에 자기에게서 죄라 할만한 것을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갖가지 분류법을 만들어내고, 온갖 약화시키는 법과 조건을 붙이는 법, 변명 거리를 붙이는 법을 만들어내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들에게 갖다 붙여서 그것들을 분류시킵니다. 그리하여 극심한 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연 죄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큰 범과(犯過)인데도 그것을 작은 문제로 취급해 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악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묵인해야 할 필요악(必要惡)이나 불편 사항 정도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해 반대하면 아주 신기한 바보쯤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입니다.

 

35년 동안이나 설교를 듣고도 여전히 무지한 상태에 있어도 그것은 죄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섬기는 일도 죄가 아닙니다.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도, 습관적으로 헛맹세를 가는 것도, 신앙을 조롱하는 일도,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도 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도, 설교자를 정죄하는 일도, 부모께 불효하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의복으로 사치하는 것도, 과식하는 것도, 늘 술에 취해 있는 짐승같은 짓도, 간음도 죄가 아닙니다. 아니, 시기나 사기, 강탈, 추악한 뇌물 공여, 그리고 그런 죄의 어미라 할 수 있는 탐심 같은 것들도 죄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대들보와 같은 큰 죄악들인데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깎아내고 갉아내어서 티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면 그런 죄들이 그렇게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색칠을 해서 전혀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큰 죄들을 찾아내지 못하다니, 그런 살핌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산처럼 거대한 것도 보지 못하는데 두더지 언덕이 다 무엇입니까? 그렇게 큰 들보를 분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티 같은 것을 생각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러니 진정한 판단도 없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살핌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참된 회심자라면 자기 마음을 철저하게 살펴서 하나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마치 유능한 재판관이 반역자를 찾아내어 잡아 들이듯이 그렇게 자기 마음을 살피는 법입니다.

 

그저 표면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세심하게 살펴서 한 모퉁이라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를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 죄는 무한히 크다고 생각하며 작은 죄는 큰 죄로 여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에 합당하지 않을 만큼 하찮은 죄는 절대로 없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사 우리 모두를 즉시 지옥에 던져 넣으시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며, 거룩한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3:22)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자기의 양심을 살펴서 스스로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살피시게 되면, 그의 외식과 위선이 여지 없이 드러나게 되고 그의 벌거벗은 모습이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환히 드러나게 되어 영원토록 부끄러움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너희 자신을 살피라

셋째로, 선지자는 살피라고 말씀하면서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너희 자신을 살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살피라는 말씀을 반복하심으로써 마음과 삶을 진정으로 살피는 일이야말로 정말 중대한 일이며 특별히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거론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두 번째 다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그냥 무관심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고 아주 절실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살피는 것이 회개에서 행해져야 할 중대한 의무이며 참된 은혜의 기초요 시작이라는 사실이 이로써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방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환란과 시련을 보내사 그들을 시험하고 살피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살피면, 하나님은 그의 공의로우신 판단으로 그들을 살피시는 일을 삼가십니다. , 이렇게 자기를 살피는 일이 모든 참된 은혜의 시작이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렇게 안타깝게, 그렇게 강력하게 권고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는 필요한 교훈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 순전한 양심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이 그렇게도 절실한 문제라는 것을 보았으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밑바닥까지 우리의 길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살피는 일이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이외의 다른 어떠한 것도 이 일에 도움이 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떠한 수단을 써서 살피게 되면, 오랜 동안 살피고 또 살펴도 회개할 거리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귀에게 물어 보세요. 그러면 마귀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고 탁월한 상태에 있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니 이 정도면 천국에 확실히 들어갈 수가 있다고 속삭일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 사람이 그런 상태로 죽으면 자기 소유가 될테니까요 - 계속해서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안전(安全)의 요람에 누워 잠자는 상태에 있도록 계속해서 이런 자장가를 불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우리 자신의 마음과 본성에게 물어 보세요. 그러면 그것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줄곧 하나님을 믿었고 사랑했고 경외했으니 만사가 잘되고 있고 안전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 보세요. 그러면 그들도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한술 더 떠서, 너희는 아주 좋은 친구들이고, 곧이곧대로 살며 맹세나 음주나 좋은 교제나 오락 같은 아주 좋은 소일거리들을 아주 혐오하는 꽉 막힌 이상스런 바보들 스무 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속된 삶이 그들이 보기에 아주 바람직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들과 똑같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세상의 모든 인간의 학식에게 물어보아도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해주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오직 하나님의 율법만 남는데, 이 율법의 빛이 우리의 마음의 어둠을 밝히며 또한 이 율법의 공의가 우리 본성의 불의와 부패함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살필 때에 하나님의 율법에게로 나아가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세 가지 사실

그러나 이 처럼 자기를 살피는 일에서 더 나은 도움을 얻고 또한 하나님을 찾는 심령에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게 되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제대로 도움을 받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진리에 속한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우리 자신의 처지를 볼 수도 없고, 아무리 우리 자신을 살펴도 아무런 유익도 없고 그저 계속해서 이 죄에서 저 죄로 옮아 다니다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첫 번째 사실은, 아담에게서 나온 사람은 누구나 아담이 지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먹은 아담의 죄가 바로 여러분의 죄였고 아담 뿐 아니라 여러분이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지었으며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죄책이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대답해 주시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그 죄책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온갖 죄를 다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를 살피는 사람이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할 세 번째 사실은 아담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든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예외란 없습니다. 누구나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 이 세 가지 사실을 조심스럽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이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선지자가 선포하는 대로 여러분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절대로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에 속한 이 세 가지 사실들을 마음으로 양심으로 인정하고 확신하지 아니하면 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올바로 살필 수가 없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아담의 죄의 죄책을 지고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여러분이 본질상 세상의 온갖 악에 물들 성향이 있다는 것이요, 셋째는 이것으로 인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와 또한 그의 진노로 말미암는 온갖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사실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양심으로 확신하면, 이제 너희 자신을 살필지어다라는 선지자의 교훈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올바로 살피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 사실에 따라서 자신을 살피고 점검할 준비를 갖춘 다음 그리고 나서 여러분 자신을 살피면, 여러분 자신의 상태가 회개하고 돌아와 새로운 길을 취해야 할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한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이 지방 저 지방에서 이곳으로 모여든 잉글랜드의 형제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거니와, 여러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살피십시오. 살피는 일을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얻으려거든 여러분 자신을 살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사실로 인해서 여러분의 본질에 겨나 부패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샅샅이 찾아내어 회개함으로 날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든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속에 겨가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서 날려 버리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이르러 여러분은 겨밖에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공의의 바람 앞에 날려서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고 절대로 그냥 흘러 보내지 마십시오. 알곡을 다치게 할까 무서워서 겨 속에 오랫동안 알곡을 그냥 가두어 두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죄와 부패의 겨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썩고 부패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입니까? 교회 생활을 하고 말씀을 들음으로써 아주 조그만 은혜에 도달해 있다 할지라도, 죄의 겨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이 썩어 버리며, 깨끗한 것이 부패해 버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 거듭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자신을 살피는 의무를 양심적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2. 누구를 살펴야 할까?

, 이제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누구를 살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너희 자신을 살피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그렇게 강권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활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책임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는 것이고, 각자 자기 영혼을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므로, 자기가 믿고 회개하고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말도 이런 점에서는 - 물론 다른 모든 점에서는 그릇된 말이지만 - 일리가 있다 하겠습니다.

 

3. 누가 살펴야 할까?

세 번째로 생각할 문제는 누가 살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여기서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을 향하여 자신을 살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살펴서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상태가 되도록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놀라운 긍휼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랑과 긍휼을 받기에 전혀 무가치한 그런 이들을 향해서 은혜를 부으시는 그 놀라우신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본질상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낫게 여기고 귀하게 여길만한 그런 점이 그들에게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치가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도록 만드시고, 사랑 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으니 하나님의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러므로 영혼으로나 육체로나 그들은 모든 점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민족들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 다른 민족이나 똑같이 도저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보답했습니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사랑을 받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을 것이 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해서 오히려 죄로, 반역으로, 불순종으로 보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과연 그 유다 백성들에게만 해당됩니까? 오직 이스라엘만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백성입니까? 아닙니다. 잉글랜드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나라입니다. 유다 백성에게나 우리에게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에 못지않게 우리도 하나님께 불손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폄하시키고 우리 동족을 더럽힌다는 혐의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의 말씀이 과연 사실인지를 입증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분명하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잉글랜드가 받은 은혜

첫째로, 우리에게도 동일한 긍휼하심이 - 아니 더 큰 은혜가 -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둠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첫째는 이방 종교에서, 둘째는 교황주의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언약을 우리와 맺으시고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의 보배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졌고, 그의 거룩하신 말씀이 그렇게 잘 전파될 수가 없었고, 그 말씀의 비밀들이 사도 시대 이래로 그렇게 평이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신앙을 갖되, 신앙 있는 군주(君主) 밑에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이 구원의 축복들을 은밀하게 숨어서 도둑질 하듯 그렇게 누린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권세들의 보호 아래서 누려왔습니다. 신앙이 허용될 뿐 아니라,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강요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 이외에도,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모든 좋은 것들이 넘쳐납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 밑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화와 번영, 풍부와 건강, 부귀, 곡식, 양모, , 은 등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온갖 것들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잉글랜드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잉글랜드여, 그대는 주님의 이런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왔는가? 잉글랜드는 과연 엄청난 불순종으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보다 더한 죄로 보답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이 점을 의심하여 제가 우리 교회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말한다고 생각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민족의 잘못된 점들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살펴 봅시다. 그래서 밑마닥까지 다 치료를 받게 되도록 말입니다.

 

(2) 잉글랜드의 죄악

잉글랜드가 주님께 대한 보답으로 저지른 일상적인 죄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무지(無知)입니다.

바른 수단이 없어서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이 무지에 이른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악한 뜻을 가지고 무지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잉글랜드가 저지른 두 번째 큰 죄는 기독교 신앙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35년여 동안 신앙이 우리들 가운데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관한 책들이 출간될수록, 신앙이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골의 아주 무식한 사람까지도 신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기보다 신앙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롱하고 조소하는 정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3) 잉글랜드의 세 번째 비근한 죄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만 특히 헛되이 맹세하는 것과 거짓 맹세하는 것과, 기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들을 악하게 사용하는 행위가 흔히 나타납니다.

4) 네 번째 잉글랜드 전체가 범하는 큰 죄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서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죄악입니다. 나라 전체나, 교회나 가정이나 남녀나 간에 어디서나 이런 큰 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참된 은혜도 없으니까 그런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은 신앙을 유지하며 증가시키며 전파하는 일인 것입니다.

5) 우리 민족의 다섯 번째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거리를 부정하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검소하며 분명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모임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도 이 가운데 과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듭해서 계속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 자신을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찾아내고, 자유로이 정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그 죄가 정죄를 받아 지옥에 빠져 마땅하다는 것을 고백하십시오. 마음을 낮추어 하나님께로 향하며, 목숨을 내어 놓고 용서를 외치고 간구하십시오. 죄를 버리기를 목적 삼으시고 그렇게 약속하십시오.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죄 용서를 굳게 믿고 의심치 마십시오. 그 믿음 가운데서 삶을 계속 살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잉글랜드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사전에 예방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를 누그러뜨리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할만한 가치 있는 민족이 되십시오.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말입니다. 이 땅의 온 나라들이 잉글랜드의 평화와 번영을 흠모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런 가치 있는 민족이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4. 시간적 여유가 없음

이제 말씀드릴 네 번째 사실은,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살피라고 하지 않습니까?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심판을 시행하시기 전에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 일을 하시는지를 보십시오. 사람이 죄를 범하여 그의 죄가 극한 형벌을 받아 마땅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그들을 벌하지 아니하시고 벌을 연기하십니다. 죄와 형벌 사이에 시간적 여유를 두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류를 향하여 그의 긍휼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을 고치면,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5. 속히 살펴야 할 이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시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앞의 네번째 사실에 들어 있습니다. 명령이 너희를 향하여 시행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명령의 시행이 연기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행하기를 원치 않으시지만, 그러나 회개치 않으면 반드시 그 명령이 시행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아니면 하나님께서 복수하실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이곳에 모여온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 말을 들으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실 때에 이 말씀을 함께 갖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와 똑같이 공의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가 유다 사람들의 죄 이상으로 악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임할 것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임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과 또한 여러분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제게 있으니, 여러분에게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고 회개치 아니하면,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이미 그 심판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회개 이외에는 그 어떠한 방법도 그 명령의 시행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껏 오래 참아오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니, 물론 예언으로 말슴드릴 수는 없지만, 제 양심에 비추어볼 때에 저는 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완전 무오한 근거에서부터 심판과 재앙이 임할 것을, 그 무서운 것이 잉글랜드에 임할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이미 그 심판이 이 나라를 향하여 선언되었고, 이제는 그 실행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분명한 개혁이 없이는 그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내실 그 재앙의 방식과 그 상태를 좀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사용하는 은유법은 이런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유한 농부에 비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그 농부의 밭이요 여러 나라들이 - 우리 나라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곡식을 심은 밭입니다. 그런데 이 곡식이 자라는 밭에 가라지가 가득 차 있습니다. , 이 교회들이 위선자들로, 외식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로운 농부는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곡식과 가라지가 한 데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타작할 때를 지정했다가 그 때가 되면 곡식을 가라지와 갈라 놓습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바람에 날려버리고 곡식은 곳간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위대하시고 지혜로우신 농부이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가라지가 알곡 가운데 있도록 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타작의 때를 지정해 놓고 계십니다. 그 때가 되면 가라지는 지옥에 던지고, 알곡을 하늘의 곳간에 모아들이시는 것입니다.

 

1) 타작의 때

, 하나님이 타작하시는 때는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하나님이 타작하시는 다른 때는 바로 이 세상 가운데 있으며, 이 때 역시 두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말씀이 전파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이 첫 타작의 때에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 말씀 전파가 타작의 때가 되는 것은 말씀 전파가 사람을 혼란에 빠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심판을 선언하여 양심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다시 타작하십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의 타작은 심판의 형식으로 임합니다. 바로 이런 심판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한 나라에 심판을 보내시고 복수를 시행하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 타작의 바람에 부응하지 않으면 이 나중의 타작의 바람, 곧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강력한 바람이요,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 고대의 세계에 불어서 모두 날려버렸고, 유다 백성들에게 불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 세가지 하나님의 타작의 때를 통해서 가라지가 알곡에서 삼중적(三重的)으로 분리됩니다. , 악인이 택함 받은 자들에게서 세가지로 분리된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감정에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둘째는 일시적으로 영혼 속에서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셋째는 영원토록 영혼과 육체 모두에게서 분리가 일어납니다. , 이 세가지 타작의 때 가운데서 오늘 이 본문에서는 성령께서 두번째의 타작의 때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은유법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살피시고 속히 회개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처절한 심판으로 여러분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어째서 심판이 임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의 타작하시는 바람을 멸시해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가벼워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심판으로 임하셔서 여러분을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바람이 여러분의 신분을 확실하게 드러내어, 여러분이 과연 가라지인지 혹은 알곡인지가 분명히 드러나듯이, 그의 심판의 바람도 그렇게 확실하게 불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가라지는 날려서 지옥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말씀을 맺습니다.

 

적용

이제는 이 말씀을 적용하도록 합시다. 잉글랜드에 속해 있는 우리에게는 본문의 말씀이 이렇게 적용됩니다. 우리 교회는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밭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곡식입니다. 저 브라운주의자들(Brownists: 잉글랜드 국교회와 완전히 결별하여 철저한 분리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극단적인 분파 가운데 하나로서, ‘브라운주의자들이라는 명칭은 이 분파의 지도자였던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e, 1553-1633]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은 눈이 멀고 정신이 없어서 잉글랜드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곡식이 있는 밭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가라지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온통 죄와 반역에 빠져 있는 불경하고 악한 위선자들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가라지로, 부패로, 가득 차 있어서 수많은 죄를 개의치 않고 범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순전한 알곡은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너무나 띄엄띄엄 심겨 있어서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거룩하게 진정으로 순종하며 양심으로 모든 죄들을 멀리하기를 애쓰며 주께 헌신하는 그런 사람을, 혹은 그런 가정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밭이요 수많은 가라지 가운데 순수한 곡식이 약간 들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타작하셔서 알곡을 골라내실 것입니다. 가라지 한 줌에 알곡이 하나만 있어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의인이 하나만 있어도, 그 작은 알곡을 골라내시기 위해서 곡식 더미 전체를 타작질하실 것입니다. 몇개 되지 않는 알곡을 골라내어 하늘의 곳간에 들이시기 위해서는 모든 가라지를 다 지옥에 던져 넣어도 전혀 괘념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가 가득 차 있는 잉글랜드야말로 타작의 때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타작의 바람이 오랫동안 불었으나 결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제 두 번째 타작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어 있는데, 이미 그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나팔이 이미 서너 차례 우리를 향하여 울려퍼졌습니다. 기근과 온역과 지진과 불과 물과 바람이 우리에게 밀려와서 우리 중에 수많은 사람들을 쓸어가 버렸습니다(이 설교가 행해지기 1년 전인 1592, 재해로 인하여 1주에 거의 2천명 정도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이제 남은 우리로서 할 일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강건케 하여 다음 재앙을 견디도록 하는 일 뿐입니다. 다음 재앙이 반드시 올 것인데, 그 때가 되면 세상에 속한 것들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날을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 그렇게 무시무시한 타작의 바람이 우리 가운데 있었고, 또 다시 그런 바람이 불어올텐데 - 전에 있었던 바람은 그보다 더 무서운 광풍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고, 아니면, 그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 바람에 날려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속히 천국에 들어가도록 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 선지자의 말씀을 따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피하는 길은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타작의 바람을 피하는 길은 하나님의 율법의 바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불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첫번째 타작의 바람(, 하나님의 말씀)에 부응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에 날려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거기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찢고 샅샅이 파헤치도록 하십시오. 죄악에 찌든 여러분의 처참한 상태 그대로를 내어 놓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벌거벗은 모습과 비참한 모습이 보이면, 그것을 고백하고, 애통해하며, 그것에 대해 겸손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를 구하고 부르짖으십시오. 특별한 죄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에 독이 되는 그 죄를 없애기 위해 애를 스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사 그 죄들을 죽이도록 바라고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죄가 다른 죄보다 여러분 자신에게 더 좋게 여겨지고 여러분의 성향에 맞게 느껴지면, 무엇보다 그 죄들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바람으로 그것들을 날려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주시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바람을 불어 가라지를 날려보내고 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타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악인에게 불어닥칠 때에 여러분이 이미 그의 말씀의 바람으로 깨끗하게 된 것을 아시고서 여러분을 남겨두십니다. 그리하여 그의 심판이 여러분을 지나가게 됩니다. 마치 소돔의 멸망 때에 롯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혹 여러분의 모든 부패를 날려 버리고 여러분을 천국으로 날려 보내셔서 하늘의 곳간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고 계신 그 영광의 처소에, 순결한 알곡으로 쌓아 두실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들 모두를 성가시게 만드는 온갖 잡다한 일거리들이 널려 있습니다만 - 이 모든 것은 세상이 멸망할 때에 함께 다 멸망할 것들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중대한 일을 위해서 시간을 남겨두기를 바랍니다. 마르다 역시 이런 저런 일들로 분주했습니다만, 이 중대한 일이야말로 정말 절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하루에 한번씩 하나님의 말씀의 바람 앞에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삶을 내려놓으시고, 여러분의 상태가 어떤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번씩 여러분의 양심 속에 법정(法庭)을 마련하여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재판받도록 하십시오. 십계명을 적용하여, 죄와 부패 등 가라지로 여겨지는 것이 발견되면 회개를 통해서 그것을 날려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교회와 천국에 합당한 순결하고 깨끗한 알곡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만, 거짓 선지자가 아닌 이상 이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랜 동안의 평화와 풍요와 안락으로 인해서 크나큰 죄악들이 자라나서 하늘에까지 닿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엄을 자극할 정도가 되었고, 그 죄악들의 부패가 너무나 극심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시행하지 않으실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만, 그것이 너무나 격렬하고 강력하여 마치 가라지를 날려 보내듯 우리를 날려 보내며, 이 왕국에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가르침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예방하게 되고 이 땅에서 복음 사역을 계속하게 되며, 처참한 심판으로 이 영광된 나라가 멸망하거나 백성이 사라지는 일을 미리 막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물건들을 사고팔며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재물을 늘이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에 모였습니다. 여러분의 육체를 위해서, 재물을 위해서 좋은 시장이 열렸는데, 여기서 사고파는 일만 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면하는 법과 천국의 곳간에 합당한 알곡이 되는 법과 이 나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는 법에 대해서 배운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이 교훈을 지니고 돌아가신다면, 이 장터에 나와 있는 가장 귀한 물건을 손에 들고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고귀한 보물을 손에 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그야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훈을 올바로 배운다면, 오늘이 아마 여러분 생전에 가졌던 온갖 기회들 가운데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잠시 동안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고귀한 보물을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무언가 팔 물건을 이곳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팔려고 가지고 온 물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온 물건들은 전부 이 땅의 어느 곳에서 난 것이요, 모두가 땅에서 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지고 온 물건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온 땅이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온 물건이기 때문에 하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터의 모든 물건들을 다 합쳐도 할 수 없는 그런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천한 것들은 사고 가장 값지고 고귀한 것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마십시오. 이 보물이 너무나 값지기 때문에 여러분의 능력 밖이라거나, 이것을 살 여유가 없다거나 하지 마십시오. 값 없이, 무료로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이 값진 복된 교훈은 주의 이름으로 값 없이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 없이 무료로 이것을 얼마든지 살 수가 있습니다(55:1). 여러분의 육체를 위하여 물건을 사고 값진 돈을 지불하기 위해서 멀리서부터 이곳에 오셨는데,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시킬 이 귀중한 보물을 만나고, 더구나 값 없이 무료로 그것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여러분은 정말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내 육체를 위하여 물건을 팔고 사려고 그 곳에 갔는데 내 영혼을 구원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일인가! 내 재물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곳에 갔는데 잉글랜드의 번영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라고 하며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확실히 말씀드립니다만, 우리 모두 이 교훈을 배우고 실천하면 잉글랜드의 영광된 번영이 장차 오는 세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와 무관심 속에 있으면, 오늘의 복음도 우리의 평화도, 절대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릅니다.

 

,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드리는 이 물건은 몇 사람이 가져가면 남는 것이 없는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 모두 다 가져가도 충분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 자신의 입을 빌어서 말씀드립니다. 이 물건을 가져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마지막 날에 우리의 위대하신 재판장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앞에 우리 모두 서게 될 것이니, 여러분, 이 말씀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 날에 있을 그 엄청난 심판을 피하고 싶으시거든, 지금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이 교훈의 말씀을 받지 않으시면, 그 마지막 날에 여러분을 향하여 고소장이 날아들 것입니다. 그 고소장이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 전부가 달려 있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회개치 않으면, 여러분의 후손과 이 모든 나라 전체가 회개치 않은 것 때문에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세상에 너무나 마음이 가 있어서 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들 드리고 싶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심판이 이 나라에 밀어닥치고 복음이 사라지고 나라의 가라지들을 지옥에 던질 때에 여러분 양심에 증거가 있어서 이 전면적인 재난 가운데 휩쓸려 들어가지 아니하도록, 진지하게 기도하고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여 미리 그런 참사를 막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후손들이 여러분을 원망하지 않고 여러분을 존경하고, 여러분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한 모두가 여러분의 삶을 본받기를 원하도록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새롭게 회개하고 난 후, 우리 모두 이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하시되 주께서 이 나라와 교회에 긍휼을 베푸셔서 이 평화와 복음이 계속 이어지게 해 달라고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일은 주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권능의 손이 짧아진 것도 아닙니다. 교황주의자들이 혼란을 조장하려 하지만 주님은 얼마든지 이런 평화의 상태가 계속되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금 우상숭배를 회복시키기를 바라고 있지만, 주님은 얼마든지 복음이 이 땅에서 지속되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께 진정으로 기도합시다. 모세처럼 수많은 이 땅의 무지한 백성들의 불법을 우리의 것으로 돌려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죄악에 대해 슬퍼하며 회개하도록 합시다. 노아, 다니엘, 그리고 욥 같은 분들도 재난 가운데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 우리 시대의 노아들이 됩시다. 다니엘들이 되고, 욥들이 됩시다. 그렇게 하면, 심판이 임할 때에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아니면 최소한 우리 자신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이 총체적인 죄악성이 결국 무거운 심판으로 끝을 맺으리라는 것 이외에 다른 소망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남겨두시고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고 회개할 여유를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주께로 돌이키면, 임박한 심판을 물리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주의 진노가 정말 우리에게 임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께 존귀한 존재들로 인정을 받아 이 세상이 받아 마땅할 그 처절한 심판에서 건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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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ot worthy to be loved.’ 한글 개역 성경은 수치를 모르는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2) 한글 개역 성경은 모일지어다로 번역하고 있고, 대다수의 영역 성경도 ‘gather’로 번역하고 있으나, 퍼킨스는 이를 ‘search,’ , ‘살필지어다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 설교자/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

* 출처: "Exposition upon Zephaniah 2.1-2", in The Work of William Perkins, ed. Ian Breward (Appleford, Abingdon, Berkshire, UK: The Sutton Courtenay Press, 1970), pp.27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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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마틴 로이드 존스 (Martyn Lloyd-Jones, 1899-1981 無益박병은목사 1952 2020.05.17 18:01
69 오늘날 성결해석학의 기능, 한계, 그리고 설교 이한영교수 無益박병은목사 3034 2019.08.24 11:57
68 왜곡된 성경 신학이 낳는 네 가지 설교 S. Edami 無益박병은목사 2732 2019.08.21 23:46
67 왜 칼빈의 영성은 리바이벌 되지 않는가 김남준 목사 (열린 교회) 無益박병은목사 4051 2018.11.15 12:06
66 장로교회의 예배 이해와 장로교 예배 모범의 전통 이 승구교수 無益박병은목사 5557 2017.11.26 06:37
65 장로의 직분에 대한 이해 조병수목사 無益박병은목사 4757 2017.10.26 17:42
64 북미의 명 설교가 5명과 그들의 설교 비밀 無益박병은목사 5110 2017.10.06 15:44
63 개혁교회 예배 음악과 ‘시편 찬송’ 서창원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5445 2017.07.27 01:12
62 여성목사안수에 관하여 송영목 교수 無益박병은목사 5983 2017.07.19 05:05
61 여성안수와 성경해석 이성호교수 無益박병은목사 5501 2017.07.06 17:27
60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Dr. Roel Kuiper 無益박병은목사 5498 2017.04.14 17:05
59 파렴치한 기독교 이은규 목사(안양대 기독교교육과 명예교수, 전 총장) 無益박병은목사 6613 2016.04.26 15:03
58 한 눈에 보는 신구약 성경 사진 無益박병은목사 8700 2016.01.20 23:32
57 가정교회에 대한 신학적 진단 최은수 교수 사진 無益박병은목사 9648 2015.08.13 16:44
56 설교자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정용섭목사와 박영선목사 대담 사진 無益박병은목사 10480 2015.07.25 14:54
55 두 날개 프로그램의 신학적 문제점 김성한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9174 2015.06.17 13:51
54 두 날개 프로그램의 성경적 문제점 박형택목사 無益박병은목사 8819 2015.06.17 13:50
>> William Perkins 설교 스바냐 2:1-2에 대한 신실하고 평이 無益박병은목사 9204 2014.12.12 20:41
52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떠는 자 사무엘상 4:13 설교; Edmund 無益박병은목사 9683 2014.12.08 21:36
51 의인에게는 복, 악인에게는 화 사 3:10-11 Thomas Wats 無益박병은목사 9601 2014.12.08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