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주년 강좌> 정암이 제시한 칼빈주의 원리를 목회 현장에 적용해야 김병혁목사

無益박병은목사 | 2014.02.18 14:30 | 조회 7552

정암이 제시한 칼빈주의 원리를 목회 현장에 적용해야

 

< 김병혁 목사,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

 

어느덧 정암 신학강좌가 사반세기를 넘겼다. 올해로 제25주년을 맞는 정암신학강좌가 지난 115일 화평교회당에서 개최된 것이다.

 

정암은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괄목할만한 족적을 남긴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특히 한국 정통 칼빈주의 신학과 교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논찬자로 참여한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의 표현을 빌리면, 정암은 만주 봉천신학교와 고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무려 50여년에 걸친 교수사역을 통해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발전시켜 온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이다.

 

교회의 교사였던 정암 박윤선

 

정암의 인생 노정의 종착점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합신교단과 합동신학대학원은 그가 남긴 유산의 최대 수혜자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정암강좌는 정암의 신학과 삶을 기리기 위한 목적에서 매년 개최하는 학술 모임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정암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호사와 후광에 대한 일종의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행사에 대한 합신 동문들의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신학강좌에 참석한 다른 교단에 속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그 모습에 무척 감탄하며, 때로는 질투어린 시선으로 부러워하기도 한다. 분명 합신인으로서 뿌듯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쭐할 일이 아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살아생전 정암과의 관계나 외적인 개연성을 근거로 그의 실질적인 계승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암의 가르침은 어느 한 교단, 어느 한 신학교에 고정될 수도, 제한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암 신학강좌는 단지 정암과의 옛 추억을 회고하며 그것에 만족하는 추모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암이 우리 손 안에 남겨 놓은 좋은 유산들을 우리만의 것인양 잘난 척하거나 으스대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평생토록 정암이 그토록 간절히 추구했던 그 신학과 또한 그토록 간절히 살아내고자 했던 그 삶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견자적인 그의 신학과 삶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며, 미래의 조국 교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이룬 업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가 남긴 숙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이것이 정암이 바라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정암 신학강좌가 존재하고 계속되어야 할 명분과 목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부분에서 합신교단은 정암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어느 정도 갚고자 무진장 애를 써왔다. 그러한 노력이 정암 신학강좌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합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매년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정암 강좌는 한국교회에 대한 봉사

 

그럼에도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좀 불편하게 들려도 뼈를 깎는 마음으로 하는 뼈있는 이야기로 삼아주기를 바란다. 다소 송구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몇 해 동안 정암 세미나에 참여할 때마다 약간의 피로감과 실망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정암의 가르침이 계속적으로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 교단과 교회는 여전히 미개혁의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점이다.

 

확신컨대, 정암의 가르침은 역사적 개혁신학 위에 확고히 머물러 있으며, 그 가르침의 정점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있다. 정암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직전에 저술한 책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출판한 영음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1개월 전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이 신앙고백을 읽기 쉽도록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가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합신의 헌법 안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정암은 생전에 헌법주석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정암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헌법 원서와 기타 개혁교회의 헌법주석가들의 문헌들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정치와 예배모범에 집중된 주석이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정신에 충실한 정치와 예배를 구현하고자 한 정암의 의중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암이 이 주석을 통해 총회와 치리회와 관련하여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치리회는 등급은 없고 대소(大小)의 차이라든가, 총회는 폐회가 아니라 파회(罷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책에는 특별참고문의 형태로 교회 운영과 관련한 실제적인 개혁안들도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교역자와 강단의 문제라든지, 십일조 헌금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적실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정암을 정신적 지주(支柱)로 받드는 현실 교회의 형편은 어떠한가? 합신에 속한 모든 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 위에 바르게 서 있는가. 정암이 칼빈주의 원리와 표준이라고 누누이 밝힌 이 고백서를 교회 현장에서 정직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가. 하지만 대단히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을 들어 본적도 없다는 교회 직분자들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정암이 헌법 주석에서 제시한 개혁안들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정암의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현실이다. 혹시 정암이 가리키는 달은 생각지 못하고 그의 손가락을 보고서 안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정암의 가르침과 너무나 상이한 신앙 현실을 살면서도 정암과의 관련성을 이유로 자신을 개혁주의자라고 확신하는 것은 정암에게 대단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정암이 제시한 교회 개혁 정신 따라야

 

둘째, 정암 신학강좌에서는 왜 항상 그에게 속한것만 찾으려 할 뿐, ‘그를 넘어서는시도가 보이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질문 자체를 교만하고 불손하게 여길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암을 따라가기도 힘겨운데 어찌 정암을 뛰어 넘을 생각을 하는가라고 말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설령 정암에게 극복할만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그 이상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암의 신학은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정암을 잇는 신학적 발전과 번영에 대해 궁구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암 박윤선과 나의 목회라는 제하를 둔 이번 강좌에서도 여전히 이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정암 신학강좌의 주제는 매년 다르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언제나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발제자들의 신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 대부분이 정암의 과거와 그에 관한 개인적인 탁월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번에 처음 시도된 수상문에 당선된 어느 분은 ‘(정암)목사님께서는 선지자이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용비어천가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었다. 발표된 논문 중에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돋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암에 속한 것들을 찾아내어 그를 드높이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한 논문도 있었다.

 

정암신학강좌는 계속해서 진보되어야

 

정암을 생각할 때마다 그가 평생 그토록 닮기 원했던 칼빈을 떠올린다. 칼빈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묘비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개혁자인 칼빈조차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실 우리에게 있어 칼빈의 심장을 가장 닮은 개혁주의자로 정암을 택하는데 있어 주저함은 없다. 정암은 이유 불문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높이는데 열중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믿음의 선배를 정중하게 높이고 존경하는 것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정암 신학강좌 때마다 어김없이 정암을 위해 쏟아지는 예찬들은 솔직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에 한 가지 바람을 전한다면, 정암의 신학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접근과 이해, 그리고 그의 신학을 넘을 수 있는 시도와 제안이 쏟아지는 강좌가 되기를 바란다.

 

정암이 존중하는 화란 개혁교회에는 폴레믹스(ploemics, 논쟁)라는 전통이 있다. 그들은 좀 더 바람직하고 견고한 개혁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누구를 향해서도 폴레믹스는 열려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회의와 도르트 총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정통 장로교회, 개혁교회의 유구한 전통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암 신학강좌에서 이러한 전통이 주는 유익들을 제대로 찾아 누리기 어렵다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표현일까.

 

정암 신학에 대한 폭넓은 논증도 필요해

 

누구나 그렇듯이 정암이 이룬 일도 있고, 못 이룬 일도 있다. 겸허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그가 이룬 업적과 한계에 대해 폴레믹스할 수 있어야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함성은 전체의식을 강화할 수 있을지언정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갖게 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우리만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인 개혁신앙의 테두리에서 정암의 사상에 대하여 성숙하고 심화된 폴레믹스를 이룰 수 있는 배려와 여유를 좀 더 느낄 수 있는 신학강좌가 되면 좋겠다.

 

정암을 추억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가 말하고자 했고 지향하고자 했던, 그러나 그가 이루지 못한 가장 좋은 개혁주의를 향해 힘써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정녕 정암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진정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그 때문에라도 정암신학강좌는 지속되어야 하며,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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