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정암신학강좌 3>언약의 열매로서 영생에 대한 정암의 이해, 문병호 목사(총신대학교 교수 )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4 23:06 | 조회 8314

언약의 열매로서 영생에 대한 정암의 이해

< 문병호 목사, 총신대학교 >

 이 원고는 ‘정암 박윤선과 개혁주의 언약 사상-조직신학 관점에서’ 중 ‘언약의 열매’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원문은 홈페이지(www.rpress.or.kr) 디지털개혁신보 열린자료실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정암의 언약사상은 칼빈과 칼빈을 잇는 개혁주의 전통에 정확히 서 있다. 정암은 ‘칼빈주의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르쳐 준다’고 확신했다.”

정암이 전개한 조직신학은 필생의 강의안 「개혁주의 교리학」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그가 일생 동안 주석한 성경을 교리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작이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성경신학」에도 주요한 몇몇 교리들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G. 보스, H. 리델보스 등에 의지하여 “계시사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정암의 방대한 주석들에 전개된 사상적 골격을 보여주므로 본고에서도 길잡이 역할을 한다.

1. 영생에 대한 속죄론적 이해

정암은 창세전의 영원한 언약이 은혜언약뿐만 아니라 행위언약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일견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하나님의 한 뜻 가운데 영원 전에 작정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정암이 행위언약을 다룸에 있어서 불순종했을 때의 형벌만을 강조하고 순종했을 때의 복은 등한시했다고 비판한 차영배 학장의 견해는 과한 점이 있다.

정암은 행위언약이 단지 현상을 유지하는 불사(不死)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온전한 삶을 사는 영생(永生)의 언약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처우하시는 “언약의 원리”는 타락 전후를 통하여 일관적이라고 그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렇다면 정암이 언약의 목적이라고 여긴 영생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를 속죄론과 구원론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공로의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구원론은 그것의 적용을 논하고 있다. 영생을 말하지 않고는 양자를 거론할 수 없다. 그 역도 진실이다.

먼저 속죄론의 관점에서 논한다. 정암이 자신의 입장으로 표방한 “대신구속론(Substitutionary Atonement)”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체적이고 직접적인 전가를 주장하는 객관적 전가론에 서 있다. 속죄의 형벌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그것은 단지 주관적이거나 정서적인 회복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주관적 감화는 객관적 대속에 따르는 부속물일 뿐 속죄의 본질을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엇을 함의하는가? 정암은 그것이 고난을 당하신 순종과 율법을 행하신 순종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그의 삶도 우리를 위한 의가 된다고 한다.

정암의 이러한 입장은 정통적인 개혁주의 속죄론과 일치한다. 여기에서 구원의 전체 과정을 그리스도의 은혜에 돌리고 인격뿐만 아니라 행위도 의롭다 여김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 가운데 새로운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의 초석이 놓여진다. 여기에서 정암은 H. 바빙크에 다시금 문의한다.

“예수는 행위언약의 대표자이신 공적 신분으로서 율법을 완수하셨다. 그러니만큼 그가 살아 계신 동안에 율법을 지키신 효과는 자기 개인에게만 아니고 그가 대표하신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의(義)가 되는 것이다. 그의 죽으심만 아니고 그의 생활도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다.”

2. 영생에 대한 구원론적 이해

이어서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에 따라서 성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영생이 가지는 구원론적인 의의를 논한다.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것은 정암이 영생을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이라고 측면에서 파악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정암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구원서정의 한 부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암은 자신의 언약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를 수시로 강조한다. 정암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영생의 본질로 여기고 있다.

정암은 성취된 “영원한 언약의 효과”를 논하면서 “영생이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시다”라고 단언하면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 20:38)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러한 입장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다루면서 뚜렷해진다. 정암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약속 자체가 영생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영생은 하나님 자신이시고(요 14:6), 그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영생을 소유한다. 하나님을 소유한 것이 곧 영생이라는 의미에서, 성경은 많이 말씀하고 있다(계 21:6-7). 하나님께서 그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하실 때에 이것을 중점적으로 말씀하신다”(출 29:45; 레 26:12; 렘 24:7, 33; 32:38; 겔 11:20; 34:24; 37:23, 27; 슥 8:8; 고후 6:16; 히 8:10; 계 21:3).

여기에서 정암은 영생이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영생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연합된 생활을 하는 윤리적 차원 정도에 머물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그렇게 본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리적 속죄가치가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정암은 창 15:6을 주석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가해 주시는 “의”는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은 “추상적(抽象的) 상태가 아니고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이니, 곧 살아있는 의를 얻음이다”라고 단언한다. 곧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심으로 우리가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의의 전가가 영생이라는 열매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암은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백성 안에 두시겠다는 새언약의 약속이 성도가 그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편지가 되는 것(고후 3:3)이라고 주석한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특히 강조한다.

정암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다루면서 성도가 그리스도가 연합하는 것은 영원한 언약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다. H. 바빙크를 인용하면서 이러한 연합이 이미 창세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C. 홧지의 다음 말에 주목한다.

“이 연합은 신비로우며 초자연적이고 대신 원리의 것이요 생명 있는 것이다. 이 연합에 의하여 우리는 창세전에 그의 안에 있었고(엡 1:4),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그의 안에 있고(롬 5:12, 21; 고전 15:22), 우리와 그와의 관계는 머리와 몸의 관계요(엡 1:23; 4:15; 고전 12:12, 27), 우리가 그에게 관계된 것이, 포도나무에게 대한 가지의 관계와 같다(요 15:1-12). 이 연합에 의하면 그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이 되어졌고(갈 2:20), 우리는 그와 함께 살았고, 그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엡 2:1-6). 이 연합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정도에서 그와 같아졌으며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의 하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으니 만큼, 그의 의(義)가 우리의 것이며, 그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며, 그의 높아지심이 우리의 높아짐이 된 것이다.”

3. 영생에 대한 정암의 이해

정암에게 있어서 영생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총체적인 양상을 뜻한다. 그것은 창세전의 영원한 구원 작정 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에 있어서 그분과 연합하는 것, 성도의 전체 구원과정에 있어서 그리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의 열매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행실을 포괄한다. 이러한 전인격적 연합은 성찬의 “구원사적 의의”와 부합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선택된 백성에게 구원의 의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심령을 사랑으로 강권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와 연합하게 하셨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그분이 우리의 중보자시다. 그분은 구속의 중보를 다 이루시고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주님의 계속적인 중보로 말미암아 다 이루신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분의 의가 전가된 삶이 영생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정암이 “저 좋은 언약의 중보자”(히 8:6) 라는 말씀을 주석하면서 헬라어 “중보자“가 “언약의 실행을 보증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특별히 강조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구속사적 성취와 구원론적 적용-에 언약의 핵심이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마치는 말

정암은 구원협약을 “영원한 언약”으로, 행위언약을 “행위언약”으로, 은혜언약을 구약의 언약 즉 “구언약”으로, 새언약을 신약의 언약 즉 “신언약”으로 부른다. 특히 신언약은 “성취된 은혜언약”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정암의 입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언약을 다룬 제3장과 제7장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

정암은 아담의 타락 이후 나타나는 신·구약의 모든 언약을 은혜언약으로 보는 칼빈의 입장에 충실하다. 칼빈은 신·구약은 경륜에 있어서는 다양하나 실체는 같다고 하였는데, 정암은 이를 충실하게 자신의 신학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구약을 구언약으로 신약을 신언약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언약, 즉 새언약에 대한 별도의 심오한 고찰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속죄론 등 기독론의 다른 부분에서 간헐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므로, 내용 자체를 결한 것은 아니다.

정암의 이러한 입장은 죽산 박형룡의 언약이해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죽산은 조직신학자로서 인죄론을 다루면서 언약 전체를 논한다. 이는 대부분의 조직신학자들이 행위언약은 인간론에서, 은혜언약은 기독론의 서론적 위치에서 다루는 것과는 구별된다. 죽산은 정암이 말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구속언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역사상 체결된 언약을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나누고 후자는 다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다만 정암이 이 부분을 다룸에 있어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었던 H.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에 거의 의지하고 G. 보스, H. 리델보스, C. 홧지, G. C. 뻘카우어 등을 보충해서 다루었다면, 죽산은 C. 홧지, A. A. 홧지, W. 스트롱, R. L. 답니, G. 보스 등을 주로 인용한다.

죽산의 신학이 H. 바빙크의 신학을 미국에 잘 소개한 L. 뻘코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점도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암의 신학에는 그 자신의 학문의 여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정암은 후기로 갈수록 화란의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했으며 그만큼 자신의 글에 그것을 반영하였다.

정암은 칼 바르트의 신학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로마서 주석 등에 이를 반영하기도 하였지만 전문 조직신학적 정치함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정암의 조직신학적 식견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정암의 “언약론”이 보여주듯이, 그는 조직신학적 진리를 확고하게 견지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주석 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성경주석의 말미에 본문에 해당하는 교리를 별도로 논하여 부록과 같이 수록하고는 하였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곧 교리라는 그의 신념을 방증한다.

정암은 자신이 말했듯이 일생동안 세 가지 즉 “신학교육, 주석집필, 설교”에 힘썼다. 그의 역동적인 교리이해는 이러한 토양 가운데서 배태되었다. 정암의 언약사상은 칼빈과 칼빈을 잇는 개혁주의 전통에 정확히 서 있다. 정암은 “칼빈주의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르쳐 준다”고 확신했다.

정암의 이해는 행위언약의 조건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은혜의 절대성을 말하는 개혁주의 언약사상을 확고하게 따르고 있다. 정암은 개혁주의의 구속사적·구원론적 이해에 충실하게 자신의 언약신학을 전개하였다.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는 모든 대속의 의를 역사상 다 이루셨다. 구원론적으로, 그 다 이루신 의를 이제 우리를 위하여 전가해 주신다. 이러한 구속사적 구원론적 이해의 근저에는 중보자 그리스도가 한분이시며 동일하시다는 중보의 유일성(unity)과 계속성(continuity)에 대한 인식이 가로 놓여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암은 언약의 목적 혹은 열매인 영생을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논한다.

정암의 “언약론”의 폭과 깊이는 이러한 연합의 폭과 깊이와 비례한다(2012년 11월 13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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