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정암신학강좌 2>언약 백성의 삶에 대한 정암의 이해, 최승락 목사(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4 23:03 | 조회 8348

 이 원고는 ‘정암 박윤선과 개혁주의 언약 사상-신약신학 관점에서’ 중 ‘언약 백성의 삶’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원문은 홈페이지(www.rpress.or.kr) 디지털개혁신보 열린자료실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박윤선의 언약사상은 교회 개혁을 촉진한다. 현실 교회에 대한 정암의 우려는 매우 깊고도 지속적이다. 그는 “현대 교회는 뼈 없는 교회 같이 되어간다”고 통탄한 바 있다. 이는 복음의 원칙과 그에 따른 책선(권면)이 빠진 교회의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박윤선에게 있어서 언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끈이며, 성경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게 하는 중심축이고, 또한 역사와 종말을 이어주는 통합적 사관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박윤선의 신약 주석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중심적 원리인 언약의 개념에 근거한 언약 백성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1. 언약 백성의 특권

우리가 성도의 구원을 언약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에는 큰 유익이 따른다. 박윤선은 사도행전 주석에 포함된 “종교와 언약”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구속을 “언약적으로” 이루어가심이 주는 혜택으로 “언약 성취에 대한 믿음”(확신)과 “성화되는 역사”, 그리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위로” 세 가지를 든다.

무엇보다 성도의 구원의 확신은 자신의 행위나 심리적 상태, 그 밖의 그 어떤 인간 조건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한다. 비록 인간은 불신실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박윤선은 스펄젼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뒤섞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약해지므로 하나님도 약해진다고 생각함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성도의 확신의 조건은 우리의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우리가 언약의 “계약주”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에베소서 3:12이 말하는 담대함과 당당히 나아감의 특권을 하나님 앞에서 누릴 수 있다. 박윤선은 이것이 “신자가 소유한 주관적인 어떤 의로움 때문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과 당당함은 주관적,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법적, 언약적 차원이다. 바로 이것이 은혜언약 안에서 언약 백성이 누리는 특권이다.

더 나아가서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행위언약 차원에서 잃어버렸던 세상의 후사됨의 특권과 왕적 통치의 특권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한다. 비록 이것이 지금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성도는 이런 언약적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며, 나아가서 이것이 온전히 실현된 영원한 그 나라를 대망한다. 언약의 최종적 완성은 새 세계와 그 속의 새 예루살렘(승리한 교회)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2. 언약 백성의 책임

언약 백성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통해 그가 이루신 언약적 의를 전적으로 힘입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의 언약적 책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박윤선은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신앙함이 경건의 근본이지만, 그것 위에 지금 하늘에 살아 계신 중보자 예수님을 믿어 생동력 있게 영적 실생활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촉구한다. 좀 더 분명한 언약적 언어를 사용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연합하였은즉, 처음부터 나중까지 조약 이행을 힘써야 된다. 이 조약 이행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생활이다.”

박윤선에게 있어서 신앙과 순종은 서로 뗄 수 없는 개념이다. 심지어 우리가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가 그의 구원을 받는 길도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되어진다. 우리는 신앙과 순종을 서로 분리시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 없는 순종은 참된 순종이 아니며, 순종 없는 신앙도 죽은 신앙이다.” 박윤선이 이와 같이 말하는 이유는 그가 언약의 관계를 살아 있는 인격 사이의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에 부합한 의(義)를 실천하지 못한 자”, 또는 “순종함에 있어서 천단(淺短)함”을 가진 자는 영적 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한다. “진정한 영적 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얻어진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에 대하여는 영적 교통을 단절하시기 때문이다.”

언약 백성은 적극적으로 성화를 힘써야 할 책무를 가진다. 박윤선은 은혜를 받고도 성화를 힘쓰지 않는 자는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베드로전서 2:5의 “신령한 제사”를 “신령한 제물”로 고쳐야 할 것을 잘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자기를 죽이는 운동”,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성화의 삶은 언약 백성의 의무이면서 또한 즐거운 특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은혜언약 안에서의 삶은 우리를 언약에 따라 살도록 해주시는 성령님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25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여 “성령의 약속”을 받은 언약 백성의 현상태(indicative)와 당위(imperative)를 동시에 언급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박윤선은 여기서 “행하자”고 할 때 사용된 동사를 그 군사적 뉘앙스를 잘 살려서 “행렬을 지어 서거나 가거나 함”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신자들이 한 단체의 행렬처럼 성령님의 인도대로 규율 있게 순종함”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3. 언약적 삶속에서의 행위의 위치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위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윤선은 언약 백성의 행위 문제에 대하여 지나칠 만큼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는 참 신앙의 본질이요, 그 증거며, 그 생명이고 또한 그 완성이다. 따라서 행위 없는 신앙은 “죽을 지경의 위험”에 떨어진다.

박윤선은 산상설교에 대한 언약적 관점에서의 해설 논문에서도 엄청나게 강한 어조로 행위 없는 신앙의 잘못을 질타한다. 그는 바빙크의 말을 빌려서 “은혜 계약은 그리스도에게 관계된 한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행위 계약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라’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말한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요구를 행할 수 없는 인간의 측면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일이 은혜로 주어진다. 그러함에도 “행위 계약은 계속적으로 신자들을 향하여 율법의 행위를 요구한다”는 것이 박윤선의 입장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 대신에 행위 계약을 담부(擔負)하실 자라도, 그 책임자들은 신자들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과 지옥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자의 인격 속에 뿌리 깊이 있어야 된다. 미래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종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자격이 아니다. ...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의 계명을 가르치실 때에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도 말씀한 기미(氣味)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 면에서 행위는 은혜의 선물이면서 또 다른 한 면에서 그것은 구원의 조건이기도 하다. 물론 후자를 이야기할 때 박윤선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순처럼 보이는 일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가?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언약신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하며 우리의 구원이 언약 관계로 주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박윤선은 산상설교에 대한 그의 해설을 마감하면서 “행위 계약의 고소(告訴)가 은혜 계약을 잊어버린 것처럼 자체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위 계약이 폐지되지 않은것만큼 그것을 어제든지 어디서나 말하고 있다”고 하며, 또한 “행위 계약은 은혜 계약 때문에 그 자체의 사명을 연화(軟化)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와 유사한 접근이 고린도후서 5:10의 신자들이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말씀의 해설에서도 나타난다.

“신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심판을 안 받는다고도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심판을 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박윤선은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정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또한 언약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행위 계약이 진리의 계약인 것만큼 폐지되지 않고 마지막 심판 때에 반드시 심판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신자도 어떤 의미에서 그 앞에 서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 신자는, 행위 계약 앞에서 심판날에 정죄를 면할 뿐이고, 행위 계약의 대상자(對象者)인 관계가 도말된 것은 아니다.”

박윤선은 신자들이 구원받았다고 하여 피상적 구원 인식으로 경거망동하거나 방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신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공포심”을 언급한다. 이 공포심은 의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확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는 “복음 진리 앞에서 두려워 떠는 생활이라야 비로소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말한다.

나가는 말

언약의 축으로 접근할 때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단절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이루어오는 하나의 단일 맥락의 책이라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성경 해석상의 난맥상이 무질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정암 박윤선의 이와 같은 성경 이해는 시대를 앞서가는 큰 기여를 한국 교회에 남겼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첨부하여 우리는 그의 언약사상이 가지는 세 가지 실제적 유익들을 짚어보면서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첫째, 박윤선의 언약사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증진시킨다. 아무 가치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언약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짝으로 삼아주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경외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합당하게 증진되도록 하는 것이 모든 신학적 작업과 설교 사역의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박윤선과 또 그의 뒤를 따르는 한국 개혁주의 교회는 세계 교회에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다.

둘째, 박윤선의 언약사상은 “성결 제일주의”를 고취한다. 그에 따르면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피상적인 승리주의에 도취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범죄하는 것을 제일 원통히 여기는 사람”이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거나 단절되지 않기 위하여 늘 살아 있는 갈망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이다. 비록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 모든 죄책이나 형벌이 면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두려움의 마음과 조심의 자세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객관적 대속과 주관적 죄 미워함이 함께 공존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박윤선은 늘 강조한다. 이런 자세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성령님께 보조를 맞추어 “성결 제일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박윤선의 언약사상은 교회 개혁을 촉진한다. 현실 교회에 대한 정암의 우려는 매우 깊고도 지속적이다. 그는 “현대 교회는 뼈 없는 교회 같이 되어간다”고 통탄한 바 있다. 이는 복음의 원칙과 그에 따른 책선(권면)이 빠진 교회의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뿐만 아니라 박윤선은 당대 목회자들의 타락상에 대해서도 개탄한다. 기도와 영력 대신 인간의 악독한 수단들을 동원하여 사익을 탐하고 영적 유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속화된 목사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이제 이런 모습은 더 심화된 형태로 이 시대의 한국교회를 옥죄는 현실이 되고 있다. 박윤선의 언약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게 되는 이런 현상은 교회를 구별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인식하게 하는 언약사상 자체의 망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언약 머리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존귀로우신 하나님의 언약 짝이 되도록 부름 받은 언약 백성의 놀라운 특권 및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망실되면 교회는 세속적 집단과 다를 바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타락상 내지는 퇴조 현상의 주된 원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박윤선의 언약 사상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귀한 것으로 다시금 회복되어야 할 요소임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2012년 11월 13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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